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이모가 한명 있었다.
어린시절 우리 이모는 우리 집에 살았다. 지금이야 드문일이지만 그 시절엔 상경한 동생을 집에 들이는 상황은 꽤나 빈번한 일이었다.
어린시절 이모는 참 아름다웠고 조카였던 나를 어찌나 이뻐했는지 서른이 넘은 지금에서 드문드문 기억나는 유년기에 기억엔 언제나 이모가 함께였다.
당시는 연애중이었던 이모부와의 데이트에 기어코 따라나가 공원에서 놀았던 기억
성남 상대원의 한 성당에서 올렸었던 이모의 결혼식
10평 남짓한 이모의 신혼집에 밥먹듯이 놀러가던 어느날 저녁 처음 먹어본 광어회까지
나의 어린시절은 이모를 빼고선 설명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맞는 얘기일 것이다.
지금도 여력이 있다고 얘기하긴 어렵겠으나 어린시절 우리집은 꽤나 가난했었고 나는 눈물없는 아이가 되어갔다. 초등학생들의 작은 교실에서 가난이난 프레임은 놀림꺼리가 되기에 충분한 여지였고 놀림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때론 싸우고 때론 위협하는 아이가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 아이였고 그렇게 성장했고 그렇게 나이들고 있었기에 사실 지금에 와서도 내가 언제 울었었는지 손가락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눈물이 없는 아이었다.
그런 나에게도 한번 통곡하듯 울었었던 기억이 있는데 초등학교4학년 쯔음이었던 것 같다. 당시 엄마와 아빠가 친구의 장례식때문에 시골로 1박2일로 내려갔고 나는 친구들과 학교 운동장에서 밤늦게까지 작은 일탈을 하고있었다.
실컷 놀고 자정이 넘어서야 집으로 가고 있었는데 집 앞에 이모가 기다리고 있었다. 알고보니 혼자 집에있는 내가 걱정되어서 왔다가 밤늦게도 오지않자 이모는 내가 올때까지 밖에서 서성이고 있었던 것이다.
태어나 처음으로 나를 혼내면서도 눈물범벅이 되어있었던 이모를 보며 나도 같이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난다.
나에게 이모는 정말 이모라는 뜻 그대로 다른 한명의 엄마와 다름 없었다.
이모에겐 두살터울의 남매가 있었는데 사실상 나와는 친동생이다.
스무살이 넘어 취업을 하고 일을 하며 바쁘게 산다는 이유로 이모와의 왕래는 많이 줄었으나 그래도 나의 기준에서 줄었을 뿐이지 사촌간의 왕래가 이렇게 활발한 집은 아마 드물 것이다.
하지만 2년 전 이직을 하며 정말 그 좋아하던 PC방도 못 다닐만큼 바빠졌고 명절은 정말 말 그대로의 휴일이 되어 2년 넘게 사촌동생들을 보지 못했다.
이모가 운영하는 가게와 내 집이 가까웠기에 이모는 그래도 오며가며 얼굴은 보는 정도였지만 사촌동생들은 정말 한번 도 못본거같다.
그리고 지난 겨울 남매 중 누나가 스스로 삶을 놓았다. 물론 동생이 떠난것에도 마음이 아팠지만 이모가 받을 상처와 평생 가슴에 묻혀 무거워질 이모의 가슴에 더 눈물 흘렸던 것 같다.
그리고 이모네 가족이 우리 집으로 잠시 들어오게 되었다. 다행인 일이었다. 딸아이가 스스로 삶을 놓은 장소에서 이모가 제 정신으로 살 수는 없었으니까.....
사실 이모의 상처와 비어있을 마음을 채우는 일에는 최선을 다했지만 이모의 삶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았다.
아직 수험생인 둘째가 있었으니까.... 그런 일은 일어날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작은 방심은 나에게서 이모까지 빼앗아갔다. 딸아이가 삶을 놓은지 3개월, 3개월이 이모가 버틸 수 있는 최대한 이었던 것 같다.
사촌동생의 납골당에는 눈감고도 찾아갈 수 있을 만큼 자주 찾아갔었다. 하지만 바로 옆에 이모가 자리하자 나는 서울에서 고작 30분거리인 용인으로의 발길을 끊었다.
아직 자신이 없었다. 더이상 날 보며 웃어줄 이모가 없다는 것을 인정할 자신이 없었고 아직은 납골당의 이모를 만날 자신이 없었다. 나 역시도 무너질 것 같았다.
그렇게 일상으로 돌아왔고 49제도 지났다.
방송일을 하는 특성 상 주말 내내 일을 하고 월요일에 늦잠을 자고 일어나자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오랜만에 친구들과 약속을 잡고 머리를 감고있었는데 갑자기 무언가 내 머리를 톡 하고 때렸다.
거울에 붙여놓았던 여러개의 칫솔 중 이모의 칫솔이 떨어져 허리를 굽히고있던 내 머리에 떨어진 것이었다.
사실 거울에 붙여놓은 칫솔이 떨어지는 건 흔한 일이다. 케이스의 뽁뽁이라고 부르는 접촉부는 수분에 약한게 사실이니까, 하지만 나는 그 순간 무너져 내렸다.
스무살이 넘어서는 네번째 였던 것 같다.
고등학교 시절 3년을 쫒아다녔던 여자친구와의 짧은 연애 후의 이별하던 날
사촌동생이 떠나던 날
이모가 떠난 날
그리고 칫솔에 맞은날
어린시절 날 혼내던 이모앞에서 엉엉 울던 아이처럼 나는 머리의 샴푸를 씻어내지 못한 채 한참을 오열했다.
이모가 왜 보러오지않느냐며 말은 거는거 같기도 이제 그만 슬퍼하라는 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그날 약속시간에 30분이 넘게 늦었다.
이번 주말엔 오랜만에 이틀내내 휴일이 예정되어있다. 토요일엔 이모를 보러가야겠다.
첫 마디는 어떻게 해야할지 이번주는 기분 좋은 고민이 지속 될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