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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가난일기

쓰니 |2021.01.26 10:11
조회 6,994 |추천 42

가난일기

 

 

나는 1978년에 태어났다

내 기억은 6살 즈음부터다

나는 찢어지게 가난했다

우리 집은 대문 하나에 4가구가 사는 다가구 주택이다

 

철 대문을 들어서면 마당에 수도 하나가 있다

수도 하나를 둘려 4개의 집들이 마주보고 살았다

방 하나에 작은 부엌하나가 딸린 가난한 가족들이다

우리 식구는 나, 엄마, 형 3명이 살았다

아빠는 본적이 없다

 

지금 이 집은 세 번째 집이다

이사를 몇 번이나 다녔다

그 전의 집들도 지금 집과 다를 게 없었다

또 하나의 집은 막걸리를 파는 허름한 가게였다

아저씨들이 자주 와서 노란 주전자에서 하얀 물을 따라 마셨다

 

어느 날 할머니가 꽂감을 사오셨다

주방에서 일하고 계신 엄마한테 꽂감을 빼달라고 했다

바쁜 엄마는 날 살짝 밀었다

난 펄펄 끓는 물에 팔이 빠졌다

너무 뜨겁고 아팠다

팔에 보기 흉한 화상자국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추운 겨울이다

꽁꽁 얼어붙은 논에서 친구들과 썰매를 자주 타곤 했다

귀가 아플 만큼 추웠지만 시골동네 겨울 최고의 놀이터다

신나게 놀고먹는 밥은 꿀맛이다

된장찌개와 김치가 전부였다

지금처럼 흔한 치킨과 피자는 구경도 못했다

 

화장실은 밖에 있는 푸세식 이다

전기가 안들어온다

밤에는 깜깜하다

무섭기도 하고 냄세도 난다

발을 헛 딛어 똥통에 빠졌다

내 다리는 똥들로 떡칠이 되었다

 

너무 놀라서 울지도 못했다

엄마는 나를 보고 놀라면서도 화가 나셨다

화가 나신 엄마는 허리띠로 나를 때렸다

아픈 것 보다 냄새가 너무 나서 미안했다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는 우리 집은 연탄불에 물을 데워서 씻었다

그리고 엄마는 한참을 우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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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살 즈음

엄마가 놀러 가자고한다

나는 기뻐서 펄쩍펄쩍 뛰었다

버스를 처음 타봤다

버스를 타고 한참을 달리고 내린 곳은 기차역이다

 

기차도 처음 봤다

기차에서 삶은 달걀과 사이다를 사주셨다

맛있다 아직도 이 맛은 잊을 수가 없다

기차가 도착했다

얼마나 재미나는 곳일까?

 

내가 사는 동네보다 큰 동네였다

엄마는 내 손을 잡고 한참을 걸었다

고소한 과자 냄새가 난다

우리는 길가 리어카에서 과자를 파는 아주머니 앞에 섰다

엄마는 나를 아주머니께 마껴 놓고는 잠깐 갔다 온다고 했다

한참 지나도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다

리어카 아주머니가 나에게 말했다

 

“애야 너희 엄마는 오지 않을 꺼 같구나

“네가 괜찮다면 아주머니 따라 갈래?

 

나는 무서워서 울기만 했다

한참 뒤 아주머니는 공중전화로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 경찰 분들이 오셨다

경찰은 내 주머니를 뒤졌다

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이 나왔다

경찰은 나를 데리고 어디론가 달렸다

난 처음으로 경찰차를 타봤다

오늘은 처음으로 타보는 것들이 참 많았다

 

10여분을 달려 도착한곳은 고아원이다

나는 무서워서 울었다

고아원에는 많은 형들과 누나들이 있다

내 또래 아이들도 많았다

 

여기 밥은 맛이 없었다

김치와 콩자반은 거의 매일 나왔다

가끔 외부에서 오시는 손님들이 있다

고아원을 후원해주시는 분들이다

삼성전자 엘지전자등 회사에서 오신다

오실 때마다 맛있는 먹꺼리와 선물을 잔뜩 사오신다

이분들 오실 때면 우리는 치킨과 과자를 마음껏 먹는다

가끔 엄마가 보고싶어 혼자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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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살 즈음

나는 국민학생이 되었다

원장님이 50원씩 나누어 주신다

1주일 용돈이다

50원이면 문방구에서 과자 한 봉지는 살 수 있다

난 항상 논두렁이라는 딱딱한 노란 옥수수과자를 사먹었다

 

최고의 간식은 떡볶이였다

떡볶이는 200원이다

나에겐 너무 비싼 음식이다

달달하고 쫀득한 떡 양념 맛은 최고다

떡볶이를 먹고싶음 용돈 한달을 모아야한다

 

어느 날 길바닥에 도넛츠가 떨어져있었다

나는 도넛을 몰래 주웠다

흙이 많이 묻었지만 털어내고 먹었다

입에서 흙도 같이 씹혔지만 맛 있었다

 

고아원 친구들은 하얀 고무신을 신었다

너무 창피했다

겨울에는 발도 시리고 더 부끄러웠다

학교 친구들은 운동화를 신는게 너무 부러웠다

 

우리는 용돈을 벌기 위해 산을 많이 올라갔다

산에서 탱자를 주워서 한약방에 팔았다

포대에 한가득 채우면 3천원정도는 벌었다

탱자가 없는 날은 빈병을 주워 팔았다

고철이나 고물도 주워서 팔았다

 

이렇게 생긴 돈으로 라면과 과자를 많이 사먹었다

냄비가 없어 아기 분유깡통을 주워서 라면을 끓여먹었다

버너도 없어 연탄불에 끓여먹었다

끓이는데 시간이 오래걸려 팅팅불은 라면은

1인분이 2인분이되는 기적같은 일도 생긴다

 

나는 공부를 못했다

운동을 좋아했다

체육점수는 좋았다

다른 과목들은 형편없다

달리기 높이뛰기 멀리뛰기 공던지기등 거의 1등을 놓치지 않았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운동은 축구였다

공부는 안하고 운동장에서 공차고 놀았던 기억이 더 많았다

 

