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인터넷 모 카페에 올렸던 내용 복붙해서 약간의 첨삭한 내용입니다.
이야기는 긴데 친구한테 이렇게 진지한 말을 할 수가 없고
하소연은 하고싶고.. 조언도 얻고 싶어서인터넷에 주절주절 적어봅니다.
전 27 여자입니다. 하나 있는 오빠는 32살이시고어머니는 만으로 64세십니다.요새는 젊게 사시는 60대 분들도 많으신데저희 어머니는 그냥 7~80대 할머니 수준입니다.문화적으로 지적으로도 요즘 사람은 아니세요...핸드폰 문자 보내는 것도 어려워서 못하시거든요.
잘난 부분 없는 가난한 집입니다.엄마는 젊으셨을때부터 원래 전업주부이셨어요.
아버지가 개인 사업 하시던 분이라 어렸을 땐 괜찮았습니다.제 어린 기억 속에는 가정부 아주머니도 왔다갔다 하셨고요.
그러다 2003년 쯤, 그러니까 초등학교 3학년 쯤아버지가 지인을 잘못 사귀셔서 도박에 빠지셨고집안에 돈도 안가져다 주시고 그런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초등학교 졸업할 즈음엔 집안재산 다 날려먹고 실종되셨죠.이후로 엄마 혼자서 식당일 하시면서 저랑 오빠 키우신건데요.
그마저도 워낙 연세가 많으시다보니 (제가 10대 시절에도 엄마는 이미 50대)나이 문제로도 일자리 구하기가 힘드신 것도 있었고관절염, 심한 기침 천식, 고혈압, 심한 당뇨로 인해몇 달 일 하다가 그만두고 몇 달 노시고 이렇게 반복이었습니다.
5살 차이 나는 하나 있는 오빠란 놈은
미성년자일때부터 온갖 사고 다 쳤어요.학교 밥먹듯이 안가고, 자기보다 2살 어린 가출한 여학생두 달정도 집에 데려와서 재우고 같이 밥먹고 그랬네요 ㅋㅋ성인이 되어서도 평상시에 잘 지내냐는 연락 이런거 일절 없다가'쓰니야 미안한데 담배값이 없어서 그런데 5만원만'이런식으로 본인 필요할 때만 연락하기 부지기수였죠.저에게 오빠는 정말 혐오스러운 존재입니다.그러면서도 그래.. 어린 나이 한참 사춘기일 때 집안이 이모양이 되었으니오빠도 정상으로 자라진 않았겠지 싶은 측은함도 갖고 있어요.
제가 아버지 행방 이후로 어떻게 자라왔느냐면15평도 안 되는 한 40년 50년은 되었을 오래된 단독주택에서 살았어요.화장실도 집 안에 없어서 마당에 작은 시멘트집을 만들어서 거기 갔죠.다행히 좌변기가 아니라 양변기입니다 ㅋㅋ...그곳으로 이사 간 시점부터 대학교 1학년이 되도록겨울이면 집안에서 연탄난로를 피웠어요.보일러값이 너무 부담스러웠거든요.
저도 미성년자때부터 온갖 고생 하며 컸습니다.
초등학교 졸업하고 나서는 용돈 한 번 받아본 적 없어요.진-짜 어쩌다가 만 원 받았나 ㅎㅎ.. 설날 추석날에도 천원짜리 열 장 종이봉투에 넣어서 주시고 그랬네요.
생리대 살 돈조차 받은 적 없어서 삼촌한테 준비물핑계로 돈달라고 전화했어요.(삼촌 - 친삼촌, 외삼촌 아닙니다. 엄마랑 피 한방울 안 섞인 남남입니다. 글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알고보니 제 친아빠입니다.)엄마는 난소 혹때문에 제거수술 하셔서생리를 안하시기 때문에 집에 생리대가 없었거든요 ㅋㅋㅋ...
