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조카랑 사는 딸, 우리집과 비슷하다.

ㅇㅇ |2019.08.08 15:49
조회 230 |추천 1
나에게 한살 어린 남동생이 있다.
사실 내 동생은 친동생이 아니다.
내 동생은 사실 사촌동생이다.
작은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작은 엄마가 우리집에 사촌 동생 맡기고 도망가셨다.
그 뒤로 사촌동생은 우리집에 살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집은 잘사는 편이 아니였고 복도식 작은 아파트다.
거실은 부모님께서 안방처럼 쓰시고 작은 방은 나와 사촌 동생과 같이 썼다.
말은 사촌동생이라고 하지만 난 계속 내 친동생으로 생각한다.
부족하지만 많은 것을 양보해야 했다.
원래 많지도 않은 용돈은 반으로 줄었고, 동생과 체형이 달라 예민한 사춘기에 옷문제는 많았다.
하지만 모든 것을 받아드렸다. 내 동생이 아비를 읽고 어미에게 버림받은 아픔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너무 큰 아픔이기에..
만약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어느날 갑자기 사라진다면, 나를 품어줄 사람이 누가 있을까? 상상만해도 무섭고 두렵도 동생이 안쓰러웠다.

더 안타까운것은 우리 가족들 모두 내 동생을 눈치봤다 혹시나 부족한게 있을까? 신경 못써주는 부분이 있을까?
하지만 내 동생은 우리들보다 가족들을 더더더 눈치봤다.
특히 밥먹을 때 반찬을 많이 먹지 않는다. 명절에 봤던 옛날 동생은 먹는걸 참 좋아하는 아이였다.. 특히 소세기같은거 하나 남으면 지금도 안먹는다. 편하게 먹으라고 해도 절대 많이 먹지 못했다. 치킨도 다리를 줘도 동생은 퍽퍽살이 좋다고 퍽퍽살만 몇점 먹는다.

고개를 숙이고 죄인마냥 눈을 이러지러 굴리는 눈치보는 동생의 눈빛을 난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부모님도 없는 살림이지만 동생을 더욱더 아껴주었고 나보다 더 신경을 많이 쓰셨다. 어린 나이였지만 나는 알았다. 어머니가 나보다 동생을 더 사랑하는게 아니라. 나보다 조금더 손이 많이 가는 아이라 동생을 더 신경 써주신다는 것을.
부모님도 그걸 아셨는지 나에게 혹시 동생때문에 신경 못써줘서 미안하다고 하셨지는 난 그걸로 만족했다.

그리고 어머니께서 희생을 많이 하셨다. 자기 자식도 아니고 남편 동생의 아들을 키운다는게 쉬운 결정은 결코 아니였을 것이다. 어머니는 현명한 어머니셨고 나와 내 동생이 잘 지낼 수 있도록 노력 많이 하셨다. 동생이 어버이날 카네이션을 쭈뼛쭈뼛 어머니께 달아주던날 어머니께서는 참 기뻐하셨는데 그 때 생각이 난다.
동생은 어머니에게 카네이션 달아줬을때 어떤 기분이였을까? 어머니는 또 어떤 기분이였을까?

시간이 흘러 동생과 나는 대학은 다르지만 같은 연고지 내에 대학들 다녔고, 1학년 다니다 휴학하고 호주에 1년 워킹홀리데이 하다가 동생과 비슷한 시기에 군대를 갔다왔고, 동생과 나는 학자금 대출을 받아 대학을 졸업하고 내가 먼저 서울에서 직장다니고 동생은 지방에서 2년 일하다가 서울로 경력직으로 올라왔다.

지금 현재 동생과 나는 같이 살고 있다.
지금은 친형제처럼 가끔 싸우기도 하고 휴일날 게임도 같이 하고 친구가 같이 지낸다.

예전 동생과 나랑 군대 휴가 맞춰서 둘이 술을 마신적이 있다.
그날 동생이 나에게 처음으로 터놓고 이야기 했다.
"형과 큰엄마 큰아빠가 없었으면 난 진짜 고아고, 자살했을꺼라고 형하고 큰엄마 큰아빠한테 너무 고맙다"며 울고 이야기 했다.
동생도 힘든시기 잘못된 마음 갖지 않고 착하게 자라줘서 고마웠다.

나는 평생 서로 의지 할 수 있는 형제가 생겨 좋다.
이건 백만금을 주어도 얻지 못 할 든든한 아군이 생긴것이다.
판글에 올라온 조카와 함께 사는 딸이 안타깝다.
조카는 딸이 괴롭히지 않아도 충분히 힘들고 외로울 것이다.
하지만 사람 한명 살린다는 심정으로 마음을 다해 잘해준다면
평생 친구 평생 아군이 생긴다는 것을 모르는게 안타깝다.
추천수1
반대수3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