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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명의 그녀가 꿈꾸는 그녀의 방

휴이 |2006.11.15 23:15
조회 421 |추천 0

그녀가 기억할런지는 모르지만,그 날 나와 그녀는 하루 종일 같이 있었던 같다.

 

물방울 하나도 없이 건조한 겨울날, 우리에게는 특별한 일과가 없었다.

 

그 곳은 그녀의 작은 방, 주공 아파트의 14층, 복도 끝의 1412호라고 적혀있던 낡은 방,

 

약간 어긋나 있는 낡은 자명종을 누르면,배꼽 높이에 달린 돋보기로 그녀는 내다보고 문을 열어준다.

 

그 아파트는 전체가 하나같은 방, 기다란 복도겸 부엌, 화장실과 작은 방앞의 길쭉한 입구에는 몇가지 낡은

 

책장이 서너개 있었고, 그 곳을 지나치면 어쩐지 가정적인 부엌,그리고 어울리지 않는 거인이 웅크리고 있는 듯한

 

하얀 냉장고, 흐릿하게 커튼이 쳐진,


 

그녀가 항상 잘 들여다보지 못하게 하는 거실 겸 큰방, 항상 정리되지 않은 체 습기가 남은 세탁물들이 있었다.

 

화장실은 오래전부터, 마치 처음부터 더러웠을 법한 자연스러움이 있었다.

 

긴 머리카락이 배수구 근처 모여있던 욕조는 아주 오래된 로마의 공중 목욕탕 유적같아 보였다.

 

그녀의 자매 넷이 모여사는 아파트의 화장실 답게,

 

몇가지 만화그림이 뿌여진 거울에 붙어있고 지독하게 많은 도브 샴푸,비누,바디 샤워, 여기서 그녀의 향기가 나는 것이었다.

그녀가 나와 함께 있어하고 싶어하던 곳은 남은 그 작은 방, 그곳은 내게는 조금 큰 상자같이 느껴졌다.

 

처음에는 그 작은 방에 누워있으면 벽과 천장이가만히 날 내려다 보는 것 같기도 했다.

 

하얀 색 벽지에도 창틀과 책상이 옅은 그린색, 그래서 초록색 연못을 닮은 방, 희미하게 빛을 투과하는

 

창호지가 붙어있던 단 하나의 창,좁은 벽 가든 큰 눈을 뜨고 있는 것처럼,

 

방의 정면은 14층의 막강한 전경을 보여줄 수 있었다.

나무로 된 잘 열리지 않는 창문을 열면, 도둑방지용 스테인리스 창살이 아른거리는저 편은

 

시내 외각의 아파트의 탑들,그리고 그만큼이나 비슷해보이는 바위산이 보였다.

아직 여기저기 빈터가 보이는 동네는 아직 낡고 한적해서 좋았다.

 

그녀의 동네도 그렇지만,그녀의 아파트도 그렇지만, 그녀의 방조차도,시간이 멈추어서 각자의 공간이 마음대로

 

시간을 빌려다 쓰고 있었던 것 같았다 한참 시외각에 아파트가 조성되기 시작했던 어릴적부터, 지금까지

 

하나도 신축되지 않고 나이만 머금은 건물과 거리안에서, 나는 그녀를 만났던 것이다.

 

오래된 건물의 벽과 낡은 가구, 벽지가 내뿜는 그들의 냄새. 그녀는 그 안에서 새로운 식물처럼 나의 곁에 있었다.

그 목요일의 한가한 오후, 나는 그녀와 작은 방에 누웠다. 옅은 초록색의 이불보위에서

 

그녀는 아침부터 바빴던 하루를 오전에 다 끝내두고 오후의 나른함에 얼굴을 이불에 비비며 잠이 들어가고,

 

나는 정신만은 깨어서 가만히 물결같이 흐늘거리는 방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한쪽이 잠든 형광등 두 개와 화재 경보기 하나가 거꾸로 붙어있었다, 화재 경보기의 동그란 회색 돔은

 

달기지 처럼 보이기도 했다. 암튼 이 방은 각 벽과 천장마저 각자의 시간을 가지고 있는 듯 하였다.

 

어쩌면 이 방은 거대한 콘크리트 탑 한가운데 매달려 있는 별개의 방인지도 모른다.

 

방문을 열면 까마득한 도시의 허공이 비명이 지를 것 같고 바람이 몸시 회오리 칠 것처럼,

 

나는 겁에 질려 가만히 누워있기로 했다.

초록 연못같은 방. 벽에는 에드워즈 호퍼의 그림이 걸려있다.

 

어쩐지 그림 뒤에는 낯선 기류가 작은 나침반들이 돌아가는 것처럼 빙글빙글 돌아가는 듯 했다.

 

여러가지 시간감, 온도가 각기 다른 공기의 타래,가기 다른 휘파람 소리같은 것,다른 나라에서 풍기는 냄새들.

 

난 호기심에 그 그림을 뒤집어 본다.

마치 죄수가 뚫어놓은 듯한 위장술로 가린 벽의 구멍이었다.

 

족히 한사람은 등을 잔뜩 움크리고 기어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큰 구멍이었다.

 

그 곳에서 이 방으로 구멍을 뚫어놓은 것인지, 이 방에서 저 안으로 구멍을 뚫어놓은 것인지를 몰랐다.

 

엉금엉금 목을 구멍안으로 넣어본다. 그 안에는 이 방과 똑같은 방이 있었다.

 

마치 스튜디오처럼 가구와 이불,책장의 책마저 같았다.

 

저 곳이 진짜이고 이곳이 거짓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만큼 똑같았다.

 

맞은 편에는 이 아파트와 똑같은 구조의 그,러나 좌우가 반대인 거울처럼 같은 방이 있었다.

 

하지만 여기는 복도의 끝 ,벽을 뚫으면 한없이 허공일 것이다.

 

그러나 그 곳은 좀 더 다른 곳이었다. 이른바 의식이나 시공간이 조금 뒤바뀐 곳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문득 이 방이 초록 연못이 에드워즈 호퍼의 그림과도 똑같이 변해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림뒤의 방은 호퍼의 초록 열차객실의 풍경, 자리에는 승객들이 앉아 신문을 읽고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그리고 이방도 어느새 초록색의 기차의 객실 이 곳에는 나와 그녀밖에 없다.

 

그녀는 시트위에서 영원히 잠들어 있을 것 같다.

 

방건너편의 객실을 천천히 소리를 내지 않고 어디론가 영원히 달려가고 있었다. 아니 공간을 이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누구도 나를, 이곳을 의식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승객들은 모두 그녀가 되어 앉아있었고 그 중 누구도 나의 그녀와 다르지 않았다.

 

그 중 누구라고 해도 난 진짜 그녀를 구분하지 못할 것이다.

 

여기서 잠든 그녀는 건너편의 저 객실에서도 잠들어 있고 의자에 앉아있고 창을 내다본다.

 

그리고 누구도 나를 바라보지 않는다. 그들모두가 의식이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모두가 꿈을 꾸듯이 깨어있고 깨어있으면서 꿈을 꾼다.

 

객실안의 모든 그녀들과 이방의 그녀는 같은 꿈을 꾸고 동일 차원에서 분리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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