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황실의 '마지막 뿌리'인 고종황제 증손녀 이홍(31)이 본격적인 연예계 진출을 앞두고 있다. 이홍은 최근 서울 강남 압구정동의 모처에서 기자와 만나 연예계 진출에 대해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이홍의 아버지는 고종황제의 손자 이석씨다. 이홍은 "수년 전부터 연예계 관계자들로부터 권유를 받았지만 집안 여건상 행동으로 옮기기가 어려웠다"고 밝혔다. 이어 "그동안 조관우, 쿨 등 두 편 정도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적이 있지만 집안의 반대로 본격적인 활동은 못했었다. 하지만 올해부터 집안 어른들로부터 허락이 떨어진 상태다"고 말했다. 고종황제의 증손녀인 이홍의 연예계 진출은 연예계와 동시에 대중으로부터 큰 관심을 집중시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홍은 168㎝의 큰 키에 몸무게 48㎏의 날씬한 몸매를 지녔으며 고상한 얼굴에서 풍겨지는 이미지가 진짜 황실에서만 사는 공주같은 기품을 지닌 한국형 미인이다. 어릴 때부터 연기 무용 피아노 태권도 검도등 예체능 교육을 체계적으로 받았으며 연극 극단에서 활동한 적도 있을만큼 연예계에 대한 재능을 검증받은 바 있다. 본격적인 연예계 활동에 나서기도 전 영화사로부터 출연제의를 받기까지 한 그녀는 국내 굴지의 연예 엔터테인먼트사로부터 매니지먼트 계약을 제의 받은 상태. 이홍은 "계약금이나 조건에 연연해 하지 않는다. 다만 연예계에 대해 잘모르니 잘이끌어 줄 수 있는 신뢰할 수 있는 회사를 만나기 위해 노력중이다"고 말했다. 한편, '비둘기 집'을 부른 이석씨는 현재 지금은 한 대학에서 역사학 교수로 재직중이다. skyaromy@mtstarnews.com 머니투데이가 만드는 리얼타임 연예뉴스 제보 및 보도자료 star@mtstarnews.com<저작권자 ⓒ 머니투데이 스타뉴스> 김수진 기자
황실의 마지막 ‘아기씨 마마’ 고종황제 증손녀 이홍
역사의 뒤안길로 잊혀가는 황실 가족의 이야기는 사극에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다. 현실에도 존재한다. 고종황제의 둘째 아들인 의친왕의 11번째 아들인 이석씨는 국내에 거주하는 유일한 황손으로, ‘사동궁 세자’로 불리던 화려한 시절이 있었다. 그의 딸이자 고종황제의 증손녀인 이홍의 본적지는 경복궁. 그녀의 삶 역시 고단하던 황실의 역사를 닮았다. 세 살 때 부모 이혼, 외할머니 손에서 자라
la에서 살던 아버지와 17년 만에 상봉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그녀에게서 조선 시대 여인의 향기가 느껴진다. 다소곳이 두 눈을 내려 뜰 때는 어딘지 모를 아련함도 묻어나는 듯하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민족의 슬픈 역사를 이야기할 리도 없는데, 그녀를 보고 있으니 비극으로 끝난 황실의 아픔이 전해오는 것 같다. 어디서부터 어긋난 것인지… 순탄하지만은 않던 지난 세월을 이야기하며 이홍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히기도 했다. “제가 황실의 자손이라는 걸 처음 안 것은 중학교 1학년 때였어요. 중학교에 입학하면 역사를 공부할 테니 어머니께서 그 전에 알려주려고 하신 것 같아요. 그때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이 ”너의 할아버지는 고종 황제였다. 너의 아버지는 황제의 아들로 ‘사동궁 세자’로 불렸던 왕세자였다. 너는 황실의 자손이다. 앞으로 자긍심을 갖고 살아야 한다’고 이하셨어요. 당시에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죠.” 그녀의 아버지인 이석씨는 고종의 둘째 아들인 의친왕의 열한번째 아들이다. 이석씨는 ‘비둘기집’이라는 노래로 가수 활동을 하기도 했다. 한동안 전국을 떠돌며 생활하던 그는 현재 전주에 머물고 있다. 때문에 이홍는 아버지를 1년에 서너 번 만날 뿐이다. 그녀는 아버지뿐만 아니라 어머니와도 오랜 시간 떨어져 지냈다. 어린 시절 그녀의 실질적인 부모는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였다. 이홍의 부모는 그녀가 세 살 때 이혼을 했다. 그후 이석씨는 la로 떠났고, 그녀의 어머니 역시 새 삶을 뉴욕으로 찾아 떠났다. 외가에 맡겨진 이홍는 외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그러나 부모의 부재는 어린 그녀에게 늘 외로움을 안겨주었다. 