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그를 만나다!
오늘은 비가 와서 그런지 도예교실 아줌마들이 몇 명 오지 않았다.
이런 사소한 일에도 부쩍 신경이 쓰이는 것이 이 일을 하고 부터다.
사실 폐강될까봐 두렵다.
아무리 그래도 내 유일한 밥줄인 데...
오늘은 날이 우중충해서 그런가?
아줌마들이 야한 얘기에 열을 올리구 있다.
그래서 인지 노처녀 아가씨는 아랑곳 않고 작품에만 몰두하고 있다.
작품?
작품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열과 성을 다하고 항상 창의적인 작품을 만든다.
손매가 야무지고 눈에 열의가 차있다.
나에게 좀처럼 없는 면이라 존경심까지 든다.
나는 게으르고 무성의하다.
내 강좌에 재 수강생이 거의 없는 것도 다 나의 이런 불성실함 때문이라는 것을 안다.
아줌마들이 손으로 돌리는 물레는 지겹다며 전기물레를 쓰고 싶어하면 난 늘 이렇게 말한다.
"아니 얼마나 배우셨다고들 벌써 전기물레예요."
"저건 3개월 이상하신 분들만 하실 수 있어요."
사실 재 수강 아줌마도 아직도 손 물레를 쓰게 하고 있다.
왜 안 하냐구?
당연히 귀찮아 서지.
일단 설명도 길게 해야 하구, 아줌마들이 서투르게 만지면 수정해주랴 정신이 없다.
그래서 왠 만 하면 안 하지롱~
난 그저 오늘 뭐 만들지 잠깐 설명해주고 그냥 앉아서 커피 마시면서 음악이나 듣고 있으면 그만이다.
오늘도 변함 없이 그러고 있는 중이다.
아, 참, 오늘은 진짜 긴장되는 날인데!
그를 만나기로 했거든요.
어떤 사람일까?
뭘 입고 나가지?
무슨 말을 하지?
머리는 복잡한데 가슴은 콩닥콩닥.
시간이 왜 이렇게 안가냐?
농후한 야담을 다한 아줌마들이 떠난 자리엔 태교 도예반 수강생들이 와서 수업중이다.
말 그대로 임산부를 대상으로 하는 수업이라 음악을 신경 써서 틀어주고, 뭐 그 외에 다른 점이라면 도자기를 만들기도 하지만 만들어진 도자기에 그림 그리는 작업들을 더 많이 시킨다.
사실 이게 더 편하다.
초벌로 구어 진, 틀로 찍어낸 도자기를 구입하여 거기다 자기가 원하는 그림을 그리고 구워 내는 것이다.
직접 만들면 투박한 맛이 있으나 이렇게 하면 산 것처럼 세련된 맛이 나서 오히려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수강생은 다섯 명,
서로 같은 처지라서 그런지 정보교환이며 대화가 맨날 애기 초음파 사진 얘기,그런 것들이다.
오늘은 한 여자가 아이가 거꾸로 됐다구 걱정하구, 다른 사람들은 자신이 아는 한 최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결혼도 안 한 내가 낄 자리가 없다.
뭐 원래 사람들과 너스레를 떠는 스타일도 아니지만.
아, 따분... 커피 두잔째...
심장은 두근두근...
근데, 이 시간만 끝나면 그를 만나러 가야하네.
갑자기 걱정이 되면서 너무 긴장된 나머지 그 시간이 안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머피의 법칙의 적용을 늘 받아온 나에게는 그 시련의 시간이 바로 10분 후에 다가왔다.
나가지 말까?
어떡하지?
옷매무새를 살피고 문화센터를 나오면서 그 생각을 했다.
안에선 몰랐는데 비가 아직도 추적추적 오고 있다
가을빈가...
이 비 그치면 가을이 되겠네...
사실 얼굴도 안본 사인데 , 안 나가면 그만이지.
그냥 집으로 갈까?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두 대 놓치면서 그 생각을 했다.
여기서 내려야 하는데 그냥 내리지 말구 계속 갈까?
전철 안에서 내내 이 생각을 했다.
그냥 나온 김에 인사동 구경이나 하지 뭐.
영화나 한편 보던지?
약속장소에 내려서도 이 생각을 하다가 그와 만나기로 한 곳에 도착했다.
근데 오히려 20분이나 일찍 왔다.
긴장을 많이 했는지 일찍 출발한 탓이다.
진짜루 떨린다.
