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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군위안부 숫자 터무니없는 과장 공론화 시킵시다

ㅁㄴㅇㄹ |2020.05.17 09:40
조회 57 |추천 0

 

(원자료 부분은  네이트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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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조선인 위안부’가 전체 위안부의 ‘대부분’이라는 게 가능한 일이 었을까. 지역마다 현지의 위안소가 이미 있었고 일본인 여성들이 이미 가 있었다면, 그 자리를 급격히, 또 완전히 메우는 일은 어렵지 않았을까. 한 연구자는 20퍼센트만 조선인이고, 중국 등지의 현지 여성이 30퍼센트, 일 본인이 40퍼센트, 나머지는 그 밖의 지역 사람들이었을 거라고 말한다(하 타 이쿠히코, 410쪽). 실제로 당시 위안소 경험을 한 한국인 남성은 위안소의 “주인들은 중국 사람들”(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 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 자 등 지원 위원회, 41쪽)이었고 “대부분의 여자가 현지 여자”(115쪽)였다고 말한다. 위안부들 자신도 “(성병 검진하러 가면) 일본 여자들도 많고, 중국 여 자도 있어. 대만 여자, 홍콩 여자, 상해 여자도 있고”(『강제 3』, 102쪽)라고 말 한다. 그리고 수요가 많아지자 이미 진출해 있던 조선인 업자들이 더욱 많 은 조선인 여성들을 모집해 데려간 정황을 위안부들의 증언들은 명확히 보 여준다. 군이나 경관에 의한 ‘강제연행’은 증언을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해도오히려 극소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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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담자 혹시 위안소에서 춤도 추고 그래요? 이서근 아그렇지. 면담자 아춤도 추고 노래도 하고? 이서근 술도 먹고 노래도 하고. (중략) 이서근 (중략)장교를 상대로 하는 사람들은 일본 여자, 조선 여자하고 주로,대 만여자도 있었는지…? 근데 현지 여자는 주로 병정들이 상대를 하고. 이은두 그럼, 그럼. 면담자 그럼 그냥 중국에서온사람들도 아니고 해남도 여자예요? 이은두 해남도 여자가 중국 여자야. 면담자 그럼막끌어다가온거에요? 이은두 그게다중국 여자야. 이서근 모르지뭐끌어왔는지…뭐끌어왔는지… 뭐. 이은두 아,거사이공도 현지 여자여. 이서근 대부분의 여자가 현지 여자야. 근데 만주라든가 중국에 보면은, 거기는 조선인이 있었어. 거기서는, 비뤼빈에서는 조선인이 있더라구. 이은두 그럼, 더러 있었어. 그것도 비리핀 여자들. 이서근 주로 피리핀이었지. 그리고 사창굴. 면담자 사창, 사창이 있었어요? 이서근 사창 있지. 면담자 나대에도 있었어요? 이서근 나대에도 있지. 면담자 거기 조선인들 있대요? 이서근 글쎄 조선인들은… 면담자 그럼 사창 같은데장사하는 사람들은 어느 나라 사람인지… 이서근 거기 중국 사람들.(같은책, 114~115쪽) 

대만의 ‘위안소’ 체험자와의 면담을 기록한이장면은, 이른바 ‘위안소’가 누추한 침대 하나만 달랑 놓여 있는 곳만은 아니라는 것, 장소에 따라서는 ‘현지 여자’가 대부분인 곳도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런 여자들이 전부 ‘막 끌어다가 온’ 여성들만은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해군 징병 1기생이었던 이들이 생각하는 ‘위안소’에는 카페나 요릿집 형태의 윤락시설과 사창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면담자는 그곳에 있는 이들이 ‘막 끌어다가 온’ ‘조선인’ 들일 것으로 전제하고 질문을 하지만, 그런 기대는 번번이 빗나간다. 이들 이“조선 여자가, 조선 여자들이라는게말이지 보기 힘들었”(116쪽)다고말 하기 때문이다.

