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그럭저럭 사회생활 하고 있는 20대 후반의 일반 사람입니다. 부모님에 대한 생각이 저와 비슷한 분들이 계신지 궁금해서 글을 작성해봅니다. 상당히 긴 글이 될 것 같아요.
지금껏 살면서 부모님의 사이가 좋았다고 느낀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단 한번도. 어릴 적부터 이혼을 하네 마네 엄마가 짐 싸는 모습을 봐왔고, 아빠는 울면서 엄마를 잡기도 했지요. 저와 동생도 같이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제 눈에는 억지로 사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래도 아직은 같이 사시는 두 분입니다. 엄마의 말로는 아빠가 절대로 합의이혼을 안 해줄거라고 하는군요. 합의이혼이 아니면 소송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 밑바닥까지는 가고 싶지 않다고도 하시네요.
IMF가 터지고 직장을 잃은 아빠는 엄마를 억지로 설득해서 결국 이 시골로 내려왔습니다. 두 분이 아무리 지방출신이었대도 결정내리기 쉽지 않으셨겠지요. 좋은 손재주로 직접 집을 지으실 만큼 그래도 귀농 귀촌 준비를 아빠 나름대로 열심히 하셨던 것 같습니다. 처음에 부모님은 시골 장날을 맞춰 다니며 장사를 하시었어요. 등하교는 저와 동생이 스스로 알아서 해야 했지요. 세살차이가 나는 동생을 책임진다는게 그 때는 별 생각이 없었으나 지금 생각해보면 무섭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했을겁니다. 하교하고 집에 돌아가던 먼 길들이 아득하게 기억납니다. 부모님이 쥐어주시는 천원인지 오백원인지로 아이스크림을 사서 동생과 같이 물고 열심히 걸어가던 그 길이요. 그 때는 말 잘 듣던 동생이었는데 가끔 그립기도 하네요. 어른 노릇은 그 때부터였나 봅니다. 그런 생활을 이어가던 중 이사 내려온 지 몇 해 되지 않아 누전으로 집이 싹 불타게 되었습니다. 아마 4년을 꽉 채우지 못 했지요. 저와 동생은 학교에 있었고 부모님은 이웃들에게 연락받고 도착하셨으나 이미 다 타고 없어진 집이였어요. 그 때가 부유했던 것은 절대 아니나, 그래도 불이 나지 않았다면 아-주 조금 더 여유로웠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신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아빠도 물론 속상하셨겠지만 엄마가 유독 힘들어하셨습니다.
집이 불타고 얼마 후 좋지 않은 일이 발생합니다. 학교 선생으로부터 성폭행이 있었습니다. 행위가 완벽하게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저를 누르고 압박하고 강제로 무엇을 시도하려는 찰나에 누군가 나타나서 겨우 도망칠 수 있었습니다. 그 선생의 밑에 한참을 깔려서 발악 아닌 발악을 하고 있었지요. 선생님 제발 이러지 마세요하면서. 성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열 살짜리 애가 지금 이게 무슨 일인지도 모른 채로 말입니다. 너무 놀라 제대로 기억나지 않습니다. 얼마의 시간동안 그러고 있었는지도 잘 모르겠네요. 만약 누군가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저는 어떻게 됐을까요? 지금도 이 지경인데. 결국 그 선생은 저에게 했던 비슷한 일들로 말미암아 잘렸다는 소문을 들은지 꽤 됐네요. 비밀이랄건 없지만 어느 누군가에게도 이렇게 자세하게 말해본적 없는 일입니다.
그런 상황을 겪고 부모님께 말씀드리지 못했던 건, 아마도 이미 부모님에 대한 신뢰가 없었던 것 같아요. 혹은 어른 노릇을 열심히 해야 했나 봅니다. 졸업을 하기 전까지 매일 마주치는 그 선생을 볼 때마다 얼마나 소름이 끼치고 무서웠는지 부모님은 모르실겁니다. 일이 생긴 이후에 다른 남자선생이나, 기타 성인 남성을 볼 때마다 흠칫 놀랐던 제가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 때 훨씬 더 놀란 부분은 제가 놀란다는 사실 그 자체입니다. 글을 읽는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제 성행위가 이루어진게 아닌데 그 정도 트라우마가 되느냐? 남들 눈에는 아무렇지 않아 보였을겁니다. 부모님도 알아보시지 못했으니, 남들 눈에는 더욱 괜찮아보였겠지요.
