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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에 부는 바람, 천무 / 天武 [12]

은하철도 |2004.02.11 18:48
조회 923 |추천 0

 

죽림장의 혈투



12.


“감히 자혈검을 뺏다니,”

허공을 가르는 천봉자를 향하여 일선교 교주는 벽공장을 날렸다.  음산한 파공음이 공기를 갈랐다.  천봉자는 칠장이나 높은 곳에서 몸을 한바퀴 돌리며 두 손을 뻗어 힘껏 벽공장을 같이 쏟아내었다.  펑 하는 굉음이 어둠을 흔들었다.  허공에서 내려오던 천봉자의 몸이 서로 부딪치는 벽공장의 탄력에 다시 몇 장을 튀어 오르더니 소나무 숲을 펄쩍 뛰어 넘어 자취를 감추었다. 


흑의인이 일제히 천봉자를 쫓으려는 순간에 일선교 교주의 음성이 들렸다.

“가만히 있어라.  대단한 무공이다.  몸의 기와 혈을 정지시키듯 하여 인기척을 없애고는 바로 내 위에 있었다니,  그리고 벽공장이 부딪치는 힘을 이용하여 빠르게 사라지는 무공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호호, 바로 천봉자의 무공이로다.  그 자만이 펼칠 수 있는 무공이로다.  마침 죽림장으로 가려던 참인데,  잘 되었다.  천천히 자혈검을 찾으러 가도록 하자.”

일선교 교주의 날카로운 웃음소리가 허공을 날았다.



여기까지 말한 대이노사는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고영과 자야는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호호호, 할아버지는 정말 입담이 무척 좋아요.  그래서 천봉자님은 어찌되었어요?”

“헤헤, 입이 마르구나.  차를 한잔 더 마셔야겠다.”

고영은 천봉자에게로 이야기의 중심이 옮겨가자 더욱 아버지의 생각이 간절해졌다. 

“흠,  그러면 지금부터 강호의 전설처럼 되어진 죽림장의 대혈투에 대하여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대이노사는 자야가 따르는 차를 마시면서 다시 심각한 표정으로 돌아가 입을 열었다.



자혈검을 다시 탈취하여 돌아온 천봉자는 입술을 깨물었다.  신오무교의 상징이었던 웅장한 무도관과 부속건물이 불에 타서 재만 남았으며 여기저기에서 죽은 사람들이 보였다.  신오전을 향하여 오르자 좁은 동굴로 된 통로는 안으로부터 육중한 바위로 막혀 있었다. 


천봉자의 눈에 바위에 새겨진 글귀가 보였다.  바로 흑선비곡이 쓴 글이었다.

“모든 것을 인연의 흐름에 맡기어 그 뜻을 따르라.”

천봉자는 흑선비곡의 심중을 짐작했다.  이것은 일선교에 대한 경고이며, 나중을 위한 준비였다. 

(정말로 잔인한 일선교다.  이렇듯 집요한 집단이라면 강호에 피바람을 불어올 것이 자명한 일이다.  부딪쳐야 할 인연이라면 피할 필요는 없다.)


침통한 표정으로 죽림장으로 돌아오니 설선녀는 옥동자를 분만했다.  사내아이의 울음소리가 죽림장에 울려 퍼졌다.  두문불출한 천봉자는 신오무교에서 일어난 사건을 알리려 황궁일을 소림사로 보냈다.  무림을 꺾으려는 보복집단이 일선교라는 사실과 함께 다음과 같은 생각을 첨부하였다.


(강호를 꺾으려는 그들의 노력은 기어이 회오리바람을 일으킬 것입니다.  무당파와 아미파의 비급과 자혈검을 노린 그들은 불길한 전조로서 신오무교를 습격하였습니다.  흑선비곡님은 이러한 도전을 인연으로 알고 받아들이려 합니다.  전래로 간수하던 자혈검을 강호로 보내어 순리를 따르게 할 것입니다.  일선교의 세력과 무공은 그 깊이를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일선교의 첨예한 첫발을 제가 꺾으려 합니다.  피하지 않겠습니다.)


황궁일을 소림사로 떠나보낸 후, 천봉자는 죽림장을 산책하고 있었다.  아침의 햇살이 눈부신 호수 건너편에 사람의 모습이 희뜩희뜩 비쳤다.  천봉자의 뇌리에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얼른 죽림장으로 돌아와서 방문을 들어서는 순간에 설선녀의 신음소리가 들렸다.  방 안에는 흑의인이 설선녀의 허리를 감고는 뒤에 서 있었다.  아기를 품에 안고 있는 설선녀는 아직도 산후조리 중이었다.  천봉자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짐승이라 하여도 새끼를 안은 어미는 해치지 않는 법이거늘......”

폐부에서 나오는 분노의 신음소리와 함께 천봉자의 몸이 일순간 바닥에 내려앉는 듯 보였다.  흑의인이 몸을 뒤로 빼려는 동작에 맞추어 쭉 뻗은 천봉자의 오른손이 갈비뼈를 찔렀다.  어억, 하는 소리와 함께 갈비뼈 부러지는 소리가 우두득 들렸다.  눈에 불꽃을 튀긴 천봉자의 극렬한 공격이었다.