나는 초등학교 졸업할 때 처음 자장면을 먹었다

졸업 선물로 원장님이 자장면을 사주셨다

세상 너무 맛있었다

나는 아직도 자장면을 제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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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살 즈음

나는 중학생이 되었다

나는 중학교에서도 공부를 안했다

축구를 하고 싶었다

운동부는 유도뿐이었다

유도는 관심 없어서 안했다

 

어느 날 나는 같은반 아이와 싸움이 붙었다

어떤 녀석이 내 책상에 발을 올렸다

나는 발을 내려달라고 부탁했다

그 녀석은 나보다 키도 커고 덩치도 컸다

 

이걸 본 나의 고아원 친구가 그 녀석을 혼내주었다

내 친구도 체격은 나랑 비슷했지만 깡다구는 좋았다

이 친구도 나처럼 공부에 관심이 없었다

 

어느 날 내 친구는 우리반을 찾아와 짱을 불렸다

우리반에 짱이 있었다

짱과 친구가 붙었다

이날 이후 둘은 친하게 지냈다

나와 친구는 농땡이들과 친해지기 시작했다

 

내 친구는 다른 중학교까지 찾아갔다

친구는 짱들하고만 싸웠다

우리는 남을 괴롭히거나 나쁜 짓은 하지 않았다

 

나는 친구들과 친해지고 싶어서 돈을 벌고 싶었다

중학생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친구와 나는 새벽에 신문을 돌렸다

새벽에 자전거 타고 신문 150부를 돌렸다

새벽3시에 나가서 6시쯤 끝난다

힘들었지만 돈을 벌 수 있어 좋았다

열심히 한다고 사장님께서 오토바이로 바까 주셨다

 

한달 월급은 15만원 이었다

사모님께서 달걀 후라이를 매일 해주셨다

우리는 매일 달걀 후라이먹는 재미에 참고 견디었다

고아원에서 달걀 후라이 먹는건 흔한 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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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살 즈음

고등학생이 되었다

나를 찾는 선배가 왔다

축구선수를 모집 한다고했다

학체육대회에 나갈 축구선수를 모았다

당시 축구 시합할 학교는 우리 학교와 다른 학교 2곳이었다

 

1학년 2학년 3학년 각 학년의 선수들이 모였다

3학년 공격 2학년 미들 1학년 수비

시골동네라 실력들이 고만고만했다

처음으로 해보는 축구연습이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힘이 들었다

그런데도 재미있었다

 

3학년 선배들이 모이라고 했다

반 지하 창고에서 모였다

전부 엎드려 뻗쳐 했다

우리는 영문도 모른체 방망이로 엉덩이를 맞았다

티비에서만 보던 일이 실제로 있었다

 

내 차례가 왔다

한방 맞았다 기분이 나빳다

나는 벌떡 일어났다

기분 나쁘다고 했다

선배들은 싸가지가 없다고 더 때렸다

나는 때려 치고 싶었다

그러나 축구가 너무 좋아서 그럴수가 없었다

 

시합 날이다

우리는 축구화도 구리고 냄새나고 최악이다

개인으로 준비한 학생도 있었지만 난 가난해서 그러지 못했다

학교에서 선배들이 사용 하든걸 받았다

그래도 난생 처음 정규 시합이라 너무 기대가 되었다

 

잔디에서 공차는 기분은 너무 좋았다

미친 황소처럼 뛰고 싶어진다

1학년생중 나는 유일하게 미들 포지션이다

 

시합이 시작되었다

전반전은 우리가 실점을 허용해서 지고 있었다

후분전이 시작되고도 우리는 득점을 못했다

공격수인 선배들은 나한테 패스를 하지 않았다

나는 공이 흘러 나오는 기회만을 기다렸다

 

후반전 끝이 날 무렵 기회가 왔다

상대 골키퍼 맞고 나온 공을 내가 득점으로 연결했다

이제 승부는 원점이다

그러나 우린 또 실점했다

종료 휘슬이 울렸다

 

2대1로 졌다

나의 첫 경기이자 마지막 경기였다

경기 끝나고 우린 기사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나는 밥 먹다가 눈물이 났다

더 이상 축구 시합이 없다는 생각에 눈물이 났다

 

주말 알바를 했다

고깃집에서 설거지를 했다

불판 딱는 일이다

영업이 끝나면 남은 고기들을 싸들고갔다

고아원 친구들과 나눠먹었다

꿀맛이었다

 

2학년이 되었다

2박3일 캠프를 갔다

우리 텐트에는 나와 같이 3명이 한조였다

우리와 같은 조 1명은 동급생들한테 놀림 당하는 왕따였다

밤 늦게까지 왕따는 놀림당하고 심부름을 당했다

 

나와 친구는 화가 났다

 

“잠 좀 자자 그만 괴롭혀라”

 

상대방 녀석들은 우리 텐트로 우르르 왔다

__비가 살며시 내리는 밤이다

한판 붙을 상황이다

 

쪽수는 우리가 너무 불리했다

우리는 2명 저쪽은 6명

그때 다른 텐트에서 학교 짱이 나왔다

 

“니들 그라지 말고 조용히 1대1로 붙어라”

 

친구가 먼저 나섰다

내 친구가 이겼다

꼭 보면 싸움도 못 하것들이 몰려 다닌다

썩을것들...

 

캠프가 끝나고 등교를 했다

점심시간 친구와 밥을 먹고 있었다

3학년 선배들이 왔다

캠프 때 싸운 내 친구를 데려갔다

한참을 지나고 친구가 왔다

선배들한테 얻어 터지고 왔다

 

양아치들은 뭘해도 양아치들이었다

 

나는 학교가 싫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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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살 즈음

나는 고아원 친구중 한명과 가출했다

우리는 20만원이 있었다

 

우린 가차타고 포항으로 갔다

그때 왜 포항으로 갔는지는 잘 모르겠다

남빈동 사거리 근처에서 방을 얻었다

보증금30만원 월세15만원짜리로 머리가 천정에 닿는 허름한 방이었다

돈이 없는 우리는 한달 뒤에 갚는 조건으로 방을 구했다

 

나는 피자집 주방 일을 구했다

친구는 레스토랑 주방 일을 구했다

10시 출근 12시 퇴근 이었다

일은 힘들었지만 공부보다 재미있었다

 

