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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왜 나쁜 일만을 기억하는가.

쓰니 |2021.02.05 11:12
조회 153 |추천 2

사람은 왜 나쁜 일만을 기억할까

 

샤워를 하고 있다가 보면 14살 때가 문득 떠오른다. 고작 18만원에 나를 팔았던 기억이. 물줄기가 머리를 가르고 기억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것 같다.

 

돈이 필요했다. 당시의 나는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우울증을 극심하게 앓고 있었다. 그 탓인지 자존감도 한없이 낮았다. 손목과 허벅지는 자해로 인한 흉터가 가득했다. 내적으로는 그랬고 외적으로는 교내에서 따돌림까지 당하던 상황이었다. 교내 따돌림에 대해서는 엄마께 말씀을 드렸으나 ‘네게도 분명 잘못이 있다. 원인이 없는 결과는 없다. 네가 먼저 다가가서 오해가 있다면 오해를 풀고 사과해라.’라는 답을 돌려받았다. 그 이후로 나는 내 문제를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집은 가난했다. 찢어질 정도도, 굶을 정도도 아니었으나 매번 ‘돈이 없다.’는 푸념 섞인 한탄을 들으며 자랐다. 화장도, 악세사리도, 코스프레 같은 취미는 모두 허락해주었으나, -게임은 끔찍이 싫어하셨다. 한 부모 가정이 된 결정적인 원인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내가 받는 용돈의 한도 내에서였다. 한 달에 받는 5,000원으로는 내 구매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코스프레의 경우는 장비 단가의 시작이 3만원부터였기 때문이다. 그래,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돈이었다. 심지어 아르바이트도 불가능한 나이였다. 그렇다고 취미생활을 포기하자니 거기서 사귄 사람들과 관계가 멀어지거나 끊어지는 게 싫었다. 정말 내 곁에 아무도 없으면 죽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다음 코스프레를 준비하면서 전전긍긍하던 내게 29살의 어떤 남자가 접근해왔다. 당시 유행했던 채팅 사이트에서 연락을 취해온 남자는 돈이 필요하냐는 질문을 했다. 1시간에 10만원, 추가로 몇 만원. 간단한 아르바이트고 준비는 마땅히 할 거 없이 몸만 오면 되는 거라고 했다. 고작 14살 밖에 되지 않은 어린 나는 혹하는 소리였다. 돈도 없고, 가난해서 내게 해줄 수 있는 게 없으니 바라지 말라고 하는 어머니의 아래에서 나 스스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면 뿌듯하지 않을까. 내가 직접 돈을 벌어서 내 취미생활을 한다는 게, 어머니에게도, 당시에 사귀었던 지인들에게도 손 뻗지 않고 온전히 내 힘으로 영위할 수 있다. 그리 생각했다.

그래서 답장을 보냈다.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남자와 나는 번호를 교환했고, 주말의 어느 날 몇 시까지 나오라는 통보를 받았다.

 

남자는 갓길에 차를 세웠다. 계약서 같은 건 없었다. 간식이 가득 담긴 봉지를 내게 내밀었다. 그자의 차를 타고 어딘가로 이동했다. 남자의 집이었다. 내 뒤에 그가 있었고 문이 굳게 닫혔다. 아르바이트에 대해 설명 해줄 테니 간식 먹자. 긴장한 내게 남자는 부드러운 어조로 이야기 하며 술과 과자를 먹였다.

긴장이 조금 풀리고 술이 들어간 상태라 조금 졸려왔다. 그는 내게 옷을 벗을 것을 종용했다. 동시에 손에 지폐를 쥐어주었다. 만 원짜리 열 장이었다. 10만원. 5,000원씩 20개월을 모아야 모을 수 있는 돈이었다. 설날에 세배를 하고 받는 돈 보다도 더 많은 돈이었다. 남자는 설명을 계속 했다. 이런 아르바이트고, 내 또래의 여자 아이들이 많이 한다고. 덜컥 겁이 났으나 이미 나는 그자의 집에 발을 들인 상태였고, 돈을 받아버린 상태였다. 돈을 돌려주면서 그만 하고 싶다는 말을 했더니 지폐를 두어 장 더 꺼내 쥐어주었다. 다 끝나면 여기서 돈 더 줄게. 그리고 여기까지 와놓고 그런 식으로 내빼면 안 되는 거야. 다른데서는 네가 이렇게 돈 받을 수 있을 거 같아? 너희 엄마한테 받는 돈 보다 더 많이 받잖아. 그리고 이미 시작했는데 당장은 못 보내주거든. 도망치면 너 학교에 소문낸다.

