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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압)현재 무기력증 인간의 인생 이야기 1

안녕하세요. 26살 여성입니다.
원래 판은 잘 안 하는데 타사이트에서 다양한 이야기들 보고 원글 찾아보다가 2시간째 판을 보고 있는 사람입니다.
여기에 글은 처음 써보는 거라 어딘가 허술하고 맥락이 안 맞더라도 이해해주시고... 읽으실 분들만 읽으면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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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저는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사회인이 되었고, 지금은 사정으로 인해 그만 둔 후, 늦게 전문대학을 입학한 뒤에 이제는 졸업을 앞두고 있는 학생입니다. 나이는 26입니다.


어려서부터 저는 사람들의 기분을 잘 파악하고 눈치껏 잘 행동해왔습니다.
하지만 웃음이 많지 않다는 이유로 모진 시선들과 교육의 이름 아래의 질타, 또는 유연해야만 했던 상황에서의 융통성이 없는 모습을 보이며 자존감이 많이 낮은 아이였습니다.

집 안에서도 전혀 재능이 없고 고집만 센 골칫덩이 두살 터울 언니와 끼 많고 머리 잘 돌아가며 자기 하고싶은 것만 하고 놀러 다니느라 돈 축내는 답없는 4살 터울의 여동생 사이에서 이리저리 양보해가며 ‘져주면 편하다’ 라는 인식이 강하게 머리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어렸을 때는 불만을 티내지 않았습니다. 언니 옷과 친척오빠들 옷을 물려 받아 입어도, 초등학생 때 갖고 싶었던 크로스 가방을 사 달라고 못 해도, 배우고 싶던 공부학원도.

만화보고 뛰놀고 홈피를 꾸미는 것보단, 자전거나 인라인스케이트, 킥보드 등을 타며 놀고 싶었지만, 감히 사 달라는 말은 못 하고 가끔 친구들 것으로만 타고 놀이터에서 혼자 구름다리에 거꾸로 매달려 시간을 보내곤 했어요.

그래도 항상 불만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당시에는 뭔가... 그런 취급(?) 상황들이 너무 당연했기에, 혼자 한숨 한 번 쉬고는 책상 밑에 들어가 위인전이나 읽었어요.

당시 초등학교 3학년.

언니는 5학년.

동생은 6살.

저는 학구열이 굉장히 강했어요. 책이란 책은 모두 읽고, 하루에 하나라도 책을 안 읽으면 불안하고 자꾸 손을 만지작 댈 정도로 책을 좋아했습니다. 그것을 부모님도 알았고, 유일하게 제가 사고싶다고 말하는 것도 책 뿐이었기에 흔쾌히 사주시고는 했죠.

하지만 3학년 들어서 저는 문학을 굉장히 잘 하고, 과학까지도 그럭저럭 했지만 수학이 굉장히 부족하다고 느꼈어요. 시험볼 때마다 문제 풀어가는 속도가 친구들보다 항상 늦는 걸 알아챘거든요.

그래서 산수학원을 다니고 싶었어요. 언니는 이미 다니고 있었거든요. 언니는 컴퓨터 학원, 피아노 학원, 산수학원까지 다녔어요. 그래서 또 조르고 졸라서 저도 피아노 학원을 다니게 되었지만, 엄마한테 떼를 쓰듯 나도 산수학원을 다니고 싶다. 왜 언니만 보내느냐. 징징 거렸죠. 지금은 상황을 이해하고 철없었다고 생각하지만 당시에는 너무 억울했어요. 그래서 자꾸 지나가는 말로 슬쩍슬쩍 엄마한테 나도 학원 다니고 싶다는 둥 왜 나는 맨날 물려 입는 옷만 입냐는 둥 짜증을 냈고 엄마는 별 대꾸 안 하셨어요. 못 하셨을 수도 있죠.....

그게 좀 더 후엔 예전에 억울했던 것까지 생각 나 이것저것 짜증을 드문드문 냈던 걸로 기억하네요. 예를 들어 나는 왜 어린이집 원복도 안 예쁘고 작은 어린이집 보냈냐고...
언니는 동네에서 제일 좋은 사립 어린이집 다녔고(모자까지 원복이 노랑색으로 굉장히 좋았고 건물도 궁전 같았음.) 동생은 동네를 벗어나 정말 정말.. 돈 많은 사람들만 다닐 것 같은 어린이집 나왔어요. 아직도 그 건물을 기억해요... 막 2층 올라가는 곳도 멋있었고, 암튼 설명하기 어려운데.. 방도 많고 세련 되었어요.. 심지어 제가 다닌 어린이집 빼고는 두 곳도 시도때도 없이 사진을 찍어 인화해 집으로 많이 보내줬어요... 커서는 이게 제일 부러웠어요.. 앨범을 보면 제 사진은 얼마 없는 게 너무 서러웠어요... 제 어린이집은 아무리 생각해도 원복이 없었어요.. 활동복? 학교로 치면 체육복만 있었걸로 기억해요. 아무튼 그런 원복 입은 찍은 언니랑 동생도 너무 부러웠고, 사진 많이 찍어주는 것도 부러웠어요. 지금 또 어찌 된 건지 저만 돌사진이 없네요....