내 친구가 이 사실을 알면 아마 전에 했던 말은 다 취소라고 혀를 내두를 것이다.
드디어 네 인생에 쇼킹한 일이 하나 생겼다고 말이다.
다시 한번 엄마얼굴을 떠올리면서 용기백배!!
오히려 최선을 다해 보겠다는 욕심이 앞선다.
그가 알려 준 까페는 약간 외진 곳에 있었으나 그가 설명을 잘해 준 덕분에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까페는 나름대로 아담하면서 유럽풍이었다.
무엇보다도 까페 주변에 화단을 만들어 놓아 여러 종류의 허브가 심어져 있었는데 여기에 이런 곳이 있었구나 싶었다.
아직 그를 보진 못했지만 그의 느낌이나 분위기가 전해져 오는 것 같아, 더 흥분되면서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졌다.
까페문 에는 종을 달아 놓아 문이 열릴 때마다 종이 울렸다.
나는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종이 울릴 때마다 문 쪽을 바라다 봤다.
처음으로 들어온 남자는 여자친구 만나러 왔고 그 다음은 여자가 들어왔다.
이렇게 두세 명이 지나가고 한 동안 종은 울리지 않았다.
그제 서야 여유를 찾은 나는 시계를 봤고 정확히 약속시간이 되었다.
진짜루 긴장이 되었고 긴장하지 않으려고 창 밖 화단을 바라다봤다.
화단 가득 보라색의 라벤더 꽃이 빗방울을 달고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또 문득 민주가 생각이 났다.
그녀가 프랑스 유학을 갔다오면서 프로방스 지방의 특산품이라며 라벤더 향이 가득 담긴 비누를 선물했었다.
그러고 보니 이 까페 이름이 프로방스였다.
나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종이 울린 것은 바로 그 때였다.
한 남자가 들어왔다.
덩치가 정말 좋은데 검은 양복을 뽑아 입은 폼이 조폭계의 재떨이쯤은 되어 보였다.
그는 좌중을 둘러보면서 누군가를 찾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가 나를 보며 정말 걸맞게 그 육중한 손을 들어 올려 반가움을 표시하고는 나에게로 다가 온다.
윽~ 내가 왜 이 생각을 못했지?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 채팅을 하면 누구나 익명이 되고 자신을 아무렇게나 포장할 수 있잖은가?
그가 점점 다가온다.
으~ 미치겠네.
난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고개를 숙였다.
그가 내 앞에 섰다.
그가 날 언제 봤다고 이렇게 얘기한다.
" 잠깐만 나, 화장실 좀 갔다올게"
으~ 진짜 미치겠네.
화장실~ 저 정나미 떨어지는 한마디! 화장실~
난 정말 고개가 너무 무거워져서 저절로 숙여지고, 이 위기를 어떻게 모면할까 고민에 빠져야 하는데 젠장 머리가 멍하니 아무생각도 나지 않는다.
무슨 교통사고 당하고 30초 지난 여자처럼 멍하다.
그가 화장실에 갔다 올 때까지 난 뇌사 상태에 빠져 있었다.
나에게 의식이 돌아오면서 머리가 쭈뼛 설 정도로 한기가 돌입한 것은 그의 화장실을 나오는 육중한 발자국 소리가 내 뒤통수를 때릴 때 였다.
" 미안~ 좀 늦었지? 오는데 지하철이 연착이 돼서..."
옆으로 다가오며 그가 말했다.
뭐, 지하철... 볼장 다 봤군, 의사가 차 두 없어서 뚜벅이?
그리구 저 지나치게 앞서가는 친근한 말투.. 최악이다.
얼굴은 그렇다 치고 정말 마지막 걸었던 기대는 그냥 확 무너져 버렸다.
그래, 다 포기하자.
피차일반일지 모르니 인사정도는 하고 헤어져야지 하는 생각에 고개를 숙인 채 표정 연습을 한 후 옆으로 다가오는 그를 정말 반갑게 올려다보며 빙긋 웃었다.
그도 웃으며 나를 보더니 내가 웃어주자 갸우뚱한 표정을 짓고 내 옆 테이블에 앉는다.
아!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저기 앉아있던 여자가 있었다.
천만다행, 너무 너무 너무 넘 다행이야~
안심과 동시에 여자가 가엾어 진다.
둘은 뭐가 그리 재밌는지 계속 낄낄 깔깔,
가끔은 내 쪽을 쳐다보며 웃기도 하구.
