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둡고 차가웠던 내 인생에 너는 한 줄기의 햇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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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
“아, 들어와도 좋다.”
“104기 조사병단 에렌 예거입니다!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어이, 호들갑 떨지말고 얘기해라. 무슨..”
“쑥쑥이가 없어졌습니다!”
쿠당탕탕
하.. 간부조 회의가 있는 1시간만 104기 애들한테 쑥쑥이를 맡겼었는데. 회의가 시작한지 10분 채 되지 않아 없어졌다니. 쑥쑥이가 없어졌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리바이는 벌떡 일어섰고 그 바람에 의자가 넘어졌음. 엘빈과 한지 역시 놀라 눈이 커졌고 즉시 간부조 회의를 중단시켰음. 나 역시 에렌을 붙잡고 물었음.
“어쩌다가 없어졌는데?”
“아.. 그게 쑥쑥이가 배고파하는거 같길래 미카사와 제가 나베를 해주려다가..”
“하? 네 녀석들은 머리에 똥만 들어있는거냐. 아기는 나베를 먹지 않아. 더군다나 너네들이 해주는 나베따위는 평생 먹이지 않을거다.”
“병장님. 너무 하십니다.”
그래서 쑥쑥이가 누구냐고? ㅇㅇ 너네가 생각하는 거 맞음. 리바이와 나 사이에 얻는 세상에서 둘도 없는 보물, 우리 사이에 태어난 아이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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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제 23회 방벽 외부조사가 끝나고 3년 후 였음. 한창 엘빈이 리바이를 ‘인류 최강의 도도한 병사’라는 이미지로 만들기 위해 애를 먹던 때였고 덕분에 리바이의 인기가 하늘을 치솟을 때였음.
“입체 기동 장치 56개, 칼날 800 상자, 제복은 사이즈 별로 10벌 씩. 추가 보급 신청한 거 맞아요?”
“어이. 너 방금 칼날 800상자라고 했나?”
“...네 그런데요?”
“하... 칼날은 80상자다. 800상자가 아니야. 어떤 바보가 칼날을 800상자나 신청하냐.”
유명인사였던 리바이와의 첫 만남은 최악이었음. 헌병단으로 있던 나는 종종 다른 병단에 불법 부품 점검 겸 추가 부품 장비 신청 및 조달하는 일을 했는데 그 과정에서 무슨 문제가 생긴 모양이었음.
“신청한 건 리바이 병장님이겠죠. 병장님이 처리한 서류 기반대로 저희는 공장에 의뢰를 넣는데요.”
“난 그런 바보같은 실수따위 하지 않아. 분명 2번 3번을 확인했었다.”
“네.. 그러면 그냥 두고두고 쓰세요. 일 처리할거 더 없으면 전 가보겠습니다.”
“어이, 너는 헌병단이라면서 기본도 모르는거냐. 칼날은 네가 생각하는 것 만큼 오래 쓰지 못해. 하.. 어쩐지.. 예산 금액의 합이 안 맞은 이유가 여기 있었군.”
그냥 빨리 퇴근해서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싶었던 나는 리바이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음. 대충 상황 정리를 끝내고 조사병단의 본부에서 나오려는데 리바이의 혼잣말이 내 귀에 들렸음.
‘돼지같은 녀석들.. 일처리도 똥같이 하는군..’
돼지? 아까는 바보라고 하지를 않나 기본도 모른다고 하지를 않나 이제는 돼지라니. 그닥 차분한 성격도 아니고 할 말은 하는 나였기 때문에 아무리 인류 최강이래도 그냥 넘어갈 수 없었음.
“ㅇㅇㅇ. 본부에 올 일이 있었으면 미리 말을 했어야지. 하마터면 얼굴도 못보고 갈 뻔 했잖아.”
“...엘빈?”
“스토헤스구 생활은 어떻지? 헌병단 일은 어렵지 않고? 밥은 잘 챙겨 먹고 있는건가.”
“아니.. 저기 엘빈.. 하나씩 물어봐줄래?”
“오랜만에 네 얼굴을 보니 기분이 좋아서 말이 많아졌군. 아, 리바이. 소개하지. 이쪽은 내 동생 ㅇㅇㅇ이다.”
내가 엘빈의 동생이라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리바이의 표정은 썩어들어가기 시작했음.
“그래서 방금 리바이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거지?”
“아 그게 말이지..”
“어이.”
리바이와 나 사이에서는 묘한 긴장감이 흘렀음. 몇 초간의 짧은 접전 끝에 내가 입을 열었음.
“별 이야기 아니었어. 칼날 수가 안 맞아서.. 아무래도 헌병단 측에서 실수했나봐. 내가 가서 잘 이야기해볼게.”
“내가 도와줄 건 없는건가?”
“응 오빤 괜히 이런데 신경 쓰지 말고 잠이나 좀 더 자. 그럼 먼저 가볼게.”
나는 미뤄지는 퇴근에 짜증이 났지만 표정에 드러나지 않게 숨기고 급하게 자리를 떴음.
“리바이.”
“말해라.”
“내 동생 너무 귀여운 것 같다.”
리바이와 한바탕 입씨름을 하고 도착한 헌병단 본부 역시 나를 반겨주지는 않았음.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떠도는 이상한 소문들과 헌병단과 사이가 최악인 조사병단 소속의 오빠를 둔 나는 소위말해 ‘왕따’였음.
“저기.. 그.. 반장님 조사병단 측에서 부품 물량이 맞지 않아 칼날 720상자가 남게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반장님께서 잘못 확인하시고 넘긴거 같..”
쨍그랑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에게 뜨거운 차가 담겨진 컵이 날아왔음. 컵은 내 귀 옆을 지나 벽에 부딪혀 깨졌고 그 파편에 볼에 조그마한 상처가 남.
