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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을 위해 쓰는 이별 극복과 재회의 방법

ㅇㅇ |2021.05.10 18:44
조회 8,408 |추천 3
맨날 재회주파수니 타로같은거에 목매는 친구들이 많아서 안타까워서 글 써본다.

물론 나도 재회는 못했지만 이별을 어느 정도 극복하고 보니 재회 유투버들이 말하는 ‘이별을 받아들이고 나서 다시 만나세요.’라는 말같지도 않게만 들리던 말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어.

나는 이별 후에 상대를 다시 만나고픈 마음이 정말 간절했고, 책이고 유투부고 이별갤이고 판이고 가리지 않고 많은 사례를 보고 연구했었다.

그리고 내 나름대로 이별 극복의 5단계를 설정해봤어.(논문도 안쓰고 발표도 안하고 검증도 안했으니 가설이라 치자.)

덧붙여 이 글은 철저히 차인 입장에서만 쓰는거니까 양해 바라고.

1년 이상 찐 사랑을 한 사람들에게만 해당하는 글이란 것도 참고 바라.(여타 글과 마찬가지로 환승, 폭력, 가스라이팅 등은 그냥 버려라)


이별 후의 반응을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포-불안-분노-이해-인정의 단계를 따라.(예외도 있고 확실한 건 아님)

단계를 넘어가는 과정에 걸리는 시간은 사람마다 확연히 다르고, 나 같은 경우는 회사에서 일하는 시간과 자는 시간 외에는 모두 이 연구에 몰빵해서 그런지 한 달 만에 끝냈어.(내가 극복한 과정은 https://m.pann.nate.com/talk/359632945?currMenu=category&page=1&order=N 를 참고해)



1. 공포

사람은 미지의 것에 대해 공포감을 느낀다. 이별도 마찬가지다. 항상 내 일상 속에 존재해왔던 상대가, 영원할 줄 알았던 사랑이 끝나는 순간, 너 없는 내 삶이 어떨지 도무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상대의 입에서 차가운 말을 듣고, 울고불며 매달리는 나를 뒤로한 채 아무렇지 않게 등을 돌리는 상대를 볼 때, 우리는 분명 공포를 느꼈다.

내 삶은 어떻게 될까? 정말로 널 다시는 볼 수 없는걸까?

우리가 매일 나누던 통화는? 아무렇지 않게 매일 말하던 보고싶어, 사랑해는? 네 목소리도, 날 반하게 만들고 매일 행복하게 해주던 상대의 모습도 볼 수 없다는 생각들은 막연한 공포를 낳는다.

지금 당장은 이별이 실감도 나지 않는다.

다만 이 공포의 순간은 오래 가지 않는다.

아무리 길게 공포를 느끼는 사람도 최대 일주일이면 이별을 실감하게 된다.

이별을 실감하는 순간, 공포는 불안으로 바뀐다.



2.불안


공포 단계에서 느낀 막막한 일들을 실제로 경험해 나가는 단계다.

매일 오던 모닝콜이 오지 않고, 출근 길에 나누던 통화, 카톡도 없으며, 더 이상 날 보고싶다고, 사랑한다던 사람이 이제 없음을 실감하게 된다.

미지의 것을 경험하다 보면 두려움보다는 불안함을 느끼게 된다.

지금도 아무렇지 않게 연락이 올 것 같고, 주말이 되면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은데 도통 연락도 없고, 어디서도 그 사람을 볼 수가 없다.

매일 같은 일상에 한 사람이 빠지니 불안감에 숨 조차 쉬기 어렵고,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은 아닌지, 날 벌써 잊었는지, 난 이렇게 힘든데 너는 왜 멀쩡한지 인스타도 염탐해보고 카톡 프로필도 확인하며 내 스스로 자존감과 마음이 무너지고 우울의 바다에 빠지게 된다.

이 단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감정에 못 이겨 연락을 취하게 되고, 마음이 여린 사람들은 집 앞까지 쫓아가서 울고불며 매달리기도 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기에, 굳이 연락을 하지 말라곤 못하겠지만 도를 넘어서는 연락은 하지 말자.

