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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고통(빙의,신병)에서 벗어나 평범한 일상을 누리기까지...

풀꽃 |2021.03.03 20:51
조회 835 |추천 0

영적 고통(빙의, 신병)에서 벗어나 평범한 일상을 누리기까지..

 

2011년 11월 초..

학교 졸업을 앞두고 여유로운 일상을 보내던 중 중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내던 친구 집에 가서 자주 얘기도 나누었는데 그 친구는 사실 영적으로 아프고 신기가 있어서 무당에게 눌림굿을 받던 친구였다. 그 친구가 힘들 때 같이 무당집에도 따라가 주었다. 그러다보니 그 친구가 어떻게 아픈지 증상도 듣곤 했는데 영이 침범하면 머리가 멍하고 제 정신이 아닌 것 같고 머리가 너무 아프기도 하다는 말을 안타깝고 무서운 마음으로 들었다. 사실 그 친구를 따라 무당집에 갔다와서도 머리가 너무 아파서 겁이 나기 시작했고, 어느 날 그 친구집에 놀러가서 친구네 방에 앉아있는데 갑자기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기 시작했다. 친구네 집에서 미리 뜯어놓은 눅눅한 과자를 먹고 오기도 했다. 그 후로 집에 돌아와서도 머리가 멍하고 깨질 듯이 아프기 시작했다. 그 날부터 머리가 갑자기 멍하게 되다가 프레스로 압착하듯 깨질 듯이 아프기 시작했다.

 

‘설마...’

 

나는 그 친구가 영적으로 아프던 증상이 나한테도 오는 것은 아닐까 너무 겁이 났다.

 

‘자고 나면 괜찮겠지..’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열흘이 지나도 증상은 계속 되었다. 내과에 가서 두통약도 처방받아 먹어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친구집에 가서 먹었던 과자 때문에 객귀가 들렸나해서 어머니께서 객귀물림도 해주셨다. 어머니가 든 식칼이 내 머리 위를 쓸어내리실 때 무언가 벗겨지는듯한 느낌이 드는가 싶더니 객귀물림을 끝나고 다시 침대에 눕자 또 내 몸으로 무언가 들어오는 느낌이 났다. 그리고 밤에 잠을 잘 수가 없게 되었다. 몸은 너무 잠을 원해서 자고 싶어서 잠이 들려고 하는 순간 어떤 보이지 않는 기운이 깨웠다. 믿지 못하겠지만 이렇게 밖에 설명할 수가 없다. 그리고 그 기운은 내 잠을 깨우고 내 정수리로 들어오려는 듯한 느낌, 나를 공격하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너무 무섭고 두려워서 그런 느낌이 들면 내 머리에 온 힘을 줘서 그 기운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내 영혼을 잃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머리에 주었다. 그렇게 밤새도록 기운과 싸우느라 잠 한 숨 자지 못했다. 아침이 되고 한낯이 되어서야 그 기운이 공격을 멈추어서 나는 조금 눈을 붙일 수 있었다.

 

잠들지 못하는 날들이 계속 이어졌다. 낯에는 잠깐 눈을 붙이고 밥도 안넘어가고 멍한 채 일상생활을 하다가 밤이 되면 잠들지 못하고 기운과 밤새도록 싸워야 하니 나는 잠자리에 누울 수도 없었다. 잠자는 것을 포기하고 컴퓨터로 빙의와 신병을 검색하면서 어떻게 하면 이 고통에서 벗어날지 검색만 하였다. 광고만 무성할 뿐 함부러 믿을 수가 없었다. 광고만 믿고 갔다가 돈만 잃고 증세는 나아지지도 않고 더 심해졌다는 사람들의 글도 보았다. 친구와 함께 따라갔던 무당집에 가야할까.. 생각도 해보았다. 사실 친구 따라 갔던 무당집에 가서 친구 옆에 말없이 조용히 앉아있었을 때 그 무당언니가 나를 보면서 지나가듯 한 마디 툭 던진 게 생각났다.

 

“너도 나중에 여기 오게 될 거야.”

그 말이 생각났다. 친구에게 연락해볼까도 생각했지만 그럼 그 친구처럼 정기적으로 눌림굿을 받으면서 평생 살아야 하나 생각하니 그럴 수도 없었다. 혹시 나에게 굿을 하게 하려고 나를 아프게 한 건 아닐까 그런 생각까지 나기 시작했다. 친구에게 말할 수 없었다. 그 무당언니에게도 가기 싫었다.

