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태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았던 걸 털어놓고 싶어 처음 들어와봅니다 털어놓지 않으면 평생 속에 돌덩이처럼 들어앉아 병이 될 것 같고 제 스스로를 가스라이팅할 것 같아 쓰는 글입니다 어쨋든 극복해서 다소 안정적으로 살고 있는 상황에 굳이 주변인에게 털어놔 지속적으로 애매한 동정은 받기가 싫어서 이렇게나마 말해봅니다
저는 부정적인 어머니와 이상적이고 무책임한 아버지 아래에서 자라났습니다 두 분 다 다혈질이셨어요
저는 외국에서 태어나 유치원 시기까지 그 나라에서 살았고 한국어와 그 나라의 언어 둘 다 애매하게 유창하지도 어눌하지도 않게 구사할 수 있는 수준이었습니다 다만 집에선 한국어를 사용했기에 또래와 스스럼 없이 어울리기엔 언어 구사력이 부족했고 저에게 소통이 가능한 사람은 부모님 뿐이었습니다 부모님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제게 헌신적이셨습니다 다만 그 시기엔 두 분이서 많이 싸우셨습니다 제가 들어선 안 될 말도 많이 들었고 저는 사이에서 눈치를 보기 바빴습니다 그리고 불안해서 큰 소리로 울려고 하면 컴퓨터와 기계나 책만 쌓여있는 창고 방에 가둬두었습니다 그렇다고 헛간 같은 비상식적인 공간은 아니었지만 저는 점점 울 때마다 흥분도가 높아졌고 특정 공간에 들어가있을 때 갇힘에 대한 공포를 갖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한국에 돌아와서였습니다 이상적이신 아버지는 원하는 직장에 계속 문을 두드린다는 명분으로 무려 5년간 직업 활동을 하지 않으셨고 그렇다고 어머니께서 일을 하게 허락하지도 않았습니다 아버지 본가의 지원을 받아야 했고 그 이유로 어머니가 시가에서 구박을 당할 때마다 방관했습니다 제가 목격한 것은 아니지만 저를 혼전임신한 어머니를 꽃뱀 취급했던 집안이니 대우가 뻔했죠 사실 어머니는 예상치 못한 임신에 낙태를 생각했고, 아버지가 달콤한 거짓말과 미래에 대한 보장으로 결혼을 승낙하게 된 거였는데 말이죠
아버지는 본인의 무능함(사회의 기준에서)을 자각하시면서 스트레스를 받으셨을 거고 어머니는 그 상황에서 늘 우울감과 무기력감에 시달리신 것 같습니다 당시만 해도 학교에서 학부형끼리 집안 형편과 성적으로 은근히 비교를 하던 분위기였습니다 어머니는 저의 성적에 집착하셨고 저는 시험에서 전과목에서 한 문제를 틀려도 이유 없는 실수라는 것을 트집 잡혀 혼나고 하루를 굶어야 했습니다 시험을 잘 보면 무얼 해주겠다는 약속은 초3 때 딱 한 번 한 적이 있었는데 지켜지지도 않았고 저는 그 때 어머니와 아버지가 유유상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늘 집안에선 이혼하네 마네 싸움하고 서로 소리를 지르거나 욕을 하는 소리가 난무했고 저는 방 안에서 혼자 욕을 중얼대며 겨우 그걸 버텼습니다 안 그러면 뭐라도 집어던질 것만 같았거든요 그러면서 제 성적에 집착하고 절 감정 없어 보이고 매정한 정 안 가는 기집애라고 지칭하는 어머니를 보면서 저는 가끔 치밀어오르는 폭력성에 자책해야 했습니다 저를 혼내다가 격앙되면 싸대기와 머리채는 기본이었고 옷걸이로 맞아 멍이 들어 반팔을 못 입은 적도 있습니다 제 목을 조르고 발광하며 울면 옷장에 가둬 나오지 못하게 막아뒀어요 지금도 다시 생각하면 제가 집에서 망치로 가구들을 다 부수지 않은 게 용합니다
