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쩍 쌀쌀해진 오늘
2020년 겨울의 초입입니다.
감기 유의하시고
시작한 이야기를 마저 끝내고
가야할 것 같아서 빠르게 왔습니다
[31]
날 불러낸 후드선비는 자리에 없고
선배만 있었다
이게 뭐지... 잠깐 생각이라는걸 해보자
선배와 눈이 마주친 몇초...
고민할 틈도 없이 그냥
그대로 술집문을 열고 나왔다
나오는 길에 후드선비한테 전화를 걸어
이게 뭐하는 거냐고!!!!!!!!! 소리치려는데
전화를 받는 사람이 후드선비가 아니다
"어 윤이야"
한마디만 들어도 안다
선배 목소리는
내가 전화를 하면
흔한 여보세요 대신 선배는 꼭
"응 윤이야"라며 내 이름을 먼저 불렀다
선배가 술에 취했던 그날
평소에는 그렇게도 다정히 부르던 내 이름을
왜 다른 이름으로 불렀을까
그날의 선배 목소리는 여전히 아프다
"전화 잘못 걸었나봐요"
"아니 맞아 전화 후드거야"
"윤이야 우리 얘기좀 해 얼굴을 보든"
"그게 불편하면 전화로라도"
적막이 흘렀다
지금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해야할까
딱히 떠오르지가 않는다
"저는 할말도 들을말도 없어요"
길거리에 주저 앉고 싶었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기껏 다 정리했는데 이제 선배 얼굴 봐도
마음이 아프지 않았는데
왜 또 나타나 다정하게 내 이름을 부르냐고
"윤이야 잠깐만 잠깐이면 돼"
"윤이야 ..."
다급하게 날 부르는 선배 목소리에
가슴이 저릿했다
그 목소리에 차마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네 말씀하세요 근데 선배님 부탁이 있는데"
"제 이름 부르지 말아주세요"
선배가 한번 더 내 이름을 부르면...
눈물이 날것 같았다
아까부터 풀린 다리는 좀처럼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가까운 돌 계단에 주저 앉아 무릎에 머리를 파묻고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눈물이 터져나올것 같아 눈도 꾹꾹 눌렀다
관자놀이고 눈이고 아무리 눌러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두통과 눈물이 멋대로 터져나왔다.
계속 내 이름을 부르는 선배 목소리가
전화를 타고 들리는게 아니라
마치 내 귓가에 대고 말하는 것처럼 가깝게 들렸으니
머리가 정상이 아닌 듯 했다
숨을 좀 크게 쉬면 나아질까
한숨을 길게 내쉬고
마음을 다 잡고는
"네 선배님 말씀하세요"
라고 말했다
"나좀 봐줘"
"한번만"
뭐지?
가까이 있는건가?
깜짝 놀라 고개를 드니 선배가 내 옆에 서 있었다
이와중에 운거 들키면 안되니까 내 옆으로 다가와
앉으려는 선배를 막아야 했다
"그냥 서서말해요"
선배는 그대로 멈췄고
나는 고개를 숙였다
"잘 지냈어?"
"네...근데 뭐 하실말씀이...?"
"좀 늦은거 아는데"
"사랑해..."
"그때 못해서 미안해"
선배는 나랑 사귀는 중에 사랑한다는 말을
단 한번도 한적이 없었다
예쁘다 좋아한다 아낀다 이런류의 말을 자주 하긴 했지만
단 한번도 사랑해라는 말을 한적은 없었다
어느날 전화를 끊으며 선배! 나 사랑해요?라고 물었을 때
선배는 끝내 대답하지 않았다
장난으로라도 그냥 사랑한다고 이야기할법도 한데
한번을 그런적 없었다
그말이 고팠지만 그냥 이렇게 선배 옆에 있으면 된다 생각했다
사랑이 아니어도 좋아하는 마음이면 된다 생각했다
좋아하다보면 시간이 지나 사랑해 질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위안삼았다
그런데 이제와서 사랑해라니
울컥했다
화가났다
"이제와서 왜요?"
