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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성범죄 신고, 엄청 울었어요

쓰니 |2021.11.14 00:33
조회 1,988 |추천 14


글이 길어 요약부터 하자면,


1. 지하철에서 여성 승객 근처를 서성거리며 자X를 하는 듯한 남성을 봄.


2. 지하철 라인 번호, 열차번호, 객실호수, 인상착의, 나이대 등을 적어 신고문자를 넣음.


3. 남성이 근처에 있는 상태에서 경찰쪽과 전화통화를 시작으로 경찰쪽의 전화러쉬 시작. 


4. 그러나 자X하던 남성 못 잡고 행방 묘연.

 


당장 오늘 있었던 일입니다. 집으로 가기 위해 성수에서 시청 방면으로 가는 지하철을 탑승했습니다. 시간대가 시간대라 그런지 탑승 당시 지하철 내부는 한적했고, 저는 문 옆 자리에 앉아 핸드폰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득 누군가가 제 옆, 말하자면 문 앞에 와서 섰고 갑자기 다가선 사람에 제가 힐끗 보니 제 쪽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마치 제 핸드폰을 쳐다보는 것 같았지만, 저는 크게 개의치 않고 제 할 일을 계속 했습니다. 그런데 이 분 행동이 좀 이상했습니다. 입구 앞에 서있으면서도 다음 역에서 내리는 것도 아니었고, 오히려 노약좌석으로 가서 앉았다가 또 얼마 안 있어서 일어나서 제 근처로 와서 서성이고, 또 다시 노약좌석으로 돌아가 앉는 식이었습니다. 그런 행동이 너무 신경쓰여서 계속 힐긋힐긋 쳐다봤는데 이 남성분 행동이 특이를 넘어서 이상합니다. 자리에 앉았다, 일어났다, 반대편으로 걸어갔다가, 다른 여성분 근처에 갔다가…



결국 전 그 남성(Z)이 여자분 근처에 서서 여자분을 힐긋 보고, 본인 성기를 움켜쥐는 행위를 하는 것까지 보게 되었습니다. 처음 움켜쥔 걸 봤을 때는 놀랐고, 두번째로 움켜쥔 걸 봤을 때는 경악했습니다. 제가 본 건 성범죄였습니다. 그것도 지하철에서 여자 승객들 근처에 서서 대담하게 본인 성기를 꽉 움켜쥐는 대담한 행위였습니다. 저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인터넷을 뒤져 서울지하철 신고 문의 전화번호를 찾아냈고, 그쪽으로 신고문자를 넣었습니다. 신고대상인 남성(Z)과는 너무 가까워 전화로는 할 수가 없었거든요. 그때가 9시였고, 1분 1초가 너무 느리고 빠르게 흘러갔습니다. 답장이 없었기에 저는 9시 4분, 112에도 신고문자를 넣었습니다. 지하철 호선 번호과 열차 번호, 객차 번호, 신고대상의 인상착의와 연령대까지 떨리는 손가락으로 최대한 차분히 관찰하며 썼습니다. 문자를 넣은지 3분만에 양측에서 각각 신고접수가 완료됐다는 답문이 왔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경찰측에서 신고접수 완료 문자가 날아온지 2분 뒤인 9시 9분, 경찰측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열차가 어디쯤 있는지 묻는 전화였고 경찰관 분(A)은 신고대상의 인상착의를 물으셨습니다. 처음에 다른 업무를 보시던 중이신지 다른 말을 하시길래 ‘여보세요?’를 몇 번 하니까 ‘아닙니다. 말씀하세요’라는 식으로 대답하시길래 저는 인상착의와 현재 열차가 충정로에서 아현쪽으로 넘어가는 중이라는 것까지 말씀드렸습니다. 그다음 전화는 2분 뒤인 9시 9분에 왔고, 현재 어느 위치에 신고대상이 있는지를 묻는 전화였습니다. 저는 처음 신고문자에 썼던 것 처럼 4번 문이나 3번 문으로으로 오면 된다고 대답했습니다. 경찰관분(A)은 신고대상(Z)이 아직 거기 있냐 물었고 저는 그렇다고 확인해줬습니다. 그리고 또 인상착의를 물으시더라고요. 분명 첫 통화때 말씀드렸는데 또 묻기에 다시 대답해드렸습니다. 남성(Z)의 나이대도 신고문자로 말씀드렸는데 또 물어보셨습니다.



