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진지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너가 아닌 그 때의 내가 그리워서일거야' 라며 덮고 말던 시간들이, 핑계거리가 되지 않음을 깨달았어.
추워질 무렵 만나 왕복 네 시간이 걸리는 서울까지 나를 보러 오던 너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나에게 안겨서 나를 올려다보던 너가, 쳐다보면 눈을 바로 내리깔면서, 왜 눈을 안마주치냐고 물으면 '부끄러워서 못보겠어'라고 하던 너가, 매일 시험에, 취업 준비에 지치던 나한테는 위로였나봐.
그 때 나는 내자신이 행복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어. 취업 걱정에, 뒤쳐진 나이에 부모님 친구 눈치 난 언제 나이값하며 그들처럼 내 앞가림하며 살까. 하루도 웃으며 잠든 적이 없었어.
있잖아. 난 널 만날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어. 누가봐도 예쁘다고 하는 너가, 마음도 예쁜 너가 나를 만나줌에도, 난 내자신 하나 챙기지 못하면서 누군가를 만나고 있음이 불편했어.
난 너의 자랑거리이고 싶었어. 나쁘지 않은 학교, 나쁘지 않은 외모, 나쁘지 않은 사회경험이 있었지만 그만큼 나쁘지 않은정도 였기에 나는 너의 자랑거리가 되진 못한다고 생각했어.
일요일 저녁 유리창 너머로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던 터미널에서 사람들 틈에 둘이 나란히 앉아 떡볶이를 먹으며 '맛있다 그치오빠'라며 날 바라보며 웃던 너가, '이거 다 먹으면 나 버스타고 집가야되는거야?'라며 다음에는 좀더 오래 같이 있고 싶다며 조금이라도 더 일찍 오겠다고 하던 너가, 내 옷자락을 잡고 입술을 삐쭉거리면서 시간을 멈추는 마법같은거 쓸줄 모르냐는 말도 안되는, 철없는 말들을 해대던 너가, 지금에서야, 아니 그냥 아주 가끔 생각나. 뭔지 모르겠는데,
꼴사나운 행동하지말자며 가볍게 껴안은채로 눈을 바라보며 '나 다음 주에도 오빠 만나러 와도 돼?'라고 묻던 너가, '좋은거 안해도 돼 그냥 걷기만 하자'라고 말하던 너가, 그냥 생각이 좀 많이 나.
있잖아. 너가 평일에 정신없이 일하다가 유일하게 쉬는 주말에 나를 만나러 온다는 것에 나는 되게 부담을 많이 느꼈었어. 너는 괜찮다고 하지만 맛있는 음식, 좋은 카페, 좋은 것들을 다 먹여주고 보여주고 해주고 싶어서, 학교 앞 커피집에서 2천원짜리 커피도, 점심저녁 칠팔천원이 합쳐지면 하루 2만원이 되는게 아까워서, 점심은 굶고 저녁은 집가는 삼각김밥 두개로 떼우는 날이 대부분이었어.
그런데 어느날부턴가 난 그것조차 버거웠나봐. 연애는 나한테 역시 사치인가보다 라고 느껴지더라. 이럴거면 연애하지 말걸. 너도 그걸 느꼈었나봐. 어느 날 맛있는 음식을 먹고 한남동 그 일식집을 나올 때 맛있었냐는 내 질문에 웃으면서 응 이라고 대답한 뒤에 몇 걸음 걷다가 '오빠 나 근데 컵라면이 더 좋아 다음부터는 우리 한강가서 컵라면 먹으면서 예전처럼 얘기 막 엄청하자'라고 하며 웃던 너 모습도 가끔 생각나.
헤어질 때, 인턴 생활에 지쳐 결국 내가 나를 못이겨서 널 잡아두기보다는 나같이 연애할 능력도 안되는 사람은 연애같은거 하지말자라는 생각에 헤어지자 라고 한 내 말에 너는 '결국 이렇게 됐네'라는 말과 함께 장문의 메세지를 보내왔었지.
있잖아 나 그거 아직도 끝까지 읽은 적이 없어. 그거 읽으면 내 마음이 약해질까봐, 답장이 오자마자 바로 1이 사라지게 대화창을 누르고 꺼버렸어. 그 뒤에, 답장도 안한 나에게 며칠동안이고 계속 다시 생각해봐달라는 너의 메세지들까지도, 다 1이 사라지게만 누르고 안읽고 끄기를 반복했어.
난 너처럼 예쁘고 착한데다가 티없는 여자를 만나기엔 너무 능력이 없었어. 그 때의 너는 내가 냉정하다고 생각했겠지만, 나는 어쩔 수 없었어. 나보다 훨씬 돈많고, 능력좋고, 잘생기고, 키크고 다 갖춘 사람을 만날수 있는 사람이란걸 알기에 난 너가 더욱 내 옆에서 불행해지기보다는 더 나은 가람 곁에서 행복해지기를 바랬어.
이제 헤어진지 2년이 다 되어가. 주변 사람들이 연애 왜 안하냐고 물을 때면 입버릇처럼 '내 불행을 누군가한테 나눠주고 싶지 않아서'라고 대답하며 지내왔어. 누가 나한테 관심을 보일때면 일부러 거리를 두면서 내 자신을 한없이 옥죄었어.
이제 좀 마음에 여유가 생겼는데, 너가 옆에 없다는 게 실감이 나네. 그동안은 내가 나로 산게 아니라 무언가에 쫓기듯 살았었나봐. 너와의 이별이 바로 저번 달, 저번 주처럼 느껴져.
다시 너를 만나고 싶어서, 다시 보고 싶어서는 아니지만, 그 사람 많던 터미널 한 켠에 자리 잡고 손을 꼭잡은채로 시덥지 않은 얘기를 하면서 1분 1초가 지나는 걸 아쉬워하던 그 때가 너무 그립다. 나 그 때 행복했었나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