이들의 말은 ‘위안부의 80퍼센트가 조선인’었다는 말조차 의심하게 만들 지만, 이들이 있었던 곳은 전쟁터가 아닌 곳이었으니 전쟁터가 된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남태평양 지역은 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현지 여자’가 전쟁터까지 따라갈 리는 없었을 터이니 전쟁터에까지 간 것은 ‘일본인’이나 ‘조 선인’,그리고‘대만인’에한한것이었을가능성이크다. 혹은이들이전투에 참여하지 않아 그런 장면을 보지 못한 것이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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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루 고든 하버드대 역사학과 교수(사진)가 최근 알렉시스 더든 코네티컷대 역사학과 교수가 주도한 일본 정부의 맥그로힐 출판사 역사교과서의 위안부 관련 내용 수정 시도를 비판하는 성명에 동참했다. 


이로써 애초 19명이었던 미국역사학회보 3월호의 성명 참여자는 20명으로 늘었다. 경향신문은 현재 교토대에서 연구년을 보내고 있는 고든 교수에게 ‘왜 이름을 올리게 됐는지’ e메일로 이유를 물어봤다. 


고든 교수는 “어떠한 정부도 학자들에게 그들의 저술 내용에 대해 간섭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며 “학문 연구의 자유에 대한 성명”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렇다고 논쟁의 대상이 된 이 교과서의 모든 내용에 찬성한다는 의미는 아니다”라며 “내가 보기에 위안부 숫자를 과장하고 있고, 위안부 모집 과정 또한 교과서가 서술한 것보다 더 복잡했다”고 했다. 그는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일본 정부가 그 당시 이른바 위안부 시스템을 만들고 그 전반을 관장했다는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 시스템은 인도주의와 조선 등에서 온 여성의 자유를 침해했다. 이러한 점은 아시아 심지어 일본 등 전 세계의 모든 교과서에 포함돼야 한다”고 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503292158175#csidx9f5794572031a31bce966d664ad0a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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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오후 비프힐 1층에서 열린 ‘아주담담-시선 : 전쟁이 낳은 비극을 바라보다’에서 데자키 감독은 “일본에서 영어교사로 있을 때 유튜브에 일본의 인종차별 문제를 지적하는 영상을 올렸다가 우익의 공격과 비판을 받았다. 이후 태국에서 1년간 승려 생활을 하고 돌아왔는데, 위안부 이야기를 한 일본 언론인(위안부 문제를 일본에 처음 보도한 우에무라 다카시 전 아사히신문 기자)도 우익에게 공격받는 것을 보고 위안부 이슈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계기를 설명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주 전장’은 한국 관객에게 제3자의 시선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바라볼 기회를 준다. 일본 우익은 “위안부는 있었지만 ‘강제 동원’이 아니었고 ‘성노예’ 상태도 아니었으며 ‘20만 명’은 터무니 없는 숫자”라고 주장한다. 데자키 감독은 이러한 주장을 일본 정부, 위안부 피해자를 지원하는 한국과 일본·미국의 시민단체, 일본 우익과 한 목소리를 내는 일부 미국인의 인터뷰를 통해 조목조목 파헤친다. 일본 우익과 일본계 미국인, 일부 미국인의 인권 의식이 결여된 근거 없는 주장에 상영장 안에선 한숨과 분노, 실소가 터졌다.

감독은 한국의 애국주의와 일본의 역사수정주의, 피해자 할머니와 일본 우익 등 어느 한 쪽의 프레임에도 갇히지 않고 바닥부터 차근차근 위안부 이슈를 살핀다. 위안부 이슈에 감성적인 접근이 익숙한 한국인 관객이 다소 불편할 수 있는 발언도 나온다. 