“하... 긴 말 안한다. 네 사비로 충당해.”
“하지만.. 부품 조달이 잘못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서요.. 저번에 주둔병단..”
쾅
“야. 내 말이 말 같지가 않아? 끔찍한 박쥐같은 년이.”
한참 나를 향해 욕을 퍼붓던 반장은 기분 나쁘게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곤 방을 나갔음.
“ㅅㅂ”
엿같은 상황에 당장 헌병단을 때려치우고 싶었지만 나 역시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었기 때문에 그러지 못했음. 반장 뒷통수를 갈겨버릴까 몇 번이고 고민도 해봤지만 괜히 눈에 띄는 짓을 했다간 오빠의 명성에 누가 될까 그러지도 못했음. 나는 남은 칼날을 어떻게든 메꾸어야만 했고 그러기 위해 다시 조사병단으로 향함.
똑똑
“리바이 병장님. 헌병단에서 또 사람이 왔는데요?”
간부 회의에 간 엘빈을 제외하고 조사병단 병사들과 벽외 조사 관련 회의를 하던 리바이는 헌병단에서 사람이 왔다는 이야기에 순간 미간을 찌푸렸음.
“..들어오라고 해라.”
“오전에 추가 보급 신청건으로 다시 왔습니다.”
리바이는 내 얼굴 한 번을 보지도 않고 서류에 글자만 휘갈겼음. 묘한 분위기에 같이 있던 병사들 대 2~30명은 눈치를 보기 시작함.
“헌병단 측에서 남은 물품 배상이 어렵다고 하셔서요. 최소한 반은 조사병단 측에서 배상을 해 주셔야할 것 같습니다.”
“...그럼 남은 반은 누가 배상하지?”
리바이는 나를 올려다보며 물었음.
“그거야..”
그는 서랍에서 꽤 두툼한 서류 뭉치를 꺼내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하나하나 서류들을 넘기며 읽기 시작했음.
“제165회 추가 보급 물품 신청, 제복 23벌 미달. 171회 물품 신청, 제복 2벌 미달 및 입체 기동 장치 3개 추가입고. 175회 추가 보급, 칼날 20박스 미달. 178회 추가 보급, 제복 17벌 추가 입고. 182회 물품 신청, 입체 기동 장치 5개 미달. 185회...”
“....”
리바이가 일정하게 낮은 음성으로 물품 미달 내역을 읽자 앉아있는 병사들은 수군대기 시작했고 나를 아니꼬운 눈으로 쳐다보기 시작했음. 나는 얼굴이 빨개졌고 주먹을 꽉 진 손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함.
“이미 헌병단에서 잘못 입고되어 온 물품에 대한 배상은 조사병단에서 해오고 있었다. 네가 반을 부담하겠다고? 부담할 수 있을 거 같냐. 칼날 720박스는 엘빈도 무리야. 어이, ㅇㅇㅇ. 난 처음으로 엘빈을 이해하지 못하겠군. 거지같이 일처리를 하고 책임조차지지 않는 동생을 둔 엘빈이 불쌍해 눈물이 날 지경이야. 너 한번이라도 다시 확인한 적은 있나?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뭘 하고 있었던 거야. 넌 엘빈에게..”
“엘빈..엘빈..엘빈... 그만 좀 하세요.”
나는 참다참다 폭발했음. 내가 어떤 꼴을 당하고 어떤 생각을 하면서 여기까지 왔는지 리바이는 몰랐겠지. 물론 한 번 더 확인하지 않은 내 잘못도 있지만 결국 최종적으로 공장에 발주를 넣는 건 담당 반장이 하는 건데.. 나 역시 잘한 건 없지만 무엇보다도 화나는 건 말끝마다 엘빈을 붙이는 거였음. 다른 병사들도 모두 있는 자리에서 나를 이용해 엘빈을 모욕하는 것 같아 기분이 더러웠음.
“전 오빠에게 해가 안 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오빠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조사병단에 심장을 바치고 있는지 잘 아니까. 그러니까 제 실수에 오빠를 가져다 붙이지 마세요.”
나는 리바이에게 소리를 지르고 방을 나오려고 뒤를 돌았음.
“어이..너..”
“그리고 칼날 720박스는 모두 제가 배상할겁니다. 제가 책임진다구요.”
쾅
문을 닫고 나오며 나는 이를 꽉 깨물었음. 귀부터 손끝까지 치욕스러움에 빨개진 나는 입술을 꽉깨물면서 다짐했음. 리바이 저 새끼 하나는 내가 꼭 똑같이 이 치욕스러움이 어떤 건지 알게 해줄거라고.
*
쾅
“리바이. 엘빈 이야기까진 할 필요 없었잖아. 다른 병사들도 있는데.. 리바이답지 않았어.”
얼어붙은 분위기 속에서 한지가 리바이의 귀에 대고 속삭였음.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 다들 나가보도록 해.”
집무실에 리바이와 한지만 남자 아까 소리내어 읽었던 물품 서류를 만지며 입을 열었다.
“물품 미달 내역은 조사병단에서 메꾼 게 아니야.”
“그럼?”
“나는 알아. 엘빈이 몰래 사비로 메꾼 거지. 괜히 동생이 힘들까봐 멍청한 짓을 하고 있었던 거야. 피가 좀 섞였다고 엘빈을 등에 메고 책임감 없이 구는 거 최악이다. 난 엘빈을 위해 버릇을 고쳐주려던 것뿐이야.”
사실 리바이는 후회하고 있었다. 왜인지 모를 괜한 오기에 감정적으로 군 것은 맞았으니까. 부끄러움에 얼굴이 빨개지고 온 몸이 떨렸음에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던 그녀의 모습에 결국 그는 밤잠을 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