친구는 노래방에서도 일을 했다

친구는 한달 후 월급을 받지 못했다

나와 친구는 노래방을 찾아 갔다

노래방 사장한테 월급을 달라고 했다

 

“그래 알았다 내가 지금 바쁘니깐 저기 1번방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우린 1번방에서 기다렸다

잠시 후 덩치 큰 아저씨와 사장이 들어 왔다

문을 소파로 막았다

사장은 돌변했다

 

“니들 가출한거 안다 어디 신고해봐라”

 

그리고 구타하기 시작했다

덩치 큰 아저씨가 문 앞을 지키고 있어 도망도 못갔다

우린 아무 반항도 못하고 엄청 맞았다

사장은 우리한테 2만원을 던졌다

 

이후 친구는 분식점 배달을 했다

다행히 분식점 사장님은 좋으신 분이다

월급도 잘 주시고 밥도 잘 주셨다

 

사장님이 좋으셔서 우리는 고아원 친구 한명을 더 불렀다

이 친구도 분식점에서 같이 배달을 했다

우리는 열심히 일 하면서 재밌게 살았다

여자 친구도 생기고 좋은 일들만 생겼다

 

어느 날 쌈 잘하는 친구가 놀려왔다

술 마시다 노래방에서 맞은 이야기가 나왔다

 

“당장 가자 그가 어디고??”

 

우리는 노래방으로 갔다

친구는 피는 담배를 거꾸로해서 손가락에 끼웠다

그리고는 노래방 사장한테 악수를 건냈다

 

악수를한 사장은 깜짝놀랬다

손바닥에 담배빵을 맞은 것이다

친구가 선빵을 날린거다

 

우리는 돈을 받았다

이 친구는 담배 한 개비로 사장을 제압했다

 

어느 날 고아원 원장님이 찾아왔다

원장님은 우리를 설득했다

그래도 고등학교는 졸업하자고 하셨다

우리는 다시 고아원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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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살 즈음

나와 친구는 고등학교 재입학 대신 검정고시를 보기로했다

검정고시 학원을 다녔다

밤에는 가요주점에서 알바를 했다

 

가게에는 이쁜 누나들이 많았다

나는 룸에 술과 안주를 서빙하는 웨이트를 했다

누나들은 우리에게 팁을 잘 챙겨주었다

기본급이 적은 대신 팁이 많았다

여기서 일하는 누나들과 가끔씩 술을 마셨다

다들 아픈 상처와 이유가 있었다

 

학원에 내 또래 여자가 있었다

나와 동갑이었다

예쁜 아이였다

 

사귀지는 않았지만 친하게 지냈다

이 아이는 서울에서 할머니집으로 내려왔다

자세한 집안 사정은 모르지만 항상 잘 웃는 아이였다

난 오토바이를 구입했다

오토바이로 학원도 다니고 재밌게 학원생활을 했다

 

시험날이 왔다

나와 친구는 떨어졌다

서울 여자애는 합격했다

역시 난 공부머리는 없었다

그렇다고 막 멍청한 머리는 아니었다

 

이후 나와 친구는 방송통신 고등학교를 다녔다

한 달에 두 번 일요일 등교를했다

우리 또래와 아저씨 아줌마들도 많았다

2년을 다녀서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았다

 

친구와 나는 다시 일을 했다

나는 가스주유소 친구는 일반주유소에서 일했다

내가 일하는 주유소 사장님은 가게 잘나오지 않았다

소장님이 거의 업무를 맡아서 하셨다

가끔씩 사장님이 나오시는데 차도 외제차에 옷도 삐까번쩍이다

어느 날 사장님은 날 불렸다

 

“저기 주유소에서 일하는 친구가 니 친구가?”

“네 친구입니다”

“쌈을 좀한다고 들었다 맞나?”

“네~ 우리 동네서 짱먹는 놈입니다”

 

어느 날 부터 친구는 우리 사장님을 따라 다녔다

우리 사장님한테 스카웃이 되었다

친구는 별 할 일 없이 사장님을 따라 다녔다

나는 계속 주유소 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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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살 즈음

친구와 주유소에서 모아둔 돈으로 포장마차를 차렸다

1톤 중고 트럭의 포장마차였다

우리는 강변도로에서 장사를 했다

여러개의 포장마차가 있었다

나름 운치있는 밤의 거리였다

장사는 그러저럭 잘되었다

 

몇 달후 친구는 포장마차를 그만 두었다

친구는 시내의 한 골목에 소주방을 오픈했다

주유소 사장님이 도움을 준거 같았다

친구의 소주방은 연일 손님들로 붐볐다

 

나도 포장마차를 그만두었다

친구가 없어서 진상 손님 상대가 힘들었다

 

나는 고아원 선배와 포장마차를 개조해서 붕어빵 장사를 시작했다

장사는 그럭저럭 되었다

그만 두기전 붕어빵과 오뎅을 잔뜩 구입했다

고아원에가서 아이들과 배터지게 먹었다

그리고 트럭은 팔았다

 

그 다음은 길거리에서 군고구마 장사를했다

생각보다 군고구마는 돈이 안되었다

춥고 화장실가는게 힘들어서 오래하진 못했다

 

나는 집이 없다

수입이 없으면 안되는 상황이다

보증금 100만원에 월30만원짜리 단독주택 옆에 딸린 단칸방에서 살았다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웠다

 

공단에 있는 공장에 취업을했다

주6일 8시간 근무 기본급 80만원이었다

작업 특근 안하면 돈이 안되었다

나는 왠만하면 잔업 특근을 뛰었다

그래야만 120만원에서~ 150만원 받았다

방값내고 이것저것 빠지면 남는게 별로 없었다

 

첫 월급을 받았다

나는 친구와 후배와 여행을갔다

친구 차를 빌렸다

크레도스라는 차였다

나는 신호를 못보고 행단보도에서 사람을 치였다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팔 뼈가 살짝 골절이 났다

나는 차를 빌려준 친구에게 피해를 주기 싫었다

 