"그분이랑 아직도 잘해보고 싶은 맘 가득이면서 왜요?"
"늦어서 미안해"
"지금 그런 말이 무슨 의미가 있어요?"
"이제 그런말이 감흥없는 사이가 되어 버렸는데"
아깐 눈물이 나왔는데 이제 웃음이 나왔다
지금와서 이게 다 무슨 소용
헛웃음이 나왔다
"기다릴게"
"니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선배 사랑은 왜 매번 기다리기만해요?"
이와중에 매번 기다리기만 하는 선배의 사랑에
딱한 마음이 드는건 참 괜한 오지랖
"기다리는거 이제 그만하고"
"그냥 선배 저 만나기 전에 그랬던 것처럼"
"쉽게 만나고 헤어지고 마음 깊게 주지말고"
"편하게 즐겁게 살아요"
선배가 그분을 만나면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마음 고생이 많았는지 뒤늦게 알았기에
다시는 선배가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건
여전히 내가 선배를 좋아하니까
여전히 내가 선배 너한테 흔들리니까
들키지 말아야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선배 얼굴을 똑바로 쳐다봤다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는데
다 티나는 얼굴이란걸 뻔히 알았지만
여유있는척 웃어보였다
"선배, 그래도 한번 잡아줘서 고맙네요"
"헤어지고 연락 한번을 없길래 자존심 상했는데"
"마주쳐도 모른척 하시길래 좀 서운하긴 했어요"
우스갯소리를 하며 이제 가겠다고 인사를 했다
우리가 앞으로 이렇게 단둘이 대면할 일이
아예 없지 않을까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 잘 지내시라고 손을 내밀었다
뭐 포옹을 하고 끝낼 수 없으니 악수라도...
손을 내밀었는데
내 손목에 감긴 깁스를 보고
선배가 양손으로 내 손목을 잡았다
"괜찮아? 어쩌다?"
"네 뭐... 놀다가.."
대화가 이어질 것 같았다
다 끝난 사이에 뭐 자꾸 이렇게 길게 이야기하나
다시 꾸벅 인사를 하고 뒤돌아 섰다
"손... 그래서 머리는 어떻게 묶어?"
아니 헤어진 마당에 별 걱정을 다 하고 계시네요
남이사 머리를 묶든 말든
"손 나을때까지 머리만 내가 묶어줄게"
선배는 심각한데
줄곧 심각했던 우리 였는데
선배의 그말에 내가 빵 터지고 말았다
나를 잡는 구실이
고작 내 머리를 묶어주기 위함이라니
"아니 선배 내가 무슨 똥멍청이도 아니고"
"헤어진 남자 친구가 머리 묶어준다고 잡으면"
"내가 아 네 그래주세요 하고 잡힐것 같아요?"
지금 이 상황이 너무 웃겨서 입으로는 웃고 있는데
왜...또 뭐...때문에 또 눈물이 나오지
평소에 나는 머리를 풀고 다녔다
밥 먹을때 머리카락이 흘러내리면
나의 신성한 식사에 방해가 되니까
그때는 꼭 머리를 묶었다
머리를 대충 묶으면 삐져나온 머리카락을 정리해서
선배가 머리를 다시 묶어 주었다
어느날 부터인가 나보다 자기가 머리를 더 잘 묶는다며
유튜브로 머리 예쁘게 묶는 영상을 찾아봤다고
시도해보겠다던 선배가 떠올랐다
"치...첫사랑 없는 딴 놈한테 묶어달라고 할거예요"
"나만큼 잘 묶는 남자 찾기 어려울껄?"
"에이씨 단발로 잘라버리고 말지"
"그것도 괜찮겠다"
"다른놈이 묶어주는 꼴은 내가 못보지"
픽 웃음이 새어나왔다
방심한 그 틈에 어느새 선배가 다가와 날 안았다
그 품의 따뜻함이 익숙해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