뜬금없지만 저만 태몽 없는 것도 서러워요... 이 모든 게 부모님 잘못은 아니지만 짜증을 내고 원망하고 그랬어요.. 너무 철이 없네요.

그리고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본격적인 운동을 했고, 당시 선배들이 후배들 때리고 그럴 때인데 저는 통학한다고 덜 맞았지만 항상 집합해서 맞는 거 다 보고 그랬어요. 전 또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코치나 감독이 때려도 남들처럼 피하지 않고 눈 부릅뜨고 맞고 그랬어요. 지금 생각해도 그 어린 게 눈물 한 번 안 흘리고 그런 걸 다 견뎠나 싶네요. 5학년 되서는 더 심해졌어요. 전지훈련 가는 날에는 아주 많이 맞았어요. 시합하다가 맞고 끝나고 맞고 씻고 난 후에 맞고..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고 맞았네요..

제일 많이 맞았던 이유는 목소리가 작다는 이유였고.. 그 이유는 중학교 까지 가지고 갑니다. 아침 6:30분까지 와서 새벽훈련 하고 씻고 학교 가면 또 재밌다고 수업 열심히 듣고 오후에 운동하면서 맞고.. 심하게 몽둥이로 맞은 날은 변기에도 앉기 무서워서 엉덩이 떼고 볼일 보고 그랬는데. 저녁에 집에서 밥 먹으려고 바닥에 앉으려고 한참을 천천히 앉았어요.

아픈 티 안 낸다고 했지만 이미 글렀었죠.. 나름 열심히 숨겼는데도.. 엄마가 알아줬으면도 하다가, 몰랐으면도 하는 아리쏭한 마음이었고.... 그냥 너무 아팠던 기억이 나네요.

6학년 되어서는 제가 주장이 되었는데 다른 선수들이 잘 못하면 꼭 저만 같이 맞고는 했어요. 당시에는 저만 숙소에서 안 지내기도 하고.. 뭔가 선수들하고 어색하다고 생각이 들어서 사소한 걸로 못 혼내고 그랬어요. 제가 말하긴 좀 쑥스럽지만 초등학생 때 저는 너무 여리고 남한테 미운말도 못 하고 내가 주장이니까 같이 혼나거나 대신 혼나는 게 맞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그리고 생각해보면 초등학교 6학년 때 이미 저는 극심한 우울증에, 같은 팀의 아이들을 혼내면 안 된다는 강박? 이 있었어요. 후배때 너무 많이 혼나서 그런 걸 없애고 싶다고 항상 생각했어서 좀 강박적으로 굴었던 것 같았어요. 하지만 또 친한 아이들 앞에서는 장난끼도 많고 뛰어다니다 혼나고 또 그걸로 투닥대고 그랬죠.

사실 운동도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계주 등 하면서 운동신경이 좋아 체육선생님께 눈에 띄던 아이였는데 제가 2학년 때 여자 운동부가 생기면서 끊임 없이 저에게 콜을 넣으셨었어요... 3학년 때 자주 구경가다가 언니들 많이 혼나는 거 보고 안 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용돈도 주시고 맛있는 걸 사주시면서 ㅇㅇ아 ㅇㅇ하자~~ 하며 1년동안 꼬셨어요.. 그래서 4학년 때 운동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엄마도 그걸 원하셨고, 뭔가 거절하기가 어려워 시작한 운동이니만큼 중학교 올라가면 정식선수를 준비하게 되는데 저는 어릴적부터 손재주가 좋았고, 미술쪽이나 미용을 배우고 싶다고 엄마한테 분명히 말했습니다. 그래서 엄마랑 미용학원도 상담하고 학원도 정해놨는데, 6학년 졸업할 때까지만 숙소 생활을 하자는 말에 저는 어차피 그만 두는데! 생각에 흔쾌히 찬성을 했고. 결국 못 나왔습니다. 그 숙소는 초,중,고 선수들이 같이 지내는 숙소여서.. 뭔가 대 놓고 그만두기가 무서웠어요.