티는 내지 않아도 사실 아직 남자는 다 무섭습니다. 편하게 지내는 친구들이랑은 잘 지내기도 하지만 남자와 단 둘이 있는 시간이 참 어렵습니다. 대학 때 언제는 그래도 꽤 친하게 지냈던 남자 선배가 반갑다고 뒤에서 장난으로 목을 감싸는데 놀라 자빠질뻔 한 적도 있습니다. 오기로라도 더 잘 지내보고자 아무렇지 않으려고 애썼으나 그게 그렇지가 않더군요. 저도 모르게 이미 무서워하고 있더라고요. 서른에 가까워지고 있는 지금까지 연애 경험이 없는 것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어요. 남들이 좋은 시절 연애 한 번 안 하고 사느냐 물으면 혼자도 괜찮은데 그런 것을 왜 하냐고 말합니다. 어지간히 좋은 사람 아니고서야 내 눈에 차지 않으니 싫다고. 요즘 세상에 설마 여자를 좋아하냐고 묻는 멍청한 사람도 몇 있었지요. 가끔은 그런 소리가 너-무 듣기 싫어서 전에 만나던 애인이 죽어서요 말하고 싶어지는 순간도 있네요. 겨우 한 시간조차도 되지 않던 그 기억이 평생을 따라다니며 괴롭히는게 너무나도 억울해요.
그 일이 있고 난 후로 스스로 괜찮다고 홀로 다독여 살아온 시간이, 이전 시간의 두 배 쯤 됐네요. 저는 엄마 아빠가 계시지만 계시지 않기도 합니다. 돌아갈 곳이 없다고 말하는게 편하겠네요. 정서적으로 돌아갈 곳이 없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혹시 아시나요? 정신적으로 의지할 곳 하나 없다는 것 말이에요. 두 분 멀쩡히 살아 계시는데 의지할 수 없는 것 보다야 차라리 안 계시어 의지할 수 없는게낫겠다 생각한 적도 있어요. 부모님이 계시지 않아도 되겠다 생각한 순간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저는 참 우는 것을 싫어합니다. 어느 이유로도 잘 울지 않습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가도 눈물이 날 것 같으면 촬영 현장을 상상합니다. 저것은 다 허구이고 주변에 아주 많은 관계자들이 둘러싸고 있을거야. 그럼 정말 웃기게도 눈물이 나지 않아요. 동생이 울면 제가 달래주면 되지만 제가 울면 동생이 달래줄 수 없었기에 어렸을 때부터 습관이 되었나 봐요. 마음 약한 엄마가 우실 때면 나라도 울지 말아야 되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어요. 친구에게 넌 찔러도 피한방울 안 날 것 같다는 말을 들어보기도 했어요. 이제는 가끔 울고 싶어도 우는 방법을 모르겠더라고요. 그저 일 년에 한번 정도 터져나오는걸 참을 수 없는 순간에만 울게 됐습니다. 그래도 나이가 들어가니까 눈물이 조금씩 늘긴 늘더군요. 참 신기하게도 옛 어른들 말씀이 다 맞더라고요.
어릴 때부터 엄마의 하소연을 참 많이 듣고 자랐습니다. 너는 결혼하지 마라, 혼자 살아라, 공부 열심히 해서 근사한 직업 갖고 멋있게 살아라. 공부 방법이나, 공부에 대한 지원이나, 인생에 대한 조언, 길잡이는 전혀 해주지 않으시고요. 아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삶의 안내자 같은 역할을 해주지 못하셨지요. 그래서 그런지 결혼에 대한 환상도 없고 상상을 해본적도 없습니다. 엄마가 이성적 판단을 할 수 없는 어린 저에게 반복하여 절대 결혼하지 말라는 말씀을 왜 하셨는지 이해는 합니다. 그렇지만 제가 이해를 다 했다고 하여 엄마의 모든 말들이 세뇌된 지금의 제가 얼마나 불행한지 엄마는 절대 모르시겠지요. 성평등이 대두되고 비혼 비출산이 흔하게 자리 잡아가고 있는 현재 사회에서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것에 감사해야 하나 싶기도 합니다. 지금은 비혼 비출산에 대한 생각들이 애초에 완전히 제 의지대로 발현된 것 같아요.
