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료칸은 독특하다. ‘의식주’가 모두 제공된다. 숙박이라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객실만 주어지거나 또는 ‘객실+식사’가 전부. 그런데 료칸은 다르다. 주(住)와 식(食)은 물론 ‘의’(依)까지 제공한다. 그중 하나가 유카타(浴衣)다. 유카타는 얇은 면소재로 지은 홑겹의 일본 전통 가운. 료칸 안에서는 이것이 평상복이라는 사실이 독특하다. 식당은 물론 정원 산책까지도 가능한. 전통온천마을에서는 유카타 차림으로 료칸 골목을 누벼도 무방하다. 아침식사는 ‘쓰쿠다니’라고 해서 비교적 상차림이 간단(작은 생선과 간장조림 반찬 등)하다. 그러나 저녁식사는 다르다. 가이세키(會席) 요리라고 해서 함께 투숙한 일행 여러 사람이 다다미에 앉아 저마다 독상에 나카이 상(여관도우미)이 일일이 날라 주는 산해진미의 갖은 요리를맛보며 함께 즐기는 독특한 연찬회 형태의 식사가 이어진다. 가이세키 요리는 로텐부로와 더불어 료칸의 품격을 결정짓는 중요한 변수다. 그런데 예외 없는 법칙은 없는 법. 오늘 소개할 오타루 료테이 ‘구라무레’(홋카이도 오타루 시)는 이런 전통 료칸의 abc를 완벽하게 뛰어 넘은 퓨전 료칸이다. 그래서 업종도 ‘료칸(旅館)’ 대신 ‘료테이(旅亭·‘여관旅館+요정料亭’의 합성어)’라고 붙였다. 일본에서는 ‘와모던(和modern)풍’이라고 부르는 퓨전 료칸의 대표선수라 할 만하다.》 19세기 중반. 홋카이도 개척이 시작되자 야마가타 현 등 혼슈의 선주들이 선단을 이끌고 오타루(小樽) 항에 몰려들었다. 당시 바다에 지천이던 청어를 잡기 위해서다. 그 무진장의 청어가 선주들을 돈방석에 앉혔다. 돈 냄새가 멀리 도쿄까지 풍겨나간 모양이다. 이번에는 앞 다퉈 도쿄의 은행들이 오타루 항에 몰려왔다. 그 즈음 홋카이도 철도 부설 뉴스가 발표됐다. 1880년. 미지의 땅 홋카이도에서 첫 기적소리가 울렸다. 삿포로와 데미야를 잇는 데미야센 철도(오타루 시내를 관통, 현재는 폐선)다. 이시카리 지방(삿포로 북쪽)에서 채굴한 석탄의 수송로였던 이 철도. 석탄은 오타루 항에서 선적돼 혼슈로 보내졌다. 이번에는 석탄이 쌓이기 시작한 오타루. 청어가 바다의 노다지였다면 석탄은 육지의 노다지. 쌓인 석탄만큼 돈도 쌓였다. 18세기 말∼19세기 초 홋카이도 개척기에 오타루가 ‘일본 북쪽의 월스트리트’로 불린 이유다. 중앙발권은행인 일본은행(한국은행 격)이 오타루에 지점을 개설(1906년)했다는 사실이 그런 번영의 역사를 웅변한다. ‘오타루 료테이 구라무레’를 찾아가는 길. ‘에어포트 래피드’라는 쾌속열차가 삿포로와 오타루를 잇는 철도 34km 구간을 달렸다. 신치도세 국제공항과 오타루를 오가는 이 열차로 삿포로에서 오타루칫코(小樽港) 역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34분. 오타루칫코 역에서 구라무레까지는 택시로 5분 걸렸다. 택시로 도착한 곳은 작은 강이 흐르는 깊지 않은 계곡의 산자락 동네. 이 강은 아사리카와(朝里川)로 강을 낀 계곡에 자리 잡은 아사리카와 온천. 오타루 시내에서 가장 가까운 온천마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