중학교 땐 엄마가 심한 우울감으로 자살시도...? 를 하셨어요.자살시도...라고 해서 뭐 목을 메시거나 손목을 긋고 이런건 아니시고그냥 당시 제 생각에 자살시도를 한 거라고밖에 생각이 안되는 행동이었다랄까요..멀미도 심하신 분이, 어린 저에게 '엄마 오늘 어디 멀리좀 다녀올게' 이러시더니어디 가는지도 제대로 모르면서 그저 제일 멀리 가는 버스들 타면서목적지 없이 계속 방황하셨어요.그러다가 밤이 되서 저에게 전화해서는'쓰니야..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어.. 너무 춥고 무섭다..'하면서 우셨죠.전 이게 '아 엄마가 죽으려고 하셨던거구나.... 그러다가 무서워서 아무것도 못하신거구나'싶어서 얼른 삼촌에게 정리해서 상황 설명을 하고삼촌은 일 하시다 말고 조퇴해서 바로 집으로 오시고경찰에도 연락을 하고 엄마 핸드폰으로 위치추적 하면서 난리였죠.그 때 엄마가 하신 말씀이 '엄마 위치 추적 하지 마... 계속 추적한다고 문자가 온다..'다행스럽게도 엄마가 정처 없이 간 곳에는 엄마가 예전에 다니던 식당 주인이 사는 동네였고어떻게 그 동네에서 떠돌아 다니는 엄마를 발견하시고 집으로 데려가 하루밤 재워주셨데요.그리고 엄마가 화장실 간 사이에, 엄마가 삼촌한테 전화 건거 받으시고 주소 알려주셔서 저희가 데리러 갔었죠.
제가 중학교 다닐 시기에 고등학생 혹은 20~21살 쯤의 오빠는주유소 알바를 하면서 엄마한테 생활비 30만원?? 인가 보태주셨고요.
고등학교 땐 오빠가 군대를 들어갔어요.저는 그나마 나이제한이 좀 풀려서 알바라도 조금씩 했고
집안 사정을 아는 선생님들이 여기 저기 장학금 추천넣어주셔서
고등학교 3년동안 그래도 1500가까이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물론 거진 엄마한테 드렸고요.전 장학금 100만원 받는다치면 5~10만원만 갖는정도였어요.
당시엔 엄마도 지금보단 젊으셨기 때문에 일자리 구하기도 지금보단 수월하셨고한 식당 들어가면 그래도 일 년씩은 일하시고 그러셨어요.엄마도 경제적 스트레스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해 많이 고생하신거 알아요.그 어린 시절, 저랑 오빠한테 니네 아빠 찾아서 집 나가라고 소리소리를 지르고그러면서도 내가 자고 있을 때 곁에 와 얼굴 쓰다듬어 주시며 미안하다고 그렇게 우셨죠.
성인이 되기 전의 저에겐엄마가 그렇게 화 내시는 이유가 이해가 갔고엄마가 내 세상의 전부였고혹여 엄마가 아프든 자살이든 사고든 뭐로든 돌아가신다면내 세상도 무너질거라 생각했어요.
대학다닐당시 당시 엄마가 일을 못나가고 쉬고 계셨고오빠는 재대해서 인천쪽으로 따로 독립해 나가서 취업을 했어요.그러다보니 엄마랑 저랑 둘이 사는데 경제활동을 할 사람이 집에 없는거죠.그나마 기초생활 수급자여서 장학금 받아가며 2학년까지 버텼지만ㅡ그마저도 제가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학교 생활을 제대로 못 했던 학기들은성적 커트라인에서 아슬아슬하게 떨어져서 장학금도 못받아 대출을 받았었고요.아직도 집안에 갚아야 할 빚은 남아있고저도 매 학기마다 생활비대출 받아서 엄마한테 드렸기에 제 미래에 대한 부담도 커지고
대학졸업해봤자 나이랑 빚만 늘어날 뿐.
졸업 이후 희망적인 상황이 기대되는것도 아니었고
결국 자퇴를 했습니다.
지금 인생에서 가장 후회하는 것 중 하나가 대학 간거네요.
시간낭비..돈낭비..
자퇴 이후 22살 7월..그니까 2015년부터 돈벌기위해
생산직 공장에 취업을 했어요.
한달에 교대날 하루 쉬고 나머지 풀근무하고하루 11시간씩 근무하며, 식사 및 휴게시간 포함하면 13시간 가량을 회사에 있었죠.
2017년까지 주간만 하는 달 세후 240 야간만 하는 달 세후 330 받으며 일했습니다.
주간에는 150, 야간에는 200씩 어머니 드렸고요.
명절에 보너스 나오는데 170받는다 치면 50~100만원씩은 더 엄마 드리고..
