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20대 남성입니다.
진지하게 요즈음 고민하고 있는 현재 저의 삶에 대해서
넋두리 및 많은 분들의 조언을 받고 싶어서 이런 글을 적어봅니다.
여기에 이렇게 써도 되나 잘 모르겠지만 열심히 적어볼테니
시간 많으시면 한 번 읽어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시작은 가부장적이고 다혈질이신 아버지와, 어여쁘신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제가
시골 생활을 하며 잘 살아가다가 12살, 부모님의 큰 다툼으로 (아버님의 일방적인)
살던 고향을 떠나, 먼 도시로 어머니, 형과 함께 새 출발을 하는데에서 부터 시작했습니다.
저는 당시 아무런 생각 없이 단지 방학숙제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하나에
함박 웃음을 짓고 있었습니다.
시골에서 올라온 저에 대한 도시 친구들의 조용한 무시와, 한 부모 가정에서 올
경제적, 정신적 어려움에 대한 걱정은 전혀 없는 채 말이죠.
전교생이 20명도 안되었던 시골 학교에서, 똑똑하다는 소리를 들었던 저는
우쫄한 마음으로 수업에 참여하기 시작하였으나,
애석하게도 도시 친구들의 엄청난 학습 능력을 전혀 따라가지 못하였고
수업 도중 "학원에서 배웠으니-" 로 넘어가버리는 수업은 이해할 수 없는채 넘어가버려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진도가 되어버렸습니다.
결국 초등학교를 졸업 할 때엔 항상 듣던 똑똑한 아이 소리는 멍청이로 변한지 오래며.
저는 제가 멍청하다는 사실을 뼛속 깊이 받아들이게 되었죠.
그 때쯤 저는 머리는 그렇다 치고... 몸으로 간다! 라는 생각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시골에서는 물론, 도시 학교에 왔을 때에도 덩치가 상당히 큰 편이였거든요.
인간의 본성인지, 머리가 나쁘지만 몸이라도~ 하는 알 수 없는 자신감이
머리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나 봅니다.
그러한 생각은 아직도 기억나지 않는 사유로 인하여 얼굴에 내리꽂힌 반 친구의 주먹으로 인하여
산산히 부서져버렸지만 말이죠.
지금 생각해보니 참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잘못했으면 나쁜길로 들어섰을 수 있었겠네요.
운명의 신은 가혹하게도~ 중학교에 진학하게 된 저는 문제의 그 친구와 같은 중학교,
심지어 같은 반이 되었고, 그 친구의 질 나쁜 친구들이 한 가득했던 반에서 저는~
그 친구의 거의 애완동물과 같은 생활을 했었죠.
주말에도 자기가 노는 곳에 심심하다는 이유로 저를 부르고, 힘들게 도착했더니
"응 왔으니 꺼져" 하는 말을 하는 그 친구에게,
어머니가 나가지 말라고 하셔서 못간다는 말을 하니
"그럼 엄마 죽이고 나와"라는 말을 서스럼 없이 하던 그 친구에게,
자기가 원하는 대로 저를 부리고 마음에 들든 들지 않든, 저를 때리며 놀던
저를 광대로 부리며 모두의 앞에서 저를 웃음거리로 만들던 그 친구가
아직도 가슴속에 크게 맺혀있는걸 보니 별로 순탄치만은 않았던 중학교 생활이였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머리가 자라기 시작하며, 나쁜 생각만 하게 되는 사춘기에 돌입하게 된 저는
매일 모든끼니를 라면, 삼각김밥만 먹어야 하고 하수구 냄새가 풀풀나는 좁디 좁은 집에서
엄지손가락 만한 바퀴벌레와 동거해야 한다는 사실에, 큰 불만을 갖게 되었습니다.
불만은 학교 생활과 함께 저를 옭아매며, 저에게 한계를 선사해줬고,
결국 전 게임이라는 달콤한 유혹에 빠져 흥청망청 게임만 하는 문제아가 되버렸습니다.
심지어 2학년 초에는 어머니껜 학교간다고, 선생님껜 입원했다는 아주 어린 거짓말로
아침부터 피씨방에 간지 일주일만에 들켜 어머니의 울음보를 터뜨리는
쌍눈물 잭팟까지 선사했으니 얼마나 대단했을까요.
