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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바속촉 까눌레를 만들었습니당

Nitro |2021.08.24 13:21
조회 5,240 |추천 31

 

요즘은 까눌레 만드는 데 재미를 붙였습니다. 바닐라빈과 다크럼만 있으면 그닥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으니까요.


원래 간식으로 간단하게 먹으려면 여섯 개 정도 굽는데, 이번엔 대량생산 모드로 들어가서 재료를 네 배씩 사용합니다.


설탕 500그램, 박력분 200그램, 우유 1리터, 달걀 여덟 개, 바닐라빈 두 개, 버터 100그램, 다크럼 반 컵을 준비합니다.


우유는 유통기한이 긴 멸균 팩우유를 한 상자씩 사 놓으면 이래저래 잘 써먹게 됩니다. 


다크럼은 하바나클럽 7년짜리. 베이킹에 쓰기에는 좀 많이 고급스러운 술이지만, '어차피 내가 먹을거니까 낭비는 아니다' 라고 스스로 최면을 걸고 있습니다.


처음으로 라면에 달걀 두 개를 넣어 먹었던 그 날부터, 최고급 쇠고기를 갈아서 햄버거 만들어 먹은 최근에 이르기까지 '일상에서 먹는 것 만큼은 호사를 부리며 살고 싶다'는 욕망에 충실하거든요.


"사치는 나와 다른 세계의 일이라며 일상생활에서 떼어 낼 수 있다. 하지만 호사를 부리려고 마음먹은 날에는 평소 해 오던 억제와 인내를 걷어치운다. 밤중에 먹는 오차즈케에 굳이 와사비를 강판에 갈아 넣을 때, 백화점 초밥을 사면서 150엔 더 비싼 '특상'에 손을 뻗을 때, 찻집에서 탄산수를 주문하려다 큰마음먹고 아이스크림을 추가한 크림소다를 주문할 때. 그럴 때가 참 호사스럽기 이를 데 없는 순간이었다."

- 히라마쓰 요코, 어른의 맛 중에서


 

바닐라빈은 반으로 갈라서 씨를 긁어내고, 씨앗과 꼬투리를 모두 우유와 버터에 섞어 넣습니다.


불에 올려서 버터가 녹을 정도로만 가열하고 내려서 살짝 식혀줍니다.


우유가 식는 동안 달걀 네 개와 달걀 노른자 네 개를 다크럼과 섞어줍니다.


달걀 흰자는 머랭이라도 만들고 싶은데 이미 까눌레에 들어가는 설탕의 양이 치명적인지라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그냥 얇게 흰색 지단이나 부쳐서 다른 음식 위에 뿌려먹는 걸로 만족하는 게 좋습니다.


달걀에 럼주가 들어가면 날것 비린내가 확 사라지면서 달콤한 향이 올라오는 게 기분 좋습니다.


그 향에 이끌리듯 글라스에 럼을 채우고 스트레이트로 마시게 되는 부작용도 있지만요.


마지막으로 설탕과 밀가루를 섞으면 모든 재료의 준비가 끝납니다. 


 

밀가루에 달걀 혼합물을 넣고 섞다가 완전히 다 섞이면 우유 혼합물을 약간 넣고 또 저어줍니다.


우유를 조금씩 넣어가며 섞는 것이 조금 번거로울 수는 있지만, 왕창 부어버렸다가 달걀이나 밀가루가 익어버리면 낭패니까요.


까눌레 반죽이 다 섞이면 체에 걸러 바닐라 꼬투리와 밀가루 멍울, 알끈 등을 걸러줍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 이렇게 만든 반죽은 최소한 하루 이상, 가급적이면 이틀 정도를 냉장고에서 숙성시켜야 한다는 거.


숙성시키지 않으면 안쪽에 커다란 구멍이 생기거나, 반죽이 너무 심하게 폭발하듯 부풀어 오르는 현상이 생긴다고 합니다.


 

원래 전통적인 까눌레는 동으로 만든 틀에 밀랍을 씌우고 반죽을 부어서 굽는 게 원칙입니다.


하지만 강력한 화력의 컨벡션 오븐과 논스틱 코팅 기술의 발전은 그냥 스테인레스 틀에 버터 발라 구워도 어지간히 비슷한 효과를 내게 해 줍니다.


개인적으로 요리 할 때는 일단 오리지널 방식을 따라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구리로 만든 까눌레 틀은 안쪽에 주석칠 관리가 힘들어서 안 사게 되네요. 그래서 설탕 작업용 구리 냄비, 구리 잼팟은 있어도 정작 일반 요리 용도의 구리팬은 없습니다.