네........진짜 출퇴근시간 포함 15~16시간씩 허비해가며
한달 내내 일해도 제손에 남는건 약 100만원 남짓한 돈이었죠.
아무리 아끼려해도 제 손에 남은 그 돈에서
핸드폰비. 보험비. 교통비 등으로 빠지는 고정지출만 40만원 가까인데
나머지 돈으로 뭘 어떻게 합니까 ㅎㅎㅎ;
그와중에 대학 대출 받은것도 매달 20만원씩 빠지고있었고.
제가 아예 어린 학생이라 아무것도 할게 없다면 모를까
20대 파릇파릇한 청춘, 한참 피어나는 꽃과 같은 시기인데
솔직히 꾸미고 싶고, 친구들이랑 좀 놀러다니고 싶고 그러죠.
난 이미 내 월급의 절반을 넘게 엄마한테 줬고고정지출 나가고 남은 쥐꼬리만한 돈으론 그냥 즐기면서 살려 했어요.
가난하지만 재밌게만 살자고....오빠가 저 모양인데 나라도 엄마를 부양해야지 하고요.
어린 마음에는 그저 엄마 죽을 때 까지 내가 모시고 살아야지 싶었습니다.아무것도 모를때야 엄마 없으면 세상이 무너질 것 같았고
엄마가 죽으면 나도 죽을 것 같았고
그저 엄마 부양하고 경제적 지원 하는게 효도라 생각했어요.
근데 이짓도 일이년이지, 이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제 마음에 독이 되어 다가옵니다.
17년도쯤에는 제가 그렇게도 극혐하는 오빠가
4대보험 없이 근무하다가 발생한 사고로 인해 어깨부상이 생기고산재처리도 받지 못하고 일잘리고 집에 들어오게 되었죠.좁고 낡아터진 15평 남짓한 집구석에서 세식구가 살고
엄마도 아파서 일 안나가
오빠도 아파서 일 안나가
그냥 모든게 스트레스였어요
나 혼자 벌어서 나 혼자 맥여 살려야해
너무 화가 났어요.하다못해 편의점이나 피시방 주유소 이런데라도 가라고 그렇게 뭐라고 했지만2017년 6월~2018년 1월이 되도록 일자리 하나 구하지 못하고집에서 빈둥거리기만 하는 __놈의 꼴이 역겨워서엄마한테 나 집 나간다고 선언했습니다.나 집 나가서 가족이랑 연 끊고 살거라고연락도 안하고 돈도 안 보내 줄거라고 버럭 소리 질렀죠.
당시 마침 남자친구도 생겼겠다 그냥 회사근처로 자취방을 잡고 나왔어요.원래 저희 집에서 지하철로 30분 + 도보 20분 거리의 집이었죠.가족과의 연을 끊겠다 다짐했던 것관 달리비교적 거리가 가깝다보니 엄마도 계속 제 자취방 왔다갔다 하시고...뭐.. 생활비는 안드렸지만 연이 끊긴 상태는 아니었어요.하지만 제가 돈을 안 주다보니 집안에 경제가 안돌아가잖아요 ㅎㅎ오빠도 일자리 구하면서 집을 나가고, 엄마한테 생활비 50씩 드린 걸로 알고 있어요.엄마도 18년 4월 쯤에 식당 들어가서 일하셨습니다.
저는 18년 2월부터 19년 2월까지 1년 계약을 잡고
집에도 생활비 안보내주면서 돈좀 모으려 했더니
ㅎ..정부의 52시간 제한으로 월급이 턱없이 줄고 ^^..
생산직은 근무시간이 많을수록 월급을 많이 받습니다.
1주일에 77시간을 근무해가며 주240 야330 받은건데
52시간 제한이 됬으니 얼마나 많이 받겠습니까....ㅋㅋㅋ...
한달에 4일주간 2일휴무 4일야간 2일휴무로 계속 교대근무하면서
실수령 240 겨우 나오고 그마저도 일 없을땐 180 ㅋㅋ...