부재중 통화를 100건 남긴다거나 장문의 카톡을 수 없이 보낸다거나 하는 등의 과도한 매달림은 있던 정도 떨어지게 만들어 상태를 악화시킬 뿐이다.

이 쯤 되면 무너진 자존감 때문에 나 자신을 엄청 자책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내가 좀 더 잘했더라면...’, ‘내가 바뀌면 그 사람이 돌아와 줄까?’

같은 생각이 온통 내 머릿속을 지배한다.

하지만 하루 아침에 바뀌는 사람이 많겠는가?

내가 다짐한 스스로 바뀌겠다는 말도, 진정으로 내가 스스로를 위해 발전을 도모하겠다는 것인지, 단지 상대를 붙잡기 위해 말만 그럴싸하게 하는 것인지 되돌아 보길 바란다.

그리고 그 사람을 붙잡기 위해서건, 나 자신을 위해서건 자기 관리는 꼭 해라. 운동하고 책읽고 미용실 가고 화장품 사고 친구들 만나는 건 낮아진 자존감을 회복하고 일말의 재회 가능성을 높이는 데 분명히 도움이 된다.

자존감을 회복하지 못하면 이별을 극복할 수 없기에 많은 사람들이 이 단계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된다.

별갤을 봐도 자존감을 회복하지 못하고 수 년간 궁상떠는 사람들이 많이 보이는데, 제발 뭐라도 좀 해라.

헤어진 그날, 그 자리에 머물러 있으면 상대는 이별을 통보한 자신의 선택을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3. 분노

시간이 지나 어느 정도 자존감을 회복하고, 이별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보면, 분명 내 잘못도 있지만 상대의 잘못도 있고, 상대의 이별을 통보하는, 대하는 자세가 심히 마음에 안든다.

‘난 이렇게 널 위해 헌신했고, 널 다시 잡기위해 이렇게까지 노력하고 매달리는데 이 매정한 인간 같으니! 아니 찔러도 피 한방울 안나올 인간도 아닌 놈!’

같은 생각과 배신감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한다.

도무지 열이 뻗쳐서 일도 손에 안잡히고, 친구들을 만나면 떠나간 그 사람을 흉보기 바쁘다.

이별의 원인을 그 사람에게서 찾게 되고, 내가 대체 뭘 잘못했길래 나한테 이런 고통을 주는 지 상대가 원망스럽기만 하다.

그런데도 자꾸 보고싶고, 연락하고 싶은, 통제되지 않는 내 마음이 불에 기름을 끼얹고, 점점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간다.

이 단계의 결말은 두 가지다.

타오르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나 스스로를 불태워 재만 남아버리거나, 분노가 사그라들고 이성적인 판단을 되찾거나.

전자의 경우, 상대를 체념하고 술에 빠지거나, 감정 없는 쾌락만을 쫓아 원나잇에 빠지는 등, 더 이상 자신을 소중하 여기지 못하게 되고, 막나가는 인생을 살게 된다. (흨콰한닷)

자신의 감정을 통제할 자신이 없어지고, 낮아진 자신감은 자존감마저 좀먹어 자기 자신을 학대하는 파멸적 질주를 하게 된다.

만약 이런 생각을 품은 친구들이라면 좀 더 자신을 소중히 여기길 바란다.


4. 이해

분노가 사그라들고, 자신의 감정 통제권을 되찾았다면, 이제 내가 아니라 상대방이 날 어떻게 생각했기에 이별을 통보했는 지 궁금해진다.

여태까진 주로 내 시선에서 이별을 바라봤다면, 상대는 어째서 이별을 통보했는지 상대방의 시선에서 생각해 보는 단계다.

이전 단계에서도 어느 순간이던 상대방에 대해 이해하려는 시도를 한 적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감정에 사로잡혀 있다면, 진정한 의미에서 상대의 시선에서 이별을 바라볼 수 없다.

우리는 대부분 갑작스럽게 이별을 통보받았다.

싸움 중에 통보받았거나, 아무렇지 않은 일상 중에 통보받았거나 아무튼 갑작스러웠을 것이다.(아님 말고)

이별을 말하는 상대방은 과연 마음이 편했을까? 내가 모르게 이별을 준비하던 그 사람의 마음은 어땠을까 생각하다 보면 내가 모르던 나 자신의 실책이 보이기 시작한다.