 

어머니께서도 내가 대학 졸업을 앞두고 갑자기 원인 모를 고통을 겪게 되고 취업 준비도 못하고 폐인처럼 살게되다시피 하자 어디든 수소문하여 빙의나 신병을 고친다는 곳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퇴마 하실 수 있는 목사님 계시다는 교회를 갔다. 한밤중에 찾아간 터라 목사님은 안계셨고 목사님 사모님이 계셨고 내 눈빛을 보더니 영에 씌인 눈빛이라고 하셨고 나를 기다리게 하셨다. 그 날은 교회 신도 분들이 노래와 악기 연습을 하는 날인 것 같았다. 교회의 예배 슬라이드도 보고 찬양도 들었다. 1시간이 넘어도 합창과 악기 연습만 계속되고 나는 계속 기다렸지만 목사님께서 바쁜 일정이 있으신 것 같았다. 나는 그 곳에 있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웠고 얼른 여기를 나가고 싶었다. 여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와 어머니 지인 분에게 얘기해서 그 곳을 나왔다.

 

그 다음 날은 어느 주택가에 있는 절에 갔다. 그 곳에는 비구니 스님이 계셨는데 나를 보더니 귀신병에 들렸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떤 걸죽한 액체를 가져오더니 마시라고 하셨다. 그리고 내 몸을 여기저기 문질러도 주셨다. 기를 넣는다고 하셨는데 느껴지지는 않았다. 비구니 스님께서 나에게 절에서 살라고도 하셨다. 절에서 빨래도 하고 청소도 하면서 자기랑 같이 지내보자고 하셨다. 그 걸죽한 액체를 마시고 온 그 날 밤 조금 공격이 덜한 것 같아서 그 곳을 한 번 더 갔다. 그 걸죽한 액체를 또 마셨고 그 분이 몸을 한 번 더 문질러 주셨지만 두 번째 밤에는 다시 그 공격하는 증상이 여전히 똑같아서 그 곳을 가지 않았다.

 

그리고 또 그 다음에는 영천의 산신 할아버지와 용왕님을 모시고 있는 어느 할머니를 찾아갔다. 나처럼 영적으로 아픈 사람을 고쳐준 적도 있는 할머니라고 했다. 산 아래에 돌에 조각된 산신님과 용왕님 상이 있고 그 앞에 각각 동그란 돌들이 놓여있었다. 사람들이 산신님과 용왕님께 물어보고 싶은 것을 물어보고 돌을 들어본 다음 그 돌이 들리지 않으면 소원이 이루어지고 그 돌이 들리면 소원이 이루어지지 못한다고 하였다. 산신님과 용왕님 상 옆에는 미륵부처님 상이 계셨고 그 아래 편에 신장님을 모시는 곳이 또 있었으며 산 위에 또 두 분의 신을 모신다고 하였다. 나는 그 할머니에게 내 증상을 설명드렸다. 신기 있는 친구 집에서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고 과자를 먹기도 했으며 그 후부터 머리가 멍하고 머리 위에 알 수 없는 기운이 느껴지며 들어오려고 공격하고 밤에 잠도 잘 수 없는 이야기들을 했다.

 

그 분은 친구 집에서 음식을 잘못 먹어서 내가 주당에 걸린 거라고 말씀하셨다. 나를 뒤돌아 앉게 한 후 등을 손바닥으로 치면서 문질러 주셨는데 어떤 맑은 기운이 머리 끝부터 몸 전체에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제 괜찮을거라고 하셨고 시집 가서 잘 살라고도 하셨다. 나는 고맙습니다 말씀드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제 정말 괜찮은건가 하면서 침대에 누우려는 순간 또 그 알 수 없는 기운이 다시 내 머리로 공격해들어오는 느낌이 났다. 어머니께서 그 할머니께 전화를 해서 상황을 말씀드리기 시작했고 그 분이 양밥하는 방법을 설명해주셨다. 어머니께서 마른 북어 한 마리를 구해와서 내 몸과 머리 위를 쓸어내고 그 북어를 바깥에 버리기도 하셨다. 그렇지만 증상은 똑같았다. 다시 그 할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그 할머니께서 산신님과 용왕님께 3시간을 기도드렸는데 괜찮아질거라고 하시면서 내일 포도주와 약간의 과일을 장만해오라고 하셨다. 그 다음 날 그 할머니께서 상을 차리신 후 산신님과 용왕님 앞에서 절을 올리고 그 할머니께서 말린 북어로 내 머리와 몸을 쓸어내어 주셨다. 산신 할아버지와 용왕님께서 해결해주셨으니 이제 진짜 괜찮을거라고 하셨고 나는 고맙습니다 인사를 하고 어머니와 함께 차에 탔다. 차에 타는 순간 다시 그 기운이 공격하면서 내 몸으로 들어오는 느낌이 나자 나는 울음을 터트렸다. 나와 어머니는 차를 다시 세워두고 할머니 계시는 곳으로 들어갔다.