겁을 먹었고 동시에 흔들렸다. 끝내고 나면 6만원 더 줄게. 남자는 나를 자신의 침대에다가 눕히면서 속삭였다. 고작 14살짜리 여자애가 어디에서 이런 돈을 만질 수 있겠는가. 심지어 말 잘 들으면 돈을 더 주겠다고 했잖아. 소문은 안 낸다잖아. 끝내고 나면 집에 돌려 보내주겠다고 했잖아. 그래서 시키는 대로 했다. 옷을 벗었고, 몸을 허락했다.

누군가와 처음 입을 맞췄다. 내가 울자 남자는 술을 더 먹였다. 미성년자랑 하는 건 처음이라 떨린다고 했다. 커다란 몸 아래 깔린 채 인형마냥 시키는 대로 해야 했다. 성기를 삽입 하지는 않았으나 내 입에다가 그것을 물렸고, 내 생식기에는 그자의 손가락과 혀가 들어왔다. 그 위로 자신의 성기를 부볐고, 이후에 남자는 내 배 위에다 사정을 했다. 술 때문에 몽롱한 상태라 어떤 기분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고액의 아르바이트가 빨리 끝나기만을 바라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18만원을 받았다. 씻고, 옷을 입고, 남자의 차를 타고 이동했다. 생식기가 가렵고 따가웠다. 쓰라리고 화끈거렸다. 가까운 지하철역에 내렸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틀 동안 열병을 앓았다. 아래가 쓰리고 온몸이 욱신거렸으며 구토를 했다. 이후에도 남자에게 만나자는 연락이 왔으나 나는 온갖 핑계를 대며 그를 피하다가 번호를 바꾸었다.

고작 14살 때의 일이었다.

 

우울증이 호전되지는 않았다. 교내 따돌림에서도 그리 자유로워진 편은 아니었다.

 

2살을 더 먹고 공부를 조금 더 하고, 좀 더 성숙해지고 나서야 내가 14살의 내게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닫게 되었다. 16살 때였다.

다른 반의 친구를 사귀게 되었는데, 그 친구는 이야기를 참 잘 들어주었다. 나는 그 친구를 감정의 쓰레기통 마냥 매번 찾았다. 힘든 이야기, 가난한 이야기, 맞은 이야기, 왕따를 당했던 이야기, 9살 때 성추행을 당했던 이야기 등.

하지 않은 이야기가 없었다. 그 친구는 매번 내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힘들었겠다, 나도 그랬던 적이 있어, 그럴 수 있지’라고 말하면서 나를 달래주었다. 안아주었다. 그 친구가 내 하루하루를 지속해주는 유일한 버팀목이라고 생각했고, 그만큼 기댔다. 그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그 친구에게는 했다. 매일 쉬는 시간이 기다려졌다. 주말마저도 그 친구를 찾았다.

그래서는 안됐는데.

 

내가 하는 이야기에 지쳤는지, 또는 내가 귀찮았던 것인지 명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어쨌든 그 친구는 나를 싫어하고 있었고 어느 날 절교를 선언했다. 동시에 반에서 친하던 친구들과도 멀어졌다. 그렇게 다시 따돌림이 시작되었다.

혼란스러웠던 나는 친했던 반 친구 한 명을 불러내서 왜 나를 싫어하게 되었느냐고 질문했다. 그냥 네가 싫고 말도 섞기 싫고 꼴 보기도 싫으니까 죽어서라도 사라지라는 답을 돌려받았다.

그날 학교에서 자살기도를 했다. 교내 화장실에서 손목을 그었다. 세포벽이 드러날 정도로 힘을 줬으나 정맥밖에 끊지 못했다. 동맥을 끊을 정도로 내게는 강단이 없었던 것도 같다. 자살은 실패했고, 학교는 발칵 뒤집혔다.

손목 수술을 하고 다음날 등교했다. 시선이 따갑게 느껴졌다. 저마다 쑤군거리기도 했고, 쉬는 시간에는 다른 반 아이들이 나를 구경거리 삼아 찾아오기도 했다.

