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을 예상 할 수 있게 하는
똑같은 하느님의 창조물인 천국과 현실이 있으며
현실에서도 생각보다 충분히 즐길거리가 수없이 많다.
굳이 누드 같은 원초적인 벌거벗은 모습을 보는 것보다
벌거벗은 것보다는 거룩하게 옷을 입은
그러나 섹시한 옷을 입은 모습을 보는 것도
생각외로 굉장한 즐거움이다.
지옥에 가면 이마저도 할 수 없게 된다.
한번의 몸을 내어줌으로 얻는 성관계의 즐거움보다는
자신의 몸을 소중히 여기며 지켜나갈 때에도
그 상태에 직접 이르러 보지 못한
그들만의
다른 사람은 알 수 없는
알지 못하는 즐거움이 있다.
알지 못하는 즐거움을 하나 말해본다면
오래 자위를 하지 않는 사람일 수도 있음을
경험자로써 말해본다.
한번 몸을 내주어 순결을 잃는 것보다
한번의 성관계로 모든 것을 알게 된 때보다
오히려 궁금증을 가지고 있을 때에는
상상하는 즐거움이 있다.
다 적나라하게 아는 것보다....
모든 상황에 맞는 즐거움이 각각 있다.
모르겠다면 그 상태에 이르지 못해서다.
상상과 현실에는 차이가 확실히 있다.
실제로 그 상황에서 겪는 것과
당신의 추측과 망상으로 일컬어진 추측이라는 것은
틀릴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다.
확실히 말하자면
당신은 손톱의 때만큼도
실제로 일어나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만큼 겪는것과 상상 했던 것의 차이가 크다는 말이다.
예로 자위를 참아보라.
100일을 참는 것과 1년을 참아보는 것은
실제로 직접 격지 않고서는 이렇다 저렇다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다.
모르기 때문이다.
모르는 것은 모르는 것이다.
일주일에 두세번 자위를 하는 사람은
자위를 오래 참는 것이 심한 괴로움 일 것이다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7년을 금욕한 나의 경험에 의하면
그것은 그리 괴로운 일이 아니다.
경험해보라.
상상하지 말라.
100일을 참으면 어ᄄᅠᇂ게 되는지 궁금한가.
실제로 참아보라. 왈가왈부 추측과 말을 하지 말고...
예를 들면 마라톤을 보자.
100m를 전력으로 뛰어보고 42.195km를 뛸 수 있다는 게 상상이 되겠는가?
그러나 42.195를 다 뛴 사람이 존재하는 것은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그 사람은 사람이 아닌가?
알다시피 마라톤을 하면 “러너스 하이”라는 것이 생긴다.
그래서 42.195km를 다 뛸 수 있는 것이다.
뛸수 없다고 여겼던 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러너스 하이”가 생긴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실제로 경험하지 않고서는
그렇다라는 결론을 내릴 자격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