할머니가 어두운 얼굴로 나에게 말씀하셨다. 여기가 산신님, 용왕님, 높은 신들이 계신 곳이라 귀신이 감히 여기 올라올 수 없다고. 머리 위에 기운이 정말 느껴지냐고 놀란 듯이 물어보셨다. 나는 머리 위에 기운이 느껴진다고 말씀드렸다. 그 분은 내가 주당이 아니라 신병이라고 하셨다.

집으로 돌아왔고 증상은 계속 되었다. 그리고 낮에 산신님 용왕님 앞에서 나에게 북어로 쓸어내려주시는 일을 해주신 후 그 분께서 밤새도록 몸이 아프셨다고도 했다.

 

나는 불교카페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나는 포기할 수가 없었다. 나는 신내림을 받고 무당이 될 수는 없었다. 내가 겪는 이 지독한 고통이 나 하나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대물림되는 고통이란 것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 나이 26살. 신내림 받고 무당이 될 수는 없었다. 흔히 무당을 신의 제자되는 길이라고 한다. 평생을 신이 시키는대로 복종하면서 내 인생을 저당잡힐 수는 없었다.

사실 산신할머니 모시는 할머니를 찾아갔었을 때 산신님과 용왕님 옆에 계시던 미륵부처님 상이 떠올랐다. 나는 산신님과 용왕님께 내 문제를 말씀 드렸지만 왜 산신님과 용왕님께 빌어야 하나. 미륵부처님이 더 높으신 분 아닌가. 나는 산신님과 용왕님이 아니라 미륵부처님께 의지하고 싶었다. 저 분은 해결해주실 수 없는가. 산신님과 용왕님께 내 문제를 빌면서 그 생각을 자꾸 했던 기억이 났다.

그리고 대학교 때 우연히 도서관에서 읽었던 김형경 님의 소설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에 보면 주인공 세진에게 영적 장애가 발생한다. 귀신들이 보이고 몸이 아프기 시작한다. 세진은 절의 법당에서 법사님에게 구병시식으로 영적 문제를 해결하는 장면이 있었다. 그 장면에서 법사가 세진에게 와있던 귀신(영가)에게 이야기한다. 음식을 차려놓고 먹게 한 다음 귀신을 위로하면서 신장님 따라 좋은 곳에 가라구. 여기에 있으면서 저 세진 보살을 괴롭히면 안된다고 호통치는 장면이 나오는데 나는 그 장면을 떠올리면서 나도 소설의 주인공처럼 불교적 방법으로 해결해야된다는 확신이 들었다. 왜냐하면 다른 곳에서는 퇴마를 한다. 귀신을 붙어있던 사람의 몸에서 힘으로 쫓아내기만 하기 때문에 그 귀신은 갈 곳이 없고 배고프고 고통스러워서 또 다시 사람의 몸으로 붙게 되어 재발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퇴마가 아니라 천도를 한다. 귀신을 쫓아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곳으로 떠나가게 한다. 따라서 귀신의 고통까지도 가엾이 여기고 좋은 곳으로 보내주는 것이 불교의 천도이기 때문에 다시 재발할 여지가 없다. 나는 불교로 가고 싶었다. 신의 제자가 되어 그 신에 예속되어 평생을 복종하며 사는 것이 아닌 부처님 제자가 되고 싶었다. 지독한 신병을 앓았지만 신을 받지 않고 무당이 되지 않았으며 부처님께 귀의하여 스님으로 살고 있는 분의 책도 읽었다. 불교카페에 올린 내 글에는 손처사라는 사람을 찾아가보라는 댓글이 달렸다.

 

나는 손처사님에게 메일을 보냈고 나는 그 분의 공부방으로 갔다. 그 분은 힘든 일이 있는 불자들에게 기도를 시켜서 문제를 해결하게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 분은 먼저 나에게 불정심 관세음보살 모다라니 사경집 일곱 권을 주면서 하라고 했다. 집에 와서 모다라니 사경집을 쓰는데 머리 위의 기운이 나를 휘감는듯하면서 어지러운 느낌이 들었다. 무서웠지만 사경집을 계속 썼다. 그날 밤 나는 잠을 잘 수는 있었지만 머리 위에 기운은 늘 느껴졌고 나를 공격하는 증상은 여전히 일어났다. 그 분 공부방에 아침 10시까지 가서 예불에 참석하고 아침 공양을 하고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모다라니 사경하고 손처사님 찾아오는 내담자 손님이 있으면 손처사님 시봉하고 돕는 일을 하는 보살과 함께 나를 손처사님 옆에 같이 앉게 해서 손처사님 상담하는 모습을 보게 하였다. 손처사님이 상담하는 모습을 보게 하는 것은 말씀은 하지 않으셨지만 나를 그 분의 제자로 삼으시려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기 왔지만 제자가 될 생각은 없었다.

