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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부잣집 막내의 하소연 (긴글주의)

지영이 |2019.12.02 09:40
조회 47,427 |추천 308
안녕하세요? 
먼저 방탈 죄송합니다.제 상황을 현명하게 판단해 주실 분들이 필요해 여기에 글을 씁니다.
맞춤법과 오탈자가 신경 쓰이시더라도 너그러이 봐주시기 부탁드립니다.




저는 호주에 사는 82년생, 이름도 지영이인 흔한 경상도 출신 여자입니다.
저에게는 3명의 언니가 있어요. 제가 막내고요.
언니 셋은 두 살 터울이고, 저와 셋째 언니는 10살 차이가 납니다.딸 셋만 줄줄이 낳고 포기하셨다가언니들이 좀 크자 다시 아들을 계획하셨던 것 같아요.

아들이 아니어서 받은 차별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지만대충 어떤 분위기의 집인지 알려드리기 위해 적어봤습니다.






저희 부모님께는 아픈 손가락이 있어요. 첫째 언니입니다.
9남매 장남이신 아버지지만그래도 첫째라, 딸이어도 사랑을 많이 주셨나봐요.
저랑은 띠동갑을 넘어 열네 살이나 차이 나는데도 항상,'너네 언니(첫째 언니)는 어릴 때 안 그랬다, 얼마나 똑똑하고 야무졌는데'라는 말씀을 하셨으니까요. 뭐, 이런 건 아무 느낌도 안나네요.


저는 어린 시절부터 집이 너무 싫고 무서웠습니다.부모님의 무관심과 방관이 (아마 바라시던 아들이 아니어서 그랬겠죠?) 슬펐고언니들의 폭력에 하루하루가 괴로웠거든요.

언니들은 저를 때리며 주워온 애라고 놀렸는데,저는 진심으로 제가 주워온 아이길 바랐습니다.
그래서 어린 마음에 굴다리라고 불리는 곳을 지날 때마다그 아래 누가 안 계시는지 유심히 살펴봤어요.


제가 여섯 살이면 셋째 언니만 벌써 열여섯 살인데 얼마나 힘이 넘쳤겠어요.둘째, 셋째 언니는 그래도 저를 때리고 나서초콜릿도 나눠주고 종종 놀아주기도 했지만첫째 언니는 아니었습니다.


생생하게 기억나는 일이 있는데,유치원에서 뭘 배워와서 첫째 언니 대학노트에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렸었나 봐요.한 장만 그리면 언니가 모르겠지, 뭐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아무튼...

그날 병원에 실려 갔습니다.기절할 때까지 맞았거든요.

기절한 순간은 기억이 안 나는데MRI 그 둥그런 통 안에서 정신을 차린 건 정확히 기억납니다.
어린 마음에 제가 죽은 줄 알고,죽으면 이런 기계를 통과해서 하늘나라로 간다고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아픈 손가락인 첫째 언니였기에부모님께서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으셨습니다.
병원에 실려 갔던 그 날은 혼을 내셨는지 어쨌는지 모르겠지만항상 첫째 언니를 '군기반장' 이라 부르시며동생들 정신교육 잘 한다고 좋아하셨거든요.


제가 조금 크고 나서 왜 그렇게 첫째 언니만 감싸고 도는지 여쭤봤는데첫정이 원래 그런 거래요.
또 언니가 어릴 때 크게 다친 적이 있는데병원에서 다 죽는다고 했지만, 기적처럼 살았다고,
언니 어린 시절 몸과 마음이 많이 다쳐서 그런 거니까제가 이해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다른 언니들의 폭력은 자라며 조금씩 줄어들었고제가 중학교 들어갈 무렵에는 거의 멈췄어요.(타지로 대학가고 취업해서 마주칠 일이 줄었으니까요)

하지만 큰언니만 주기적으로 꼭꼭 찾아와서는별거 아닌 일로 트집 잡아서 신명 나게 패고 돌아갔습니다.