뭐 짧았던 피씨방 대피생활이 끝나고, 2학년엔 그래도 "많이 질 나쁜" 친구가 몇 없다는 사유로
학교가는 발걸음이 마냥 무겁지 않았던 저지만, 반드시 챙겨가는 게임기로 인하여
주머니의 무게는 두둑했던 저는, 그렇게 2학년 생활을 스스로 엉망으로 마쳤습니다.
거기에 영어점수 8점 및 성적표를 위조하여 어머니를 속이는 정신나간 행동을 하는채로 말이죠
3학년이 되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앞둔 저의 친구들은 이전처럼 아무 생각이 없지 않았고,
심지어 저와 비슷한 부류라 생각했던 친구마저 학원 수업 및 과외로 더 이상 저와 어울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결국 눈을 돌린곳은 다들 공부하는 친구들이였고, 설설 빌붙어서 아예 이해 자체를 못했던
수학을 70점을 맞는 쾌거를 이루었으나
수학 선생님의 "너 교무실로 와서 커닝 여부 판단할테니 3시에 교무실로 와라" 라는 발언은
저의 꺼내놨던 '공부가 괜찮을지도 몰라!' 라는 생각을 싹 덮게 해주었습니다.
결국 전 어머니의 조언으로 "공부를 못해서" 버스타고 30분 떨어진 실업계에 진학하게 되었고
기억 상 석차 60%~ 70%정도로 중학교 생활을 마무리 햇습니다.
표면으로는 열심히 기술 배우겠다, 새 출발 하겠다 라고 어머니께 장담했지만
도저히 '그 친구와 마주칠 확률이 높은 동네에 있는 학교에 가기 싫다' 는것은 작은 비밀로 둔 채요
아, 성적표 위조는 3학년 초에 들켜서 3살 위 형의 난타로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여러 영화에서 봤던 저의 실업게 이미지 그대로의 모습을 띈 제 고교는,
긴장을 풀 수 없는 무법지대와 다름 없었고, 손에 땀을 쥔 채 저의 첫 등교가 시작되었습니다.
당연히 바이크를 몰며 등교를 하고, 노랗게 염색한 친구들이 있을 줄 알았던 학교는
그냥 착한 멍청이들의 집합소였고, 그나마 있던 아주 나쁜 친구는 2학기에 퇴학을 당해
저는 착하지만 멍청한 친구들과 함께 최고 멍청이 우열을 가리며 재밌는 학교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학교가 재밌어지니, 사람의 마인드 자체도 바뀌어, 저는 학교에서 해주는 모든 수업을
정말 열심히 들었고, 실습도 최선을 다해 임했습니다.
집에서 공부를 하지 않는것은 변함없었지만, 수업시간엔 정말 최대한 집중을 해서 배웠고,
제가 잘난것이 아닌, 친구들의 못남으로 저는 성적표 위조때나 볼 수 있던 전교권 성적을
내게 되었습니다.
기회는 연속된다고, 그 맘쯤 시작하게된 특별 기술 부원 모집에 눈이 돌아가서
매번 9시까지 남아 실습을 따로 하는 전교생에서 15명만 뽑는 부서에
큰 뜻을 갖고 들어가게 되었죠.
여기서 노력한 저는 다행히 몇 개의 자격증도 취득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고등학교 생활을 단순히 웃고 있다는 이유로 1학년 때 부반장을,
1학년 때 부반장을 했다는 사유로 2학년 때 반장을,
2학년 때 반장을 했다는 사유로 강제로 올라가야 한다는 전교 부회장 후보에
"그러면 전 선거활동 같은 것도 하나도 안할것이다" 라는 조건으로 승낙했으나
알고보니 후보가 1명이라는 사유로 부회장이 되버린 저는
파란만장한 고교 생활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가장 좋은 소식은, 고교 2학년 시절 S 기업 공채에 합격해서... 대기업이라는 곳에 입사하게
되었다는 것이죠! 뭐 무늬만 대기업인거 같긴 하지만!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다음 달, 저는 다시 한 번 새출발을 하게 되었습니다.
살던 곳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서울로 향해서, 몇년 전과 같이 새로 시작하게 되었죠.
하지만 이번엔 저는 더 이상 웃을수만은 없었고...
한껏 긴장된 얼굴로 서울 직장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회사엔 정말 대단한 사람이 많았습니다.