19년 1월에 자취방 계약 1달 남기고 꼴보기 싫던 오빠도 집에서 나갔겠다엄마도 근로활동을 하고 있겠다 저도 집안에 경제적 부담감이 좀 줄어들어서혼자 살고 있을 엄마도 좀 걱정되고 고양이들도 걱정되서 다시 들어왔어요.가난한 형편에 왜 고양이를 키우는지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계실텐데겨우 기어다니는 새끼고양이들이 뼈밖에 안남을정도로 홀쭉 마른 채로길가에서 죽어가던거 엄마가 주워온 고양이들입니다.이 아이들 세상 살기 힘들었을 텐데, 나라도 얘네들에게 구원이 되어 주자고키우면서 정도 들고, 우울증도 심했었는데 긍정적인 영향으로 우울증도 해소되었어요.고양이들이랑 함께 누워있고 장난치고 그럴땐 마음이 정말 평화롭고세상 힘들게 산 거 하나도 안 떠오를 정도로 저에겐 행복한 시간들입니다.
집으로 다시 오고 나서는 엄마가 경제활동으로 약 180씩 월급을 받으셨기때문에저는 한 70만원 정도만 드리면서 생활했습니다.
근데 20년 2월 무렵 코로나가 터졌죠.엄마가 심한 천식으로 기침이 잦으셨기 때문에식당에서 손님들이 '주방일 하는 사람이 저렇게 기침을 해도 되냐, 코로냐 환자 아니냐'며사장에게 따지고 들자 결국 사장님도 어쩔 수 없이 엄마를 해고하게 됩니다.저는 70만원으로는 집안에 월세, 공과금 내고 나면 남는 돈이 없을 걸 알기에다시 예전처럼 돈을 더 많이 집안에 부담해야 했고, 직장을 옮긴 저는한달 실수령 245만원 가량이어서 이 중 150만원을 엄마한테 드렸습니다.
근데 2월에 코로나 말고도 문제가 하나 더 발생했습니다.저희 오빠가 원래 포천에서 근무를 하다가작년 12월 쯤 부터 저희 집 근처 3분 거리에엄마 지인분의 집 중 하나인 조그만 사글세 방에 들어와 살고 있는데알고보니 오빠는 근무하던 정육점에서 잘린거였고4대보험이 없었기때문에 실업급여 이런것도 못받는 상황이었고저나 엄마한테 잘렸다는 말을 하긴 너무 미안해서자기 딴에는 핸드폰 소액결제 한도를 왕창 늘려서일명 소액결제깡으로 불리는, 고액 수수료를 대까로 한 소액결제 대출을 받았고1달 핸드폰 요금이 120만원 가까이 석 달이 밀리는 현상이 나타납니다.게다가 기존에 4금융에서 받은 대출 연체 + 연체 이자 + 핸드폰 요금 미납 = 신용불량자인 상태가 되고, 엄마한테는 오빠 돈 갚으라고 계속 대부업체에서 연락오고 ㅋㅋㅋ....
https://kin.naver.com/qna/detail.nhn?d1id=8&dirId=80801&docId=348261685
위에 지식인 글도 제가 오빠 돈 문제로 질문했던 겁니다 ㅎㅎ..
그런데 저에게 엄마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쓰니야, 오빠 형편이 안 좋은데 네가 대출 좀 받아서 오빠거 빚 좀 갚아주면 안 되겠니'라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신발 진짜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네요.
저도 마땅히 돈을 모을 형편이 안되었기 때문에 당연히 줄 돈 없었는데,그 와중에 대출을 받아서 줘요???????????? 내가??????????내가 엄마한테 미쳤느냐고, 죽으려면 오빠 혼자 죽으라고, 왜 다 같이 죽으려고 하냐고.
말은 그렇게 하고, 그렇게 오빠를 싫어하고, 엄마 말에 상처를 받았어도꼴에 오빠는 오빠새끼라고..전에 다니던 회사 그만두고 받은 퇴직금 1500만원 중 400만원을 오빠한테 빌려줬습니다.400만원은 내년부터 달마다 15만원 이런식으로 갚으라고 했고요.남은 1100만원 중 100만원은 엄마한테 줬고요.
나머지 900만원 중 400만원은 국민은행 대출(예전에 자취할 때 보증금 대출받았었습니다.다시 집으로 오면서는 엄마한테 미안해서 엄마한테 드렸었고요.빚은 제가 차차 갚으면 되었으니까요.)500만원 중 350만원 학자금대출 남은거 마저 다 갚고남은 150만원으로는 퇴사 후 제 생활비 쓰면서 새 직장 알아보았었습니다.
