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이순신 장군을 바로 알자!

쟈샤ㅡ |2020.04.18 08:08
조회 247 |추천 0
그가 선조에게 올린 장계에 따르면 백전백승의 영웅이었다.전군 전멸 상태인 조선에게 있어 그는 영웅이나 다름없었다.더구나 극도로 인기 하락과 이반된 민심에 반할때, 그의 승리는 그토록 애탔던 관군의 승전보는, 마른 하늘의 단비나 다름없었다.조선은 그를 영웅으로 받들었고 국민들에게 선전했다.
하지만 조선은 영웅의 탄생보다 전쟁의 승기가 무엇보다 중요했다.만일 수군이 왜진의 본거지인 부산을 까부수어만 준다면 왜군은 보급 물자 부족으로 인해 전력이 극도로 약화, 북진의 속도를 어느 정도 멈추리라 여겼다.일리가 있는 작전이다.하지만 순신은 섣불리 움직이지 않는다.이에 조정은 명령이 아닌 사정을 했고 '자헌대부(정2품)'란 허울뿐인 관직에서, 실권인 '삼도 수군 통제사'란 종2품'의 벼슬까지 내린다.마지못한 순신은 부산으로 향한다.
조정은 부산의 왜선 대부분을 격파, 보급로 완전 차단이 그 목표였다.하지만 우리가 아는 부산대첩은 정박중인 왜선에 포격을 쏟아붓고 온게 전부였다.
당시 상황을 살펴보자.조정과 순신의 합동 작전은 그야말로 기상천외한 작전이었다.왜구는 순신이 오리란걸 알지 못햇고 그 대비가 전혀 없었다.이때 순신의 전함들이 나타났고 그야말로 파죽지세였다.
순신은 며칠의 시간을 두고 부산진과 그 이웃섬들에 포진되어 있는 왜선들을 충분히 섬멸할수도 있었다.비록 해가 져서 기습의 두려움도 있었겠지만, 부산 해전 당일, 부산진의 왜선들을 전부 개박살 내었으면 치명타를 당한 왜구 입장에선 감히 엄두도 못낼 작전이었다
하지만..순신은 먼거리의 포격이 전부였다.그리고 해가질까 무섭게 한산도로 달려왔다.당일권 시대도 아닌데 당일치기, 무박으로 부산을 다녀온 것이다.이는 왜선 섬멸이 목적이 아니다.
당시 판옥선과 왜선의 차이를 살펴보자.판옥선은 2층 구조이며 바닥이 평편했기에 안정성은 있었지만 속도는 느렸다.대신 왜선은 현대식 삼각형 바닥을 갖추었고 파도엔 약하지만 속도는 빨랐다하지만 아무런 시설이 없는 나룻배 형태...왜선의 주목적은 적선에 올라 백병전이 전부였다.하지만 판옥선은 2층이라 사다리를 타고 올라야 하는데 해전에서 이보다 더 무리는 없다.또한 조선은 포가 있는 반면 왜선은 조총이 전부다바닥이 삼각이라 배는 낮은 파도에도 쉽게 요동쳤고, 움직이는 배위에서 그리고 물기, 등은 조총의 무덤이나 다를바 없다차라리 활이 훨 유리했다.활은 불공격을 할수도 있었지만 왜구는 굳이 조총을 고집한다.이순신에 관한 소설을 살펴보면 배에 올라 백병전이 진행되고 배가 화살로 고슴도치가 되었느니..등의 내용이 나오는데 거의 거짓이다
이순신은 이런 게임도 안되는 해전의 특성을 잘 알고 있었다.그가 늘 하던 작전은,떨어진 거리에서 포를 쏘고 절대 뒤쫓지 않는 전법이었다.
왜선은 빨리 만들수 있는 이유도 있었지만, 이순신이 아무리 해전에 이겨도 왜선이 줄지 않는 이유도 바로 이런 것이었다.포를 쏘아 어쩌다 맞은 왜선 몇척이 파손되고 왜선이 도망가면 그걸로 승리이며 끝이었다.
사실상 왜구 입장에선 굳이 해전을 벌릴 이유가 없다.순신이 보급로를 막고 있지도 않고 공격 당하지도 않는데, 왜 불필요한 해전을 벌릴까?단지 '해전에서 졌다'란 군 사기적인 측면에서 몇 번 출전이 전부다.이순신도 굳이 왜선을 찾아다니지 않는다.오면 맞서 쫓아내는 정도보급로 차단이든 임진왜란의 결정적 타격을 줄 그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바꾸면..사돈좋고 매부 좋은 꼴~
만일 이순신이 한산도가 아닌 거제도나 부산 인근으로 본거지를 옮기고 육 수군 합동으로 부산의 왜구를 쳤다면 아마 왜란의 양상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더구나 순신은 당시 2만을 넘는 최정예 수군과, 그외 부수적인 인원까지 합쳐, 조선 최고의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다.참고로 2만의 왜구를 막아낸 진주대첩때, 아군의 병력은 채 5천도 되지 않았다.