중1이 되어서야 조금이나마 압박에서 벗어났고 저는 스스로 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부모님에 대한 원망도 있었지만 뭣같은 상황에서도 제 미래를 위해 지원해주는 부모님에 대해 감사했습니다 그 이유가 저에 대한 부성 모성인지 자신들의 자격지심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쨋든 절 위해 투자해주신 건 사실이니까요 그래서 전 나름 열심히 공부도 하고 좋은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스펙을 쌓으려고 동아리와 외부 동아리 활동까지 알아서 열심히 했습니다 근데 그런 외부 동아리 활동마저도 시간 낭비라며 저를 야단 치고 구박했고 저는 밖에서 최선을 다하며 스스로 쌓아놓은 자존감을 집에서 다 깎아먹어야 했습니다 유일한 스트레스 돌파구가 운동이었는데 그 문제로도 몇 번을 싸웠는지 모르겠고 또래와 비슷한 문화를 조금만 공유하려고 해도 저를 양아치로 매도하더군요 전 제 미래를 위해서라도 술담배에 손대거나 삐뚤어질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말입니다 사회생활 없는 우물 안의 개구리들이 바깥 세상 아이들 문화를 이해할 수도 없었겠죠 전 여전히 손찌검을 당했고 별 쌍욕과 저주를 들어야만 했습니다 방 안 서랍에 늘 커터칼과 과도를 넣어뒀어요 또 목이 졸려 정말 죽을 것 같으면 차라리 다 같이 죽자 싶어서요
고등학교 때부턴 그냥 서로 담을 쌓고 지냈습니다 서로 싸우지도 않는 대신 관심도 최대한 끄고 지내려고 노력했어요 늘 저에게 부모로서 바라는 게 많으셔서 저도 어떻게든 노력해보려고 했습니다 나는 과거의 상처가 여전히 아물지 않았고 당신들은 지금 내가 힘든 게 어른에 비하면 초라한 거라 치부할지 몰라도 내가 당장 죽을 것 같은데 부모라면서 왜 늘 무시하냐 냉소적이고 회의적인 부모님 밑에서 내가 미칠 것만 같으니 제발 그런 태도를 바꿔달라 얘기했어요 그러면 늘 어쩔 수 없다면서 당신이 살아온 힘든 얘기를 꺼내고 우시거나 화를 내시더라고요 저는 그 때 그 분들을 포기했습니다 아 이 사람들은 결국 나를 본인들과 같은 진흙탕에 끌어내리겠구나 싶었어요
성인이 되서 빨리 독립하고 싶은 생각에 온갖 알바를 다했습니다 호프집 알바를 끝내고 집에 들어가면 12시 반 정도 되었어요 독립도 허락하지 않을 것 같고 알바한다고 하면 또 돈을 제대로 모으지 못할 것 같아서 알바한다고 말하지 않고 몰래 일해 돈을 모았습니다 그런 제게 늦게까지 뭐하냐며 이상한 일 하는 애처럼 취급했고 제가 당신들 때문에 정신적으로 피폐해지는 걸 알면서도 절 다그쳤습니다 결국 어느 날 아버지가 휘두른 가방에 맞아 이마가 뼈가 드러날 정도로 찢어져 꿰맸고 아직도 그 부위가 욱씬거립니다
솔직히 전 아직도 어머니 생각하면 안쓰럽기도 합니다 여린 분이세요 눈물도 많고 정도 많습니다 어머니도 집에서 사랑 받지 못하고 자란 딸이시고 겨우 결혼해서 얻은 가정까지 그 모양이었으니 맨정신으로 끝까지 버티시기 힘드셨겠다 생각이 듭니다 꽃을 보고 예쁘다 말할 줄 모르는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꽃을 돌아볼 정신적인 여유조차 없던 분이셨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도저히 용서가 되질 않습니다 솔직히 가장 근저가 되는 중요한 시기를 저렇게 만든 장본인들이 너무 원망스럽고 증오감이 치밀어요 애증에서 애에 증이 맞먹습니다
제가 부모님과 연을 이어가는 게 맞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