뒤따라서 힘없이 서 있던 설선녀가 아기를 품은 채 푹 쓰러졌다.  이미 설선녀는 사혈(死穴)을 찔려서 목숨이 경각에 달려있었다.  천봉자는 설선녀를 눕히고는 막힌 혈도를 풀려고 애썼지만, 깊게 침투한 내상은 회복할 수 없었다.  온몸을 부르르 떠는 천봉자의 귀에 밖에서 어지럽게 들리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오늘은 천봉자와 그 식솔을 모두 저승으로 보내어 석대인님의 원한을 갚으려 하며,  자혈검을 찾아가야겠다.  어서 목을 늘여 순순히 칼을 받아라.‘

바로 자혈검을 탈취하였던 흑의인의 목소리였다. 


천봉자의 싸늘한 목소리가 들렸다.

“너희들이 내 목숨을 가지러 온 때가 안 좋다.  어린 새끼가 배고파서 젖을 달라고 우는구나.  나중에 다시 오너라.  그 대신에 너희들이 원하는 자혈검은 당장에 내 주겠다.  흑선비곡님이 자혈검의 원한에 따라서 그 인연을 정리하라는 무언의 지시를 내렸다.”


천봉자는 벽장에서 자혈검을 꺼내어 들고 방문 앞에 나섰다.  그리고 멀리 서 있는 흑의인에게 자혈검을 휙 던지고는 태연하게 돌아서서, 우는 아기에게 설선녀의 젖을 물렸다.  아기는 설선녀의 품에서 옷깃을 움켜쥐고 젖을 빨았다. 

(흠...... 분주한 발걸음으로 봐서는 많은 고수들이 죽림장을 감싸고 있다.  분명히 석대인의 복수를 하려는 모양이군.)

천봉자는 태연한 표정으로 죽림장을 감도는 살기를 더듬었다. 


자혈검을 주워 든 흑의인은 음침한 목소리로 말했다.

“흐흐, 자혈검은 고맙게 받겠다.  그러나 오늘은 너와 네 식솔을 모두 저승으로 보내라는 교주님의 명을 받들어 온 것이다.  추호의 인정을 용납지 않으니 각오는 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흐흐”


천봉자는 방문 앞에 앉으며 흑의인에게 태연하게 말했다.

“내가 보아하니 침입자의 수가 수십 명을 헤아린다.  너희들의 각오는 익히 알겠노라.  어리석은 녀석들,  내가 강호에서 살생을 극구 피해 왔으며, 보복을 일컬어 어리석은 짓이라고 비웃었거늘...... 일선교 교주라는 일개 아녀자의 좁은 소견을 하늘처럼 떠받들어 너희의 목숨을 초개처럼 버리는구나.  장부의 짓이 아니로다.  내가 다시는 되풀이하여 말하지 않을 것인즉, 목숨을 부지하려면 지금 당장 이곳에서 떠나라.  알겠는가?”


천봉자의 통렬한 목소리는 이어졌다.

“오늘은 내가 너희들의 졸렬한 행동에 대하여 추호의 양보를 보이지 않을 것이다.  내 처자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있으니 한번의 손속에 한명의 목숨이 위태로울 것이다.  부디 원망하지 말거라.”


“흐흐, 큰소리는 그만 치거라.  오늘은 일선교의 칼 아래 네 목이 떨어질 것이다.  너의 간과 쓸개를 도려내어 이미 승천하신 석대인님의 영전에 바칠 것이다.  불쌍한 녀석...... 네 목숨도 오늘로 종말을 고하는구나.  흐흐흐.”

흑의인은 음침한 말을 뒤로 남기고 대밭 사이로 사라졌다. 


방문 앞의 마당에는 맑은 햇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천봉자는 졸지의 습격에 대비하여 눈을 반쯤 감고 조용히 앉아있었다.  사방에서는 소리 없는 움직임이 부산하게 천봉자의 거처를 압박하여 왔다. 


별안간 지붕위로부터 번뜩이는 검이 검은 그림자와 함께 떨어져 내렸다.  검이 천봉자의 정수리에 닿는 순간에 억 하는 소리와 함께 그림자가 마당 가운데로 나가떨어졌다. 

“무당파의 만엽도인(萬葉道人)이 아니옵니까?  검법의 본산이라는 무당파의 대고수가 어찌하여 일개 하수인으로 전락하여 검법을 펼치십니까?  가소롭소이다.  한번의 손속에 한 사람의 목숨이 위태롭다는 경고를 분명히 들은 줄로 아는데, 저의 손이 맵다고 원망치는 않으시겠죠?”


천봉자를 공격하던 만엽도인은 몸을 일으키려다가 다시 푹 꼬꾸라졌다.  선혈을 토하더니 부르르 몸을 떨며 숨졌다.  그의 손에 들려있던 검이 어느새 천봉자의 손에 들려져 있었다. 


