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 희찬
눈 내리는
아고라의 광장에서
나는 초췌하고 피곤해 보이는
한 늙은 남자를 만났다.
그는 굽이 닳은 구두를 신고
낡은 검은 코트를 입고 있었지만
몹시도 추워보였다.
누구를 기다리는 것일까?
그는 고개를 좌우로 돌려가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살피고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를 발견하지 못하고
그냥 그 곁을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당신은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모양이죠?”
그에게 내가 다가서며 묻자,
그는 웃으며,
“악마의 장난 때문이죠.”라고 대답했다.
내가 눈을 크게 뜨며,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다시 바라보았을 때,
마침 광장에는 징글 벨 징글 벨
크리스마스 캐롤송이 울려 퍼지고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작품후기>
괴테의 작품 <파우스트>에서 주인공 파우스트는 지적 욕망이 매우 강한 사람이었다. 자신의 지적 욕망을 채우기 위해 악마에게 자신의 영혼을 팔아버린다. 인간은 지적 욕망의 크기가 다소 다를 지라도 파우스트와 같이 자신과 세계에 대해 알고 싶은 욕망이 있다. 우선 자신의 존재를 밝히기 위해 끊임없는 사색하고 성찰하며, 친구나 연인의 심리나 상황에 대해 알고 싶고, 이웃의 비밀한 이야기에 대해서도 알고 싶어 한다. 그런데, <파우스트>에서 ‘악마의 유혹’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적어도 나는 파우스트와 같은 지식인들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악마의 유혹처럼 지식인들의 영혼을 빼앗는 권력들이 존재한다. 그것은 명예욕, 권력욕, 금력(金力)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그럼에도 그 악마의 유혹과 맞서 싸우는 이 땅의 파우스트들은 많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자신들만의 즐거움에 그들의 고독한 싸움에 무관심하다. 오히려, 고독한 파우스트에 대해 비난을 퍼붓는 경우도 있다. 지금도 현 정부는 역사학자들에게 역사교과수정(왜곡)을 강요하고 있다. 현 정부에 압력을 받은 출판사는 교과서 저자들의 인격과 지적재산권을 침해하면서까지 역사교과서를 수정하려고 한다. 우리 사회는 파우스트와 같은 참된 지식인들이 진정으로 사라져 버리기를 원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