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초기에만 해도 계획했던 임신이라 처음엔 기쁨만 가득했는데
배도 어느정도 부르고 뱃속에 아기도 느껴지니 어느 순간 출산이 너무 무서웠어요.
특히 밤에는 거의 매일 자다 깼고요. 그럴때마다 남편을 깨웠어요.
남편도 피곤할텐데 고맙게 절 많이 달래줬어요. 저도 다음날 출근하는 남편 깨우면 안되는 거 알았는데 그땐 너무 무서워서 어쩔 수가 없었어요.
하루는 남편이 오늘은 자기가 너무 힘들어서 새벽에 푹 자게 해줄 수 있냐고 했는데
제가 별 생각없이 새벽에 또 남편을 깨웠거든요. 아니 사실 깨우면 안된다고 알고는 있었는데 늘 다 받아주던 착한 남편이라 아무 생각없이 또 깨웠어요.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남편이 많이 식은 거 같아요.
그 후 아이 낳고도 전쟁이었죠. 밤마다 우는 아기를 달래고 재우고... 지금 생각하면 남편도 고생은 똑같이 했는데 그땐 왜 그렇게 우울하고 남편이 미웠는지 짜증내고 패악질도 많이 부렸고요....
어느 정도 한숨 돌린 후부터는 남편이 주말에도 출근을 자주 나갔는데요. 가끔 집에서 쉴 때도 저보고 오늘은 쉬고 오라면서 호텔 잡아주고 그랬거든요.
그러다 오랜만에 남편이랑 데이트하려고 주말에 시간 괜찮냐고 물었을 때 바쁘다며 대충 얼버무릴 때 왠지 섬칫했고요.
한 번 의식하니 그동안은 왜 이리 눈치가 없었는지 남편이 아예 다른 사람이더라고요.
남편은 저한테 응, 아니야, 됐어, 괜찮아. 이 말 밖에 안해요.
오늘 좀 늦어? 하면 응. 이거 좀 먹어볼래? 하면 괜찮아.
노골적으로 말붙이면 귀찮은 티가 나서 이제는 말도 잘 못 걸겠어요.
연애 때는 차만 타면 노래 틀어놓고 저랑 수다 떠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추석때 차에 타니 저보고 피곤할 텐데 눈이나 붙이래요...
알고 보니 그동안 제가 어떻게 몰랐는지 이해가 안 갈 만큼 사람이 많이 변했어요.
애초에 눈빛부터가 아이 보는 눈빛하고 절 보는 눈빛이 너무 달라요...
아이 볼 때는 세상 사랑스럽다는 눈빛인데 저만 보면 너무 무심해요.
남편한테 사과도 했어요. 퇴근 시간에 맞춰서 술이랑 안주랑 다 차려서 진지하게 그동안 미안했던 점들, 앞으로는 이렇게 노력하겠다는 점들, 그동안 고마웠던 점들 다 얘기하고 용서를 구했어요.
차라리 남편이 용서를 안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그냥 괜찮대요. 이해한대요. 그 뒤로도 관계는 그대로에요.
유일하게 아이 관련해서만 신경쓰고 솔직히 이제는 제가 죽는다고 이 사람이 슬퍼는 할까? 싶을 정도에요.
몸으로라도 풀어볼까 해서 미친척하고 들이대도 봤는데 아예 정색을 하더라고요... 다음날에 피곤했다며 미안하다 하긴 했는데 그때 정말 비참했고요... 지금이 일요일 11시가 다 되가는데 남편이 아직 집에 안 들어왔어요.
이제는 정말 해야되는 일을 하는 건지, 저랑 있기 싫어서 만들어서 일을 하는지도 모르겠네요. 같이 상담이라도 받아 보고 싶은데, 남편 무심한 반응에 제가 또 상처받을까 무서워서 말도 못 꺼내겠어요..
댓글들 감사합니다.. 가슴에 찔리는 말들이 많네요...
저도 제가 한짓이 있으니 남편이 금방 예전처럼 돌아와줄거라고 기대하진 않았어요.
저도 나름 행동으로 달라졌다는 걸 보여주려고 많이 노력했는데 아예 저를 혐오하는 수준인지 저와 함께하는 모든 걸 부정하더라고요.
제가 아침에 일어나서 먹을것 좀 챙기고 배웅하니 앞으론 더 쉬어도 된다면서 다음날엔 아예 1시간을 일찍 일어나서 가버려요. 그냥 아침에 얼굴보기 싫다는 거죠....
평소에 연락은 아예 받지도 않고요. 암묵적으로 아이랑 같이 거는 영상통화가 아니면 연락을 그냥 안 받아요.
아이가 열이 많이 올라서 남편이 급하게 차 타고 오는 그런 날이 아니면 저녁을 같이 먹은 날도 손에 꼽고요.
정말 제가 뭘 해도 다 싫어하고 거부하니 저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더라고요.
조금이라도 마음을 열어주면 뭐라도 더 해볼 텐데 아니면 차라리 마음이 닫혀있다면 열어보려고 애라도 쓸텐데
그냥 저게 본심인 것 같아서 더 무서워요.. 애초에 저한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다는 게 느껴져서....
저도 남편한테 너무 미안하고 챙겨주고 싶은데 제가 뭘 어떻게 해야될지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