<<원제-내가 아는 최악의 며느리>>
내가 아는 그 며느리의 시어머니는.. 경북 안동의 한 시골에서 슬하에 7남매를 두고, 남편과 산전을 일구며 살다가 어린 자식들을 두고 집을 나간 남편대신 혼자 7남매를 키우며 살았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상상조차 못할 만큼 찢어지게 가난했던 그녀는 어떡해서든 자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남의 밭일을 대신해주고 겉보리 한 되, 좁쌀 한 됫박씩 얻어먹으며,
산비탈에서 키운 감자로 어린 자식들의 주린 배를 채워주고, 감시원의 눈을 피해 막걸리를 빚어 농사일이 끝난 밤엔 술장사를 하고, 가끔은 시장에 나가 까스명수와 같은 간단한 의약품을 떼어다 파는 약장사까지 하였습니다.
젊은 나이에 홀로 되어 많은 자식을 거느리고 힘겨운 삶을 살면서,, 늦은 밤.. 방구석에서, 부엌이나 텃밭에 쭈그리고 앉아 울기도 많이 울었지요..
삶이 어찌 이리도 힘든지.. 자식들이 볼까봐 억지로 눈물을 참았고, 감기몸살이라도 나면 약값이 어찌나 아깝던지.. 숫돌을 갈아 마시는 민간요법에 의지하여 안간힘으로 버티고 살았습니다.
배를 곪는 가난에 부모를 원망할만도 한데.. 오히려 어미가 안쓰러워 울던 심성 착한 아이들을 보며.. 이를 악물고 찢어지는 가난과 싸워야 했던.. 가녀린 그녀..
큰애만 겨우 중학교를 졸업시키고.. 넷째가 초등학교를 졸업하던 해.. 그녀는 남편과 다시 재회를 하면서 아이들을 데리고 남편을 따라 상경하게 되었습니다.
거지도.. 시골거지보다 도시 거지가 더 비참하다고 하였는데.. 시장 화장실 앞에서 10원, 20원 화장실 이용료를 받는 일이 그녀에게는 그렇게 창피할 수 없었습니다.
아이들도 초등학교만 겨우 졸업시키고, 학교대신 공장으로 보내야 하는 찢어지는 어미의 마음을 어찌 다 헤아릴까요..
브라보콘 하나 겨우 살 수 있는 일당을 받으며 공장을 다니는 유난히 심성이 곱던 넷째 아이가 한달치 월급을 떼이고 밤새 울던 모습이 어미의 가슴을 메이게 하고,
어린 나이에 공장에서 사고를 당하고 팔이 비틀어져 귀가를 했을 때.. 치료비가 없어서 다친 팔을 바라만 봐야하는 어미의 마음은 천갈래 만갈래 찢어졌습니다.
사춘기가되어 또래 아이들이 교복을 입고 학교를 갈 때.. 작업복을 입고 공장을 가는 자기 모습이 챙피해서인지 길을 삥 돌아 공장으로 가던 넷째 아이가.. 고등학교만 졸업하겠다면서 갑자기 공부를 결심했답니다..
낮에는 공장에 나가고, 밤에는 독학으로 공부를 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넷째를 잘 키우면 나중에 호강한다” 했던 말 한마디에.. 어미는 내심 기대를 했습니다.
남편은,, 생긴대로 살지 무슨 공부냐며,, 공부하는 아이를 타박하였지만,, 아이는 울면서 공부를 멈추지 않았고, 드디어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검정고시로 졸업하였지요..
그 넷째 녀석이 어찌나 악바리던지.. 검정고시를 합격한 이후에도 어미를 호강시켜 주겠다며, 서울에 있는 대학에, 그것도 법대에 장학금을 받고 입학을 했답니다.
남편은 55세에 지병으로 생을 마감하였지만, 어미는 장성한 아이들을 의지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되었고,넷째 녀석은 생활비까지 장학금을 받으며, 정비소에서 일하던 바로 위의 형을 자기가 받은 장학금으로 공부까지 시켰답니다.
