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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꿀꿀이 바구미 5장 (01)

마쉬맬로우 |2004.02.07 09:12
조회 510 |추천 0

5



“그래. 좋아.” 밤벌레가 말했다.

“대신 너를 밤벌레를 부를 수는 없어. 나도 밤벌레니까.”

“뭐라고 부르면 좋지?”

“그건 네가 정해.”

“넌 밤이해. 난 벌이 할게.”

그렇게 두 벌레의 이름이 정해졌다.




‘얼마쯤 잤을까? 인기척이 나는 것 같은데.’


“혜림이 자니?”



굵고도 섹시한 목소리였다.


눈을 뜨니 수암 오빠가 내 곁에 있었다.



‘아직 밤인 것 같은데 오빠가 내 방에? 아침에 볼텐데 그 새를 못 참다니. 나의 매력에 푹 빠졌구려.’



오빠는 잠든 나의 머리를 어루만져 주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머리를 만져주며 그윽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사실 많이 놀랐지만 너무 놀란 기색을 하면 나가버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최대한 침착하게. 그리고 최대한 섹시하게 말해야해.’



“이 밤에 웬일이야?”


“너에게 노래를 들려주고 싶어서.”


“노래?”



‘꽤나 낭만적이군. 그냥 잘 자라는 뽀뽀를 해주고 싶었다고 해도 괜찮은데. 말 돌리기는.’



“한번만 내 맘을 들어줘. every day every night I am missing you. 홍홍홍홍.”



‘어라. 진짜 노래를 해주려 왔나보다. 근데 왜 이 야밤에 홍가를 부르는 거냐구?’



“홍홍홍홍 홍홍홍홍.”



이젠 아예 가사도 없는 홍가만을 부르고 있었다.


들을 수가 없어 귀를 막아버렸다.


그러나 귀를 막아도 홍가는 너무나 뚜렷하게 들려왔다.


이때 흐릿하게 나타나는 영상. 귀신?


아니 아저씨는 바닷가에서 만난 골뱅이 아저씨 아닌가.



“똥자루. 인기 캡이다.”



골뱅이 아저씨는 이 한마디 던져놓고는 홍가에 코러스를 넣어주고 있었다.



“제발 그만해! 오빠.”



거세게도 홍가를 거부하던 중 악몽 같은 꿈에서 깨어날 수 있었다.



‘참으로 기막힌 꿈으로 첫날밤을 보냈군. 홍가는 다시는 들을 일이 없었으면 좋겠는데.’



첫 날부터 일이 꼬여버리는 것은 아닌지 겁이 났다.


꿈자리도 사나우면 사나운 편이였으니 걱정이 더했다.


여전히 말이 없는 할아버지도 걱정되기도 해서 아침 지성을 올리고 할아버지와 얘기를 시도해보았다.



[할아버지....]


[...]



여전히 말이 없었다.



‘이거 큰일인데.’



[무슨 말씀이라도 해주세요.]


[오징어...먹고 싶다...]



그리고는 또 말이 없는 할아버지.



‘먹는 것 외에는 반응을 보이지 않는 건가? 살아생전에 오징어를 무척이나 좋아하셨나봐. 내가 졌소. 하나 사드리리다.’



할아버지의 행동을 천천히 적응할 시간을 갖기를 바라는 것으로 해석하고 넘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어색한 아침 식사 시간.


못난이 중딩들만이 서로에게 귀속말을 하듯 조잘거리고 있다.



“너무 졸리다.”


“그러게. 너도 잠 설친 거야?”


“응. 근데 꿈에 수암 아저씨가 나와서 너무 좋았어.”


“진짜? 좋았겠다.”



‘웃기고 있네. 수암은 이제 내꺼라구. 다 그런 아픔을 겪고 어른이 되는 거란다. 너희들에게 아저씨뻘인 사람은 그만 잊도록 하여라.’



동정어린 눈빛과 천상에서 내려온 듯한 온화한 미소를 중딩에게 보내주었다.


쌍둥이 싸가지중 왕 싸가지는 나의 미소를 이해하는 듯 웃어보였다.



“재 눈 부은 거봐. 어제 밤에 라면을 눈으로 먹고 잤나봐.”


“하하하. 얘가 무디게 생겼잖아. 어디 갔다 놔도 잘 자겠지. 어제 아예 퍼 잤나보다.”


“눈 부으니까 진짜 멍청해 보이지 않니?”