그렇게 결혼하지 말라고 노래를 부르시던 엄마는 제가 성인이 되고 대학을 다니던 즈음 너는 왜 남자친구를 안 만나냐고 물으시더군요. 무슨 소리야? 엄마가 결혼 하지 말라고 그랬잖아. 결혼을 안 할건데 무슨 남자를 만나. 그 때 돌아오는 대답은 그래도 한번 해 봐야지, 남들 다 하는데. 기가 찼다고 하면 맞을까요. 어이가 없었어요. 정말 당연히 남자는 물론이고 결혼 따위 결-코 절대 나에게 없는 줄 알고 살았는데, 맨날 하얀색만 말하던 엄마가 갑자기 검은색을 말씀 하시니까 이게 무슨 상황인지 정신을 차릴 수 없더라고요. 엄마는 그동안 내게 했던 이야기들을 다 잊었나? 기억을 못하시나? 아니면 알고도 그렇게 말씀 하시는 건가? 생각이 바뀌신걸까? 언제는 또 한 번 어디 행사를 다녀오셨다가 참 괜찮은 사람을 보았다고 한번 만나보지 않을래? 하시는데 웃기기도 하고 어이가 없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고. 무슨 소리냐고 싫다고 필요 없다고 하니, 왜~ 잘생기고 키도 커 하시더라고요. 다시는 나한테 그런 소리 하지 말라고 화를 냈었지요. 엄마는 제가 괜히 성질냈다고 생각하실지도 몰라요. 정말 모를 일입니다.
아빠는 말씀이 많으신 분이 아니어서 아빠의 생각은 무엇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네요. 술을 너-무 좋아하시고, 외부에서나 좋은 사람 소리를 듣지 가족에게는 참 무관심한 분입니다. 제가 고등학교를 인문계를 나왔는지 전문계를 나왔는지조차 모르셨으니까요. 그렇다고 바람을 피운다거나 여자문제가 있지는 않습니다.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 물리적 힘의 차이에서 오는 지배 권력 구조 등 전형적인 가부장적 사고에 갇혀계신 분입니다. 티가 마냥 나는 것은 아니나 밑바탕에 늘 깔려 있지요. 왜 마냥 티가 나지 않느냐? 스스로 무능함을 인정하신다고 해야 하나? 저 혼자만의 느낌입니다만 아빠는 스스로 무능하다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에 별 강력한 주장 없이 입을 꾹 다물고 사시는 것 같습니다. 남자가 남편이 어딜 가면 간다 여자한테 부인에게 왜 말을 해야 하느냐? 엄마의 부재시에는 딸이 아빠 밥상을 차려야지.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어린 나의 보호자는 아빠인데 밥상은 아빠가 딸에게 차려주는게 당연하지 않습니까? 만약 그에게 경제력이 있었다면 그것을 무기삼아 엄마를 더 옥죄고 압박했을까요? 아니면 부유함 따라 마음도 여유로웠을 부모님 밑에서 편안하고 화목하게 살 수 있었을지 가끔 궁금합니다.
어릴 땐 그나마 감정 공유가 있었던 엄마의 말이 전부 다 옳은 줄 알았습니다. 아빠는 무조건 나쁜 사람, 엄마는 불쌍한 사람. 19~20살 거의 2년 동안 아빠와 대화를 하지 않은 적도 있습니다. 제게 그러는 것 아니다 야단치는 엄마도 없었고, 적극적으로 그 상황을 개선시켜보고자 노력하는 아빠도 없었습니다. 실제로 아빠의 행동이 옳았다는 것은 아니나, 나이가 들어서 본 둘의 관계란 일방적인 부분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진짜 별 것도 아닌 아주 사소한 단어 하나로도 싸우시는 분들이에요. 그게 맞고 틀린지가 중요한게 전혀 아닌데 왜 언성을 높이고 얼굴을 붉히느냔 말입니다. 대화 자체가 안 된다고 해야할까. 두 분을 가만히 보고 있다면 속이 너무 답답해 벽을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말을 꼭 저렇게 밖에 할 수 없나? 너네엄마 너네아빠 흉을 보면 자식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가늠이 되지 않으시나? 이겨먹고 싶으신가 봐요 둘 다 서로를.