개인 합의보기로 했다

1천만원에 합의를 봤다

내가 신호위반을 했기 때문에 합의서를 작성했다

나는 1천만원이라는 큰 돈이 없었다

매달 백만원씩 갚기로 했다

지옥의 1년이었다

라면만 먹고 산 날이 더 많았다

 

나의 첫 직업은 마이너스통장 함께 시작되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보험처리하면 되는 일을 내가 어렵게 처리 한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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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살 즈음

친구의 소개로 나는 레스토랑에 취업했다

공장을 그만두고 이직을 했다

밥도 팔고 커피도 팔고 술도 파는 곳이었다

 

10시 출근 새벽2시 퇴근 이었다

살인적인 노동 시간이었다

월급은 120만원 받았다

시급으로 따지면 2800원이다

내 가게를 차리는게 꿈인 나는 참고 일했다

 

회사와 또 다른 재미가 있었다

그런데 주방장 인성이 완전 거지다

지 맘에 안들면 소리 지르고 화내고 지맘대로다

주방장 때문에 관두는 직원도 있었다

날 소개시켜준 친구도 이 주방장 때문에 그만두었다

다행히 홀 지배인은 성격이 좋았다

새벽2시 늦게 마쳐도 우리는 모여서 술을 자주 마시곤했다

술 마시면서 게임을 많이했다

우리는 일이 힘들어도 단합이 잘되어서 즐거웠다

레스토랑은 항상 손님이 많았다

우리 동네에서 제일 큰 가게였다

 

추운날이었다

바쁘게 주말 영업을 하고 있었다

알바생이 나에게 쪽지를 건냈다

쪽지에는 전화번호가 적혀있었다

 

“일 마치고 전화 주세요라고”

 

궁금했다 어떤 여자일까??

번개처럼 마감을 치고 전화했다

 

“가게 앞 골목 닭꼬치집으로 오세요”

 

여자 두명이 있었다

같이 술을 마셨다

쪽지를 준 여자가 먼저 말했다

 

“그 쪽이 괜찬아 보여서 먼저 작업걸어요”

 

여자 한명은 먼저 일어났다

일부러 자리를 비켜준거였다

우리는 친해졌다

어느 날 우리 집으로 가고 싶다고했다

그 뒤로 여자는 우리집에 자주 놀려왔다

 

그러나 어느 날 내 지갑이 없어졌다

여자는 연락을 안받는다

카드 내역서가 날아왔다

1천만원을 긁었다

현금서비스도 받았다

나는 등에서 땀이났다

그때는 알림문자 서비스를 안해서 전혀 몰랐다

뒤통수를 씨게 맞은 느낌이다

내 통장은 또 마이너스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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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살 즈음

나도 주방장이 보기 싫어 레스토랑을 그만두었다

친구가 일하고 있는 자재상사에 취업을했다

월급은 150만원 이었다

나의 주업무는 자재배달하는 일이었다

 

죽을 뻔한 사고가 있었다

시골 공사현장으로 배달 가다가 나는 깜빡 졸았다

갓길 또랑으로 차량이 전복되었다

경운기타고 가던 아저씨가 나를 꺼내주었다

2미터만 늦게 사고 났으면 3미터 낭떨어지로 떨어질뻔했다

하마터면 큰 사고로 어어 질 수도 있었다

 

사장님은 나한테 돈을 빌려 달라고 했다

몇 일뒤 금방 갚는다고 했다

나는 의심없이 신용카드 현금 써비스로 1천만원을 빌려주었다

이틀 뒤 돈을 더 빌려달라고 했다

 

은행으로 갔다

내가 보증서고 1천만원을 대출 받았다

사장님은 내 돈을 갚지 않았다

차일피일 계속 미루고 나를 피했다

사장님은 몇 달이 지나도 돈을 갚지 않았다

 

나는 일을 그만 두었다

그 뒤로도 돈은 못 받았다

나는 빚이 있는 상태이고 당장 해결할 능력이 안되었다

하루가 멀다하고 독촉 전화가 왔다

 

나는 다시 공장에 취업을 했다

다달이 빚을 갚아 가면서 살았다

총무과에서 나를 불렸다

은행에서 내 월급을 차압한다는 서류를 보여주었다

 

카드값과 은행보증 서준게 터진 것이다

나는 월급 50프로를 차압하는 서류에 서명을 했다

앞이 깜깜했다

그 사장은 내 전화를 계속 피했다

내용증명서를 보내도 소용이 없었다

 

50프로의 월급으로 한달 한달 힘들게 버텼다

내가 힘들게 번돈을 더 이상 빼앗기기 싫었다

나는 공장을 그만두었다

 

전에 일했던 레스토랑으로 다시 갔다

그 승질 드러븐 주방장이 나갔다고했다

다행이었다

레스토랑에서의 월급은 차압당하지 않았다

이제 숨통이 조금 터였다

 

주말에는 여대생들 알바가온다

3명의 알바가왔다

여대생들 오는 주말은 가게 분위기가 좋았다

그중 한명의 여대생에게 나는 장난을 많이 쳤다

공부도 잘하고 착하고 일도 잘했다

대전에 있는 의과대학 간호학과에 다니는 학생이었다

 

나는 친해보고 싶어졌다

고등학교도 졸업못한 내가 대학생과 친해 질 수 있을까 걱겅이 앞섰다

나는 조금씩 다가갔다

여대생도 내 마음을 받아주었다

방학이 끝날때쯤 우리는 사귀는 사이가 되었다

 

나는 쉬는 날이면 데이트하러 대전으로 갔다

여친은 대학 졸업후 서울대 대학병원으로 취업했다

나는 쉬는 날이면 데이트하러 서울로 갔다

촌놈인 나는 서울 갈 때 마다 설레고 좋았다

병원에 취업한 여친은 많이 울었다

간호사 일이 힘들다고 했다

 

“조금만 버티고 있어 내가 구해줄게”

 

그러나 나는 아직 신용불량자였다

어느 날 친구한테서 연락이왔다

같이 일을 하자고했다

구미에 있는 나이트클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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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살 즈음

나이트클럽이라 살짝 긴장이 되었다

직장은 문제가 안되었다

월급만 많이 주면 된다

여친은 어떤 일을 하던 상관없다고 날 믿어주었다

친구는 나이트클럽 주방 실장이었다

나는 여기서 술을 배급하는 바텐으로 일을했다

 