그러고 한 달도 안 되어서 엄마가 또 저에게 말한게 있는데 기가 차요 ㅋㅋ복잡한 가족관계 이야기라 그냥 간단히 말씀드리자면엄마는 재혼을 하셨고, 저랑 오빠는 아버지 가족관계증명서에 자녀로 들어가있는데엄마 가족관계증명서에는 없습니다. 물론 제 가족관계증명서를 떼면 엄마가 엄마로 나오는데요.엄마 가족관계 증명서에는 저희 아빠랑 결혼하기 전에 다른 남자와 낳은 3남매가 등록되어 있어요.그 사람들의 존재를 알게 된 건 고등학교 2학년 무렵인데요.당시 기초생활 수급자였던 저희에 대해서 동사무소에서 조사를 하던 중엄마 아래로 30살 넘고 40 다되가는 남매 3분이 자녀로 등록되있는걸 보고그분들에게 연락을 하셨었답니다. 법적으로는 자녀들이 부양의무자니까요.그래서 그 분들이 자기 버리고 이혼해서 다른 남자 만난 엄마 얼굴좀 보자고 찾아오셨었는데너무 고생하고 살고있는 저희 엄마를 보고 안타까워 하셨던게 기억에 남네요.어째든 그 분들이랑 연락을 하고 계셨던 것 같은데그 중 한 분이 육손이신가봐요. 손가락 6개요.그러면서 수술을 하는데 수술비가 모자란다던데 나보고 100만원만 보태주면 안되냐고 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래서 제가 말했죠.나도 돈 없다고. 내 형제도 아닌 사람들한테 내가 왜 돈을 보태야 하냐고.엄마한테야 엄마 새끼지, 나한테는 얼굴도 잘 모르는 남일 뿐이라고.그리고 그만큼 나이 쳐 드셨으면 본인이 수술비 마련해서 본인이 수술해야지지들은 부양하지도 않는 엄마한테 전화해서 왜 수술비 보태달라고 지랄을 하냐고.뭐라고 하니까 알았다고 미안하다고 하고 말았거든요.
하..........진짜 위 글들 읽으시면 제가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짐작이 가실거예요.솔직히 정말 너무 정신적으로 가족에 대해서 스트레스가 심합니다.아니 2015년6월부터 2020년 7월 지금까지
5년동안 내가 엄마한테 준 돈만 1억이 넘는데 ㅋㅋㅋㅋ...
1억이면 서울은 아니어도 경기지역에서는 전세방 들어갈 돈 충분한 금액이잖아요.
지역에 따라서 돈 좀 보태서 대출 몇 천만 땡기면 괜찮은 아파트도 사요 ㅋㅋㅋㅋ
5년동안 전세자금 마련할수있는, 혹은 어쩌면 내 노후 자금이 될 수도 있었을 돈들을다 엄마한테 주고..그랬는데..... 이 현실이 이제 너무 지치네요.온 몸에 멍이 들어가고 한 여름에도 땀이 날 정도로 직장에서 일하고 (야간 물류센터 근무)그렇게 일을 해도 집안에 돈 주고 나면 내 손에 남는건 100만원도 안되고이 돈에서 또 핸드폰,보험,교통비,식비,고양이 앞으로 나가는 돈들 하면 정말저는 적금 할 돈도 한 푼도 안남아요 ㅋㅋ..
오늘 싸우면서 나 이 지긋지긋한 굴레에서 벗어나고싶다고
이런 거지같은 집구석에서 왜 날 낳았냐고, 누가 낳아 달랬냐고
버럭버럭 소리 질렀어요.
엄마는 니가 능력이 안되서 자식노릇 못하니
엄마를 버리려고 한다면서 그러면 안된다고 소리지르고...
또 다시 니가 능력이 부족한거라고 그렇게 소리지르고ㅋㅋㅋㅋㅋ...