저는 그저 엄마는 엄마만, 아빠는 아빠만 사랑하는 태도가 힘들었을 뿐입니다. 각자 자기의 의견만 맞고 상대방은 틀렸다고 말하는 태도 말입니다. 그들은 스스로만을 사랑해서 저와 제 동생은 뒷전이었어요. 받아본, 지켜본, 경험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으나 흔히 말하는 부부관계 혹은 연인사이는 배려와 존중과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던데요. 아니 모든 관계에서요. 나의 엄마 아빠에게서는 그런 것을 찾아 볼 수 없었으니, 전혀 사랑하는 사이라고도 볼 수 없는 둘에게서 태어난 나는 무슨 존재인가 하는 허탈함도 들더라고요. 대체 왜 그들은 결혼을 하여 나를 낳았으며 지금까지 서로 죽어라 미워하면서 쓸 데 없는 시간을 보내고 계신걸까. 제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아 언젠가 한번 엄마에게 물은 적이 있습니다. 엄마는 아빠랑 도대체 결혼을 왜 했어? 그 때는 좋았지~ 예전에는 좋았어~ 제가 예상했던 답변과는 전혀 다르게 돌아오는 대답이 가관입니다. 엄마도 모르겠어. 엄마도 모르겠는 둘의 결혼 이유를 저라고 헤아릴 수 있을게 처음부터 아니었습니다.
대학생활, 그리고 직장을 얻으면서 근 10년이라는 시간을 부모님과 따로 지냈습니다. 부모님과 가끔 보면 서로 애틋해지고 그렇다던데 저는 그런 것도 별로 없더군요. 주말이라고 집에 가면 밭일 하시느라 바빠서 얼굴 볼 새도 적고, 비라도 오는 날은 해가 쨍한 날 밭에 계시느라 밀린 일들을 처리하기 바쁘십니다. 집에 가도 특별히 잘 해주신다거나 맛있는 음식을 해 주신다거나 하지도 않고. 일반적인 시골이 아니라 편의점 하나 없는 촌 동네라서 차편도 좋지 못했고, 막상 가도 짜증만 올라오니 가기 싫었던 것도 일부 있고요. 남들은 집이 최고라며 매 주말마다 그렇게 먼 본가에 다녀오는 게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릅니다. 엄마 없이 절대 살 수 없어라고 말하는 친구들을 조금이라도 이해해보고 싶었습니다. 우리 아빠가 최고야라고 말하는 친구들을요. 그렇다고 부모님께서 제게 폭력이나 폭언 등 거칠게 대하시거나 하신 부분은 전혀 없습니다. 물론 서로에게도 손은 대지 않으셨어요. 어릴 때는 가끔 아빠로부터 밥상이 뒤집힌다거나, 소형 가전이 망가지는 것은 본 적 있으나 그 뿐입니다. 굶긴 것도 안 입히신 것도 아니에요.
그런 부모님이 셀 수 없이 미워서 지독한 상처를 주고 싶었습니다. 그래도 자식인데 내가 죽으면 슬프겠지 속상하겠지 유서를 써 내렸습니다. 자식이 죽으면서 그토록 바란 소원인데 둘의 관계가 조금이라도 좋아지길 진심으로 바라며. 이 유서를 다 쓰고 새벽에 동해 바다로 떠나겠다고 마음 굳게 먹고 구구절절한 유서를 썼습니다만 결국에 떠나지는 못했습니다. 울며 불며 그냥 지쳐 잠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이후에도 높은 곳에서 뛰어내릴까, 번개탄을 피워볼까, 저 나무는 나의 몸을 지탱할만한가. 한동안 죽음에 대한 생각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어요. 고속 버스가 전복되길, 벼락이라도 떨어지길, 자동차가 날 치받기를 바랬습니다. 그 때 만약 제게 용기가 있었다면 벌써 없을 존재일텐데. 아직도 저는 제 미래가 전혀 궁금하지 않고 이런 시궁창 같은 삶을 영위해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냥 숨이 붙어 있으니까. 살아 있으니까. 그래도 그 때처럼 오로지 죽음만 생각하고 살지는 않습니다.