‘네가 나때문에 이렇게 힘들었겠구나.’, ‘나의 이런 잘못들 때문에 네가 점점 지쳐갔구나.’

얼핏, 분노단계에서 내 자신을 자책하던 모습과 비슷하게 보이지 않는가?

하지만 불안 단계의 자책과는 매우매우 큰 차이가 있다.

‘내가 잘못했어! 내가 더 잘할게!’, ‘내가 바뀔게!’ 와 ‘네가 나 때문에 이렇게 힘들었겠구나.’, ‘나의 이런 실책이 있었구나.’ 를 직접 비교해보면 느낌이 올 것이다.

이별의 원인을 바라보는 시각이 ‘나’에서 ‘너’로 옮겨갔으며, 그저 감정에 호소해 아무 말이나 내뱉어보던 불안 단계와는 달리, 상대방을 진심으로 이해함으로, ‘나’의 실책을 이성적이고 진지하게 고찰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 놓고 골에 도달하지 못하는 경우도 숱하게 많더라.

자존감과 자신감이 모두 충족되지 못하면 다음 단계인 인정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다시 감정을 부풀려 2단계인 불안 단계로 역행하는 케이스도 너무나도 많다.

제발 강조하고 또 강조하는데, 이별의 순간부터 극복의 순간까지 자기계발을 놓으면 될 것도 안된다.



5. 인정

축하한다. 이 단계에 이르렀으면 이미 더이상 마음의 고통은 거의 없을 것이다.(여전히 나를 간지럽히는 추억들은 남아 있을 것이다.)

이제 상대와의 이별을 완전히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단계다.

이전까지 상대를 붙잡기 위해 자기계발에 몰두했다면, 이제 당신 스스로도 자신의 인생을 위해 자기계발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며, 내가 그 사람과의 연애에서 행복할 수 있었던 것은 필시 상대방의 희생이 동반했기 때문에 내가 그 연애에서 행복했던 이유와 상대방이 이별을 통보하게 된 이유가 완전히 동일했다는 것을 인정했을 것이다.

더 이상 나는 이별로 인해 고통스럽지 않고, 지난 연애를 바라보며 내 자신의 단점을 고치게 되었고 더욱 성숙한 연애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전 연인과의 재회를 꿈꾸건, 새 사람을 만나건 당신의 선택이다.

하지만 친구들이 원하는 건 재회겠지?


6. 재회

‘아니 그래서 그 이별 극복이란것은 알겠는데요, 도당체 외 이별 극복이 재회에 필요한 건가요?’

사실 나도 아직 재회하지는 못했다.

나도 재회를 바라는 입장이기도 하고.(안됨 말고)

하지만 이 전의 모든 과정을 겪어보니, 이별을 극복하지 못하면, 역설적으로 재회가 불가능 하다는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만약 당신이 이 전 단계에서 상대방을 붙잡는다면, 성공해도 그 만남은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본인이 진정으로 자신을 관조하지 못하고 자존감이 떨어진 상태에서 그 순간을 회피하기 위해서 변하겠다고 말해봤자 상대도 그게 진심이 아닌 걸 알고 있을 것이다.

아마 당신 스스로가 그 사실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겠지만 진실을 외면하고 싶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관계는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이전으로 돌아갈 뿐이니까.

결국 누군가의 희생으로 유지되는 일방의 행복이라면, 다시 헤어진 1일차로 돌아가는건 예정되어있다.

사실은 이 단계까지 온 사람이라면 재회보다 새 사람을 만나는 것이 훨씬 쉽다는 것도 알고있겠지.

이제 쌓아온 자존심을 내려놓고(자존감을 놓으면 안됨!) 진심으로 상대의 불만을 가만히 들어주고 공감하며 내 바뀐 모습을 지속적으로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여기서도 거짓된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길 바란다. 다시 이별 1일차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면.)

나도 이제 막 이 단계를 실천하는 중이기에 더 이상 해 줄 수 있는 말은 없다.(주제넘고싶지 않다.)

다만 자존감을 키우고 자존심을 내려놓고 여유를 잃지 말자는 말은 나에게 해주고 싶다.

친구들도 힘내고 나도 힘내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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