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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말 할곳도 없고 여기다 말해요. 30살 집 샀어요

ㅇㅇ |2021.09.30 14:49
조회 4,082 |추천 31

아빠 사업은 나 4살즈음인가 망했어
술에 취해 집에 있던 난초 화분 두개를 깨부수고 화장실 바닥에 앉아 양치질을 하던 아빠가 아직도 생각나.
그날 이후로 엄마 아빠는 이것 저것 다양한거에 손댓어
해물 수출? 무슨 공장을 한다고
가리비를 그램수에 맞춰서 포장해야 했고
초등학생인 우리도 같이가서 일을 했지
점심때 사주는 천원짜리 짜장면이 맛있었고,
저울에 안재고도 그램수를 맞추는 능력이 생기면서
칭찬받는게 좋았어. 지금 생각해보니
엄마아빠는 그 짜장면도 안먹었네. 언제 밥을 먹은거지
근데 그것도 잘 안됫나봐.
여름방학때 오빠랑 나는 시골 할머니댁에 맡겨졌고
외숙모댁에 맡겨졌어 외숙모는 참 친절했어
몸이 약해 한약을 먹는 날 위해 복날에는 닭 말고 오리를 삶아주시기도 했으니. 감사해 너무. 싫었을탠데.
싫었을 수 있는데.

엄마아빠는 열심히 노력했는데 잘 안됫나봐
엄마는 마트 캐셔를 시작했고
아빠는 집에서 스트레스를 받았어.
그리고 그걸 나한테 풀었어
나는 밥풀을 흘렸다고 미친년이라고 욕을 먹고
학교끝나고는 5시까지 안들어오면 욕을 먹고
수행평가때문에 같은반 남자애를 전화하니 폰을 뺏겼어
많이 맞았어. 내 정신이 이상해져가는 것 같았어.
집에만 오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
어지럽힌 방안에 그냥 누워있었어
세상이 회색같았어

사실 이때도 판에 글 쓴적있어.
나보다 어른인것 같은 분들이
지금은 방법이 없으니 버텨라. 돈을 벌 수 있을 때까지 버텨라 라고 했어 맞는말이야. 가출을 어찌해.

오빠는 집안의 돈을 끌어모아 기숙학원을 보내고
재수학원을 보내고
나는 고3인데도 문제지 한권도 안사줘서 사촌언니가 생일선물로 뭐 사줄까 해서 문제지 사달라고 했어
내가 언니를 잡고 울었어. 언니 교과서에 없는게 시험에 나와.... 교과서에는 모든 역사지문에 다 실린게 아닌데 난 찾아볼수도 없고 그때는 스마트폰시대도 아니라 어플같은건 아예 없으니... 아직도 기억나 자이스토리 한국지리 근현대사.
사촌언니가 고모한테 말했나봐. 고모가 전화가 왔어. 아빠를 혼냈지 그러지말라고 자식 차별하지 말라고 평생 가슴에 남는다고. 맞아 가슴에 남았어.
옷도 없었어 애들은 목도리 하나로 안춥냐고 마이가 두꺼운것도 아닌데 이래서 난 우리 학교 교복이 이쁘잖아 했지만 난 겨울옷 살 돈이없었어. 스타킹도 꼬매신었는걸.
난 당시 서울시급식지원으로 점심을 먹었어.
우리 담임이 애들 차별은 했는데 그렇게라고 내 점심은 챙겨줬었어. 당시 학생들을 상대로 심리검사를 했는데 내 우울도가 심하게 나왔거든. 지금 생각하면 공황장애 비슷하게 있던거같아. 근데 그때는 뭐 그런지식이있나.. 그냥 내가 하루아침에 비정상이 된거같았지. 사람들이 많은곳이 무서웠거든.
다 나를 보고있는거 같고. 그 시선이 날 찌르는것같고 날 죽일거같고 달려들거같고...
그런데 병원다닐 돈이없으니까...
근데 내가 비정상같은거 맞으니까.....
공원이나 집 앞 국립도서관에 일부러 가서 서있었어
사람많은곳에. 버티고 버티다
못참겠을때 화장실로 달려가 울었어 숨었어.
몸이 떨렸어. 그렇게 했더니 좀 시선이 나아지는거같았어.

가난만 했으면 가족끼리 뭉쳤을탠데 난 기댈곳이없었어
아빠는 나에게 욕을 하고 때렸어. 비오는날 도로가 막혀 버스가 늦게도착했는데 왜 이렇게 늦냐고 술집에서 일하냐고 창녀냐고 했어.
오빠도 나를 때렸어.
오빠가 날 발로 차면서 아래 성기가 찢어진적도 있어.
지금 그 사람들은 나에게 잊은 듯 대하지만 난 잊지 않았어. 못잊는거지...

전문대를 갔어. 수능이끝나자 마자 일을 했고 용돈을 벌었어. 오빠는 용돈을 타서 썻어. 난 버스비도 못받았어.
아빠가 전문대갔으니 미용을 하라고 아는 지인 미용실로 날 꽂아넣었어 그때 시급이 4500원 즈음이었는데 시급 1200원을 받았어. 점점 돈이없었어.
열심히 빵집에서 알바하면서 저축한 돈을 아껴썻지만 모자랏어. 버스도 못타고 1시간 거리를 걸어다녔고. 밥을 못먹어서 다이어트 한다고 했어 주먹밥 하나 사서 반개는 점심 반개는 저녁이었어.
근데 집에 빨리 안온다고 혼났고 욕먹었어. 난 버스비도 없는데 어쩌냐고 울었어.
정말 그때의 날 만나면 30만원만 쥐어주고 싶어.