기분 나쁘게...
그렇게 시간은 자꾸 가고 15분쯤 지났나?
안 오려나?
그럴 수도 있겠다.
괜히 하루종일 긴장하고 혼자 설쳐대고 김칫국 마신 것 같아 멋쩍어진다.
그냥 차 나 한잔하고 가야지 생각하고 메뉴 판을 보는 데 다시 종이 울리고 무심결에 그곳을 쳐다봤다.
근데... 정말로! 눈을 한번 감았다 떴다.
꿈인지 생신지, 저렇게 훤칠하고 근사한 남자는 본적이 없는 것 같다.
쭉 뻗은 긴 다리. 날씬한 몸매, 훤칠한 키, 다소 까무잡잡하면서 잘생긴 얼굴, 무엇보다 너무나 잘 어울리는 세련된 의상.
검은 양복에 안에는 회색의 다소 캐주얼한 광택 소재의 셔츠를 입었는데 단추를 두 개 정도 풀었다.
그 안에 걸려있는 목걸이가 잘 어울린다.
'혹시 저 남잘까?'
심장은 두근 반 세근 반.
그가 두리번거린다.
내 쪽을 쳐다보는 것 같더니 내게 다가온다.
와~ 나 또 교통사고 당한 여자의 30초 후처럼 머리가 멍하니 아무생각이 없다.
또 뇌사상태에 빠졌다.
" 저 혹시 귀여운 누나!"
'그~ 남~ 자~ 다.~'
나는 그렇다고 말하려고 했는데 가위눌린 사람처럼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내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데 그는 난 줄 알았는지 내 앞에 앉는다.
그가 앉으며 싱긋이 웃는다.
'아이구 왜웃어? 안 웃어도 멋있는 데...'
살인미소다.
나 지금 얼굴이 빨게 진 것 같고 고개도 들 수가 없다.
순간 이런 내 모습이 얼마나 바보 같을 까 에 생각이 미쳤다.
' 야~ 이경자. 너 미쳤냐? 정신 가다듬자.'
잘 안 된다.
' 미친 년, 너 남자 첨 보냐. 정신차려 이경자!'
이렇게 다짐을 해도 소용없지... 사실 이런 남자 첨 본다.
남자래야, 우리 도예실 선배가 다인데.
그 선배는 음 그러니까, 한마디로 덩치 좋고 느낌이 팍 안 오는 스타일이지...
그래두 진짜 촌스럽게 굴지말고 정신차려야겠다는 생각에 채팅하던 순간을 떠올렸다.
떨리는 맘도 없었고 그저 한없이 당당하지 않았던가?
이런 내 모습을 보고 그가 얼마나 당황할 것인가?
' 그가 한 눈에 날 알아본 것을 보면 상상했던 모습과 많이 다르지 않기 때문 일거야' 라는 생각이 들자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지던 나는 용기가 생겼다.
처음 한 5분 정도는 그도 어색했는지 싱겁게 계속 싱글거리며 웃었고 나는 애써 태연한 척 오버하며 느긋해 했다.
" 누나, 늦어서 미안해요, 이 근처에 차 댈 데가 없어서요..."
'아유~ 무쓴 소리 괜찮아~ 괜찮구 말구.'
아까 그 재떨이 생각이 잠깐 나면서 웃음이 났다.
" 근데, 어떻게 난지 금방 알아봤어?"
" 그러게요. 들어오는 데 느낌에 딱 누나 던데."
누나, 그렇지 내가 그 보다 두 살이 많았다.
그래서 누나 랍시구 인생상담 해 줬지.
" 누나 이름이 경자였나?"
" 응"
" 넌 민혁이였지? 사공 민혁."
" 네 "
" 근데 누나, 난 누나가 안 나올 줄 알았어요."
" 왜?"
" 그냥..."
" 누나 진짜루 나랑 결혼 할 생각으로 여기 나오는 거 아니죠?"
' 아이구, 왜 아니냐. 지금 당장 이라두 하겠다.'
" 왜 그럴 려구 나왔는데"
" 진짜요?"
" 그래, 진짜루"
이거 또 웬 오버!!
오버 아니지. 진짜 봉이야! 내 평생에 어디서 이런 남잘 만나.
엄마~ 이제 효도 하겠슴다!!!
~~~~~ 리플 감사합니다.
마음속에 소중히 잘 간직하겠습니다.
더 열씨미! 화이팅!!!!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