월급은 180만원 이었다

밤의 화려한 세상도 재미있었다

나이트의 밤은 재미난 일들이 많았다

특히 화장실에서 기상천외한 일들이 많았다

몇 달 일 하는중 나이트의 사장이 바뀌었다

우리는 다 짤렸다

 

친구는 레스토랑 주방 실장으로 갔다

나는 돈가스집에서 배달 일을 했다

월급은 150만원 이었다

 

몇 달후 친구가 찾아왔다

서울로 올라가자고 했다

마침 여친도 서울에 있고 좋은 기회였다

여친과 나는 서울에서 정착을 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친구와 나는 서울로 올라갔다

서울 신촌에 친구 선배가 일을 하고있었다

5층 건물 전체가 술집이었다

월급은 200만원이었다

술집 규모가 어마어마 했다

숙소는 6층에 있었다

가게는 24시 영업이었다

 

교대로 돌아가면서 근무를했다

잠을 깊게 잘 수가 없었다

단체로 숙식을 하다보니 옆에서 담배피고 시끄럽고 그랬다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우리는 한달만 하고 다시 시골로 내려왔다

서울에 살고 싶었지만 실패했다

여친에게 많이 미안했다

 

나는 구미에 있는 작은 회사에 취업했다

출퇴근 하려면 차가 있어야했다

10년이 넘은 수동 엑센트를 구입했다

 

휴대폰에 들어가는 부품을 만드는 회사였다

나는 여기 회사 면접날을 아직도 정확히 기억한다

5월5일 어린이 날어었다

사장님은 쉬는날 혼자 나오셔서 일을 하고있었다

공휴일날 구직 전화하는 사람은 내가 처음이라고했다

나는 사장님께 부탁을했다

 

“제가 현재 신용불량자입니다”

“월급은 현금으로 받고 싶습니다“

 

사장님은 나의 부탁을 흔쾌히 받아주셨다

너무 고마웠다

월급은 150만원 이었다

사장님이 좋으셔서 나는 즐겁게 일을 했다

이때는 원룸에서 살았다

 

고향에서 공장 다닐때 임대아파트를 계약해놓은게 있었다

15평 임대아파트가 완공되어서 고향으로 내려갔다

보증금 700만원에 월세 7만원의 착한 임대 아파트였다

 

난생 처음으로 새집으로 이사를 했다

살면서 제일 기분 좋은 날이었다

 

회사 출퇴근 시간이 길어졌다

왕복 2시간 가까이 걸렸다

회사에서 기름값도 주셨다

회사는 점점 매출이 늘면서 확장도 되었고 직원도 늘었다

기분이 참 좋았다

 

사회로 취업 나간 고아원 친구들은 전국 곳곳에 있다

나와 고아원 친구들은 1년에 두 번 만난다

설날과 추석이다

 

명절에 우리는 갈 곳이 없다

우리끼리 모여 명절을 보낸다

친구들은 십시일반 돈을 모았다

모은 돈은 1년에 두 번 명절마다 보육원 아이들과 고기 파티를한다

고기 파티는 11년째 계속하고 있다

힘든 시기에도 항상 동참 해주는 친구들이 고맙다

우리는 여력이 되는 한 계속하고 싶다

 

어느 날 아는 후배와 우연히 만났다

넥타이에 정장차림으로 멋있어 보였다

나는 무슨 일을 하는지 물었다

 

보험 일을 한다고 했다

보험하면 돈을 많이 벌수 있다고 했다

나는 의심을 했다

후배는 자기 통장을 보여주었다

월급으로 300만원이 찍혀있었다

보험이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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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살 즈음

보험하는 후배와 만나기로 했다

후배와 만나기전 여친과 상의를 했다

여친의 반대는 완강하였다

이틀의 설득 끝에 여친의 허락을 받았다

 

보험하는 후배를 만났다

보험은 본인이 하는 만큼 큰 수입을 벌수 있다고 했다

나는 다른건 몰라도 열심히 하는건 자신 있었다

우리는 소장님을 만나기로 약속했다

소장님이 점심을 사주신다

1차 면접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한달간 교육보험을 들었다

 

문제는 쉬워서 합격했다

면접을 보고 지점으로 출근했다

연봉1억 하시는 분도 계시고 살짝 놀라기도 했다

처음 석달은 회사에서 지원이 많아서 월급은 200만원정도 받았다

1년간은 지인들의 계약에 200만원정도는 유지했다

 

나는 여친에게 프로포즈를 하기로 마음 먹었다

여친과 사귀면서 추억들의 사진을 모아서 동영상를 만들었다

컴맹이라 동영상 만드는데 한달은 걸렸다

 

그리고 동영상을 틀어줄수 있는 술집들을 찾아 다녔다

나는 술집 사장님께 부탁을했다

사장님은 흔쾌히 허락해주셨다

나는 여친과 술집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나는 사장님께 신호를 보냈다

사장님은 뮤직비디오 영상을 내리고 내가 준 동영상을 틀었다

손님들의 시선은 전부 동영상으로 몰렸다

 

동영상 재생이 끝나고 나는 여친앞에 무릎을 꿇었다

반지를 꺼내서 여친 손가락에 끼워주면서 청혼을 했다

손님들은 박수치고 우리를 축하 해주었다

어떤 손님은 비싼 술을 시켜서 우리에게 따라주며 덕담까지 해주셨다

나의 프로포즈는 성공적이었다

 

다음날 장인 장모님을 만나기로 했다

제일 큰 산이 남았다

이산을 넘어야 결혼할 수 있다

 

나는 어르신들 만나기전 여친에게 부탁을했다

내 술잔이 비워지면 바로바로 채워달라고했다

맨 정신으로는 말을 할 수 없을꺼 같아서 그랬다

 

너무 긴장을 했는지 이상하게 취하지가 않았다

 

“어르신 저희 결혼을 허락해주십시오”

 

장인 장모님은 허락을 해주셨다

너무 쉽게 허락해 주셔서 나는 살짝 당황을했다

그동안 나를 좋게 봐주신거 같았다

우리는 결혼을 했다

 