어느 날은 로또 1등에 당첨되기라도 한다면 모든 돈을 부모님께 드리고 저는 말 그대로 홀연히 사라져버려야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네요. 돈을 가져본 적이 없어서 몇 십억씩이나 하는 금액에 감각도 없고 쓸 줄도 모르니 그냥 내가 사라지는 대가로 그 정도도 못 드릴까 정신승리 하면서 말이에요. 그들에게 나의 가치가 그래도 로또 일등은 되지 않을까 믿어가며 인연을 끊을 마음을 먹었지요. 그저 생각일 뿐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슬펐습니다. 제 자신이 혐오스러워지기도 했습니다. 남도 아니고 부모님을 그렇-게 미워하는 마음이 나 자신에게 얼마나 해가 되는지 깨달을 때 또 한 번 무척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부모님인데, 그래도 우리 엄마고 우리 아빤데, 부모님을 미워하는 나는 못된 사람이야. 내가 나를 부정하고 갉아먹는 느낌. 좀먹는 기분. 죄의식이 또 그렇게 정말 한참을 괴롭히더라고요.
부모님의 가난은 생각보다 괜찮습니다. 저만 못 누리고 사는 것이 아니니까요. 농사 일이 생각보다 상당히 힘이 듭니다. 며칠 도와드리는 날에는 몸살이 오기도 합니다. 온 몸 성한 곳 없는 부모님을 보고 있노라면 부유는 정말 노력에 비례한 것은 아니구나 싶습니다. 만약에 노력에도 등급이 있다면 정말 정말 슬플거에요. 그들이 가난하고 싶어서 가난한 것이 아니니 그 정도는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탱자탱자 뒹굴거리는 분들이었다면 진즉에 인연을 끊었을지도 모릅니다. 나에게 쓰는 돈을 조금이라도 아끼려는 걸 눈치 챘을 때, 공부 잘하는 제게 서울로 대학가는건 포기하라고 하셨을 때, 직장을 얻은 내게 아-주 사소하게라도 바라는게 보일 때 등 속이 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부모님을 상대로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할 때, 일이천원에 고민이 깊어질 때, 경험해보고 싶은 것이 생겼을 때, 너그럽지 않은 마음을 깨달을 때, 말고도 숱한 순간에 속상하기도 하지요.
우리 집이 이렇게 가난한지 깨달은 지 얼마 되지 않습니다. 대학에 올라와 많은 사람들과 교류해보니 와 정말 가난하구나 느꼈어요. 그 전에 이미 늘 우리 집은 돈이 없다 듣고 자랐기 때문에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이리도 가난할 줄이야 누가 알았겠나요. 입학하기 전만해도 이 정도일줄 몰랐어요. 취업에 필요한 자격증을 따는 비용을 달라고 할 수 없었습니다. 없는 것 뻔히 아는데 어찌 손 벌릴 수 있었겠어요. 뒷바라지 넉넉히 해줄 형편도 아닌데 대학에 꼭 가야한다는 부모님 말씀을 듣지 말고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취업할 걸 후회도 했습니다. 무엇 한다고 저를 꾸역 대학에 보내셨고 나는 또 뭘 한다고 그 말씀을 들었는지 말이에요. 대학 못 간다고 죽는 것도 아닌데. 남들 다 보내니 부모님도 보내고 싶으셨던 걸까요. 하염없는 무기력에 불면증은 기본이고 공부도 제대로 할 수 없었고, 꿈이고 목표고 미래고 아무것도 설정할 수 없었습니다.