강화도로 간 왕자들이 포로가 되고 조선 조정은 의주로 피난길을 올랐는데, 순신은 변소에 앉아 '한산섬 달 밝은 밤에 변소에 홀로 앉아 긴 신문지 옆에 끼고 아랫배에 힘을 주니 '풍덩' 하고 떨어지는 똥 덩어리 시원도 하다'라며 한가로이 시나 읆은건 아닐련지..
부산해전후, 순신은 '부산을 쳐도 별볼일 없다'란 사실을 조선 조정에 보여 주었고, 조정 또한 '수군은 별볼일 없다'란 아쉬움을 갖게 된다.쉽게 말해 '국민 사기 진작엔 일조할테니 수군은 잊어달라'란 메세지다.
권율의 승전보는 선조로 하여금 새로운 힘을 얻게 한다.조선육군의 최초 승리였다.권율은 일개 목사(광주 목사-정3품)에서 단번에 합참의장(도원수-정2품)이 된다.선조는 비로서 눈에 가시, 기고만장하게만 보였던 의병들의 본보기로, 김덕령장군을 모함을 씌워 처형하였고, 순신에게도 부탁이 아닌 명령을 하게 된다.정유재란이 발발하자 순신에게 부산으로 가라고 명령한다.
정말로 기가막힌 작전이었다.이 첨보를 위해 일본으로 건너간 첩보원들은 몇명이나 목숨을 잃었을까?아니 국내에서 이 정보를 입수했다면 아마 수많은 기녀들이 목숨을 담보로 했을 것이다.당시 조선의 여인들은 너나 할것 없이 우국충절을 위해 기녀로 뛰어 들었다(변신 하였다).우리가 알고 있는 논개도 기녀가 아니다.또한 몇월 몇일 왜선 몇 척이 부산 앞바다에 나타난다는 최 1급 정보가 순신에게 하달된것을 보면 조선이 정통성 있게 기녀를 동원한 첩보전을 펼쳤다는 사실도 입증된다.다만 여인이기에 그 이름이 묻혔을뿐...
하지만 순신은 묵살했다.순신이 침 마르게 반대했던 막대한 위험 부담은 대타인 원균이 증명하였다.하지만 순신이라면, 그처럼 치밀한 사람이었다면 아마도 부산으로 갈 수 있지 않았을까?그리고 순신이 모든것을 버리고 오로지 나라를 위해 왜구를 격퇴했다면?
상상해 보라.나룻배나 다름 없는 왜선에,한 배당 200명이란 왜구가 빈틈없이 빽빽이 앉아 400척이 부산으로 오고 있다.그들 대부분은 육군으로 수영도 못한다.물론 호위군단도 있을 것이다.아마도 그들은 이런 작전을 구가할 것이다.적선이 나타나면 호위함들이 적선으로 다가가고, 수송선들은 몰래 빠져 부산에 상륙한다.하지만 나라도 이런 작전을 예상할것선단을 둘로 나눠 한 무리는 왜의 전투선을 상대하고,나머지는 도망치는 왜구를 섬멸할 것이다.적어도 왜구소탕이 목적이었다면 말이다.
노량해전때 3만을 태운 왜구의 주선들이 빠져 달아났다는 사실도 인정이 안된다.이건 누가 뭐래도 명나라와 왜구가 합의된 쓰리작, 짜고 친 고스돕이 아닐까?더불어 순신이 명나라로 건너갔을수도 있다.
하지만 부산 앞바다에서 정녕 왜구를 격퇴하는 상상을 한다면, 그 상상만으로도 신이 난다.수송선 나룻배에 무려 200명의 왜구가 빽빽이 앉아 있다.속도도 느리고 비좁은 환경으로 전투 능력도 상실된다.한마디로 왜구 도살이 벌어질 것이다.불화살 몇대만 쏘아대도, 수영도 못하는 왜구들은 모두 바다로 뛰어들 것인데...한나절만 살육해도 전멸이 눈앞일 터~그랬다면 일지감치 임진왜란의 승리는 우리손으로 일궈냈을 것이다.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