 

그렇게 한 달을 그 분의 공부방에 가다가 인터넷 블로그를 통해 다른 처사님을 알게 되었다. 그 분은 나에게 지장보살본원경 독경 기도를 권하셨다. 방생도 해보고 법왕정사에 가서 절하는 방법도 제대로 배우고 가까운 사찰에 가서 도량 청소도 하면서 무료급식 봉사활동도 하며 복도 쌓으려 노력했다. 지장보살본원경을 독경한 후에도 밤에 잠은 잘 수 있었지만 머리 위에 기운은 늘 느껴졌고 기운이 나를 공격하는듯한 증상도 일어났다. 2년 동안 지장보살본원경 500독을 넘게 했지만 특별한 꿈도 꾸지 못했고 영가(귀신)천도 되는 꿈은 꾸지 못했다.

 

나는 답답한 마음에 내 전생에 무슨 죄가 있어 이런 고통을 받는지.. 원인이라도 너무 알고싶어서 제주도의 도가 높고 수행을 많이 하신 대각심 할머니라는 분도 찾아갔다. 그 분도 젊은 시절 신병이었는데 부처님께 귀의해서 열심히 수행을 하셔서 도가 높아지신 분이라고 했다. 전생도 보실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대구에서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에 찾아가서 그 분을 뵈었는데 전생을 여쭸더니 그런건 물어서는 안된다고 혼이 나고 돌아왔다.

그리고 전생을 읽으신다는 유명한 분도 찾아가보았다. 내 전생은 독일의 수녀였다고 했다. 그렇지만 빙의나 신병은 아니라고 했다. 전생은 읽으실 수 있는 분인 것 같았지만 영안은 없으셔서 그런가보다 했다.

 

그러다가 깊은 산 속에서 주로 수행하시면서 수행력이 높고 천도재로써 나같은 빙의나 신병에 걸린 사람들을 잘 고치신다는 큰스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분이 집전하시는 천도재에는 석가모니불, 아미타불, 대세지보살, 지장보살, 관세음보살께서 모두 밝은 빛의 형태로 내려오시어 좌정하시면 이 불보살님들께서 영가님들에게 빛을 비추시면 빛에 말려서 올라가듯 순식간에 천상으로 천도된다고 하셨다. 그리고 불법을 수호하시는 호법신장님들도 빛의 형태로 내려오셔서 함께 치유작업을 하신다고 했다. 또한 천도재 때 불보살님이 좌정하시면 너무 엄숙하여 목탁 두드리고 염불하며 경전읽는 것 말고는 다른 작은 행동도 하기 힘드시다고 하셨다. 영가천도는 천도의 대상이 되는 중생은 업이 많은 중생이라 욕계, 색계, 무색계의 천상 중 욕계하늘로 가신다고도 하였다. 아무리 센 무속의 신도 불보살님들의 힘으로 천도시키고 신병, 무병, 빙의를 앓는 사람들의 어려움을 해결하시는 분이라고 들었다. 실제로 신을 8번이나 받은 무속인 분도 그 신들을 천도 시키시고 무속인 생활을 그만 두게 할 정도로 법력과 수행력을 갖추신 분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 분이 계신 사찰로 어렵게 수소문하여 찾아갔다. 인상이 매우 인자하시고 눈빛이 맑으셨다. 그 분과 찻상을 가운데 두고 앉았는데 편안한 기운이 느껴졌다. 긴장한 나에게 커피도 손수 타주셨고 내 이야기를 들으시고는 큰스님께서 눈을 감고 관을 하시더니 내가 아프게 된 원인은 나의 외가 쪽 윗대에 쪽진 머리를 하신 할머니가 보이시는데 그 분이 뱀을 죽였는데 그 뱀이 보통 뱀이 아니라 터를 지키는 터신이었다고 하였다. 나에게 그 터신이 와있다고 하셨다.

 

‘터신이었구나. 터신...“

이제야 그 알 수 없는 기운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친구 집에서 먹은 과자 때문이었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친구 집에 가서 아프게 된 것이 아니라 터신이었다. 원인도 모르고 아무 이유도 모르고 당한 지난 날들이 스쳐갔다. 당해도 원인이라도 제발 알고 싶었던 심정..

