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이라는 단어는 참 무서운 것 같다.
한 번 첫사랑으로 기억된 사람은 영원히 기억되니까.
최근 sns를 보다가 이런 구절을 본 적이 있다.
‘열여섯 때 좋아한 상대가 내 평생에 영향을 미친다’라는 구절이었다.
보자마자 또 잊고 살았던 네가 떠올랐다.
내가 너를 처음 봤던 건 이제는 7년 전인 내가 중학교 2학년일 때였다. 한창 신입생들을 보러 다니던 나의 친구들의 잘생긴 아이들 목록에는 너도 있었다. 나는 그 이름을 너무나 많이 들어봤기에 복도에서 우연히 너를 마주쳤을 때 명찰을 보고는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그저 스치듯 보고 ‘잘생겼네...’라고 생각했고 그 이후로는 너를 거의 본 적도 없었다.
그리고 중학교 3학년 시간은 굉장히 빠르게 흘러 어느새 나는 열여섯이 되었고, 너는 열다섯이 되었다. 3학년은 5층의 열 반 4층의 세 반으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우리 반은 2학년의 네 반과 같은 층을 쓰는 4층이었다.
너는 앞반이라 3층의 2학년 8반인 복도의 거의 끝쪽 반이었다. 그리고 그 윗층의 반대편 쪽이 우리 반이었고, 층도 달랐기에 사실 접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 우리가 서로를 알게 된 계기는 참 단순했다. 어느 날 평소처럼 심심한 시간을 보내다가 다른 반 친구가 잘생겼다고 보러 다니는 아이가 있다는 걸 알고 심심했던 나는 친구가 내려가기까지 한다는 애의 얼굴이 궁금해서 호기심에 같이 보러 내려갔었다.
그게 너였다.
이렇게 시작은 그저 장난이었다.
잘생겨서 보러 갔고 그게 전부였다.
그러다가 연락을 한 번 해보자 싶었다.
그래서 어찌저찌 알아낸 번호로 재미 삼아 너에게 문자를 보냈었다. 안녕이라고 보낼까 말까 고민하던 상황에서 친구가 전송 버튼을 대신 눌러서 부끄러우면서도 재밌었던 기억이 난다.
그랬다. 그저 재미였고 장난이었다.
근데 그게 첫사랑이 될 줄은
정말 그때는 몰랐다.
너는 내가 선배이기 때문에 당연히 연락을 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쨌든 그때 나는 하루 하루가 재밌었다. 그래서 계속 연락하고 거의 매일같이 찾아가곤 했었다.지루했던 일상이 재밌어졌고, 또 네가 잘생겼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보니 언제부턴가 우리는 매일같이 문자를 하는 사이가 되었고, 난 당연한 듯이 쉬는 시간마다 너를 보러 갔다.
그러다가 인사를 해야겠다는 목표가 생기게 되었고, 그저 보는 것이 아닌 인사를 했다. 너는 나의 첫인사를 수줍어하며 허리를 숙일듯 말듯 하면서 받았고, 나는 기뻤다. 차갑고 싹수없기로 유명하던 네가 나와 연락하고 인사한다는 사실이 참 그때는 내가 뭐라도 된 기분이었다.
난 점점 너에게 바라는 게 많아졌다. 먼저 인사하기를 바라게 되고, 말을 놓기를 바라게 되고, 같이 사진도 찍고 싶고, 대화도 하고 싶고, 장난도 치고 싶었다.
그게 너에게 압박이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아니 안 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나는 알고 있었다 네게 내가 너무 불편한 사람이라는 것, 내가 바라는 것들이 너에게는 부담일 뿐이라는 것을 하지만 나는 너를 하나하나씩 공략해가는 것에 재미 들여있었고, 그때 나는 몰랐지만 매일 같은 연락과 질문으로 너에 대해 알면 알수록 점점 너에게 빠져들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체육 때문에 운동장으로 내려갔는데 거기 네가 있었다.
7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한다. 당시 아디다스 검정색 져지를 입고, 여자아이들의 장난으로 립스틱을 발라서 하얀 피부에 대비되게 입술은 붉게 물든 채로 문을 뒤로 한채 서있던, 그래서 문으로 들어오던 빛이 네 뒤에서 후광처럼 보였던 그때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그날 알았다.
내가 정말 너를 좋아하게 되어버렸다는 것을.
사랑에 빠져버렸다는 것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나는 그 상황의 너에게 ‘반했다’랄까,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앞으로도 잊지 못할 것이다.
그 무렵 나는 너만 보면 얼굴이 잔뜩 빨개졌었고
내 친구들은 다 너를 알고 있었다.
나 ‘이무무가 좋아하는 아이인 김머머’이라고..
1,2학년 아이들도 물론 알고 있었다. 일주일에 세 번은 꼭 층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굳이 내려와 너를 보러 온다는 것을 지금 생각해보면 선배라는 이유로 나를 불편해하는 아이들도 꽤 있었을 것 같다.
어느새 나는 너의 친한 친구들의 얼굴을 다 외워버렸고, 그중 학교는 달랐지만 내 동생과 친한 애들도 있어서 네 관련 궁금한 것들의 웬만한 것은 그 아이들에게 물어보면 되므로 너에 대해 알기가 쉬웠다.
참 재밌었다.