S K Y 대학출신은 물론이요, 하버드? 와 실존하는 대학이였구나! 하는걸 보여준 사람이며
8개국어 능통자, 무엇보다 다들 "자신감에 가득찬 얼굴" 로 돌아다닌다는 점이
아무것도 없는 저에게 큰 무게감으로 다가왔습니다.
전 여전히 아무것도 할줄 몰랐거든요,
말했듯 영어 8점 맞아본놈이 무슨 글로벌 기업을 다닌다고.. 하하
비슷한 것끼리 모였을 때라면 모를까, 다시 날고 기는 사람들과 함께 하게 되다보니
저의 마음은 다시 점점 무거워져만 갔습니다.
뭐 물론 시작부터 낙담만 한 것은 아니였습니다.
자취를 시작하여 어머니와 키우던 강아지를 그리워 하기도 했지만,
전화라는 편리한 수단은 그것을 충분히 해소시켜줬고,
그만큼 새로 얻은 자유는 달콤함으로 가득했으니까요.
늦은 시간 야경으로 반짝거리는 도시를 걸어오며 노트북 가방을 매고 퇴근할때면,
드라마 미생에서 나올법한 모습을 내가 직접 겪고 있다는 사실은 충분히 저를 감동시키기에
합당했습니다.
삶이란 아름다워~ 하고 취해있다가도 조용한 집에 들어가면 어색한 침묵이 다가오고
다시 현실로 돌아와 버리게 된다는 문제점이 있었고,
그것은 언제부터인가 아무도 없는 집에 "다녀왔습니다" 를 말하게 되는 습관이 되버렸지만요.
자, 1년이 지나고 더 이상 띨빵하기만 한 신입사원은 없어졌습니다.
이제는 '적어도 식당 메뉴가 어떤 맛인지 잘 아는' 1년차 멍청이가 되었거든요.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고, 빵실빵실 웃기만 하지만 저는 짤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해외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여권도 없고, 비행기도 타 본적 없는 제가 두바이를 거쳐 머나먼 사우디 아라비아 땅에
와있더라구요.
와! 비행기! 와! 공항!
분명 1달 출장으로... 다녀 오라는 명령이였는데 군대를 제외하고 왜 제가 여기에
3년 째 있는지는 아직도 알 수 없지만, 저는 한국인보다 외국인과 함께 섞여
한국인을 찾기 힘든 나라에서 오늘도 엑셀만 두들기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갑자기 깨닿게 된 사실이 한 가지 있습니다.
퍼즐처럼 한 조각씩 맞춰지던 여러 내용이 머리속에서 하나로 정리된 것이죠.
- 3살배기 위 형이 조만간 30살이 되버린다.
- 어머니가 몇 년이 지나면 일을 더 이상 못하게 되실지 모른다.
- 외 할머니의 병새가 나날로 안좋아지고 계신다.
- 더 이상 친구들과 장난, 재밌는 이야기 만으로 대화를 진행할 수 없게 되었다.
- 몸의 찌푸둥함과, 짜증 분노가 나날이 깊어져간다.
- 머리의 M자가 깊어지고 있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
등등...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
나 이제 어른이구나- 였습니다.
아이
학생
청년
그리고 어른
이제는 더 이상 변명 및 하하 잘 몰라서요! 가 아니라
책임이 다가오는 시점이 되버리고,
잘 모르는 것에 대해서 이렇게.. 하는거야 하는 가르치이 아닌
아직도 이걸? 하는 질문이 돌아오기 시작한 어른.
결혼하여 가정을 이뤄, 가정을 이끌어 나가야 하는 어른,
나이를 먹어 생활을 안정시키고, 부모를 모셔야 하는 어른,
만남보다는 이별이 생기기 시작하는 어른
이것을 조금이나마 실감하고 나니 여태까지 하던 모든 저의 행동과
"에헤헤 내일 이거 해야지~" 하는 단순한 생각들의 앞에
'어른'이라는 단어를 끼우게 되었고, 결론적으로
'나 이래도 괜찮을까' 하는 질문을 제 자신에게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안정된? 직장에서 근무하며 꽤나 많은 액수의 월급을 받으며 살지만
이 길이 정말 내 길이 맞는지, 나 이대로는 정말 괜찮은건지 하는 생각이 머리속을 떠나지 않고.
과연 내가 평생 이 일을 하며 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합니다.
물론 제가 확실히 추구하던 길이 있거나, 목표가 있는것 또한 전혀 아닙니다.
