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토요일 저녁에 와이프와 영화 '82년생 김지영' 을 보고 왔습니다.
저희 부부는 마흔 한살 동갑내기이고, 11살 된 딸 하나 키우고 있지요.
주말에는 딸 아이가 본가에 자주 놀러가는데
지난 금요일에도 딸이 할머니에게 놀러가, 덕분에 와이프와 모처럼 단둘이 외식을 하고
얼마전 개봉한 '82년생 김지영'을 보고 왔습니다.
개봉 전후로 인터넷을 통해 이 영화와 원작인 소설 관련하여
페미니즘이니 젠더갈등이니 하는 뉴스 제목들은 얼핏 봤지만
딱히 읽어보지도 않았고, 그다지 관심도 없었습니다.
다만, 제가 이 영화를 와이프와 함께 보고싶었던 큰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사실 저희 와이프는 제가 결혼전 아무런 경제적 준비가 안된 탓에
결혼을 시작하면서부터 9년간 시댁살이를 해야했습니다.
3층으로 된 전원주택이어서 1층을 저희 부부가 생활하고
2층을 부모님이 쓰셨기에 그나마 생활하는 층은 서로 달랐지만
어떠한 사정, 이유를 불문하고 시부모는 시부모이고,
시부모와 함께 한 집에 같이 산다는 자체가 와이프에게는 그야말로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의 시간들이었을 것입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당시 서른살이던 와이프가 신혼여행을 마치고 시댁으로 들어오던 첫 날 그 순간이
얼마나 공포스러웠을까요..
이제 앞으로 시부모와 함께 살아가야 할 집에 들어와
본인 짐을 옷장에 정리하는 뒷 모습을 보며,
마치 저의 군대 훈련소 입소 첫날의 불안과 막막함, 공포스러움이 떠올랐습니다.
그나마 군대는 2년 2개월만 버텨내면 됐고 계급이 올라갈수록 편해지기라도 하지,
언제 분가하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저 저만 보고 시댁으로 들어와준 와이프에게
지금도 너무나 미안하고 죄스러울 따름입니다.
그래도 와이프가 그 힘든 시간들을 잘 참아내고 지혜롭게 이겨내어
특별한 갈등없이 분가하여 지금은 한결 부담없이 시댁과 지내고 있습니다.
시집살이 하는 동안 곁에서 와이프가 정신적으로 얼마나 힘들었는지 봐왔기에
이번 영화 '82년생 김지영'이 우리 부부에게 많은 공감이 될것 같았고
또 이 영화가 저희 와이프에게 "많이 힘들었지, 고생 많았어. 넌 참 대단해." 하고
위로를 해줄 영화라는 생각이 들어 와이프와 꼭 한번 같이 보고 싶었습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와서 처음 들었던 생각은,
'그래도 김지영은 우리 와이프보단 나은 상황이네. 적어도 시부모는 모시지 않잖아~'
였습니다.ㅎ
그보다는, 이 영화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여성들이 처한 현실에 대해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해봐야 할 문제들을 얘기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무엇보다 저는 왜 이 영화를 두고 젠더 갈등 같은 성 대결 구도로 논쟁이 벌어지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많은 여성들이 맞벌이를 합니다.
남성과 똑같이 일을 하고 오는데도 집에 와서 저녁 밥을 차리고 아이 씻기고 청소를 합니다.
많은 남성들이 집안 일을 많이 도와준다 하지만 그래도 아직까진 저도 그렇고,
와이프 일을 도와준다는 개념의 연장선이지 둘이 함께 한다라고 보기엔 한참 모자란 수준이지요.
설령, 여성이 직장을 다니지 않는 전업주부라 해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은데
종종 인터넷에 보면 마치 전업주부들은 남편 출근하고나면
다들 까페에서 커피 마시면서 한가롭게 수다나 떨다 네일 관리받고
그저 생각없이들 사는 줄로만 알더군요.
물론, 고소득 남편을 둔 일부 주부들이 그럴 수도 있겠다지만
과연 그런 주부들이 얼마나 될까요..그리고, 설령 그 주부들이 그렇게 지낸다 한들
댓글에 그런 주부들 욕하는 남자들은 나중에 본인도 결혼하면
자기 와이프는 일 안해도 될만큼 돈 많이 버나보죠?
자기 와이프 맞벌이 안시킬 자신도 없으면서 남이야 돈 많은 남자 만나
여유롭게 살든 말든 왜 남의 사생활에 그렇게들 비난을 하는지 이해가 안됩니다.
남자들의 자격지심일까요?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가 남성 중심적인 것만은 틀림이 없지요.
당장 제사만 해도 그렇습니다.
남자 부모만 부모인가요? 왜 남자 부모측 제사만 지내고 여자 부모 제사는 지내지 않나요?
조상을 기리는 거라면 여자측 조상님도 똑같이 기려야지요..
저희 집도 제사를 지내고 있습니다.
나이 드신 부모님들 생각을 하루 아침에 바꾼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고
그동안 계속 지내오던 제사를 제가 일방적으로 없앨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좀 더 부모님이 연로하셔서 더는 부모님 집에서 제사를 지내지 않고
저희 집에서 제사를 지내야 될 시점이 오면 더는 제사를 지내지 않기로 와이프와 합의했고,
제 남동생에게도 얘길 했습니다.
"형은 나중에 제사 안지낼테니 그리 알고, 너는 정 제사를 지내야겠다 생각한다면
너가 지내라" 고 말입니다.
글을 쓰다보니 의도치않게 글이 길어졌습니다.
영화나 드라마는 그 시대를 반영합니다.
'82년생 김지영'이란 영화에서 보여지는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여성들의 고충
그리고 남자들이 미처 생각지 못하고 지나쳤던 부분들에 대해 다시 한번 되돌아 보는 계기가
되어야지, 철 없는 초등학생 남자애들 말싸움 마냥
남자가 더 힘드네, 여자는 이래서 더 편하네, 남자는 대신 군대 가지 않냐는 둥
- 군대 꼴랑 2년 남짓 다녀오는건데, 그 군대 드립 좀 안했으면 합니다.-
이런 저급하고 유치한 행동은 안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글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