그런데 그 질문에 답하려는 순간, 남성(Z)이 제 앞을 지나쳐 노약자석으로 가시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잠깐만요, 하고 숨을 죽이며 얼굴을 힐긋 보고 50대 정도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다 홍대입구에 도착할 즈음 제 바로 옆옆자리가 비게 되었고, 남성(Z)이 노약자석에서 제 쪽으로 다가와 앉으셨습니다. 그땐 숨을 쉴 수 없었습니다. 너무 가까웠고, 저는 신고자의 입장으로 경찰관(A)과 통화를 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통화하던 경찰분께 남성이 너무 가까이 앉아있다, 자리를 옮겨도 되겠느냐고 물었고 경찰관은 그러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저는 너무 긴장했고 두려워서 열차 칸을 두 칸이나 옮겼습니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 또 떨리기 시작하는 손으로 전화통화를 했던 경찰관분께 문자를 드렸습니다. 남성(Z)가 앉은 자리가 어딘지를 말씀드렸고, 짐을 들고 있었다고도 설명했습니다.



문자를 보낸 뒤 거의 1분마다 서로 다른 경찰관분들에게서 전화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경찰관들(B, C, D)는 신고대상인 남성의 인상착의를 다시 물어왔고, 해당 남성과 같은 지하철 내에 있는지, 남성이 지하철에서 내렸는지, 어디에 앉아있는지 같은 것들을 물어왔습니다. 이미 신고문자와 첫번째 두번째 통화 및 문자로 다 말씀드린 내용이었습니다. 자리를 옮긴 뒤에는 경찰관과 마주치기도 했습니다. 제가 말씀드린 장소에서 남성을 못 찾으신 모양이더라고요. 제가 신고전화를 넣은 사람이라고 먼저 말씀드렸습니다. 그게 하필이면 해당 칸의 노약자석 근처였고, 경찰관분은 혹시 본인 뒤에 앉아있는 할아버지가 그 남성(Z)이냐고 물으시더라고요. 힐긋 보니 그 할아버지분도 제가 신고 넣은 인상착의와 같아서 물어보신 것 같았습니다. 저는 아니라고 말씀드렸고, 경찰관분들은 바로 다음 역인 당산에서 내렸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만약 맞았다면 어떻게 되는 거였을까요? 그 할아버지, 그리고 저와 경찰관의 거리는 채 1m도 되지 않았습니다. 신고대상자 바로 앞에서 제가 신고자라는 걸 들키는 상황이 오지 않았을까요? 처음 경찰관(A)과의 통화도 제겐 위험하게 느껴졌습니다. 신고대상인 남성(Z)이 제 앞을 몇 번이나 지나다니는 와중에 저는 경찰분께 남성의 인상착의와 현 위치 같은 것들을 설명해야 했습니다. 심지어 남성(Z)이 저를 지나쳐 제 바로 옆옆자리에 앉았을 때에도 저는 전화통화를 계속 해야 했습니다. 다행히 자리를 옮긴 뒤에는 남성이 저를 인지했는지 아닌지 신경쓸 필요가 없어졌지만, 그 뒤부턴 경찰분들의 전화러쉬를 받았습니다. 제가 신고자니까 당연하다고 생각되지만, 경찰들 사이에 정보 교환이 안되는 모양이더라고요. 같은 말을 또 하고 또 했습니다.



열차에서 내리기 직전에 경찰관(E)에게서 온 전화는 그나마 얘기가 수월했습니다. 열차가 어디에 있는지 실시간으로 정확하게 아시는 걸로 보아 아마 현장에 계시던 분은 아니었지 싶습니다. 이전까지의 경찰관분들(A~D)은 열차가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향하는지를 물어보셨었거든요. 그러나 결국, 그 많은 전화통화에도 불구하고 경찰들은 남성을 찾지 못한 모양이었습니다.

전화를 끊고나자 저는 무섬증이 돋았습니다. 10년 전에 지하철에서 직접 겪었던 성추행 사건이 떠올랐습니다. 그때 느꼈던 무서움과, 지금 느낀 무서움이 오버랩되었고 눈물이 터져나왔습니다. 그때는 미처 신고를 하지 못했습니다. 너무 어렸고, 무서웠거든요. 10년이 지나 성인이 된 저는 신고는 했지만 경찰들은 결국 해당 남성을 잡지 못했습니다. 너무나 무기력했고 무서웠고 슬펐습니다.



