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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각양각색. 사람 보는 눈을 키우고 내 자신을 좀 알자.

ㅇㅇ |2019.07.06 14:36
조회 298 |추천 1
대학 졸업하자마자 해외로 나왔다. 요즘 90년대생이 무섭다는 글을 여기저기서 많이 접하는데 70년대생인 내 사고방식이 그 90년대생과 많이 다르지 않았기에한국에서 살기 참 힘들었기 때문이다. 
결혼관념도 여자에 대한 압박과 차별도 회사에서의 수직적인 상하관계도 친밀함을 넘어선 사생활 침입적인 인간관계도 내겐 너무 힘들고 버거웠다. 
명문대학을 졸업했기에 당연한 듯 대기업에 가야한다는, 명문대 나온 여자라면 전문직 또는 고액연봉자와 결혼해야한다는 묘한 압력.
끊임없이 주변과 비교하며 내 위치를 확인해야 하는 사회 분위기.
싫었다. 
그래서 무작정 아무 연고도 없는 외국에 나와 맨땅에 헤딩하며 내 자리를 찾아갔다. 외국인에 대한 은근한 차별과 아무리 잘 한다해도 원어민과 같지 않은 언어구사에 힘도 들었지만상사 눈치보지 않고 주변의 시선 신경쓰지 않고 소소하고 소신있게 잘 살아왔다. 
작은 기업체에서 어려운 사람에 도움되는 일을 하며많지 않은 연봉이지만 자유롭게 보람차게 살아가던 중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처음 만난 남편은 좋은 사람이었다. 나에게 다정하고 사람들에게 친절했다. 명문대를 졸업할 만큼 머리도 좋고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으며유머 센스도 있고 스포츠도 잘 하는 그야말로 엄친아적인 존재였다.
다만 제반사정으로 경제적인 상황이 좋지 않았다. 
본인 사업과 부모님 빚이 8천만원 가량있었고갑작스런 부모님의 죽음 등으로 심신이 지친 그는 본인의 사업조차 놓은 채멍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나는 그저 곁에서 그가 견딜 수 있도록 버팀목이 되어 주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빚 독촉에 시달리는 그가 그나마 눈을 붙이고 밥을 먹고 한 숨 돌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 외에해 줄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렇게 최악의 상황에서 결혼하게 되었다. 
요즘 유행한다는 반반 결혼은 커녕내가 살던 원룸에 몸만 들어와 내가 혼자 쓰던 살림 그대로 신혼살림을 차렸다. 
내 동기들이 한국에서 5억짜리 아파트니 8억짜리 아파트니리모델링에 1억을 들였느니 하였으나하나도 부럽지 않았고 내 처지가 한심스럽니도 않았다. 
의기소침한 남편이 회복될 때까지 나는 혼자서 벌어 남편의 빚을 갚으며 우리 가정을 지켰다. 

그렇게 묵묵하게 5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남편도 재기하여 원래의 밝은 모습을 찾았고 빚도 절반으로 줄어있었다. 속옷한장 마음껏 못 사입었지만둘의 사이만은 정말 좋았고 100원 10원에 벌벌 떨며 살아도 마음만은 풍족했다. 

그리고 또 5년이 흘렀다. 남편은 번듯한 직장에 취업해 지금껏 상상도 못한 넉넉한 연봉을 받게 되었고 나는 연봉을 낮추고 워라밸이 확실히 보장되는 직장으로 옮겼다. 숨이 턱 막히던 빚도 어느새 다 갚았고 남편 회사 복리후생으로 주어지는 사택으로 옮겨 저축도 순조롭다. 남편이 쉬면서 공부해둔 탓에 재테크도 궤도에 올랐다. 
시집살이 시키는 시부모도 안계시고 간섭하는 친정도 멀다. 나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남편은 항상 나에게 잘하고 남편을 믿고 따르는 마음에 변함이 없는 나는 항상 남편이 하늘같이 최고다. 

결혼은 현실이며조건을 따지는 것은 중요하다. 
그런데 그 결혼에 사랑과 믿음없이내 편안함과 내 신분상승의 욕구만으로 따진 조건만이 존재한다면절대로 행복할 수 없다. 
차라리 전략결혼을 해라. 내가 가진 것으로 딜해서 나에게 없는 것을 가져와라. 그리고 거기에서 사랑을 갈구하거나 원하지 말아라. 
그것이 당신의 행복이라면 그것도 방법일 것이다. 
추천수1
반대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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