대학에 입학해서 술이라는 것을 처음 접해보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더군요. 먹고 마시고 놀고 취하고 뻗어서 잠에 들 수 있으니까요. 잠에 들면 별다른 생각을 안 해도 좋으니. 그 뿐이니. 저 애는 왜 저러고 살아 싶을 정도로 술만 마셔대며 살았습니다. 오천원 만원 내고 다 같이 즐기는 술자리가 얼-마나 즐겁던지. 그 돈을 차곡 모아 자격증 하나라도 땄어야 했겠지요. 나중에는 혼자 술을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무기력이 정말 무서워요. 지금은 친구들이 너 그러다가 진짜 알콜중독 된다고 말하는 수준까지 이르렀지요. 잠에 드는 것만이 중요했습니다. 술을 먹고 잠에 잘 드는게 행복이라고 여겨지던 순간도 있었어요. 그런걸 행복이라고 생각했던 제가 참 가여워요. 어쩌면 진짜로 저는 이미 알콜중독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음을 좀 고쳐먹고자 휴학을 하고 알바도 해보고 공부도 해보고 남들 다 하는 여러가지 것들을 경험하고 싶었어요. 부모님이 말라고 하시더라고요. 아마 4년에서 5년 혹은 그 이상 늘어날 제 생활비용이 걱정되셔서 그랬겠지요. 그래서 말았어요. 저는 늘 부모님의 말씀 잘 듣는 자식인데 뭐 별 수 있나요. 학점이며 자격증이며 요즘 기업에서 요구하는 스펙이랄건 전-혀 만들어 놓지 못했지만 놀 수는 없으니 그냥 적당한 아무 곳에 취업했습니다. 핑계라고 느끼실 수도 있겠어요. 그래도 독한 놈들은 어떻게든 다 해. 맞아요. 너무 물러터진 저의 탓입니다. 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악착같이, 지독하게 공부만을 열심히 했어야 합니다. 영리하지 못했어요. 아는게 없었죠.
사회에 나와서 적게나마 직접 돈을 벌어보고 소비하고 관리하다보니 서글플 때가 많더라고요. 나에게 돈 쓰지 않는, 쓸 수 없는 부모님을 닮은건지. 남들은 맛있는거 좋은거 예쁜거 멋있는거 보면 부모님이 먼저 생각난다던데 저는 그렇지 않았어요. 그럴 때마다 나 참 불효자구나, 받은게 없으니 주지 않겠다는 내 못된 마음이 너무도 속상하더라고요. 여유롭지가 않아요. 조금이라도 생소하고 신기하고 비싼 음식을 먹기라도 하는 날에는 죄책감이 심하게 들기도 했습니다. 제가 절대 잘 살고 있지 않음에도 말이에요. 엄마 아빠는 이런 것 드셔보시지 못 했을텐데. 나보다 오래 사신 엄마 아빠도 못 접해본 음식을 나는 혼자 먹어도 되는건가? 패딩이라던가 코트라던가 정말 조금이라도 비싼 옷을 한 벌 사면 가족들 외투 한 벌씩 사드려야 되는게 아닐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포기하죠. 제 생각만 하는 이기적이고 못난 사람이에요 저는.
오래전 어느 날은 제가 부부 상담을 받아보는게 어떻겠냐, 문제가 있으면 해결하고 다 같이 잘 지내면 좋겠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어요. 엄마는 그래 한번 가보자 하시고 아빠는 문제가 없는데 그런 곳을 왜 가냐 버럭 하셨죠. 아빠는 정말로 이 부부관계가, 이 가정에 문제가 전혀 없다고 생각 하시는걸까요? 가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엄마 아빠가 저를 사랑하시는 크기보다 어쩌면 내가 엄마 아빠를 더 사랑할지도 모르겠구나. 아-무리 못해도 최소한 그 크기는 똑같을거다. 정말 최선을 다해 있는 힘껏 상처를 주고 싶었지만 이 악물고 참았습니다. 엄마는 혼자 자립할 능력도 없고 돌아갈 곳도 없으니까 아빠랑 여즉 같이 사는 것이지? 내가 엄마처럼 살았으면 좋겠어? 아빠는 내가 아빠처럼 능력 없고 나쁜 사람만나서 고생하는 걸 보았으면 좋겠어? 나랑 동생 핑계는 댈 생각 말아. 목 끝까지 올라올 때도 있었지만 잘 참아왔습니다. 가끔 뵈러 가면 조금씩 더 늙어계신 모습 보는 것도 속상했고. 이제 괜찮잖아, 어차피 다 옛 일이고 이제부터라도 잘 지내면 되지 마음먹고 요 일~이년 사이 어디 가자 저길 가보자 마음이 조금씩 내키는 대로 잘 해드리려고 노력했습니다.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니고 좋은 것도 보러 다니자. 수입이 꾸준히 있으니 정말 아주 작은 돈이지만 가족을 위해서 쓸 수 있겠더라고요.
