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아이 있는 연상 이혼녀와 정말 드라마에서나 볼법 한 연애를 했던 26살 취준생 남자입니다. 어제 이별통보를 받았는데요, '사랑해서 헤어진다'는 말이 무슨소리야 했지만, 막상 저한테 닥칠 줄은 몰랐네요. 그냥 한탄한번 해볼게요. 정신없는 상태에서 막 쓰는 글이라 두서없을 수 있는데 이해해주세요 ㅎㅎ..
시작은 올 3월이에요. 2월에 4년제 대학 졸업 후, 취직준비 하면서 알바나 하려고 알아보던 중,아시다시피 3월이면 한창 대구 신천지발 코로나 대유행으로 한국이 시끄럽던 시기라 웬만한 알바자리는 없었어요.
매일매일 알바공고를 눈팅하던 중, 공장 생산직(주스회사) 알바자리가 올라오더라구요. '어차피 같은 시급이면 당연히 편한 일을 해야지 뭐하러 힘든일을 하냐'는 생각을 가진 저였지만, 그날 따라 왠지모르게 빨려들듯 담당자에게 전화하고 면접을 보러 갔어요. 그리고는 합격, 3월 중순부터 나오라는 연락을 받고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출근했습니다.
일은 별로 어렵지 않더라구요, 몸쓰는 일이라 남자들만 있을 줄 알았는데 여자들도 꽤 있고 생각보다 젊은 사람들이 많더라구요. 그리고 3일차 되는 날, 그 누나를 만났습니다.
저보다 4살 많은 30살 누나, 누가봐도 이뻤는데 무엇보다 성격이 정말 예뻤어요. 배울게 참 많은 어른같이 느껴지더라구요. 누나의 출근 첫 날, 하루만에 홀리듯 누나에게 빠져들었어요. 제가 일했던 파트는 이상하게 여자들만 있었고, 첫 날부터 이혼녀 커밍아웃을 하고 편하게 일하고싶었던 누나를 보면서 참 매력을 느꼈어요. 거기엔 24살, 저보다 어린 친구도 있었지만 어느새 제 마음이 누나에게로 향하고 있었어요.
누나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이혼 후 이사온 집이고, 제가 사는 곳이랑은 지하철로 약 2시간, 차로 40분 걸리는 거리였죠. 그런데 누나의 친정이 제가 사는곳과 아주 가까웠어요. 덕분에 누나가 제가 사는 곳으로 편하게 올 수 있는 상황이였죠. 하루는 아이들을 친정에 맡기고나서 저랑 만났는데, 그 날 술도 많이 마셨죠. 알거 다 아는 누나는 이러면 안된다는거 알아도 제가 좋다고 들어오는걸 거절 못 했어요. 그렇게 봄날의 연애가 시작됐어요.
약 9개월간 연애하면서 단둘이 여행도 가고, 누나 친구 커플들(모든 커플들이 이혼남녀 커플이였어요)이랑도 여행가고 때론 웃고 때론 울면서 그렇게 지냈어요. 아이들이랑도 많이 친해졌지요.제가 취업준비하느라 공부하는 입장이다 보니까, 연애&공부 편하게 하라고 집을 내주기도 했어요. 덕분에 거의 신혼부부처럼 누나가 나가는 시간 빼면 항상 붙어있을 수 있었어요. 지내면 지낼 수록 참 봄날의 햇살처럼 따사로운 사람인걸 알 수 있었죠.
그런데 혼자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까요.어제 대뜸 일도 연애도 친구도 다 쉬고싶다고 하더라구요.그렇다고 서로 딱히 애정이 식거나 하는 상태는 아니였거든요. 사랑은 처음보다 더 커져있지만, 그에 따라서 부담감과 책임감이 같이 커져서 사랑보다 커졌다고, 계속 가면 사랑이 무너질 것 같아서 쉬고싶다고 하더라구요.
처음엔 무슨말인가 했는데, 제가 26살에 미혼에 앞길 창창한데 30살에 아이도 둘이나 있는 이혼녀 누나 옆에 있으면 누나가 제 인생을 너무 옥죄는 것 같은 부담감이 들고, 이후를 내다봐도 제 부모님의 반대에 대한 걱정? 뭐 이런 복합적인 것들이 부담으로 마음 한 쪽에 자리한것 같었어요. 누나 성격에 수 개월 전, 혹은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했을 거고, 그래서 연애 초반에 누나가 자주 말하던 '봄이니까 연애한다'고 했던것 같아요. 원래 일찍 보내주려 했는데 너무 사랑해버려서, 정이 많이 들어서 오래 끌었다고 미안하다고 하더라구요.
저는, 이렇게 말하면 어떻게 생각하실런지는 모르겠지만, 부모님과의 어떤 유대감이 거의 없어요. 뭐 사춘기 청소년 처럼 혼만 나니까 싫어 이런게 아니라요, 감사한 감정만 있을 뿐이지 부모님이 우선이였던적 한번도 없었어요. 그래서 반대에 대한 걱정이란건 전혀 해본 적이 없었는데 너무 의외더라구요.
스스로가 너무... 겁을 낸것 같아요. 이혼녀라는게 뭐 죽을죄를 지은 타이틀인가요? 심지어 시댁에 시달리다가 지쳐서 도망쳐나오듯 이혼한 엄연히 피해자인데..저는 누나랑 계속 함께할 생각으로 만나고 있던거였는데, 누나는 처음부터 그게 아니였나봐요. 제가 항상 누나랑 술마시면 하는 말이, 이성보다 감성이 먼저이면 안된다 였고, 누난 감성이 이성보가 앞설 수 있을 수도 있지! 라며 항상 대꾸해왔는데, 이번만큼은 이성이 앞선 누나였네요.
어제 제 집에 짐싸서 데려다주면서 서로 많이 울었어요. 많이 사랑한다고, 고마웠다고, 미안하다고, 좋은사람 만나서 행복한 인생 살라고... 어떤 말로 감정을 다 표현할 수 있을까요...누군가 하나 마음상해서 헤어지는 이별이 아니라, 서로 많이 사랑하는 이별은 저로써는 받아들이기 너무 힘드네요. 누나가 집에 돌아가서도 카톡하고 전화하고 많이 울었는데, 아무리 설득해보려 해도 이미 마음을 굳힌것 같았어요. 차라리 마음이 떠났다고 하면 이해라도 될 텐데 이런식의 이별은 더 아프네요...
이럴줄 모르고 만났다고 하면 그게 바보같은거겠지만, 그래도 혹시.. 라는 생각이였고 그게 될줄 알았는데 막상 닥쳐오니 너무 가슴시리게 아프네요.
너무 두서없이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설득할 방법은... 없겠죠?
'너가 결혼하고 이혼하고 돌아오면 그땐 아무걱정없이 받아준다'고 우스갯소리로 말 하면서도, '너는 인내심도 많고 배려심도 많고 이해심도 많아서 네 성격엔 절대 이혼안할 거야'라고 슬픈표정으로 말하던 누나가 너무 보고싶네요.
+ 누나가 했던 말이랑 되게비슷하게 하시는 분들이 좀 계시네요 ㅎㅎ 댓글 모두 다 감사드립니다. 좋은경험 했다고 생각하려구요. 누나랑도 남매사이 처럼 친하게 지내기로 했네요 ㅎㅎ 다들 올해 마무리 잘 하시고 내년은 평온한 한 해가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