그리고 너도 은근 그 상황을 즐겼다고 생각한다.
내가 너를 보러 가면 나를 의식하는 그 표정이 보였고 난 그게 마냥 귀여워 보였다.
내가 가끔 매점에서 먹을 걸 사다주면 넌 고맙다고 했고, 복도에서 마주치면 수줍은 웃음을 띠며 인사했지만 그때의 나는 그것만으로 만족하지 못했다.
그래서 연락을 할 때엔 또 나에게 관심이 없어 보이는 네게 괜히 심술이 나서 일부러 못되게 굴었던 적도 많았다.
그럴수록 너는 나를 더 밀어냈다. 그래서 서운함은 더욱 쌓여만 갔고 좋아함과 별개로 너와 꽤 친했다고 생각했던 나는 아닌 척 해도 사실 너의 말투 하나조차도 상처였다.
짝사랑하는 모든 사람이 그렇듯 너의 작은 행동 하나에 하루 종일 웃다가도 울었고 그건 몇 달 동안 반복되었다.
아 그리고 난 너에게 고백을 한 번 했었다.
처음 느껴보는 벅차오르는 이 좋아한다는 감정들과 서운함이 섞여 만든 용기였다.
물론 답은 거절이었다. 피아니스트가 꿈이라 항상 바빴던 아이라서 예상은 했지만 상처였고 너에게서 멀어져보려 했지만 몇 주 못가서 나는 네가 너무 좋아져 버렸기에 다시 아무렇지 않은 척 연락했다.
그로부터 또 몇 개월이 흘렀고 나도 바빠서 잘 찾아가지 못했기에 여전히 너와는 실제로 말 한마디 제대로 섞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문자를 하기에 서로의 일상을 잘 알고 있었고, 너는 언제부턴가 먼저 인사하며, 연락할 때는 내가 그토록 원했던 반말도 쓰기 시작했다.
내가 가끔 동생 친구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엔 은근히 질투하는 듯한 모습도 보였는데 난 그런 네 모습이 좋아 더 널 질투하게 만들겠다는 생각뿐이었고, 이런 이유들이 네가 나를 질려 하게 만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입장을 바꿔 생각하면 당연하지만...
사랑에 있어서, 감정에 있어서, 난 너무 어렸다.
사실 나이에 상관없이 사랑에 미숙한 건 당연한 거지만, 그때 난 정말 어렸다.
나는 너의 감정을 헤아릴 줄 몰랐고, 또 너는 나보다도 감정을 다루는 데 있어서 미숙했던 아이였기에 나를 이해하기가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루어질 수 없었다.
그 사실을 서로 알고는 있었다. 네가 나에게 감정이 조금은 싹텄다는 걸 깨달은 그 순간에도 나는 너에게 다가갈 용기를 낼 수가 없었다. 이미 바닥이 났었고, 또 거절을 당할 것이라는 그 불안함이 더 컸다.
사랑은 타이밍이라고들 말한다. 나는 용기를 냈어야 할 타이밍을 놓치고 졸업을 하게 되었다.
거의 매일같이 나를 보던 너는 내가 없어서 조금 허전해 하는 것 같다고 네 친구가 이야기 했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한다.
확실히 학교가 멀어지니 나도 너에 대한 마음이 한층 수 그러 들었고, 중학교 3학년이 되어서 더 바빠진 넌 연락을 거의 안 보다시피 했다.
우리 사이에 벽이 하나 더 생겼음을 알았지만, 난 또 미련하게 지난 우리의 시간들을 붙잡고 혼자 제자리에 멈춰서 있었다. 1년이란 시간이 아까웠고, 그동안의 감정들과 내가 힘들게 만들어낸 우리의 관계가 깨진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래서 난 그 모든 걸 외면하고 추억 속에서 살았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걷고 있었지만 아직 같은 방향이라고 믿었고, 그렇게 생각할수록 너에 대한 집착이 늘어났다.
우리의 관계는 특별하다는 생각을 했고, 깨질까 봐 너무 두려워서 누구의 손도 닿지 않을 높디 높은 곳에 올려두었다.
나는 몰랐다. 높을수록 떨어지면 더 심하게 깨질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의 관계라는 유리조각은 바람 한 번에 떨어져 다시 붙일 수 없게 산산조각이 났다.
관계라는 건 생각보다 쉽게 부서진다. 1년이든 10년이든 사람 마음에서의 순위가 높으면 높을수록 더 심하게 깨져버린다.
그래서 많이 아팠다.
다른 관계의 깨짐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나는 우리의 관계라는 조각들을 붙일 수 없는 미세한 조각들을 다시 붙이려고 애쓰다가 마음에 작은 조각들이 깊게 박혀버렸고, 너는 깊게 박혀있는 그 조각들을 봤음에도 그냥 두고 떠났다.
산산조각 난 관계는 다시 붙이려고 하면 할수록 내 마음에 더 깊게 박힐 뿐이라는 걸 그때 알았다.
그래서 나의 첫사랑은 아프다.
아프기에 더 기억에 남고,
아무리 다른 사람들을 만나도,
몇 년이 지나더도,
첫사랑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마다
깊숙이 박혀있는 유리조각들이 반응해서
더 아파진다.
내 안에 박혀있는 이 추억들과 아픔들은
영원히 첫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첫사랑이 무섭다.
아픔이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