앞날 창창할 동생은 일이 있기도 해서 미뤄두고 부모님만 모시고 좋은 곳 다녀오자 나섰어요. 운전도 제가하고 돈도 제가 쓸건데 아빠는 왜 그렇게 밖에 나가는 걸 싫어하시는지, 거의 엄마랑 둘이 다녀오게 되더라고요. 예쁘고 신기하고 새로운 것을 보면서 즐거워하시는 엄마를 보고 있으면 썩 기뻐요. 여행이 좋으시대요. 제 능력이 좋았다면 좋은 호텔에서 보다 편안하셨을 수도 있었겠지요. 아빠랑 둘이 여기저기 좋다는 곳 맛있다는 곳 찾아다니시면서 살면 참 보기 좋을텐데 그게 왜 잘 안 되시는지. 날이 덥기도 했고 엄마의 컨디션이 살짝 좋지 않아 산뜻하지는 않았어도 잘 놀고 무사히 집에 잘 돌아왔습니다. 술 좋아하시는 아빠와 다 같이 먹을 안주거리도 사들고.
네 식구 모여서 시덥지 않은 이야기들을 잘 나누다가 부모님의 관계로 주제가 옮겨지자 또 각자의 입장과 주장만 옳다고 하시는 모습에 결국 울화통이 터져버렸어요. 왜 이렇게 사냐고, 제발 좀 잘 살면 안 되겠냐고, 엄마는 내 엄마고 아빠도 내 아빤데 어린 나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모르냐고, 왜 말을 못 했겠냐고. 술도 취했겠다 입 밖으로 악을 쓰고 터져 나온 말들이 속이 상하네요. 평소에 말 수 없는 자식이라 많이 놀라셨을거에요. 원래 말 없는 자식인줄 알고 사셨을테니까요. 잘 참아왔는데 기어코 상처를 드리고 말았어요. 정신을 차려보니 아침이었고 샤워하자마자 바로 제 자취방으로 넘어왔습니다. 샤워를 하면서 또 얼마나 울었는지. 직장에서도 시도 때도 없이 울컥 올라와 돌아버리겠어요.
술에 먹혀 시체처럼 누워있는 아빠를 보며, 엄마는 제게 죽고 싶어서 온갖 약들을 끌어 모아 입에 털어 넣고 자살시도를 했었다고 말하지 말았어야 합니다. 그 약을 먹고 응급실에 실려 갔었다고도. 아주 작은 돈이나마 빌려준 이들에게 저와 제 동생을 잘 부탁한다는 말을 했었다고 하면 내가 퍽이나 고마워했을 것 같냐고 되묻고 싶었어요. 제가 혼자 짐작하여 죽고 싶었을까 예상하는 것과 그녀의 입에서 직접 나온 죽고싶었어의 말과는 차이가 아주 큽니다. 저는 엄마의 친구가 아닌걸요. 예전에도 아니었고 지금도 아니고 앞으로도 아닐겁니다. 그 말씀을 제게 하고 나서 엄마의 속이 조금 시원하셨을까요? 만약 그랬다면 저는 자식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었던걸까요? 날 이끌어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고 뭐든지 알아서 해야 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맏이인 제게 이것도 알아봐 달라 저것도 알아봐 달라 많이 의지한 부모님의 보호자가 된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고, 지금은 그게 상당히 지칩니다. 앞으로 그들의 보호자 역할은 커져만 갈텐데 벌써 지치면 어떡하나 고민입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빠르게 회복시키고 저와 제 동생을 살뜰히 챙겼어야 합니다. 어렵고 힘들수록 집안을 으쌰으쌰 일으키도록 있도록 최선을 다 했어야 해요. 문제가 있다면 끊임없는 대화로 모든 것을 잘 풀고 서로를 이해하며 받아들이고 맞춰왔어야 합니다. 가난한 모든 사람들이 사랑과 행복을 모르고 사는게 아니잖아요. 가난했더라도 그들은 가정을 충분히 잘 이끌어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저와 동생에게 사랑과 행복이 무엇인지 반드시 가르쳐쳤어야 할 의무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가난 자체는 이해할 수 있으나, 먹고 살기 힘들었다는 이유는 저의 불안정한 가정환경을 설명하기에 턱없이 부족해요. 그들에게 서로만 아는 30년의 설명할 수 없는 세월이 있겠지요. 