저는 운동을 그만두기 위해 평범한 머리로 학교도 자주 빠지면서 6학년 때까지 틈틈이 공부해 평균 90점을 이상을 유지했는데 다 헛물 들이킨 거였어요. 엄마도 은근히 원했기에 저에게 강하게 말하지 않은 사실을 커서 알게 되었고, 엄마는 미안하다고 했지만 솔직히 아직도 그 때 생각하면 밉습니다. 아빠는 5학년 때까지 반대 하시다가 저의 시합을 몇 번 보고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시고 그냥 방관했고요.

그러면서 저는 말수는 점점 줄었습니다. 중학교에선 체벌도 몽둥이가 기본, 런닝 뺑뺑이, 하계, 동계 훈련.. 사방에 널린 꼰대들의 손지검.. 숙소에서는 심지어 기합도 받았네요. 머리박기(머리와 두 발만 땅에 대고 손은 뒷짐진 자세에서 엉덩이 들기), 깍지끼기(엎드려 뻗쳐 자세인데 손을 깍지 끼고 깍지 낀 손가락 부분? 으로 버티기), 사다리(이것도 엎으려 뻗쳐 자세인데 두 박을 뒷 사람 등에 올려 놓고 내가 다리 올려논 뒷 사람은 자신의 뒷 사람에게 발 올려 놓고.. 뒤로 여러명이서 주르륵), 창틀에 발걸치고 엎드려 뻗치기 등... 여기서 끝나지 않고 싸대기 맞으며 밀려나거나 휘청 거리거나 대답 바로 안 하면 바로 또 맞고... 중학교 때 그걸 다 견디면서 또 다짐을 했어요... 나는 선배 되면 무슨일이 있어도 기합을 주거나 때리지 않겠다... 하고.

그 각오로 운동하면서 맞는 걸로 눈물 보인 적 한 번도 없네요. 몽둥이로 1시간씩 맞으면 피멍이 무릎 뒤?? 그 접히는 부분까지 내려와 밥 먹거나 화장실 가거나 스트레칭 할 때 매번 인상을 쓰며 하고, 심지어 샤워할 때 비누칠도 잘 못 하고 옷이 스쳐도 아팠어요. 그런데 나중에는 또 무뎌지더라고요. 아파도 그냥 무시하고 털썩 앉고는 했습니다.

코치들도 저를 특히나 너무 많이 굴리고 혼내고 그래서 속으로는 저 애들은 안 혼나고 지적도 안 하면서. 그럴 거면 쟤네를 주전 시키지 왜 나를 시키는 거지 왜?? 맨날 이런 생각을 했어요.. 사실은 제가 가능성이 커서 키우려고 그랬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언니들 질투 받아주기도 너무 힘들었거든요... 너무 안 웃고 시력도 안 좋아 매일 찌뿌리니 저의 별명은 ‘인상파’ 였고, 매일 웃으라는 소리를 들었어요... 왜 굳이 웃어야 하지? 매일 생각했네요... 그냥 지들 보기 안 좋으니까 웃으라고 한 거였어요.... 나중에는 노이로제 걸렸어요. 그 말 들으면 헛구역질 나올 것 같고 그랬어요..아무튼 안 웃는 건 제 잘못도 있는 것 같아서 넘어가고..

그 대쯤 새로 코치님이 오셨는데 중학교 때도 차분하고 후배들도 잘 따르고 동기들도 저를 잘 따라서 제가 주장이 자연스럽게 되는 분위기였고 코치님도 수긍을하셨죠. 하지만 얼마 안 되어 중학교 때 저도 모르게 주장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긴 건지 스트레스 장염으로 2틀을 앓아 누워 바로 교체 되었어요.. 지금은 연락이 끊겼지만 중3 때 오신 코치님을 은사님이라고 생각하는데, 선생님들의 은근한 차별 때문에 스트레스 받았었는데 차별 아예 없으시고 운동도 재밌다는 걸 처음 느끼게 해주셨고 전국대회에서 처음으로 우승도 해서 아주 좋아한 선생님이셨어요.

제 동기가 많았는데 모두 그 선생님을 잘 따랐어요. 그리고 저는 자존감이 조금 높아졌고, 조금씩 제 실력을 인정하게 되었어요. 제가 판단력이나 분석력이 좋고 기본기가 좋아서 팀을 안정감 있게 잡아준다는 걸. 제일 중요한 건. 제가 이 운동을 무척 잘한다는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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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길어서 끊을게요.
이 글에 아무도 반응이 없어도 그냥 쓰려고 합니다...
그냥 쓰고싶어서요. 어디 말할데도 없어서요...
추천수2
반대수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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