그는 “한·일 미디어가 자국의 프레임 안에서 위안부 문제를 보도하기에 건설적인 이야기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제3자로서 명확한 앵글을 제시한다면 양자의 대화를 건설적으로 이끄는 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다”며 “위안부 숫자가 20만 명이라거나 8, 10살 된 아이까지 동원됐다는 수치는 과장됐다. 위안부 할머니를 지원하는 쪽에서 수치를 잘못 활용하면 일본 우익에게 공격의 빌미를 주기에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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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The comfort women program existed but there is no evidence of widespread sex-slavery of 200,000 Korean women.

What commander, during time of war with multiple nations, when Japanese Soldiers were starving, would dedicate resources to kidnap, transport, guard, and feed 200,000 sex slaves? The allegations do not even make sense.

An inadvertent self-insult by Koreans is that Korean men would allow 200,000 of their women to be kidnapped, yet Korean men did not raise a finger in resistance, but actually helped. This indicates that Korean men at the time were cowards and criminals. Did Koreans intend to imply this?

During our research, we found the “Final Report to the US Congress on Nazi War Crimes & Japanese Imperial Government Records” authored by the Interagency Working Group (IWG). Interestingly, few researchers seem to know about that report. The US government, under the Clinton and Bush administrations, spent 7 years and 30 million dollars to look into Nazi and Japanese war crimes.

The report was published in the spring of 2007. Out of millions of pages of newly declassified material, much of it related to Japan, and they were unable to find evidence of forced prostitution. They also looked for information about the Nanjing Massacre and unit 731, but found no smoking guns. Nobody doubts that there was a massacre in Nanjing, and nobody doubts the Chinese ability to exaggerate by orders of magnitude, and then to believe their own stories.

A Chinese organization lobbied for the IWG investigation. The “Global Alliance for Preserving the History of WWII in Asia” (Global Alliance henceforth). It should be noted that Global Alliance was closely associated with Iris Chang, author of “The Rape of Nanking”. Unfortunately, the author of the accusations, Ms. Iris Chang, was mentally ill and committed suicide.

Surprisingly, the IWG report offers an apology to Global Alliance for not finding anything.
 But then Resolution 121 came out in the same year, in 2007, criticizing Japan and demanding an apology. And Obama, more recently, has made statements against Japan. Hilary Clinton also expects an apology from Japan. But they’re all disregarding the IWG report.

The idea that “the comfort women were forced into prostitution” is a false narrative. For example, in 1944, the Office of War Information (OWI) created “Report 49″. This 


http://eng.the-liberty.com/2014/5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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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9년, 일본 대학 교수진쿠니히코.

화남에서의 병력과 위안부의 비율, 위안소의 수, 경영상의 계산, 콘돔 사용량, 국내 공창의 손님과 창기의 비율, 어떤 것부터도 3만 이하가 타당하고, 교대율을 걸치지 않고 2만명 정도라고 추정하고 있는[55](태쿠니히코의 계산은, 협의의 위안부이며, 민간의 창녀가 별로 수천인 정도 있었다고 상상하고 있다.

또, 재중 코쿠료우사관의 이 업종 전체의 통계로부터, 조선인은 의외로 적다고 봐, 또 남방 현지인, 중국계가 많음을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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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지량은 이미 1998년 논문에서 “‘위안부’란 일본의 정부 혹은 군대가 명령해 강압으로 일본 군인에게 성 복무를 제공하고 성 노예에 충당된 부녀를 가리킨다”고 강조했다.당시 그는 ‘위안부’ 제도란 2차 세계대전시기 일본 정부가 강압으로 각국의 부녀를 일본군 사병의 성 노예로 충당하고, 계획적으로 일본군에게 성 노예를 공급한 제도인데, 이는 일본 파시즘이 인도주의와 양성이론, 통상적인 전쟁의 제도를 위반한 논박할 수 없는 정부의 범죄행위이라고 규정했다. 

중국 내 위안부 숫자도 어마 어마하다. 천리페이는 실지 조사연구의 사료와 일본 관동군 ‘위안부’ 교체율 개념의 운용을 종합해 계산한 결과 일본군이 중국에서 노략질해 ‘위안부’로 충당한 총 인원수가 20만 명 이상이라는 결론을 얻었으며, 중국에서 일본군 ‘위안부’의 근원이 주로 폭력약탈, 사기편취, 강제포로 등 몇 개의 경로에서 찾을 수 있다고 밝혔다. 