제가 중학교 3학년이었던 어느 날,
한창 외모에 관심 많을 나이지만화장은 고사하고 교복도 제대로 못 맞춰 입었던 저를탐폰 쓴다고 발랑 까졌다고 또 그렇게 패더라고요.(체육대회 편하게 하고 싶어서 교련 선생님께 몇 개 빌려놓은걸가방 뒤져서 찾아내고 저런 거에요)

하도 맞으니 맷집도 좋아져서 한두 시간 정도는 덤덤히 맞아줬지만그날따라 억울하고 화가 나서 처음으로 심하게 반항을 했습니다.
그러다 화를 못 참고 저도 폭력으로 대응했어요.
삼십 대 초반인 언니보다 십 대인 제가 더 힘이 좋았을 테니몇 대 안 때리고 언니 어깨가 탈골됐습니다.
어깨 빠져서 괴로워하는 와중에도 눈이 뒤집혀서 칼 들고 쫓아오더라고요.때마침 둘째 언니가 집에 와서 겨우겨우 뜯어말렸어요.


언니는 제가 탐폰을 쓴다고 문란한 년이라며 부모님께 선수를 쳤고(어머니가 옛날 분이라 생리대도 천으로 된 것만 쓰셨습니다)문란한 년 + 하늘 같은 언니한테 대들어 상처를 입힌 천하의 나쁜 년이 되어공부 같은 건 해서 뭐 하냐고 머리 밀고 공장이나 가라시며안 그래도 똑 단발인 중학생 머리를 쥐 뜯어 먹은 머리로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성인이 되고 나서 더한 일도 많았지만어린 시절이 어제 일처럼 더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있네요...


아무튼, 견디다 못해 첫째 언니를 피해 호주로 왔어요.한국에서는 어디를 가도 끈질기게 연락하고 따라와서 괴롭혔으니까요.
준비 없이 무작정 도망 나온 거라 자리 잡기가 정말 힘들었습니다.
처맞기만 맞았지 집에서 제대로 배운 건 없어서 사회생활도 서툴렀고주눅은 들어있지만, 또 속에 미친년도 같이 들어있어깊이 있는 인간관계가 거의 불가능했어요.


한심한 제 모습을 너무 벗어나고 싶어한번은 한국에 잠깐 들어가 심리상담을 받아봤는데상담사분이 가족들이랑 같이 방문하길 권유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가족들에게 사정하듯 부탁을 했어요.
하지만그 시절에는 다 그렇게 키웠다, 첫째 언니 원망하면 너만 손해다,그런 거(?) 하는 것보다 용서하는 게 빠른 길이다, 시며 거절하셨습니다.

(그 후 심리상담은 포기했지만 첫째 언니와 직접적으로 대화를 시도한 적이 있어요.어릴 적 제가 너무 병/신간이라서 팬 거라는 얘기를 듣고그 길로 깔끔하게 첫째 언니와 절연하고 가족들과의 연락도 한동안 끊었습니다)


아무것도 없이 시작한 타지생활이 너무나 힘들었지만그래도 집요하게 괴롭히는 첫째 언니가 없고,도와달라는 제 외침을 방관하는 무심한 가족들이 없어서싸구려 셰어하우스의 창문 하나 없는 쪽방에 살면서도평생에 못 느껴본 편안함, 행복, 이라는 감정을 느껴봤습니다.


그러다 보니 요 몇 년 새 마음이 좀 누그러져자주는 아니지만 다른 가족들이랑은 조금씩 연락을 하고 있었어요.
여기서 자리도 좀 잡았고, 예전과는 다르게 행복함도 느끼고 그러다 보니안색이라고 해야 하나, 얼굴이 좋아졌다며 가족들이 그러더라고요.호주 생활이 좋아 그런가보다며 부러워하면서요.

그래서 지나가는 말로 놀러 한번 오라 했었습니다.
80%는 '빈말'이었지만 20% 정도는,십여 년간 그래도 내공을 쌓았으니까 괜찮지 않을까 싶은 마음도 있었고,무엇보다 평생을 기댈 곳 없이 외롭게 지내서늦었지만 따뜻함을 조금 느껴보고 싶기도 했고요.


그런데 부모님께서 첫째 언니한테도 얘길 했나 봐요.제가 가족들 '전부' 호주로 초대했으니 같이 가자고요.
절연했을 때 가족들에게도 말했고,생각 없이 툭툭 첫째 언니 안부 전할 때마다 알고 싶지 않다고도 분명 얘기했는데 말이죠.