그저 전 지금이 조금 불확실하고, 잘 이해되지 않는다는 사유로
바깥세상, 다른직장, 다른 업무는 멋지고 재밌고 환상적이지 않을까 하는
'헤헤 이번주 로또 되는거 아니야?' 하는 막연한 상상만 한다는 것이죠.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뭐하나 아는것도 아니고, 잘하는것도 없으면서 말이죠.
근데 이걸 알아요. 제가 잘 압니다 아주. 그니까 이렇게 적은건데,
그런데도 머리속에서 이 생각을 떠나지 않습니다.
게다가 다른 제 선배들이 하는걸 보면, 저게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일을 잘합니다.
근데 난? 몇 년 후면 내가 저 선배와 같은 나이가 될텐데 과연 그때 내가?
하는 생각이 항상 듭니다. 물론 그렇다고 이 어리석은 놈은 자기 발전을 하려고 하지도 않지만요.
이러한 고민은 업무에서만 오는 것이 아닌, 일상 생활에서도 옵니다.
저는 이제 26살이 되었는데, 다른 친구들은 대다수가 연애를 하고있고,
일부는 심지어 결혼까지 했으나, 저는 제대로 된 남자구실을 한 번도 해보지 못했습니다.
얼굴이라는 심각한 하자가 있지만 키도 184 cm에, 연봉도...한국 기준 4천이 넘었고,
술 담배 전혀 하지 않고, 도박도 안하고. 최대한 바르게 살아왔습니다.
불건전한 시설은 입구에도 안가봤죠.
왜냐하면 흔히 주변에서 들은 괜찮은 남자, 이상적인 남자의 조건에 충족하기 위해
더 발전하는건 아직 없더라도, 적어도 - 되는 상황은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쨋든 저는 가정을 이뤄, 한 명의 가장이 되어 가족과 함께 살고싶고,
실패한 가장이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한 것인데,
전 이미 제 아버지를 통해 실패한, 되면 안되는 가장의 모습을 잘 보았거든요.
뭐, 애석하게도 위에서 말씀 드린것처럼 "발전하는건 없더라도" 를 유일하게 충실히 지켜
전혀 빼어난 모습이 없는 저는, 제 자신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고,
혹시나 있을지 모른 이런 저를 좋아할 뒤틀린 황천의 취향을 가지신 천사같으며 적극적이신
여성분을 만나지 못하여, 먼저 이성에게 대쉬는 해보지도 않은 채
26년 솔로 생활을 지속중입니다. 솔로가 뭐야 손도 못잡아봤는데.
근데 저는 이제 연애가 아닌 결혼에 어울리는 나이대인 사람이 되어가고 있고,
경험없는 남자는 문제다, 이 나이에 아직도? 라는 소리는 저를 옭아매기 시작했으며
그것은 부담, 걱정을 넘어 이제는 거의 공포처럼 다가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도 저에대한 이타심을 가질 수 없습니다.
저는 아직도 전혀 안정되지 않은 삶을 살고 있으며 ,
평범한 남자보다도 못한 떨어지는 남자의 모습이며 (정신 태도나, 외관이나, 마음가짐 등)
제 자신, 저의 가족, 그 무엇도 하나 정리되지 않았거든요.
결론으로 정리해보자면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위기는 느끼지만 행동으로 실천하지 못하는 이런 상황엔 어떻게 해야할 지
2. 자기 자신을 좀 더 사랑하는 방법
3. 결혼 (연애) 이대로 괜찮을까?
참, 글재주도 없으면서 글만 엄청 길게 썼는데, 이렇게 3줄로 간단히 정리가 된다니...
사실은 질문도 질문이지만 넋두리? 도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냥 나 이렇게 살아왔어요.. 하고 말이죠
현실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약점으로 오기도 하더라구요...
그래서 혹시나 이 글을 읽어주신 분들이 계신다면 조언 한 마디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조언이 아니라 간단한 느낀점, 심지어 욕도 괜찮습니다.
더 이상 제 머리속에서 저를 3자의 시점으로 보는게 불가능하여 꼭 좀 도움을 받고 싶어서 그러니
막 제가 무슨 전문가의 입장에서 확실한 행동체계 10가지 주세요! 이런게 아니니
부디 한 마디라도 적어주고 가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다들 태풍, 코로나 조심하시고
음... 맛잇는거 많이 드시고
내일도 웃을 수 있는 하루 되시길 바라며
감사합니다. : )
안녕히!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