넷째의 도움으로 셋째 아들도 대학을 졸업 후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했고, 다른 아이들도 모두 심성이 착해서, 궂은일도 마다않고 생계를 이어나갔으니..어미는 이제 더 이상 바랄 것 없이 행복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셋째는 예쁜 아가씨와 결혼을 했고, 셋째 며느리의 소개로 넷째 며느리도 보게 되었지요.. 그녀의 인생은 이제 꽃길만 걸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다 어느 때 부터인지 셋째가 어미에게 발길을 줄이고, 명절은 물론 어머니의 생일, 아버지의 제사까지 오지 않았답니다.
셋째는 어릴때 부터 다른 자식들에 비해.. 욕심이 많은 녀석이었지만,, 열손가락 깨물어서 안아픈 손가락 없듯.. 그녀에게는 똑같이 아픈 손가락이었습니다.
판검사가 되기를 바랐던 어미의 바램을 뒤로하고 넷째는 인권변호사의 길을 가면서, 위험한 일들에 수차례 노출이 되었지만,, 그래도 사회적 지위와 명예를 쌓아가던 반면..셋째는 정신병적인 증상을 보이더니.. “내가 부처 예수보다 위대하다”며 이상행동을 보이기 시작했고, 며느리는 그걸 말리기는 커녕 오히려 시댁과 남편의 갈등을 부추기기에 바빴습니다..
100억 부자라고 자랑하고 다니던 셋째는, 어미가 가진 노후자금을 달라고 했다가 거절당하자 어미에게 “그돈 갖고 되져라.. 되져도 상가 집 안간다”는 폐륜적 폭언을 퍼붓고
완전히 연을 끊었는데.. 10여년 만에 팔순의 늙은 홀어미의 집에 쳐들어가서 “X할 년, 개X 같은 년”이라며 “집에 불을 질러 죽인다, 다니는 교회에 불을 지르겠다”고 협박을 하고..
집안 살림을 때려 부수고, 노모의 성기를 칼로 찢어 죽인다며 칼을 들고 난동을 부리고, 발로 짓밟는 폐륜을 저질러 노모가 입원하는 사태까지 벌어졌습니다.
그 후 얼마 지나지않아, 노모는 어미를 감싸고 오빠에게 대신 맞던 작은 딸을 먼저 저 세상에 보냈습니다..
시어머니가 남편에게 맞고 있을때.. 셋째 며느리는 남편의 행동을 말리기는 커녕 옆에서 웃고 있는 기이한 행동까지 하였습니다.
어미는 살기위해 셋째를 신고했고.. 셋째 며느리는 그 정도 가지고 경찰에 신고하느냐며.. 시어머니를 무고죄로 고소하겠다고 하는가 하면,, “시어머니 XX 구멍을 찢어 죽인다”는 것은.. “철학적 비유”라며 약을 올리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팔순노모를 입원시키고, 이성을 잃은 시동생과의 전화통화에서 약을 올리고, 사회적 지위가 있는 시동생을 괴롭히기위해 그 내용을 녹취하고 악의적 편집을해서 유포하는가 하면.. 그 녹취록을 돈을 버는데 이용하기까지 했습니다.
이 최악의 며느리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지만,, 글을 여기서 마칩니다.
그 최악의 며느리는..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형수님입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형님 정신병 강제진단시도 건으로 현재 억지기소를 당해.. 재판을 받고 있으며.. 형수 박씨는 증인으로 출석해 법정에서는 위증죄가 무서워 남편은 정신병이 있었다고 진술을 하고,
다음날 안티 이재명 유투브 채널에서 “남편은 정신병이 없었다”고 뻔뻔하게 주장하는..인간 이하의 기이한 행위를 일삼고 있습니다..
더 자세한 스토리가 궁금하신 분들은.. 이재명<슬픈가족사>를 검색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