다시 전쟁터인 일상으로 돌아왔다

2년차 부터는 보험일이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월급은 점점 떨어지기 시작했다

 

서울 오이도 부산 포항 나는 전국 어디든 달려갔다

사실 왕복 기름비와 여러 비용을 따지면 힘들었다

 

어느 시점 부터는 개척활동으로 신규 회원을 모집해야 된다

개인사비로 사은품과 선물을 구입해서 마케팅을 했다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굉장히 힘들었다

 

아내는 임신을 했다

그러나 월급은 점점 더 떨어졌다

50만원까지 떨어진 월급은 더 이상 올리기 힘들었다

나는 보험을 포기하기로 했다

아내에게 너무 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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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살 즈음

가장이란 무게가 내 어깨를 놀렀다

나는 운동화빨래방 창업을 하기로 했다

이때 빨래방창업이 인기가 있었다

 

나는 특별한 기술이나 배운게 없어서 빨래방 창업을했다

그냥 열심히 몸으로 하면 된다고 생각을했다

기존 운영하는 운동화빨래방을 인수했다

권시비 3천만원 보증금 1천만원 월세 60만원이었다

 

우리에겐 큰 돈이었다

아내가 병원에서 알뜰이 모은 재산이었다

아내는 나를 말렸지만 내가 고집을 부렸다

열심히 해서 꼭 돈을 벌겠다고 약속을 했다 ‘

 

인수후 손님들은 점점 늘었다

운동화 한 켤레 세탁비는 4천원이다

아이들 운동화는 3천원이다

 

운동화는 옷하고 달라서 일일이 손으로 세탁을 해야된다

다행히 동네에서 깨끗이 잘한다고 소문이 났다

손님은 계속 늘었다

근처 세탁소에서도 우리집에 맡겼다

알바 아주머니도 뽑았다

중고 오토바이도 구입했다

 

지출을 아끼기위해서 온수기는 설치 하지 않았다

찬물로만 세탁을 했다

겨울에는 손이 시려워 힘들었다

나는 퇴근이 점점 늦어졌다

 

다리와 팔 손목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매출의 한계가 있었다

사람을 더 채용 하는것도 무리가 있었다

아무리 용을 쓰고 열심히 해도 수입 200만원을 넘기기 힘들었다

이러다 몸만 상할꺼 같아서 가게를 내 놓았다

 

한날은 출근 하니 오토바이가 없어졌다

누군가 훔쳐갔다

경찰에 신고는 했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어느 날 아내와 아기 다같이 가게로 출근했다

점심을 먹기 위해 피자를 주문했다

피자가 왔다

계산을 해야 되는데 아내가 가방을 잃어버렸다

아기 짐이 많아서 가방이 있는지 없는지 생각도 못했다

 

아내는 울기 시작했다

아내의 말에 나도 울고 싶어졌다

집에 돈을 두고 나오면 불안하다고 돈을 전부 가방에 넣고 왔다

설상가상으로 아내의 다이아 결혼반지 까지 가방에 있었다

현금과 수표가 1천5백만원 이었다

 

우리의 전 재산이었다

가게 주변을 백방으로 찾아 봤지만 가방은 없었다

경찰에 신고는 했지만 찾기가 어려울꺼라 했다

아내는 경찰의 도움을 받아 근처 시시티비를 조사했다

차에서 떨어진거 같아서 주변 시시티비를 확인한 것이다

그렇게 몇 일을 찾아 다니는 아내가 안스러웠다

 

어느 날 근처 분식점 사장님이 오셨다

 

“ 가방 잃어버린 그날 우리 가게 배달기사가 이상했어”

“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퇴근을 했어”

 

분식점 사장님은 자기 직원을 의심 하는게 내키지는 않지만 말해주셨다

아내는 경찰의 동의를 얻어 아파트 시시티비를 확인했다

 

우리 가방을 찾았다

분식점 사장님 생각이 맞았다

그 직원이 아내 가방을 들고 집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찍혔다

 

그 사람은 우리를 찾아와 무릎 꿇고 울면서 용서 해달라고 빌었다

아내의 가방에서 돈만 꺼내고 가방은 저수지에 버렸다고 했다

가방에는 다이아반지가 있었다

 

결국 반지는 찾지 못하고 돈은 돌려받고 합의를 해주었다

나는 더 이상 빨래방을 하기 싫어졌다

돈이 안되고 몸은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빨래방을 정리했다

헐값에 정리하고 나왔다

 

그리고 빨래방을 정리하면서 나는 손가락 동상을 얻었다

지금도 겨울만 되면 손가락이 끝이 따갑고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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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살 즈음

아내는 집에서 아기를 보고 있고 나는 백수였다

새 직장을 구해야하는데 쉽지가 않았다

나는 한가정의 가장이라 좀 더 좋은 직장을 구하고 싶었다

하지만 학별도 없고 기술도 없어 그런 직장은 못 구했다

지금이라도 기술을 배우겠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티비 프로 생활의 달인 프로를 봤다

젊은 사장님이 운영하는 고로케 가게였다

손님이 줄을지어 고로케를 사먹었다

나는 고로케를 좋아했다

 

방송후 나는 코로케 장사를 하기로 마음 먹었다

먼저 방송에 나온 서울 코로케집까지 찾아갔다

종류별로 다 사먹어봤다

 

고로케 기술이 없는 나는 제과제빵학원을 찾아갔다

몇 달씩 학원 다닐 시간이 없었다

하루 빨리 돈을 벌어야했다

학원 원장님께 다짜고짜 부탁드렸다

 

고로케 만드는 기술만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내 사정을 들은 원장님은 부탁을 들어주셨다

15만원을 내고 고로케 만드는 방법을 배웠다

맛은 흔한 기본 맛 이었다

차후 맛은 보완하기로 했다

 

재료를 구입해서 집에서 매일 연습했다

조금씩 맛을 잡아갔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집에서는 전문점처럼 튀기는게 힘들었다

나는 튀김기가 있는 돈가스 가게에 취직을 했다

그리고 아내도 병원에서 일을 시작했다

어린 아기들은 어린이집에 갔다

마음이 아프지만 우린 맞벌이를 해야 했다

 