우리나라도 유럽처럼 전통시장마다 주석칠장수(tinner)가 있던지, 아니면 하다못해 택배로 주석칠 관리해주는 업체가 있으면 좋을텐데 싶긴 합니다.


차가운 반죽은 기름층이 덮여 있는데, 거품기나 국자로 잘 섞어서 틀의 80~90% 정도 되게 채워줍니다. 


 

220도 오븐에서 20분 굽고 온도를 190도로 낮춰서 30분 정도 구워줍니다.


초반에 고온에서 굽지 않으면 반죽이 너무 심하게 부풀어 오르거나 넘쳐버리고, 후반에 온도를 낮추지 않으면 까맣게 타버립니다.


크렘브륄레처럼 태운 설탕이 약간의 쓴 맛을 내지만, 이게 너무 심하지 않아서 단맛과 잘 어울리는 수준을 유지하는게 중요하죠.


원래는 까눌레 틀을 12구짜리로 구입하고 싶었지만, 집에서 쓰는 광파오븐에 들어가질 않는 크기인지라 어쩔 수 없이 6구짜리로 작업해야 합니다.


12구짜리면 두 번만 구워도 끝날 양을, 네 번에 걸쳐 나눠서 구워야 한다는 소리지요.


요리도구는 크면 클수록 좋지만, 커다란 요리도구의 끝은 언제나 더 큰 집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낳습니다.


어쩔 수 없이 갖고 있는 물건들로 최선을 다할 수 밖에요.


그래도 일은 오븐이 알아서 하니까 20~30분마다 한번씩 가서 온도만 조절해주면 됩니다. 


그 대신 달콤하고 맛있는 냄새가 한나절 내내 집 안을 가득 채우는 장점도 있지요.



 

완성된 까눌레. 겉은 딱딱하게 부서지고, 속은 마치 크림처럼 촉촉합니다.


달걀과 설탕과 버터가 충분히 들어가서 고소하고 달달하면서도 럼주가 비린내를 잡아줘서 뭔가 고급스러운 향이 납니다.


처음 이 과자를 만든 것은 옛날 프랑스 수녀원의 수녀들로, 기부받은 달걀이 너무 많아서 만들었다는 설이 있지요.


고대 그리스 신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돌이나 나무 등에 세로로 파인 홈을 cannelure라고 하는데서 유래된 이름입니다.


조개모양 틀이 없으면 만들 수 없는 마들렌처럼, 까늘레 역시 그 특징적인 세로 홈이 필수요소인지라 전용 틀 없으면 못 굽는 과자입니다.


다른 틀에 넣고 구우면 구울 수는 있겠지만, 뭔가 다른 과자가 되겠지요. 


외모보다는 내면이 중요하다곤 하지만 가끔은 외모가 그 본질을 규정하기도 합니다.


 

6구짜리 틀로 네 판. 총 24개의 까늘레가 완성되었습니다.


이 중에서 열여섯개는 친척 모임에 선물로 가져가고, 새로 이사 온 아랫집에도 나누어 주고, 나머지는 간식으로 하나씩 쏙쏙 빼먹습니다.


이게 만들기는 그닥 어렵지 않은데 비해 아직 잘 알려지지는 않아서 노력 대비 사람들의 감탄 비율이 쏠쏠합니다.


마치 마카롱이 한국 들어오던 초반에 그랬던 것처럼 말이죠. 


슬슬 편의점에도 까눌레가 등장하는 걸 보면 앞으로 약간만 시간 더 지나면 까눌레의 과대평가 후광효과가 사라질 듯 하니 지금이 구워서 여기저기 선물하기 좋은 시기입니다.


겉바속촉이 가장 큰 매력포인트인 만큼, 구워서 당일이나 그 다음날까지 다 먹어치우는 게 좋습니다.


아니면 냉장 보관을 해야 하는데, 겉부분의 바삭함이 사라져서 별로 권장하지는 않지요...


...라는 게 속설입니다만. 시간이 좀 지난 카눌레는 또 그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습니다.


바삭거림이 줄어든 대신 부드럽고 약간은 쫄깃한 식감이 생기고, 무엇보다도 크리미한 안쪽이 차가워지면서 바닐라 무스를 먹는 듯한 느낌도 들거든요.


그래서 이틀정도 묵은 까눌레 한 개 꺼내서 접시에 올리고, 커피 한 잔 진하게 타서 옆에 놓으면 이 또한 맛있는 조합이 됩니다.


한창때의 톡톡 튀는 매력은 사라졌지만 그 자리를 몽실몽실한 포근함이 대신하고 있으니까요.


 

추천수31
반대수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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