대학교 졸업하고 아무곳이나 취직했어
120만원이 월급이었고. 첫 월급 받는날에 맞춰서
고시원으로 독립했어.
물론 엄마아빠는 허락안했어.
처음에는 허락받으려고 했는데 약속해놓고 안지키길래 그냥 짐 싸서 당일아침에 나간다고 했고
내 짐은 우체국 박스 제일큰거 2개. 콜택시로 가능한 이사.
내 고시원은 지금은 사라진, 건대입구역의 여성전용원룸텔 32만원 제일 작은방. 1.5평 될까말까..? 투잡 쓰리잡 뛰었고
밥은 친구들만날때나 사먹었어
평소에는 고시원에서 나오는 계란, 라면, 밥으로...
좋은 고시원이었어 사장님이 엄청 친절했어.
오래사니 기존 비용으로 더 큰방으로 옮겨주셨어.
나올때 홍삼사드렸어.

3년동안 3천만원을 모았고 3천짜리 전세로 들어갔어.
서울에 그런곳이있냐 하면 있었어.
일반 주택에 불법 공사로 공간을 넓힌집.
비가새고 곰팡이가 생기고 바퀴벌레가 넘쳤어
사실 바퀴는 모르고 들어갔어. 알았음 안갔음
밤마다 엄지손가락보다 더 큰 바퀴랑 만나면서 기절할뻔 하는 것도 여러번, 3년을 살았어.
돈이 바퀴벌레보다 무서운걸.

그동안 많은 일이있었어 국비지원으로 여러가지 배우고
엄마 아빠랑도 근황은 묻게 되었고..
집에 물새니까 공사한다고 나가달라그래서 급하게 집을 구했어 이번에는 중소기업전세대출 받았어어
보증금 3천에 국가에서 저소득자라 고이율 적금 들 수 있어서 그걸로 모은 천만원 가량 이랑 3년간 2천만원 더 모았고.. 재건축예정된 아파트라 싸게 들어옴.

난 사회생활못하는 똥멍청이라서
부당한거 참다가 홧병걸리는애라서
애교도 못떨고 정치도 못해서
직장인 더는 못하겠다 때려치고 프리랜서
직장다닐때보다 두배는 더 벌게되었어.
많게는 월 800찍었고 못벌어도 300은 버는거같아
자금이 생겼고. 모은 저축도 있는데 집값이 너무 올라서
여기 끝나면 갈 곳이 없겠더라고.
집을 사야겠구나...다행히 내가 저축을 좀 열심히 했어 통장에 돈모이는거 보고 행복느끼는 사람이라

그래서 사방팔방 임장 다니기시작했고
경기도 쪽에 작은 아파트를 구매했어.
내가 맨날 입버릇 처럼 말하던게 30살에 집살거야 라는
말이었는데 이루어졌네 신기해.
열심히 일해서 40대에는 파이어족으로 은퇴한다음에
세계여행 하다가
한지나 도자 장인 찾아가서 제자(?) 가 되고싶은게
내 꿈인데 말처럼 쉬운거 아니잖아! 그래서 꿈이야.

집 사니 너무 들떠서, 안믿겨서, 주변에 말하고싶은데
요즘 힘든데 말 안하는 사람도 많고
혹시 내가 누구 기분 속상하게 할까봐
막 말하고 다니지는 못하겠어.
나도 영끌 대출(규제심해지기전)에 전세안고 산거라
다 빚더미인 집이지만 그래도.. 그래도
내가 늙어서 몸 비빌곳은 있구나 싶어서 좋다.

아직 엄마아빠는 마음놓고 좋아하지는 못해.
마음놓기에는 내가 학대당한 시간이 8년...
그동안 당한 욕과 폭력이 너무 힘들었어서
근데 우리 엄마아빠도 힘들었겠거니 싶어서
묻어보고 지내려고 하는거야.
가끔 옛날처럼 하려 할 때 있는데 그러면 바로 쳐내고
연락안해.
주변사람들은 내가 부모얘기하면 욕한다고 개념없는 사람취급해서 정말 친한사람 아니면 얘기못해.
사실 학대도 당해본애들이나 그 마음을 알지.. 가족이 소중하다는 사람들은 이맘 절대 몰라...

앞으로도 힘든일 많겠지만 잘 견뎌낼 수 있으면 좋겠다.

추천수31
반대수8
베플|2021.09.30 15:42
절대 가족 누구에게도 돈 주지 말고 집 샀다는거도 말하지마. 난 할머니지만 어릴때 울 엄마가 자식 차별을 많이 해서 보란듯이 돈벌어 갖다 주고 결혼 해서도 꾸준히 줬지만 다 소용 없다는거 너무 늦게 깨달아 지원 끊은지 몇년 됐어. 절대 쓰니 앞으로 있는 재산 알리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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