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다면 짧은 기간 동안 사귄 후 이틀 전에 여자친구에게 이별 통보를 받았습니다.
동갑에 둘 다 대학생이고, 거주지와 재학중인 학교가 달라 많아야 일주일에 두 번정도 만나는 나름의 장거리 연애였습니다. 만날 때는 항상 제가 여자친구의 거주 지역으로 찾아갔고, 마지막에는 집 앞까지 데려다주고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 헤어지는 것이 저에게 큰 행복이었습니다.
만나는 날에는 과제나 공부를 하고 저녁 식사를 하는 것이 주요 루틴이었고, 가끔 영화를 보거나 강변에 산책을 나가는 등 그다지 역동적인 연애는 아니었던 듯 싶습니다. 애초에 학기중이라 서로 큰 시간과 정신을 쏟기 어렵기도 했고요.
연락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사람이었고, 만남의 횟수는 애정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그리고 부지런하고 자신이 해야할 일을 열심히 하는 성격이라 자주 만나는 것에 대한 부담도 표출했고요. 어쩌면 제가 평소보다는 조금 강하게 더 자주 만나보자고 제안한 것이 화근이 아니었다 싶습니다. (제가 평소에 부담을 주는 언행을 하는 성격은 아닙니다)
원래도 성격이 좋은 사람이라 그런지 굉장히 완곡하게 카톡으로 말하더군요... 요즘 제가 친구 같다면서... 제가 눈치가 어지간히 없는데 어투에서 이별 통보라는 사실을 직감했습니다. 일단 전화를 걸어 몇 가지 질문을 하고 붙잡으려고 3번 시도했습니다. 다만 심경에 변화는 없던 것 같더군요. 30-40분 가량 통화 내용을 요약해보자면,
(저의 말 - 여자친구의 답변 형식입니다)
통보가 너무 갑작스러워서 많이 놀랐고 당황스러웠다. 나는 아직 널 보낼 준비가 안됐다.
- 나는 얼마 전부터 생각을 해왔던 것이고, 네가 눈치가 없어 낌새를 알아차리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네가 준비 되었는지의 여부는 너의 사정이다.
왜 헤어지자는 것이냐. 나는 너를 잊지 못할 것 같다.
- 카톡에서 말 했듯이 너를 연인보다는 친구로 보는 마음이 커졌다. 너에 대한 나의 사랑이 식은 것이다. 이것은 너의 잘못도 아니고 나의 잘못도 아니다. 사과할 필요도 없고 마음의 차이일 뿐이다. 그리고 나는 내가 지금 하고 있는 학업과 일이 우선적이다. 그래서 연애를 할 정도의 여유가 없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너에게 맞춰가는 중이었고,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러한 노력을 이어나갈 기회를 한 번 더 줄 수 없겠는가
- 나는 너가 나에게 맞춰가는 것을 원하지 않고 변하는 것도 원치 않는다. 다시 만날 때에는 연인으로 만날 수 없을 것 같다. 애초에 우리는 연애관도 다르고, 만나도 나만 말하는 것 같고 너는 별 말 안하는 느낌이다.
이 결정에 대해서 한 번만 더 생각해볼 수 없겠는가
- 생각한다고 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조금의 여지라도 남겨줄 수는 없는가
- 남겨주는 것이 너에게 더 힘들 것 같다
나에 대한 생각이 바뀔 수는 없겠는가. 나를 좋아하긴 한 것인가
- 일단 지금은 아니다. 좋아했었던 것은 사실이다.
전화를 오래 끌어서 미안하다. 지금 말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아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하겠다. 정말 1%라도 나와 다시 사귀어줄 수 없는 것이냐
- 그렇다
(이쯤에서 단념을 하고 마무리 멘트를 준비함)
그래도 이 정도면 좋게 헤어진 것 같고 너와는 좋은 추억만 남아 다행이다. 너처럼 좋은 사람과 첫 연애를 하게 되어서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한다. 교제하면서 긍정적인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 나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웃음)
카카오톡에서 나를 차단하거나 인스타그램에서 팔로우를 해제할 것인가? 혹은 그렇게 하기를 바라는가?
- 그렇지 않다.
사진은 지우는 것이 나은가?
- 그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네 생각이 나면 어떡하나
- 그것은 너의 사정이다. 알아서 하도록 하라. 앞으로 고민이 있거나 할 말이 있으면 네 친구한테 전화하라.
지금 상황을 수긍하면 안되는데 왜 나는 수긍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한심한 사람인 것 같다 (정신이 반쯤 나가서 슬슬 헛웃음이 나옴)
-네가 좋은 사람이라 그런 것이다.
알았다. 어려운 말 해줘서 고맙고 부디 잘 지내길 바란다. 다음에 친구로서 만날 때 웃으며 만나고 싶다.
- 알았다.
(전화 끝)
저에게 있어 첫 연애이자 실질적인 첫사랑이기에 구질구질하게 매달렸던 것이 느껴지네요. 얼마전까지만 해도 애틋한 줄 알았던 사이가 틀어졌다는 것에 대한 슬픔과 서운함, 그리고 사람이 이 정도로 단호해질 수 있다는 것을 느낀 후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문득 얼마 전에 제가 너무 무뚝뚝하다는 말을 들은 것이 생각나네요. 그리고 사귀는 동안 진심을 적극적으로 표현하지 못한 것이 굉장히 후회됩니다.
사실 헤어지고 나서도(즉, 연인 사이가 아니게 되더라도) 좋은 친구로 남자는 것은 연애 초반부터 나왔던 얘기였습니다. 얼마 전까지 이 질문에 대한 고민을 하다가 이별 통보 전날에 좋은 친구로 남을 수 있다는 말을 전한 것 같습니다. 연애 중일 때에는 이별에 대한 실질적인 고민을 하지 못했고,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더 큰 충격으로 다가온 것 같고, 지금은 과연 그 사람과 좋은 친구로 지낼 수 있을 것인지 많은 생각이 듭니다
저는 아직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고 다시 좋아한다고, 사귀어 달라고 말하고 싶은 욕구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도로 인해 좋은 친구로 남을 수 있던 사람이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될까 많이 걱정됩니다. 심지어 몇 장 되지 않지만 사진을 지우지 못하고 있고, 휴대전화에 남아있는 그 사람에 관한 메모나 주려고 했던 편지 초안 등 흔적을 차마 정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연애 경험이 있는 여러분들의 관점에서 재회의 가능성이 존재하는지, 만약 없다면 앞으로 "좋은 친구"라는 관계의 입장에서 어떻게 행동하고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인지에 대한 조언을 구하고 싶습니다.
마음이 심란하여 두서없이 마구 글을 썼네요. 난해한 장문의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디 많은 진심어린 조언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