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여년지기 친구가 있었습니다
고2때 같은 같은반 하면서 가까워져 결혼하고 쭈욱 함께 했고 아이들도 같이 공유하면서 키웠고 그런 아이들이장성하여 결혼도 하여 서로 며느리 사위도 봤습니다
몇십년동안 함께 하면서 한번도 트러블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서로 존중하고 예의를 지키고 누구보다 아꼈습니다
복이 없었는지 참 박복하게도 나는 이혼을 했고 친구는 남편이 여기 판에 올라오는 최악의 종합셋트 였습니다
다들 소녀땐 그랬겠지만 시를 좋아하고 문학을 음악을 좋아했던 낭만은 산산조각 나고 현실의 장벽은 높고 단단 했습니다 지금도 삼십대 당시 그녀가 했던말이 생각납니다 길가다 지나치는 나이드신 노인분들을 보면 존경스럽다고 이 고난의 긴세월을 어찌 사셨는지 나는 언제 저만큼 나이를 먹을 수 있을까 ㅡ
높고 단단한 장벽도 자식을 둔 엄마라는 이름앞에서는 뛰어넘지 못 할것도 없었습니다 서로는 너무 속속들이 잘알고 힘든 여정을 함께 했기에 동지애가 깊었고 기쁠때나 슬플때나 형제보다 더 애틋 했습니다
나와는 다르게 부족함이 없는 집안의 막내로 태어나 시련이라는걸 모르고 살았는데 결혼이라는 굴레속에서 그녀는 장애물을 뛰어넘고 나와 함께 단단해지고 강인해져 갔습니다 두 아이를 지키고자 함에 있어서 불길속이라도 뛰어 드는걸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살았기에 서로 조금씩 형편이 나아지면서 웃는 날도 많아지고 몇시간씩 통화하며 하루 왠종일 수다를 떨어도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눈만 뜨면 서로를 찾고 하루 일과를 보고 합니다 마치 이 세상에 우리 둘뿐인것 처럼 우리는 세상을 따시키고 둘만 존재하는것 처럼 외롭지 않게 고독하지 않게 위로하며 의지하며 살았습니다
바쁜 틈 속에서도 그녀와 만나는 날에는 잠깐 설레기도 했고 꽃비가 내리는 벛꽃길을 걸으며 낡은 테이프를 돌리듯 수백번도 더 곱씹었던 이야기들을 또 해도 재미지기만 했습니다
그 빛나던 젊은 시절은 흔적 조차 없는 서로의 초쵀하고 주름진 얼굴을 바라보아도 다시는 그시절로 돌아가기 싫어! 지금이 더 없이 좋아 그러곤 또 젊은 날의 우리를 따 시킵니다
그런 평온한 일상을 보내던 내 게상황과 환경이 바뀌는 위기와 혼란을 맞게 되었습니다 예측하지 못했기에 준비조차 없이‥ 나름 정신이 없었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전화를 하는 그녀‥ 잠깐만 잠깐만 내가 할께 하곤 수도 없이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었습니다 일방적으로 전화를 받지 않기도 했습니다
변명같지만 나는 그녀에게 언니같은 친구였기도 하고 성격상 성격탓이 더 크겠지만 상황이 수습되고 나면 말하는 스타일이라 기다려주길 바랬는지 모릅니다 친구는 그런 내가
섭섭했겠죠 어느날 내 계좌로 돈이 천몇백 들어왔습니다 그녀가 보낸것 입니다 문자 한통과 일선에서 물러나면 유럽 각국 여행가자고 이십여년 넘게 둘이서 모은 돈이였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득달같이 쫏아가 마음을 달래줬을텐데 이상하게 그러기 싫었습니다 또 그런 그녀가 섭섭하지도 않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상황 수습도 되고 다시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왔는데 그녀가 그립지 않습니다 덩그마니 혼자 시간을 보내도 좋고 산책도 하고 올곶이 혼자 있는 시간이 마냥 좋습니다
가끔 그녀 생각이 떠오를땐 얼마나 서운할까 얼마나 상처가 됫을까 미안한 마음이 드는데 다시 연락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나는 평생 그녀의 감정쓰레기통이 아니였나 생각이 듭니다 함께 할때는 자신 스스로 인지를 못 했는데 1년여 연락을 끊고 지내보니 뭔지 모를 짐을 벗은듯 걱정이 사라진듯 마음이 고요합니다
그리고 나 자신한테 미안 했습니다 내 마음자리 한번 제대로 살펴주지도 않았으면서 늘 남의 마음 살펴주느라 정신과 혼을 빼놓은것을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