나는 주방보조로 일을 시작했다

10시 출근 10퇴근 월급 150만원 이었다

일의 강도는 힘 들었다

우리 동네 최고의 상권에 위치해있었다

 

손님이 많았다

사장님은 내가 고코케 튀기는걸 허락해주셨다

집에서 만든 고로케를 튀겨서 가게 직원들에게 맛을 보여주었다

가게 직원들에게 테스트를 받는 셈이었다

반응은 별로였다

 

나는 더 노력을 했다

일 마치고 집에서 만들고 새벽에 잠들기 일쑤였다

고로케 속을 이것저것 바꿔 보았고 테스트도 많이 했다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머리가 헷갈리기 시작했다

 

가게는 연일 손님들로 넘쳐났다

주말에는 밥먹을 시간도 없이 손님들이 많았다

 

나는 생각했다

이런 돈가스 가게도 괜찬을꺼 같았다

아내와 상의 후 고로케는 포기했다

그 동안 열심히 만든 고로케를 생각하니 허무했다

시간이 아까웠지만 고로케를 만들면서 얻은 것도 많았다

 

나는 직장보다 자영업을 선택했다

작은 돈가스집을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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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살 즈음

나는 가게를 구하려 다녔다

가게는 보통 권리금이 있다

상권이 좋은 곳은 권리금이 너무 비싸다

권리금이 저렴한 곳은 상권이 좋지 않다

좋은 상권은 보증금과 월세가 너무 비싸다

 

나는 변두리에 공실 20평 가게를 얻었다

가게는 집에서 5분 거리다

아이들 케어를 위해 집 가까운곳에 얻었다

새삥 공실 상가를 얻어 공사 하는건 처음이었다

인테리어 주방집기 그릇 테이블 의자 등등...

모든게 돈이었다

 

나와 아내는 보험을 전부 해지했다

임대아파트 보증금 대출도 받았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5천만원을 만들었다

 

전부 빚이었다

가게는 보증금 1천만원 월세 80만원이다

 

우리 아이들 초등학교 졸업할때까지 자리를 잡는게 목표였다

상권이 안좋아서 목표를 길게 잡았다

나는 돈가스에 대한 기술이 없었다

내가 일한 곳은 프랜차이즈라서 기술은 배울게 없었다

당장 난감해졌다

 

오픈을 뒤로 조금 더 미루었다

나는 인터넷 유튜브 티비 방송의 모든 요리프로를 챙겨봤다

돈가스 커뮤니티도 가입했다

나는 돈가스 커뮤니티에서 많은걸 배웠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맛 집들의 비하면 아직 턱없이 부족했다

 

오픈을 더 미룰 수 가 없었다

월세를 내야되기 때문에 오픈을했다

주방보조 1명 홀 알바 2명과 함께 시작했다

 

처음 한달 매출은 900백만원 이었다

시골동네 변두리라 장사가 쉽지 않았다

직원들 월급주고 월세와 재료비 빠지고 각종 공과금 내고나니 160만원 남았다

생각보다 순익이 적었다

하루 15시간 한 달 노동의 댓가로는 별로였다

그 뒤로 매출은 조금씩 떨어졌다

 

800만원 700만원 600만원...

500만원까지 떨어질 때 멘탈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50만원 가져가는 달도 많았다

 

그래도 나는 365일 쉬지 않고 일을했다

육아를 하는 아내한테는 미안했다

쉬는 날이 없어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우선 홀 알바 1명을 내보냈다

매출이 자꾸 떨어지니 메뉴가 하나 둘 늘어났다

식재료도 늘어나면서 재고 관리가 더 힘들어졌다

어떻게든 매출을 올리고자 메뉴를 더 넣어보았다

하지만 일만 많아지고 힘들고 매출은 안올랐다

그러면서 음식의 완성도는 점점 떨어졌다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결국 주방과 홀 알바 모두 내보는 상황까지 왔다

 

그리고 아내에게 도움을 청했다

인건비부터 줄이고 버티기로 했다

아내는 병원 간호사로 일을 하고 있었다

아내는 병원을 그만두고 가게로 왔다

 

이제 더 이상 물려 날 곳이 없다

이렇게 버티다가는 오래 가지 못할꺼 같았다

처음엔 상권이 좋지 못한 탓을했다

남 탓을 하고 싶었지만 내안의 문제인 듯 보였다

답은 뻔한 맛이 아닐까 생각했다

 

내가 만든 음식을 매일매일 먹어보았다

솔직히 맛이 별로였다

고기의 신선도가 일정하지 않았다

메뉴의 구성도 맘에 안들었다

당장 변화를 시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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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살 즈음

가게를 살리기 위해서 매일 걱정이 많았다

먼저 판매부진 메뉴를 삭제하고 메뉴를 줄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신메뉴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메뉴를 줄이고 신메뉴와 메인 메뉴에 선택과 집중을했다

떡볶이소스와 간장소스 두 가지에 공을 들였다

 

이 두가지 소스개발하는데 6개월은 걸렸다

이것저것 사보고 먹어보고 맘에 안들면 버리고 지출이 많았다

간장소스의 경우 국내에서 생산되는 간장은 모두 사먹어 보았다

떡볶이 소스도 많은 샘플링과 시간을 들였다

 

다행히 손님들 반응이 좋았다

매출이 조금씩 오르기 시작했다

 

블로그와 인스타 맘카페에 우리가게가 가끔씩 올라왔다

소스 개발에 돈을 쓸때는 가슴이 떨리고 겁이 났었다

손님들이 맛있게 드셔주시니 너무 뿌듯하다

고기에도 더 신경을썻다

음식은 첫째도 재료 둘째로 재료다

나는 4년을 거래한 고기 거래처를 바꿨다

가격은 더 비싸지만 품질을 생각하면 당연한 것이었다

돈가스 만드는 방법도 변화를 주었다

손님은 조금씩 늘어갔다

매출도 조금씩 올라갔다

이제는 매출도 기복없이 자리를 잡은거 같다

사실 자랑할 만큼 큰 매출은 아니다

소소한 매출이다

우리 4인가족이 먹고사는데 불편함이 없을 정도다

 

이런 변화는 유튜브나 커뮤니티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일할 때 말고는 매일 요리 동영상을 봤다