그런 딸의 마음을 달래기 위함인지 그녀의 어머니는 딸에게 많은 것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미술, 피아노, 기계체조, 성악, 승마 등 성장기를 거치면서 그녀는 총 13가지 예·체능 학원을 다녔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부모에 대한 그리움을 잠재우지는 못했다. “어머니는 1년에 한 번 정도 만났어요. 어렸을 때, 엄마가 뉴욕에서 오는 날은 아침부터 예쁜 옷 찾아 입고 팔짝팔짝 뛰면서 좋아했죠. 어린 나이에도 1년에 한 번 엄마를 만나는 게 너무 좋았나 봐요. 그러다가 엄마가 다시 뉴욕으로 떠나는 날은 공항이 울음바다가 되곤 했어요. 외할머니 말씀이 ‘모녀의 헤어짐이 눈뜨고 못 볼 정도’였대요. 당시 어머니는 뉴욕에서 패션 공부를 했어요. 이대 무용학과를 졸업했는데 아버지와 이혼한 후 저를 키우기 위해 새로운 공부를 시작했죠. 그런데 어머니는 패션 공부를 하면서 자신이 세일링에 탁월한 능력이 있다는 걸 처음 아셨대요. 당시 뉴욕에서 가장 유명한 백화점에서 세일즈를 했는데 3개월 만에 ‘세일즈 여왕’으로 뽑혔대요. 그래서 백화점 회장에게 1억원에 가까운 돈을 상금으로 받았대요.” 뉴욕에 있던 어머니가 귀국한 건 그녀가 중학교 3학년 때. 사춘기에 접어든 딸이 혹시라도 비뚤어질까하는 마음에서 어머니는 영구 귀국한 것이다. 그리고 고등학교 3학년 때 그녀는 처음으로 아버지를 만났다. 세 살 때 헤어진 후 17년 동안 잊고 지낸 아버지와의 만남은 너무 낯설고 서먹했다. 사실 이석씨는 그녀가 네 살 때 만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때, 그녀는 어머니도 없는 집에 들어와 “내가 니 아버지다”라며 자신을 데려가려는 아버지가 무서워 친구 집으로 도망을 쳤다고 한다.
“아버지에 대해 가장 좋았던 기억은 제 돌사진 에 남아 있어요. 그때 이방자 여사께서 직접 돌복을 만들어주셨대요. 그 옷을 입고 어마, 아빠, 이방자 여사와 함께 사진을 찍었어요. 지금도 제게 가장 소중한 사진이에요. 그 사진에서 우리 가족은 너무 행복하거든요. 그 행복 다시 찾을 수 있을는지….” 결혼 3년 만에 이혼,
“전 남편과는 친구처럼 지내요!”
이홍씨가 태어날 때만 해도 황실 가족에 대한 특별함이 남아 있었다. 홍(洪)이라는 이름은 황실 가족의 이름을 지어주는 분들이 작명했. 그녀가 어렸을 땐 집 안에 5명의 유모가 있었고, 이들은 그녀를 ‘홍’이라는 이름 대신 ‘아기씨 마마’로 불렀다. 그녀의 아버지 이석씨는 중·고등학교 시절까지 수행원들과 함께 학교에 다녔으며 점심시간에는 임금님 수랏상 같은 점심이 교실까지 들어왔을 만큼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꿈속에서나 그리워할 일들이 되어버렸다. 지난날의 흔적들을 찾고 싶을 때면 이석씨는 창덕궁 낙선재를 찾는다. 이곳은 이방자 여사가 덕혜 옹주를 보살피며 살다가 고단한 생을 마감한 곳이다. 이석씨의 어머니는 고종의 둘째 후궁인 귀인 장씨였기에 그에게 이방자 여사는 큰어머니가 된다. 그러나 생전의 이방자 여사는 이석씨를 많이 사랑해주었던 탓에 그는 화려하던 지난날이 그리울 때면 낙선재를 찾는다. 가끔은 그곳에서 잠을 청하기도 한다는 것. 현재 이홍은 집안의 가장 노릇을 하고 있다. 부모가 살아 있지만 형편상 경제적인 짐을 그녀 혼자져야 한다. 서울 한복판에서 외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네 살배기 딸과 함께 살고 있는 이홍. 그녀는 이혼녀다. 지난 2000년 9월 결혼했고, 딸이 세 살이 되던 지난해 짧은 결혼 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결혼 전, 그녀는 독신주의자였다. 그런데 우연히 만난 남자에게 온 정신을 홀딱 빼앗겨 만난 지 5개월 만에 결혼을 했다. “연애 기간이 짧았던 게 실수였던 것 같아요. 아빠는 늘 그랬어요. ‘결혼을 하려면 적어도 2년 동안은 연애를 해봐야한다’고. 그때는 그 남자가 너무 좋았어요. 같이 영화 보고, 밥 먹고, 투정부리는 거 다 받아주고…. 어려서부터 정에 굶주려 자란 탓에 작은 일에도 관심을 보이는 그 남자와 같이 살고 싶어서 결혼했어요. 그런데 1년도 뭇 돼 후회했어요. 성격이 안 맞더라구요. 지금은 친구처럼 지내요. 우린 부부보다 친구 인연이었나 봐요.” 그 남자는 현재 드라마에 출연중인 연기자다. cf와 드라마에서 이제 막 두각을 나타내는 늦깎이 신인. 그래서 이홍씨는 전 남편에 대해 말을 아낀다. 혹시라도 그에게 손해를 입힐까 하는 배려 때문이다. 결혼 전, 그녀 역시 연기자로 데뷔를 생각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남편이 원치 않았다. 결혼의 조건으로 ‘연기자의 꿈을 포기한다’는 다짐을 받았을 정도였다. 결혼과 이혼의 아픔을 고스란히 감내한 그녀는 이제 연기자로의 변신을 기다리고 있다. 그녀는 한성대 산업디자인학과를 졸업하고 3년 동안 디자이너로 활동했다. 그후에는 유명한 성형외과에서 홍보실장을 맡기도 했다. 그러나 진작부터 그녀의 꿈은 연기자였다.
