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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쳐본 일기-19

기록은 기... |2004.02.09 21:07
조회 404 |추천 0

1991년, D중학교 1학년 3반 이었던 그녀는, 어느새 타 반 남학생들조차 꺼리는 막강한 성질을 자랑하게 되었다.

여자들의 부탁은 절대 거절 못하고, 남자들의 장난에는 칼과 주먹으로 맞섰다.

혹시라도, 철없는 사내 녀석들이 관심 있는 여자애에게 짖궂은 장난을 치면, 바로 그녀의 응징이 내려졌다.

그녀의  말을 빌리자면, 불의를 보면 결코 참아 넘겨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야, 니네 학교 좋아?"

"아니, 그냥 그래. 우리 같은 중학교 갔으면 좋았을걸. 그지?"

끔찍한 소리다.

"어? 어... 그러게. 근데, 왜?" 

"그래야 숙제 베끼기도 쉽지. 넌 공부 잘하잖아. 에이~. 영어랑 수학 어려운데. 교과서 출판사가 틀리니깐 넘 안 좋다."

그럼 그렇지.

"그, 그러게... 야, 나 이따가 우리반 애들 집에와서 숙제하기로 했는데. 괜찮지?"

"어? 그럼. 같이 공부하면 되지 뭐."

"여자애들도 몇 명오는데? "

"근데?"

"아, 아냐. 그렇다고. 뭐 좀 먹을래?"

"됐어."

그녀와 열심히 슈퍼 마리오 게임에 열중하고 있을 때 친구들이 들이 닥쳤다.

"정경민!!"

"어서 와!"

같은 반인 여자애들 두명과  남자녀석 세명이 찾아왔다.

"안녕?"

"어.. 안녕."

다들 첨엔 그녀를 보고 조금 서먹해했지만, 그 또래가 그렇듯 금새 친해졌다.

공부를 하는 중간중간에 우리는 먹는 걸로 서로 장난을 쳐가며 키득거렸다.

"어우야~ 왜그래~?"

친구녀석 중 한명이 같이 온 여자애에게 장난을 치자, 여자애가 코맹맹이 소리를 냈다.

"아이~! 하지마~잉"

듣기 좀 괴롭다 싶었는데, 성문 기초 영어책에 고개를 처박고 있던 나는 '퍽' 소리에 깜짝 놀랐다.   

갑자기 그녀가 그 무시무시한 주먹으로 친구녀석의 오른쪽 눈을 정확히 명중시켜 버렸던 것이다.

"으앙~~엉엉~~"

그녀의 주먹 한방에 신호가 울음을 터트렸다.

"뭐..뭐야? 신호야, 왜 그래?"

"이 자식이 자꾸 소현이 한테 장난치잖아."

그녀는 신호의 울음에 조금 당황한 듯 하였으나, 개의치 않는 표정이었다.

"야! 그렇다고, 애를...... 소현이도 암말 안하구만..."

소현이도 그녀와 신호를 번갈아  쳐다 보며 어쩔줄 몰라 했다.

"그...그래... 난, 괜찮은데......"

신호의 장난이 소현이에 대한 관심이었음을 모두들 알고 었었고, 소현 역시 내심 좋아하고 있음을 다들 알기에 신호의 장난을 묵인했던 것이다.

사춘기에 막 접어든 그 때 우리는 서로가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그정도의 눈치는 있었다.

하지만, 소현이의 애교섞인 반응을 그녀는 거부로 해석한 것이었다.

언제나 정의로운 사명감에 불타던 그녀는 남자의 비겁함(?)을 용서하지 못하고  스스로 정의의 심판을 내린 것이었다. 

"뭐? 아깐 너도 싫어했잖아."

그녀의 눈치없음과 단숨함에 모두들 기가 막혔다.

불행히도 그녀의 사춘기가 또래보다 조금 더디게 오는 바람에, 눈치 없는 그녀는 그 또래 남자애들이나 여자애들의 내숭을 이해하지 못하고 곧이 곧대로 해석하여 많은 파란을 가져왔다.

그녀와 같은 학원을 다니며 그런 그녀의 모습을 수없이 많이 목격했다.

중학생이라 해도 아제 막 1학년이었던 우리는 국민학교 때와 별반 다를 바없었다.

학원 수업 쉬는시간에도 남자애들은 칠판 앞으로 나가, 자리에 앉은 여자애들에게 분필을 던지며 장난을 쳤다.

"윤소현~ 바보~!"

"뭐야? 범석이, 너어~!"

여자애들도 크게 화를 내지 않고, 맞고 떨어진 분필을 주워들고 교탁뒤에 숨는 남자애들에게 다시 던지며 장난을 쳤다.

그렇다.

분.명.히. 장난이었다.

우리에겐.

그러나, 그녀에겐 장난이아닌 선전포고였다.

"야~! 이 씹새! 둑었써! 너 거기 안서?"

헉.

그녀는 발에 모터를 달은 듯 부리나케 쫒아왔고, 남자들은 울상을 짓고 필사적으로 도망다녀야 했다.

그녀 손에 걸리면 뼈도 남지 않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여자애들은 남자애들을 죽일듯이 쫒는 그녀를 바라보며 씁슬한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난 그런 그녀와 다른 애들을 보며 웃음을 간신히 참는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렇게 겉모습은 다른 여학생들 처럼 교복을 입고 갈래머릴 땋아내린 그녀 였지만, 언제나 불의(주로 남자였지만)에 처절한 응징을 가하였다.

때문에, 그녀와 어울리는 여자 친구들은 자신의 내숭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녀에게 거리를 두었고, 사내 녀석들은 그녀의 방해에 골머리가 썩었다.

하지만, 그렇게 말광량이 같던 그녀에게도 사춘기는 찾아왔고, 그녀 친구들을 이해할 만큼 이성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다.

변화된 그녀는 2단옆차기가 아닌, 어느새 여인의 향기를 내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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