덕분에 눈 시력이 많이 나빠졌다

 

어느 날 부터는 눈이 너무 아팠다

안과 샘께서 녹내장으로 시력까지 위험하다고 했다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그 뒤로 안과를 열심히 다니고 약을 잘 복용했다

지금은 다행히 많이 좋아졌다

 

눈이 회복되니 가슴과 배에 통증이 자주왔다

가슴은 숨을 쉬기 힘들 정도로 답답했다

배는 소화가 잘 안되고 밥을 먹음 음식이 역류했다

목까지 통증이 올라오고 가슴은 답답하고 힘든 날이 많았다

역류성 식도염이었다

통원치료 3개월 다니며 약을 1년 가까이 복용했다

역류성 식도염은 회복되었다

가슴통증은 아직도 한번씩 찾아온다

 

허리와 어깨 통증이 찾아왔다

어깨에는 석회가 생겼다

물병 같은걸 집어 들어도 어깨가 아팠다

어깨 통증은 견딜만했다

 

허리통증은 너무 무서웠다

매일 통증으로 새벽에 잠을깬다

자다가 깨면 통증으로 더 이상 잠을 못자고 소파에 앉아서 아침을 맞는다

잠을 못자니 매일 피곤하고 의욕이 떨어졌다

5년만에 처음으로 3일동안 가게 문을 닫았다

 

MRI이를 촬영했다

4번5번 디스크가 흘러 나왔다

수술은 안해도 된다고 했다

주사와 척추위생 운동으로 통원치료를했다

매일 퇴근 후 척추위생 운동을 했다

허리 통증이 조금씩 줄었다

 

그런데 무릎통증도 찾아왔다

몸이 여기저기 자꾸 아프니깐 걱정이 되었다

 

나는 가게를 내놓았다

여기 동네 병원에서 치료가 안되면 큰 병원으로 갈 생각 이었다

건강을 먼저 되찾고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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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살 즈음

우리가족 처음으로 1박2일 놀러갔다

10년 만에 놀러가는 것이다

무주스키장으로 갔다

 

딸아이와 아들녀석이 눈을 좋아해서였다

아이들은 신이 나서 하루 종일 뛰어놀았다

설천봉이라는 하얀 눈이 쌓인 산은 너무 좋았다

 

저녁이 되어 예약한 팬션으로 갔다

아이들과 고기파티를 하며 즐거운 밤을 보냈다

나와 아내는 술도 한잔했다

10년만에 가져보는 여유로움이었다

너무 좋은 시간이었다

 

우리는 종일 신이난 아이들을 보면서 눈물이 났다

아빠엄마는 장사 핑계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

잘 참아준 아이들이 너무 고마웠다

 

아내에게도 미안했다

없는 남편 만나 육아와 일에 치여도 내색 없이 참아주었다

 

2020년 2월 19일은 평생 잊지 못할 날이다

우리를 20년 따라다닌 빚이 없어지는 날이다

은행가서 남은 빚을 다 청산했다

세상 다시 태어난 기분이다

 

빚을 청산한 기념으로 우리가족은 외식을 하기로했다

우리가족은 처음으로 아웃백을 갔다

 

나는 아내에게 물어봤다

 

“너는 아무것도 없는 내가 어디가 좋아서 결혼했어?”

 

아내는 대답했다

 

“그냥 오빠는 착실하게 살거 같아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찾아왔다

전 세계적인 재난이다

 

사람들은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이제 겨우 자리 잡았는데 걱정이다

모든 자영업자들이 힘든 시기를 맞았다

 

전국적으로 폐업하는 식당들이 많았다

다행히 우리는 매출이 떨어지지 않았다

 

2차 재난지원금은 자영업자들중 전년도 보다 매출이 떨어진 곳을 지원했다

나는 매출이 조금 올라서 2차 지원금을 받지 못했다

아쉽지만 이 시국에 매출이 오른게 신기하고 고마웠다

꾸준함과 타협 없이 성실하게 운영한 결과로 보여진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코로나로 국민들은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하루 빨리 코로나가 종식되면 좋겠다

 

사실 두려움도 있었다

일은 멈추지 않고 할 자신은 있었다

다만, 건강이 문제였다

 

나는 드라마 “미생”에서 나오는 대사를 좋아한다

 

“니가 이루고 싶은게 있다면 체력을 먼저 길러라”

 

나는 근무 시간을 줄이고 운동 할 시간을 냈다

그러나 전에 아프기 시작한 무릎이 문제였다

왼쪽 무릎이 너무 아팠다

다리를 구부리지 못 할 정도로 아팠다

오래 서있어도 아팠다

 

MRI을 촬영했다

특별한 이상이 없다고 했다

통증이 계속되면 3개월후 무릎 내시경 수술을 해야된다고했다

1주일 간격으로 통원치료하며 약을 1달간 복용했다

물리치료를 매일 해야 되지만 시간 내기가 어려웠다

한 달이 지나도 차도가 없었다

 

어느 날 우리 가게를 인수하겠다는 사람이 왔다

가게가 나가면 나는 건강부터 챙길 생각 이었다

그 분은 가게를 인수했다

 

6년을 애정과 함께한 가게라 아쉽고 아까웠다

하지만 건강이 우선이었다

몸이 회복되면 다시 시작할 생각이다

 

이번에 다른 병원으로갔다

여기 병원에서 안되면 대학병원으로 갈 생각이었다

당장 수술은 안해도 된다고한다

 

우선 주사치료와 물리치료를 하기로했다

1주 2주 3주 4주 정도 지나니 차도가 보였다

무릎 통증이 조금씩 없어졌다

 

아픈 허리도 같이 치료를 했다

내 생각에 90%는 좋아졌다

대학병원까지 가지 않아서 다행이다

 

이제는 건강이 우선이다

돈은 그 다음 문제인거 같다

나는 건강이 허락 할 때 까지 일을 하고싶다

 

아들 딸 사랑한다

 

그리고 고맙소 여보..

 

추천수42
반대수5
베플뿜뿜|2021.01.26 11:07
꼬옥 오래오래 건강하셔서 행복하셔용~ 생각없이 읽다가 순간 울컥도 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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