주위에서 이 광경을 본 고수들은 경악했다.  소림사방장인 혜정선사와 서역의 묘연존자가 입이 닳도록 칭찬하던 이유를 비로소 알 것만 같았다.  어떤 무공을 펼쳐서 만엽도인의 장검을 뺏었으며, 단번에 목숨을 끊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모든 초식은 만엽도인의 칼이 번쩍하며 떨어지는 한순간에 번개처럼 펼쳐졌다.  숨죽인 고요함이 죽림장에 흘렀다. 


“헤헤헤, 참으로 대단한 초식이다.  내가 매운맛을 직접 보고 싶도다.”

마당 한쪽에 서 있는 나무 위에서 굵은 목소리가 들리더니 자색승복을 펄럭이는 승려가 마당 한가운데로 내려섰다.  승려를 본 천봉자의 눈이 더욱 싸늘한 빛을 띠었다.

“흥, 무림의 본산인 소림사에 먹칠을 하는구나.  각공대사(覺空大師)님 반갑소이다.”


“헤헤, 나를 잊지 않고 알아보는구려.  나한십팔고수 중에서 제일인 나를 잊을 수는 없겠지.  더 이상의 말은 필요 없다.  오직 너의 숨통을 끊어서 석대인님의 원혼을 달래려 할 뿐이다.”


두 팔을 내리고 왼발을 비스듬히 내미는 각공대사의 움직임을 보고 천봉자는 비웃는 투로 말했다.

“나한십팔수 중의 전배산운장(前排山運掌)을 펼치면 나는 도해배산세(倒海排山勢)로 각공대사의 연액혈(淵腋穴)을 내지름으로서 대사의 목숨을 뺏을 것이오.  지금 대사의 발끝은 단단하나 장력을 펼치는 틈이 너무 허하니, 사방으로 산운장을 펼쳐도 그 기운은 가을의 쇠한 햇살과 같을 것이오.”

실로 무서운 담공(談功)이었다.  담공이란 무공을 대화로 주고받으며 겨루는 것으로 절정의 고수들만이 할 수 있는 최상의 경지다. 


그 말을 듣는 순간에 각공대사의 가슴이 철렁했다.  한눈에 자신의 허와 실을 간파하여 담공을 펼치는 천봉자가 아닌가,   얼른 자세를 바꾸며 그 담공에 답했다. 

“대단한 식견이다.  그러면 다음의 살수를 펼치마. 헤헤,”

각공대사는 손을 들어 앞으로 내밀고는 두 발을 성큼 들어서 건너뛰었다.


“지금의 자세는 흑호신요(黑虎伸腰)로서 나의 도해배산세를 타 넘으며 내 허리의 명문혈(命門穴)을 노리지만, 대사의 내공이 전후로 흩어지니 힘이 미약할 것이오.  나는 선장추운세(仙掌椎雲勢)로 흑호신요를 밀어내면서 대사의 가슴에 있는 전중혈을 강타할 것이오.  피할 수 있는가?”

허를 지르는 천봉자의 말에 각공대사의 무릎이 떨려왔다.  만약에 진공(眞功)이었다면 이미 각공대사는 피를 토하고 죽었다. 


“흠, 실로 무서운 담공이다.” 신음을 내는 각공대사는 진땀을 흘리며 두 손을 위아래로 꼬고는 발을 양쪽으로 벌렸다.  그러자 매서운 천봉자의 담공이 떨어졌다.

“미련한 짓이다.  지금 대사의 혈기가 가슴을 치솟아 내공이 흔들리거늘, 아래가 단단한 바위 같아야 그 위력이 나오는 만궁개흉(挽弓開胸)이 아닌가,  그러면 내가 나한투호(羅漢鬪虎)로 뛰어넘어 대사의 옥침혈을 찌를 것이오.  이미 대사는 죽음 목숨이라고 해야 마땅하지 않은가?”


이 말을 듣자마자 각공대사의 몸에서 힘이 쭉 빠졌다.  펄썩 주저앉으며 사색으로 변한 얼굴로 진땀만 흘렸다.  천봉자의 목소리가 쩡쩡 울렸다.

“각공대사는 세 번의 초식을 펼치는 동안 내가 양보하여 목숨을 살려준 공을 알 것이오.  소림사의 혜정선사와의 사이가 각별하여 대사의 목숨을 보전하여준 것이오.  곧바로 소림사로 돌아가던지 아니면 산속에 은거하여 강호를 떠나심이 가한 줄 아오.  어떻소?”


진땀을 흘리던 각공대사는 눈을 감은 채 탄식하였다.

“오십 여 년을 밤낮으로 연마하여 오늘에 이른 나의 무공이거늘, 너무도 헛된 노력이로다.  실로 강호를 더듬어 다 안다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내가 어찌 세 번씩이나 목숨을 구걸하여 구차한 삶을 누리겠는가?  천봉자님, 고맙소이다.  나의 어리석은 살수를 세 번씩이나 관대히 넘겨주었으니,  안녕히 계십시오.”


오른손을 머리위로 들어올린 각공대사는 자신의 백회혈을 내리쳤다.  퍽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각공대사는 앞으로 쓰러졌다.  사방에서는 숨소리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모든 고수들의 간담이 서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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