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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도 무서워한 이진용 의병장

상고 |2008.03.13 00:00
조회 2,789 |추천 0
최근 일부 학교에서 애국심을 함양하기 위한 민족사교육을 강화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요즈음 젊은이들에게 꼭 필요한 교육으로서 구 한말 우리 선열들이 일본에 대항해 조국을 위해 싸운 의병활동을 통해 애국심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다.   한말 의병투쟁은 을미사변으로 대표되는 일제의 만행에 대한 민족적 분노가 폭발해 그 이듬해부터 경술국치에 이르기까지 15년 동안 펼쳐진 '전쟁'이었다. 당시의 의병투쟁은 양반 유생 군인 승려 농민 등 전 국민이참여한 국가적 항쟁이었다.
특히 황해도 평산 출신 유생이었던 의병장 이진용(?~1919)은 을사늑약이 체결되고 서울에 통감부가 설치되고 국권이 날로 유린되어 가던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1907년 9월 국권회복의 대의를 품고 황해도와 경기도일원에서 의병투쟁을 벌여 오던 이진용 의병장의 부대는 경의선 철로 위에 돌을 놓아 일본군 의병토벌대가 타고 오는 기차를 전복시키고 격렬한 전투를 벌이는 등 일본군에게  큰 피해를 줬다.
이진용의 부대는 의병투쟁을 펼칠 만한 강력한 미국제 무기를 갖추었으므로 일본 군경은 이진용 의병장의 부대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후 만주로 피신한 이진용 의병장은 산재한 한국 이주민들을 규합하여 항일사상을 고취했고, '충의사'라는 비밀단체를 조직하고 만주로 망명해 오는 애국 청년들을 규합해 항일운동을 하는 등 조국 광복을 위해 몸을 바친 의사로 주요한 의병활동으로 평가하고 있다.    오늘날 젊은이들에게 많은 교훈을 주는 우리 선열들의 의병활동을 통해서 국가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애국심을 키우는 일에 국민적 관심을 가져야 하겠으며 특히 국가의 안보를 책임지는 장병들에게는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과 민족을 위하는 위민정신을 가져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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