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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딸이 함께 부르는 마이웨이..

전망 |2004.02.28 12:13
조회 477 |추천 0

 

 

어머니와 딸이 함께 부르는 마이웨이..

 

흑인이었다.. 사생아였다.. 가난했다.. 뚱뚱했다.. 미혼모였다..

"그래서? 그게 뭐 어쨌다고?"

한 여인이 어렸을적부터 되뇌였을 이 말은 이제 그녀를 아끼는 전 세계 1400만

시청자들이 그녀의 과거에 대해 말이 나올 때 읖조리는 말이다.

 

오프라 윈프리..그녀는 최초의 흑인 앵커이자..보그지의 패션모델이었고..

"THE OPRAH WINFREY SHOW"로 존경과 사랑을 받는

이 시대 진정한 "CAREERWOMAN"이다.

 

나는 오프라 윈프리를 존경한다. 그녀의 끊임없는 변신..

나의 어머니는 평범한 시골 사람이지만 당신의 삶에 끊임없이 도전장을 내며 자녀들을

강인한 사람으로 키우셨다. 아마 당신이 물려줄 재산이 없으니 스스로 살아갈 힘을

키우도록 종용하셨을 것이다.

 

내가 국민학교 4학년때 한살 위의 삼촌은 남자라는 이유로 서울로 전학을 시켜 공부를

시키셨는데 나는 시골 국민학교에 다녀야 하는 현실에 불만이 있었지만 어머니는 우리

형편을 이해 시키며 대신 나를 강인한 아이로 키우셨다.

 

차츰 자라며 이 세상에 내가 의지할 사람은 한사람도 없음을 알고 나는 내힘으로 살수

밖에 없을 뿐더러 도리어 내가 돌봐야 할 부모 형제가 많음을 알았다.

나는 밤잠을 아껴가며 사회에서 써 먹을 수 있는 실력을 쌓아야 했다. 

 

돈을 벌어 작은 아파트를 사서 우리 가족이 마산으로 이사 하는날..

하늘은 맑은데 어머니는 우박을 맞아야 했다. 그것은 고향 사람들이 나의 어머니를 향한

비난이었다. 맏아들인 아버지께서 고향을 지키지 않고 잘난 딸을 위해 이사 한다고..

 

어머니께서 거부하는 낱말이 있다. 그것은 양반..

시골에는 빚을 얻어서라도 조상을 잘 모셔야 된다며 비석을 세우고 묘지를 화려하게

꾸미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하는데 좋은 의미인줄 알지만 그렇게 하기엔 큰 돈이

필요했으며 우리 형편에 역부족이었다.

 

어머니는 다음에 당신의 아이들인 우리 형제가 자라면 하겠다고 유예 시키고 자녀들의 

뒷바라지에만 전염하셨다. 그런데 하루는 가까운 친적이 마음 여린 아버지께 교모한

수법으로 우리 재산을 통채로 삼킬 계략을 짜고 있었다.

내가 나서서 간곡하고 정중하게 그 일을 막아냈다.

 

얼마전에 나는 부모님을 모시고 정말 오랫만에 고향을 땅을 밟았다. 시골 살림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것이 없어 보였으며 소문에 빚이 많아 고민인 집이 많다는 얘기를

들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어머니는 살기 편리한 집을 지어 노후에 큰 걱정 없이 사신다.

 

어머니께서는 낮에 검정고시 공부와 문화센터에서 취미 생활을 하시며 아버지께서도

서예를 배우러 다니신다.  많이 배우지 못한 어머니와 작고 볼품없는 딸이 엮어낸 한편의

드라마는 오늘도 연속극처럼 이어지고 있다.

 

한 가정을 온몸으로 지키고 일으켜 세운 어머니와 딸이 함께 부르는 마이웨이..  

 

 

 

영화 아이 엠 샘을 보며 전 참 많이 울었습니다.

 

세상에 의지할 곳 하나 없었던 나였기에..

혼자서 모든 것 결정하고 늘 친정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도 부모님이 편찮으시면 한걸음에

달려가 간병을 하고 병원비를 결제하곤 한답니다.

 

어머니와 딸이 함께 부르는 '마이웨이 - 윤태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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