처음에 저는 신고를 하고도 제가 오해를 했으면 어쩌지 싶었습니다. 그런데 경찰분과 전화를 하던 중 남성의 인상착의를 말하자, 경찰분이 ‘아, 이쪽(지하철)에서도 그 사람을 아네요. 알겠습니다’라는 식으로 말씀하셨던 걸로 보아 그 남성은 상습범이었나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놓친 점이 무척이나 아쉽고 무섭습니다, 저는. 울면서 집에 도착했는데, 처음 통화한 경찰관(A)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제가 울먹이자 경찰관은 ‘왜 우시냐’라고 했고 저는 ‘무서워서 울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경찰관은 저를 진정시키면서도 힘들겠지만 제가 봤던 것들을 얘기해달라고 했습니다. 끔찍한 기억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상세하게 제가 본 것들을 모두 말씀드렸습니다. 경찰관은 그 남성이 홍대입구에서 내린 것 같다고 했고, 이후에 또 전화가 올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끝입니다.



경찰관(A)가 전화를 건 이유는 알겠습니다. 당시에는 상황을 정확히 들어볼 시간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고, 또 서류작업을 해야하든가의 문제가 아닐까 싶어요. 게다가 기억이란 건 최근일수록 선명하니까 최대한 빠른 시일내에 설명을 듣고자 했겠지요. 그런데 이게 맞는 방법이었나 의문이 듭니다. 남성(Z)이 이상한 짓을 하는 걸 알게 된 건 제 바로 맞은편에 앉아있던 여성분 덕분이었습니다. 때문에 저도 남성분이 제 근처에 서있을 때 높은 확률로 동일한 행위를 했을 거라고 추측합니다. 제 헛된 생각일수도 있지만, 맞은편 여성분을 대상으로 했던 남성의 행동 패턴이 제게 일어났던 것과 너무 비슷합니다. 다른 일을 하는 척, 관심 없는 척 여성의 근처에서 서성이다가 다른 곳으로 갔다가 다시 같은 자리로 돌아와 동일 여성 근처에서 서성이는 것이 그러합니다.



상황을 겪고 나니, 경찰분들 사이에 정보공유가 안된 점이 가장 아쉽고 결국 해당 남성을 잡지 못한 게 너무 안타깝습니다. 또한, 저는 분명 홍대입구에 도착하며 남성이 자리에 앉는 것을 보고 자리를 떴는데, 경찰은 남성이 홍대입구에서 내렸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보통 내리기 전 역에 도착했는데 자리를 옮겨 앉나요? 그것도 입구쪽도 아닌 자리에 말이에요. 너무 이상하지 않나요? 게다가 앞서 말했듯, 경찰분들의 대처도 너무 실망스러웠습니다. 인상착의를 몇 번이나 말했는지 모르겠어요. 자리를 옮기기 전에는 남성의 기색도 살피랴, 경찰의 질문에도 대답하랴 정신이 없었습니다. 이게 맞나 싶네요.



저는 제가 오늘 지하철 성범죄를 목격하게 된 것, 그리고 잠정적 피해자가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경찰의 대처는 실망을 넘어선 절망에 가까웠습니다. 신고자이자 잠정적 피해자로서 저는 너무나 힘들고 괴로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건대입구에서 서울 반대편까지의 시간 동안 너무 많은 일들이 벌어진 느낌이고, 10년 전 경험했던 성추행이 제 마음에 흉을 남겼듯 이번 사건도 제게 깊은 상흔을 남길 것 같습니다. 너무 많이 울었고, 너무 많이 힘들었고, 괴로웠습니다.



제가 엉엉 울면서 집에 와 겪었던 얘기를 털어놓자, 부모님께서는 다음엔 신고를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부모님의 마음도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이게 제대로 된 나라인가요? 신고자가 되면 겪는 일들이 다사다난하여 신고를 안 하는 게 정상적인가요? 신고를 하는 건 문제가 아니지만, 신고를 하면 겪는 일들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성범죄 신고자에 대한 배려도, 효율적인 일처리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사건을 해결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저는 이 문제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끔찍한 기억들이었지만, 부모님의 말씀 처럼 다음엔 신고하지 않든가 아니면 다음 열차로 갈아타거나 모른척 하고 싶지 않거든요. 그런데 이런 식으로 지하철 관련 범죄가 처리된다면 용의자 잡기는커녕 신고도 어렵겠다 싶습니다. 어디다 알릴 데 없나 싶어 고민하다 여기에 씁니다. 원래는 언론에 제보하려던 글이지만, 제가 미처 쓰지 못하고 놓친 부분도 있을겁니다. 제가 무슨 정신으로 저 긴 글을 썼나 모르겠네요. 정신없이 써내려가 두서없는 점 죄송하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수14
반대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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