중국 학자들이 과거 펴낸 논문들은 일본군이 중국을 침략한 시기에 일본군 성 노예자는 20만 명을 초과하고, 조선의 ‘위안부’ 숫자보다 많고 강간당한 중국 부녀는 ‘위안부’를 훨씬 초과한다고 고증하고 있다.



1939년 2월 25일 상하이경찰국장이 상하이시장에 보고한 이 공문서는 중국인 양수이창이 위안소 개설을 위해 당시 상하이를 점령한 일본군 헌병대와 육군경비대에 행정 허가를 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는 것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이것이 일본의 軍위안부 직접 관여 증거" <<연합뉴스DB>> 


양씨가 개설한 이 위안소는 중국인이 드나들지 못하는 '일본군 전용'이었으며 통역과 15세 여성을 포함한 7명의 위안부를 고용해 운영됐다.

한 연구원은 "이런 문서는 일본군이 중국 괴뢰정부를 이용해 군 위안소를 개설하고 관리하는 제도를 만들어갔다는 것을 확인해준 것"이라며 "일본군이 직접 부녀자를 강제 연행하고 친일 중국인 업자를 이용해 위안소를 개설한 공문서도 있다"고 말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277&aid=0003186308


수지량은 이미 1998년 논문에서 “‘위안부’란 일본의 정부 혹은 군대가 명령해 강압으로 일본 군인에게 성 복무를 제공하고 성 노예에 충당된 부녀를 가리킨다”고 강조했다.당시 그는 ‘위안부’ 제도란 2차 세계대전시기 일본 정부가 강압으로 각국의 부녀를 일본군 사병의 성 노예로 충당하고, 계획적으로 일본군에게 성 노예를 공급한 제도인데, 이는 일본 파시즘이 인도주의와 양성이론, 통상적인 전쟁의 제도를 위반한 논박할 수 없는 정부의 범죄행위이라고 규정했다. 

중국 내 위안부 숫자도 어마 어마하다. 천리페이는 실지 조사연구의 사료와 일본 관동군 ‘위안부’ 교체율 개념의 운용을 종합해 계산한 결과 일본군이 중국에서 노략질해 ‘위안부’로 충당한 총 인원수가 20만 명 이상이라는 결론을 얻었으며, 중국에서 일본군 ‘위안부’의 근원이 주로 폭력약탈, 사기편취, 강제포로 등 몇 개의 경로에서 찾을 수 있다고 밝혔다. 

중국 학자들이 과거 펴낸 논문들은 일본군이 중국을 침략한 시기에 일본군 성 노예자는 20만 명을 초과하고, 조선의 ‘위안부’ 숫자보다 많고 강간당한 중국 부녀는 ‘위안부’를 훨씬 초과한다고 고증하고 있다.


1939년 2월 25일 상하이경찰국장이 상하이시장에 보고한 이 공문서는 중국인 양수이창이 위안소 개설을 위해 당시 상하이를 점령한 일본군 헌병대와 육군경비대에 행정 허가를 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는 것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277&aid=0003186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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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만명이라는 숫자 자체가  일본 어떤 관종 학자의 망상입니다 



일본학자는 물론이고  




같은편인   한국 이나 중국 이나 미국 학자들 조차 숫자과장 동의하고 있죠 



숫자 과장 해서 얻을게 모가 있을까요??   숫자과장하면 피해자가 2배로 보상받나요??



 아니죠  정의연 같은  개쓰레기 단체 이슈몰이로 이용되는 겁니다.  



오히려  피해자는   숫자과장했다는 낙인 찍혀서 더더욱 거짓말쟁이가 되버립니다  



 정의연년놈들 제발 지옥에 떨어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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