 

 

 

약속한 천도재 날..

천도재는 나의 친가와 외가 각각 1시간 30분씩 걸려서 천도재가 진행되었다. 나의 터신은 외가쪽 조상님이 살생한 업보이지만 만약 친가에도 못가신 조상님이나 지옥에서 고통받고 계신 조상님이 계시다면 또 자손의 몸을 빌어 오실 수 있기 때문에 나의 양가 조상님들 모두 좋은 곳으로 보내드리는 천도재를 지내야 한다. 천도재 지내려고 법당에 들어갔는데 너무 긴장이 되고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불상을 올려다뵈니 부처님께서 다 잘될거라는 듯이 빙그레 웃으시고 계셨다.

 

천도재를 지내러 아버지께서 함께 참석하셨고 큰스님께서 염불을 하시면 뒷자리에서 나와 아버지가 절을 계속 하였다. 조상님들이 내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모두 오셔서 나와 아버지를 보고 계신다 생각하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부디 좋은 곳 가셔서 고통받지 마시고 평안하시길 빌었다. 내 몸에 있던 터신님도 이제 그만 원한을 풀고 좋은 곳으로 가시라고도 빌었다.

 

천도재 지내던 중에 계속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친가 천도재 1시간 30분이 지나고 외가 천도재 1시간 30분이 끝난 후 큰스님께서 나를 법당 한가운데로 부르셨다. 큰스님께서는 나의 배와 등을 강하게 쓸어올리시는 것을 계속 반복하였고 나는 헛구역질이 나왔다. 헛구역질은 몇 분간 계속되었고 헛구역질을 마치자 나는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천도재를 마치고 큰스님께 감사하다고 고개 숙여 인사를 드리자 큰스님께서는 부처님께서 하신 일이라면서 부처님께 공을 돌리셨다.

 

천도재 지내고 난 후에 며칠 지나고 꿈을 꾸었는데 어떤 스님께서 생강을 깎고 게셨다. 그리고 생강을 나에게 주시면서 먹으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 생강을 나는 넙죽 받아먹으면서 꿈에서 깨었다. 큰스님께 꿈이야기를 말씀드렸더니 생강은 귀신이 싫어하는 것이라고 그걸 스님이 주셔서 받아먹었으니 내가 낫는 꿈이라고 하셨다. 그 후로 나는 다시 그 전처럼 그 기운으로 인해 고통받지 않고 아프지도 않고 밤에 잠도 잘 자고 밥도 잘 먹고 평온하고 감사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보육교사로 취업도 하였고 현재 어린이집 교사로 일하고 있다. 집안도 잘 풀려서 아버지께서 승진도 하시고 집 안에 우환이 없게 되었다.

 

실제로 천도재를 지낸 후에 많은 좋은 일이 있고 변화가 생긴 사례도 직접 들었다. 꿈에 조상님이 좋은 모습으로 나타나셔서 고맙다고 자손에게 삼배도 하셨고 전국에 천도재 잘한다는 절은 다 다니면서 천도재를 지내봤지만 천도재 지내고 조상님이 꿈에 나타나셔서 고맙다고 꿈을 꾼 적은 처음이라고도 하셨고 무속인 생활을 하다가 그 생활을 청산하고 평범한 일상을 보내시는 분도 계셨다.

 

신병, 무병, 빙의와 같은 영적 고통을 겪어본 사람들이라면 안다. 믿을 수 없지만 고통이 심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실재로 존재한다는 것을 믿을 수 밖에 없게 된다는 것을.. 보통은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신내림이란 것을 받게 되지만 생각해보면 나를 고통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가 있다면 그것을 극복할 수 있게 도와주는 존재도 어딘가에 틀림없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신병을 앓거나 영적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눌림굿을 받거나 신내림을 받지 않고 종교에 의지하여 이겨내는 사람들도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 자신의 기도의 힘이 약하거나 신이 강한 경우라면 이겨내기가 힘이 든다. 그래서 수행력 깊고 법력이 높으신 분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경우가 생기는데 그런 분을 만나는 것이 너무 어렵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렇지만 신내림을 받아 무당이 되는 것은 죽기보다 싫었고 부처님께 의지하여 복을 쌓고 지장보살본원경 500독 넘게 한 공덕이 해결할 수 있는 인연을 만나서 터신을 해결하고 더 이상 고통받지 않고 감사한 일상을 보낼 수 있게 된 것 같다.

 

부처님 그리고 큰스님 정말 감사합니다.

세세생생 크신 은혜 잊지 못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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