그 시간이 모두 좋았을 리 없다는 사실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이 나빴다는 것은 전혀 노력하지 않았단 것을 반증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린 제게 우연히 발생했던 불행한 일로 힘들 때 당당하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줬어야 해요. 시간이 이렇게 흘러 남자가, 연애가, 결혼이 그렇게 싫다고 질색할 때, 그들이 보여준 결혼 생활이 아름답지 못했기 때문이구나 짐작할 것이 아니라요. 부모님의 사이가 나쁜 사람들 모두가 저와 같은 생각을 하고 살지는 않잖아요. 제 동생도 같은 환경에서 자랐어도 잘만 연애 하던걸요. 벌써 결혼도 하고 싶대요.
제발 잘 살면 안 되겠느냐는 제 악에 받친 추태가 그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졌을까요. 겨우 남자 하나 못 만나는 제 개인적인 문제로 그칠까요. 왜 어린 제가 부모님께 말씀을 못 드렸나에 대한 본질을 아셨으면 좋겠는데 말이에요. 어쩌면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누구도 아는 척 하지 않는 에피소드로 그치고 말 것 같습니다. 그들은 영영 좋은 모습을 보여주시지 않겠지요. 당신 탓이네, 내 탓이네 더 싸우시지 않으면 다행입니다. 이미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싸우셨을지도 모를 일이죠. 엄마는 아무 일 없듯 저를 대하고 계시고, 아빠는 언제나 그렇듯 별 말씀이 없으시네요. 지금은 그들을 마주하고 싶지 않습니다. 언제까지 미뤄둘 수 있을까요. 술에 취하지 않았다면 끝까지 참았을 말들인데, 차라리 뱉어내서 다행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차피 죽어도 무슨 수를 써도 변하지 않을 두 분인데 괜히 마음만 헤집어 놓은건지. 맨 정신으로는 절대 말 할 수 없었을거에요. 만약 맨 정신으로 제 생각을 전달했다면 두 분 관계에 변화가 있었을까요?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 하나 없다고 어디 가서 사연 팔지 말라던데, 혹시 다들 저처럼 사셨나요? 저와 비슷한 삶을 사시었다면 이렇게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저만이 나약한건가요? 제가 바란 것은 부모님의 보기 좋은 모습일 뿐인데. 바탕에는 그들을 위한다기 보다 저의 안정을 위한 이기심이 깔려 있지만요. 조금 더 바라보자면 저에 대한 무한한 지지와 믿음 정도인데 제가 너무도 어려운 것을 바랬나봅니다. 혼자 다져온 감정의 기반은 여기까지가 한계 같습니다. 영영 불안정한 사람일것만 같아요. 앞으로 저는 어떤 마음을 갖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아직 잘 모르겠어요. 아니면 항상 괜찮았던것처럼 곧 다시 괜찮아 질는지요. 부모님을 이해하고 싶었어요. 지금은 전혀 생각 없으나 만약 결혼이라는 것을 한다면, 아이를 낳아 키워본다면 그들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아니라고 믿고 싶습니다.
부모님을 비난하고자 쓴 글은 아닙니다. 혹여라도 그들을 비난하지 말아주세요. 오로지 저만이 제 마음을 잡고 있기에 벅찼어요. 입 밖으로 토해내고 보니 감당할 수 없는 제 감정을 익명으로라도 누군가 알아주길 바랬어요. 제 얼굴에 침 뱉기라고 오프라인으로는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넋 놓고 글을 써 내려오니 그래도 조금씩 차분해지고 있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