“지난 세월 동안 뭔가 꼭 이루고 싶었던 일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은 있었어요. 연기자가 되는 거요. 어려서는 어머니가 반대했고 결혼을 하면서는 남편이 반대했죠. 이젠 혼자니까 제 인생 제대로 한번 살아보고 싶어요. 집안의 가장이니까 경제적인 면도 생각해야 하거든요.” 첫번째 소원은 어머니와 아버지의 재결합
“연기자로 성공하면 황실 복원에 앞장설 것!”
지난해 그녀는 큰 수술을 받았다. 폐에 이상이 생겨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던 것. 수술을 받고 몇 달 동안 어머니와 외할머니의 신세를 졌다. 그녀가 완쾌될 즈음에는 어머니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궁중에서 따로 요리 수업을 받지 않았음에도 음식 솜씨가 뛰어나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덕분에 1년에 두 번 추석과 설날에는 주변 사람들에게 ‘궁중 손만두’를 부탁받는다. 전화로 주문을 받아 배달하는 것. 그날도 주문받은 만두를 배달하기 위해 박스를 사러 나갔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어머니는 왼다리를 심하게 다쳐 걷지 못할 수도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3개월간 입원과 꾸준한 재활치료로 한 달 전부터 다시 걷기 시작했다. 이것이 지난 추석 즈음의 일이다. 그런데 얼마 전에는 엄마 같은 외할머니가 자전거에 치이는 사고를 당했다. 올해로 89세인 외할머니는 아직도 병석에 있다. “얼마 전 저희 아파트 앞에 공사 현장이 생겼어요. 건물을 새로 짓는 큰 공사를 하다 보니 흙먼지가 날리고 소음도 굉장하더라구요. 그래서 주민들이 항의를 하니까 그곳에서 쌀을 나눠준다고 했대요. 저는 몰랐어요. 새벽에 할머니 혼자서 쌀을 타러 나가셨다가 뺑소니 자전거에 치여 찻길에 쓰러져 있는 걸 어떤 사람이 부축해서 아파트 단지로 모셨대요. 그때까지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할머니를 경비 아저씨가 알아보고는 새벽에 연락을 했어요. 어렵게 살아도 밥 못 먹고 사는 거 아닌데 거기가 어디라고 나가셨는지… 그래도 그만하길 천만다행이세요. 요즘은 많이 좋아지셨거든요. 외할머니는 저를 딸처럼 키워주신 분인데… 돌아가시기 전에 제가 잘 사는 모습 보여드리고 싶어요.”
그녀는 이혼할 때 어머니와 외할머니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늘 한쪽 가슴이 시리다고. 어른들은 그녀가 평범하게 살기를 원한다. 네 살배기 딸이 있는 그녀가 이제 연기자의 길로 들어서겠다고 하자 손사래를 치며 말리기도 했다. 이혼녀라면 색안경부터 끼고 보는 이 사회에서, 그것도 험하다(?)고 알려진 연예계에 발을 내디딜 딸을 생각하면 걱정이 앞서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그녀는 이제 새 인생의 출발선상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미 cf 등을 통해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 것. “어머니는 가끔 ‘내가 황실 사람이 아니었더라면…’이라고 말씀 하세요. 삶이 고단했으니까 그런 말씀을 하시겠죠. 어머니 이야기를 들으면 아버지가 더 안쓰러워요. 아직도 밖으로 떠도시니까. 제 소원이 뭔 줄 아세요? 아버지와 어머니가 한집에서 사는 거예요. 아버지 노래처럼 ‘다정한 비둘기 가족’을 이루는 게 제 꿈이에요. 또 한 가지는 황실의 모습을 제대로 찾고 싶어요. 제 본적지가 서울시 종로구 안국동 175번지예요. 거기가 어디냐구요? 경복궁이에요. 전 아직도 경복궁 사람인 거죠.” 경복궁 이야기를 하며 그녀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에 빠지기도 했다. 이석씨의 소원이 “학창 시절 책가방 들고 등하교하던 때의 우리집에서 살다 죽는 것”이라고. 결혼에 실패하고 아이가 커가는 것을 보며 이제야 철이 드는 것 같다는 이홍. 그녀는 먼 미래에 복지사업을 하고 싶다고 한다. 그 옛날 황실에서 학교, 병원 등을 짓고 나눠주는 삶을 살았듯 그녀 역시 황실 사람들의 발자취를 따르려는 것. 그것이 황실의 후손이 할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글 / 경영오 기자 사진 / 박남식 한복협찬 / 금단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