전혀 모르고 있다가 비행기 자리 얘기하면서(부모님, 둘째 언니, 셋째 언니) 4명이니까 가운데 네 명 딱 앉으면 되겠다,뭐 이런 식으로 얘기했더니 다섯이라길래 혹시 하고 물어봐서 알게 됐습니다.


순간 눈앞이 아찔하고 머리가 핑 돌더라고요.첫째 언니랑 연 끊었고 소식 알리지도, 알려주지도 말라고 몇 번을 얘기했는데사람 말이 말 같지 않냐며 불같이 소리를 지르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감정적으로 얘기할 일이 아닌데 저도 모르게 이성의 끈을 놓은 것 같아요.


처음에 가족들은 황당해하며우리가 죽을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화 낼 일이냐며,친정 원년멤버(?) 모이는건데 어떻게 첫째만 왕따를 시키냐고지난 일을 아직도 품고 있는 유난 떠는 애 취급하더니

이제 첫째 언니도 많이 늙어서 예전 같지 않다, 유해졌다,부모님 돌아가시기 전에 우애 좋은 모습 보여드리자, 등등별 같잖은 소리를 회유랍시고 돌아가면서 하고 있네요.


진짜 모르겠어요.
제가 용서 가능한 별것 아닌 일로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데 평생 혼자 괴로워하고 있는 건지,도대체 속에서 끓어오르는 이 감정이 뭔지, 누구를 향하는 원망인지....


결혼하고 자식 낳아보면 이해할 거라는데결혼할 생각도, 자식 낳을 생각도 없어서 그런지 이해가 안 돼요.
볼 일 없을 자식이지만 저처럼 자란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지도록 아픈데어디서 이해를 할 수 있다는 걸까요?


다른 언니들도 저를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아직도 부모, 가족 원망이나 하는 철부지 취급하는데마흔이 되면 저절로 상처가 치유되나요?없던 일처럼 깨끗하게 나을 수 있는 거예요?


호주 여행은 올 스탑했지만 모든 게 무너진 기분입니다.
저 날 이후로 손에 아무것도 안 잡히고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나요.단순히 호주 여행 일 때문만은 아니겠지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지금껏 천애 고아처럼 살았으니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살면 되는 걸까요?시간이 약이니까 그냥 기다리면 되는 걸까요?아님, 정신과에 가서 약을 먹으면 괜찮아질까요?




뭐 좋은 얘기라고 이렇게 글을 쓰는지 모르겠지만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았어요.


너무 감정을 쏟아내기만 해서 어떻게 마무리를 지어야 할지 모르겠네요.
다들 바쁘시겠지만 어떤 이야기라도 해 주시면 감사히 듣겠습니다.두서없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수308
반대수9
베플ㅇㅇ|2019.12.02 09:47
그것들 가족 아닙니다. 아직도 가족이라고 생각하시는거죠? 놔버리세요. 그냥차단해버리시고 여태 그랬듯 스스로 살길찾으세요. 쓰니는 귀한사람입니다. 앞으로 많이 사랑받고 사랑하고 사세요.
베플머지|2019.12.02 13:40
이십대도 아니고 사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가족에 집착하지마세요. 쓰니님 부모님 쓰니를 학대한거예요. 방관도 학대입니다. 이제 그만 내려놓고 인정하세요.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버리세요. 좀먹듯 갉아먹는것들은 필요없어요. 보인 애기가 아니고 남일이다 생각하고 쓰신글 읽어보세요. 그리고 조언해보세요. 버리라고 하겠죠? 그릴울 껀덕지도 없어요. 버려요
베플야옹|2019.12.02 09:47
친정부모가 유해졌던 뭐든 용서의 감각은 당신이 쥐고 있는거지 그사람들이 철부치 취급한다고해서 누그러져줄 일이 아닙니다. 당신에게 상처가 되는 일을 남의 강압에 의해 받아들여줄 필요는 없어요. 보고 싶지 않다면 죽을때까지 안보면 됩니다. 성인이 되었다고 해서 어릴때처럼 상처 안받는거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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