 

내 이야기를 모두 들었던 그 아이는 내 모든 이야기를 퍼뜨렸다. 3학년 전교생이 280명 정도 있었는데 모든 아이들에게 ‘18만원에 몸 판 창년’이라는 소문이 나 있었다. 하루아침에 말이다. 내가 학교에서 자살을 시도했던 이유가 그 탓이라고. 아닌데, 그거 아닌데. 나는 손목에 감고 있는 붕대 겉면의 테이프를 긁었다. 출석 시간과 수업 시간 때문에 조퇴를 할 수도 없었다. 전날, 그러니까 자살 소동이 있었던 날 내게 폭언을 했던 선생님이 나를 불러 사과했다. 사실 뭐라고 했는지 기억도 안 난다. 선생님 때문에 그런 거 아니라고, 나는 괜찮다고 했다.

다행이도 반 친구 중에 정의감이 남은 아이가 하나 있었다. 그 친구는 내 손을 잡고 함께 교무실로 향했다. 아이들 사이에서 이런 소문이 돈다고, 주임 선생님이 그 소문의 근원지를 찾아서 얘한테 사과시키라고. 주임 선생님은 얘 아끼지 않느냐고. 매번 칭찬하고 부르고 간식도 주지 않았느냐고. 그런데 왜 지금 모르는 채 하고 있느냐고.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얘는 어제 자살 시도 했던 애라고. 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느냐고. 나는 우는 것 밖에 하지 못했다. 범인은 내가 알고 있는데.

 

다음날 점심시간 때였다. 주임 선생님은 나를 불렀고 전날 나대신 화를 내준 친구는 나를 따라 함께 교무실로 이동했다. 주임 선생님은 나를 보면서 얼굴 표정의 변화 없이 이렇게 이야기 했다.

“범인은 잡았는데, 걔도 너한테서 들은 얘기라고 하더라. 그리고 비밀이라고 한 명한테만 말했는데 일이 이렇게까지는 커질 줄 몰랐다고, 미안하다고 전해 달라 그러네. …그리고 네가 평소에 책을 많이 읽기도 하고, 상상력이 풍부하기도 하잖니. 혹시 네가 은연중에 그런 말을 했던 건 아닐까?”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이렇게 이야기 했다. 웃는 낯짝으로. 옆에서 반 친구가 목소리를 높였다. 선생님 지금 장난치세요? 나는 네게 말한 게 아니라 얘한테 물었다. 주임 선생님은 그 아이의 말을 끊었다. 나는 허탈함에 웃음이 나왔다. 그래서 그냥 알겠다고 했다. 왜 악의적으로 내 소문을 낸 아이를 직접 데려와 사과시키지 않는지는 굳이 묻지 않았다.

명문여중으로 소문 난 학교였기 때문에 학교 이름에 먹칠하기 싫었던 거겠지. 이때가 10월쯤이었다.

 

엄마에게는 수치스러운 딸이 되었다. 학교에서는 18만원에 몸 판 창녀가 되어 있었고, 선생님들 사이에서는 정신병 가지고 사건을 크게 일으킨 문제아로 낙인 찍혔다. 그렇게 겨울 방학이 될 때 까지 억지로 학교를 나갔다. 2개월의 시간은 지옥 그 자체였다.

 

샤워기의 물을 잠갔다. 벌써 10년이나 지난 일인데 아직까지도 떠오른다. 그 누구에도 말한 적 없지만 아직까지도 내 머릿속을 헤집어 놓는 일이. 왼쪽 손목이 욱신거렸다. 언젠가는 타투로 가릴 예정인 흉터가 자리하고 있다.

왜 한 번 떠올리게 되면 기억에 기억이 꼬리를 물고,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나타나는 것인가. 왜 사람은 나빴던 일을 더욱 잘 기억하는 것인가.

왜 나는 아직도 10년 전의 이 날에서 벗어나지를 못 한 것인가.

아무도 몰랐으면 하지만 누군가는 알아주었으면 하는 일. 나빴던 일. 계속해서 떠오르는 일.



그래서 썼다. 내 일이 아닌 것처럼.

+) 혹여 이 글을 본 누군가가 나를 특정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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