근데 제가 엄마한테 정말 정이 많이 떠났는지,
미안함 죄책감 이런거 하나도 안느껴지네요.엄마가 저한테 하는 말이니 퇴직금 나온거 어디다가 썼냐고,대체 니가 돈이 쪼들릴 이유가 뭐가 있냐고,더러운 돈 150만원 주면서 그렇게 힘드냐고,니가 능력이 안되서 자식노릇 못하니 부모 부양 안한다고 하는거냐고말 같지도 않은 소리 말라고ㅋㅋㅋㅋ
저도 화가 나서, 오래 전부터 간직하고 있었던 비밀을 저도 모르게 말해버렸어요.나 우리 아빠 자식도 아니지 않냐고, 나 아빠 따로 있지 않냐고.내가 맨날 삼촌이라고 부르던 사람이 우리 아빠 아니냐고 그러니까누가 그런 개 소리를 하냐고 그래서삼촌이 직접 나한테 말 한거라고 하니까그 새끼 전화번호 대라고, 언제 들은거냐고 막 소리 지르길래고등학교때 삼촌이 나한테 직접 말 해준거라고. 나 그래서 삼촌 차 타고 할머니(삼촌 엄마)랑 삼촌 누나도 보고 오고 그랬었다고. 소리를 빼액 질렀죠.첨에 말도 안된다는 듯이 소리를 지르더니,나중 되서는 '그래서 네가 요즘 나한테 냉했던거구나' 라고 하는걸 보니정말 삼촌이 내 아빠가 맞는구나 싶더군요.
늘 수면제 먹고 주무시는데, 오늘 싸울 때도 수면제에 취해서 헤롱헤롱 하셨을 때라우리가 정확히 어떤 이야기들을 주고 받았는지 기억을 하실진 모르겠네요.수면제 약에 취해서 치매걸린것처럼 마약한것처럼 헤롱헤롱 거리는것도 나 너무 싫어요.
예전엔 이해 했죠. 아빠때문에 스트레스 받아서 잠 못주무시는 거라고. 이해했죠.근데 이제는 역겨워요 사람이. 우리 엄마인데 징그러워요.전 우리 엄마가 치매라도 걸렸으면 그대로 집 나갔을 거 같아요.
예전에는 나가자니 돈도 못버는 엄마 걱정되고..
엄마는 고양이랑 놀아주지도 않고 그냥 방치만 하는 타입이다보니 우리 고양이도 걱정되고...그래서 집에 돌아왔던건데..
아무리 가족이라도 사람 정이라는게 이렇게 식나봐요.이제 엄마가 죽든지 말든지 신경쓰기도 싫고.. 전 그냥 고양이만 신경쓰이네요.
저 학생때부터 지금까지 정말 열심히 자식 노릇 한 것 같아요..
저 이제 제발 어깨의 짐좀 놓고싶어요......
엄마가 배아파서 날 낳았어도
나는 나고 엄마는 엄마예요.
내가 엄마가 될 수 없고 엄마가 내가 될 수 없죠.
우린 결국 가족이라는 스티커만 붙은 남일뿐이예요.
오빠가 취업도 했고
집에서 3분거리에 혼자 살고있으니
저 나가고나면 집에 들어가서 엄마 모시고 살으라고 해야겠어요.
오빠한테 400만원 빌려준거 내년부터 월 15씩 받기로 했는데
평생 안갚아도 된다고. 연 끊을거라고 할거고요.
전 집 나가고나면 이제 핸드폰번호도 바꿀거구요.
8월중으로 이사하려고 방구하는 어플로 알아보긴 했는데
고양이 데리고 가려니 반려동물가능한 집이 찾기 힘들어서
참 힘드네요..
마음 한 켠으로는 그래도 엄마인데.. 싶은 걱정도 들지만..저 정말 이제 저만을 위해서 살고 싶어요.다 져가는 꽃이랑, 한참 펴있을 시기의 꽃은 다르잖아요.내 한 번 뿐인 20대에서 벌써 27까지 시간이 흘렀어요.집안의 노예로, 가장노릇 못하는 엄마 오빠대신 막내가 가장노릇 하면서정말 울기도 많이 울고 힘들기도 많이 힘들었어요.
이젠 다시는 집에 안 돌아올 생각으로 정말 독하게 나가려고 해요..회사 근처에 고양이 키우는거 가능한 집으로 부동산 요청도 넣어놔서다음주에 한 번 보러 간다고 이미 약속도 잡아 놨어요.혹여 엄마가 제가 나간 후, 어떤 이유로 돌아가시더라도전 장례식장도 갈 생각 없습니다.그냥 고아로 살고 싶어요.마음 독하게 먹고 집을 나가도 괜찮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