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학급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 기름__ 교체날이었다. 나는 외부 청소여서 교실 밖으로 청소를 하러 나갔다. 돌아와 보니 내 책상과 의자는 대열에서 빠져 있었고, 책상과 의자는 온통 기름으로 칠해져 있었다. 아이들의 시선이 나로 향하였다. 수치스러웠고 무서웠다. 몇몇은 웃고 있었다. 너무 당황해서 교무실로 올라갔다. 담임선생님께 말씀드렸다. 그러자 옆에 있던 영어 담당 선생님이 하시는 말이 “너는 이런 일로 교무실까지 쫓아올라오니? 이런건 너가 스스로 해결해야지” 였다. 걔네는 내가 상대할 수 없는 애들인걸.. 순간 비참하고 무력감을 느꼈다. 아직 종례 전이어서 쓰레기통 비치함에 놓여진 여분의 쓰레기 봉투로 책상과 의자에 덮고 앉아 있었고 담임 선생님은 들어오셨다. 선생님이 모두 눈을 감으라고 하셨다. 그리고 누가 그랬는지 손을 들으라고 하셨다. 그리고 남아서 원 상태로 해 놓고 가라고 하셨다. 하지만 난 사과는커녕 그 아이들에게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조차 듣지 못하였다. 사물함이 맨 밑이었는데 사물함을 열자 온통 쓰레기로 가득 차 있었다. 점심시간이 지나면 책상 서랍은 온통 뒤져져 있었다. 책상에는 내 외모에 대한 온통 비하의 글의 써져 있었다. 교복도 점심시간 동안 사라졌다. 아빠께 생일선물로 가죽으로 된 분홍색 나이키 가방을 선물로 받았는데 어느 순간 보니 샤프로 가방은 다 긁혀져 있었다. 점심시간이었다. 무리 중 한 아이가 내 초등학교 졸업사진 중 부록에 나와있는 내 사진을 가져왔다. 반 아이들 하나하나씩 돌아가며 보여주며 “시x 이거 봐봐 이게 사람 얼굴이냐” 그러곤 그 사진을 오려 나에게 주었다. 나는 집에 돌아와 사진을 집 변기통에 내려버렸다. 종례가 되면 제일 두려운 것이 내 휴대폰 수거함에 내 핸드폰이 제대로 있을까였다. 그 당시 모토로라 핸드폰이 유행할 때여서 부모님을 조르고 졸라 모토로라 블레이저를 샀다. 아이들은 새로 산 내 핸드폰을 마치 핑퐁하듯 신발장 위에서 주고 받았고 내 핸드폰은 긁히고 만신창이가 되어버렸다. 시험기간이었다. 다음날이 미술 시험이어서 미술책을 들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는데 무리 중 졸업사진을 들고 와 나를 괴롭히는 한 아이의 목소리가 들리었다. 그래서 시선을 책에 고정하였다. 그리고 엘리베이터가 집에 닿을 때까지 그 아이를 쳐다보지 않았다. 내가 내리자 “__년이 사람을 한번도 안쳐다봐” 였다.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애가 “ 쟤 원래 저러잖아”. 또 그 당시 클락스가 유행할 때여서 클락스를 신고 학교에 갔다. “클락스도 이제 개나 소나 다 신네” 나는 개나소나 못한, 클락스는 그들의 전유물이었던 것이다. 나는 내 이름 세 글자로 불리 운적이 없었다. 그 아이들은 항시 나를 옥토퍼스, 문어, 붕어, 메기, 오크 라고 불렀다. 나는 그 당시 오크가 무슨 뜻인지도 몰랐다. 외모에 민감할 시기여서 매일이 괴로웠다. 학교에 가는게 두려웠다. 나는 매일 부모님을 졸랐다. 제발 턱 수술을 시켜달라고. 그때 한창 양악수술이 유행하여서 성형외과 문의게시판에 글을 올렸고 아빠는 성형외과에 전화를 거셨다. 의사는 아직 청소년이고 뼈가 자라는 성장 과정이어서 턱 수술이 불가능하다고 하였다. 죽고 싶었다. 라디오 전선으로 목을 맸다. 도중에 아빠가 발견하였다. 죽지 못해 사는 내가 싫어 커터칼로 매일 손목을 그었다. 엄마는 칼이란 칼은 다 치웠고 어쩔 수 없이 그때조차 손톱깍이로 손등을 찝었다. 내 왼쪽 손목은 아직도 흉터로 뒤덮혀 있다. 단체 졸업사진을 찍는 날이었다. 한 아이가 “옆에서 찍어야지. 대비효과” 라고 말하였다. 졸업 끝까지 나는 비참하고 비참하였다. 그래도 3년 동안의 지옥의 끝나는 듯 하였다. 간신히 중학교를 마치고 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쟤 왕따였잖아” 나와 같은 중학교 출신인 같은 반 아이가 말하였다. 어느 날 야자를 째고 일찍 집에 갔는데 다음 날 아침에 와보니 내 사물함에 매직으로 ‘회오리 감자 셔틀’ 이라고 적혀 있었다. 지우개로 지우는데 목이 메이고 눈물이 났지만 참고 참았다. 그리고 나는 고등학교 2학년 4월, 만 16살에 학교를 그만 두었다. 부모님이 무릎을 꿇고 빌었지만 견딜 수가 없었다. 그리고 매일을 집에서 보냈다. 사회와의 단절은 물론 대인 관계 또한 박탈되었다. 아이들이 낮에 학교에 가 있을 때, 나는 집에서 혼자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대입을 준비하였다. 대인기피증에 걸려 엘리베이터조차 타지 못하였다. 우울증은 계속 되었다. 사람이 무서웠다. 청소년기부터 27살에 이르기까지 나는 아직도 정신과에 다니고 약을 먹는다. (정신과 전문의로부터 불안장애, 강박장애를 진단받았다!) 졸피뎀이 없으면 살 수조차 없다. 나는 10대와 20대를 고통과 트라우마 속에서 살아오고 있다. 약을 먹어도 일회성일 뿐이다. 사람들에게도 많은 피해도 주었다. 남들에게 사랑받지 못할까봐, 거절 당할까봐, 버림 받는게 싫어 매달리기도 하고 집착도 하였다.
나는 나를 괴롭힌 아이들에게 보란 듯이 보여주고 싶다. 내가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진정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3년 동안의 사실을 극히 일부만 적어 보았다. 궁극적으로 내가 이 글을 쓴 이유는 더 이상 저 굴레에 갖히고 싶지 않아서이다. 나는 변하고 싶다 . 내가 지금에서야 사실 털어놓은 이유는 , 그리고 공표하고 싶은건 더 이상 예전의 아닌 새로운 나로 살아가고 싶기 때문이다. 저 거지같은 기억에서 벗어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