‘그래. 맘껏 떠들어라. 조만간 너희들 눈에서 나는 눈물은 내가 접수하마.’



나를 반찬 삼아 밥을 먹는 중딩 옆에서 밥 두공기를 해치워 버렸다.



드디어 첫 수업 시간.


모두들 약간의 긴장을 한 모양이었다.


일요일이라 오전 수업부터 중딩들도 함께였다.


영민이라는 남자의 침 삼키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분위기는 엄숙하고 조용했다.


영적인 움직임마저 조용한 가운데 첫 수업은 시작되었다.



“오늘은 첫날이니 간단한 테스트만 하고 모두 쉬도록 함이 좋을 듯 싶은데. 한 사람의 사주를 부를테니 지금 그 사람의 형편을 말씀하시면 되오. 평소 하던 일이라 무리되는 일은 아니겠지요?”



그 정도야 늘 하는 일이긴 하지만 할아버지가 좀 걱정이 되긴 한다.



“우선 사주는 1972년생 x월 x일 이요. 태어난 시는 해시. 남성이요. 누가 먼저 말해보겠소?”


“제가 먼저 말해보겠습니다.”



희멀건 여자가 제일 먼저 말을 꺼냈다.



“심성은 매우 착한 사람이군요. 하지만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네요. 여복도 없는 편이라 길게 만난 여성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음 태어난 날이 뱀의 날이고 태어난 시는 해, 즉 돼지날이라 이별수가 있습니다. 만나는 여성과 결혼에 이르더라도 백년해로는 어려워 보입니다.”


“사람들의 관계와 연애운 위주로 풀이하셨군요. 다음 말할 사람은 없습니까?”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입을 다물어 버린 이상 주역 책을 보며 풀이하는 게 고작인데 지금은 책을 볼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었다.



‘난처하군. 수암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최대한 노력하는 수밖에 없겠다.’



“다음은 혜림양 말해보겠소?”


수암은 나의 마음을 모르는지 나를 지목해 버렸다. 아무 것도 알 수가 없었다.



‘미치겠네. 할아버지 무슨 말이라도 해달라구요.’



그제서야 할아버지는 영감을 주었다.



“그 남자는 오징어를 좋아하는군요.”



순간 분위기는 썰렁해졌다.


모두들 의아하다는 반응 가운데 중딩들은 킥킥대고 있었다.



‘기껏 영감을 준다는 게 이런 거라니. 정신 없는 할아버지같으라구.’



“재미있는 풀이구려. 다른 할 말은 없소?”



할아버지는 다른 영감을 보내 주었다.



“저기. 음. 당근은 싫대요.”



‘오, 이런! 난 끝장이다.’



엄숙했던 수련 시간은 웃음바다가 되고 말았다.



‘진짜 일순위로 수련장을 나가겠군.’



내 얼굴은 이미 빨간 당근이 되어 있었다.



“어험. 여태껏 들어본 적 없는 독특한 풀이군요. 나도 참고하겠소. 다음은 보연양 말해보겠소?”



쌍둥이 중 더 싸가지 없는 아이인 듯싶다.



“이미 죽은 사람이군요. 이 방에 왔어요.”


“오호. 정확하게 맞추셨소. 역시나 소문대로 용하군요. 그 사람 사인도 알 수 있겠소?”


“네.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괴로워하다가 음독 자살을 한 것 같습니다.”



희멀건 여자야 평이한 풀이지만 이 아이의 풀이는 고난위 풀이었다.


영이 진짜 발달된 아이인 듯싶었다.


보연이란 아이는 말하는 것도 평소와는 다르게 또렷또렷하게 말하는 것이 영특함이 묻어나왔다.



‘요주의 인물이군. 어리다고 앝보면 안되겠어.’



이후의 시간은 다른 몇 사람의 간단한 사주풀이로 이어졌고 점심시간에 이르자 사람들은 몇 시간의 정신 집중으로 모두 지친 듯 하였다.


나만 빼고.


당근 이후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나만 너무나 생생했다.



“모두들 많이 지치셨구려. 수고하셨소. 점심시간 이후는 잠시 휴식을 취하시고 5시쯤 다시 모이는 것으로 하지요.”



‘할아버지 해도 너무 하잖아. 계속 이러시는 건 아니겠지? 조바심 내지 말자. 할아버지도 답답하긴 마찬가지 일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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