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들은...
해는 어둑 저녘 무렵 이었다
개구리 잡는것도 별로였고...
그때 한 아이가 아이디어를 냈다
총알(탄두)을 주으러 가자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찌그러진 총알을 줍는 것이었다
해당 주민들이 이미 수북히 쌓여있는 찌그러진 총알을 주어 재미를 봤다는 소문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구리였기에 돈이 되었다
소년들은 사격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이때 마침 야간 사격이 시작되었다
야간 사격은 일정 시간동안 무작정 사격이다
이후 소대원들은 철수하고 선임 하사가 사격 용지를 수거하러 갔을때
신음 소리..
소리에 달려가 보았지만 이미 손을 쓸수없는 상태
급하게 소대장을 불렀다
사건은 보고되었고
진급을 앞둔 그?의 명령에 따라 몇몇이서 비밀리에 사건을 수습하기에 이른다.
대대적인 수색작전이 시작되었지만 군 비밀 장소라 하여 아이가 묻힌곳은 수색을 하지 못한다
그렇게 20년이 흐른것이다
이상 내가 상상한 추론이며 거의 맞을 것으로 사려된다
당시 주위엔 민가도 그리 많지 않았구요
당시 와룡산은 첩첩 산골이었습니다
이러면 어떨까요?
영관급 장교들이 사냥을 나갔다면?
요즘은 모르나 당시엔 전방 같은 부대에선 m16으로 종종 사냥을 다녓습니다
사냥도 낚시랑 같아서..
한 번 맛 들이면 쉬~ 끊기 힘듭니다
전방 부대에서 전근 왔다면 더욱 그렇겠죠
소음기를 달았으면 총 소리 그리 크게 나지 않습니다
개네들 날마다 사냥 다녀서 사격 실력 정말 좋습니다
어둑한 식별이 어려운 저녘 무렵
짐승인줄 오인하고 쌌을수도 있지요
문제는..
5명이기에 한 명이 쏘진 않았다는 겁니다
필경 3~4명의 동행이 있었구요엄청난 일을 저지른터라 둔기(큰 돌)로 머리를 내리쳐 확인 살인을 햇을 겁니다
군 사격외엔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촌 애들 정말 재 빠릅니다산도 엄청 잘 타죠한 두번 다녔던 장소가 아닌지라 길도 익히 잘 알고 있을 겁니다숨는 장소 비밀 장소 다 있습니다
누군가 꼬임에 빠져 따라갔다고쳐도5명을 한꺼번에 해 치울순 없다는 겁니다누구라도 튀지..어떻게 개네들을 다 처리할수 있었을까요?
군인외엔 사격외엔 그 어떤 설명도 안 됩니다당시 군인들의 특권은 이루말로 형용할수 없던 시기이기였으니까요
3만을 동원한 대규모 수색도 그렇습니다'군사보호지역 수색 불가'라면당시 정보부, 대통령외엔 아무도 못 건드리는 지역입니다잠잠해지고 시체를 옮길수 있었겠지요
유골 발견 모습도 그렇습니다그렇게 허술한데 어찌 3만 동원 수색시 발견되지 않앗을까요?옮겨 놓앗기 때문입니다군사보호 지역에 두었다가나중에 옮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