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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밤. 조사병단 본부에 긴급 회의가 소집됐음.
“아주 중대한 사안이다.”
“엘빈. 그 전에 모두가 다 왔는지 확인해야해. 한 사람도 빠져서는 안 된다고.”
한지 역시 장난끼를 쏙 빼곤 안경을 손가락으로 올리며 말했음.
“어서 빨리 시작해. 쑥쑥이가 깨고 말거다.”
104기 애들 역시 경건한 마음으로 손을 무릎에 올리고 바짝 긴장을 하고 있었음. 그리고 잠시동안의 침묵 후에 엘빈이 입을 열었음.
“그래서. 산타는 누가 할 거지?”
“어이, 엘빈. 그건 네가 하기로 했잖아. 여기서 산타가 가장 잘 어울리는 건 너밖에 없다고.”
“나는 선물상자가 하고 싶다.”
“오빠. 오빠는 선물상자에 안 들어간다고 몇 번이나 말 했잖아. 그건 리바이가 하기로 했고.”
“그렇지만 큰 선물상자에서 튀어나와 깜짝 놀라는 쑥쑥이를 보고 싶은 걸.”
그때 아르민이 손을 들고 말했음.
“하지만 단장님. 산타를 하면 쑥쑥이를 안고 선물상자까지 데려갈 수 있어요. 깜짝 놀라는 것도 바로 옆에서 지켜볼 수 있고요.”
“단장님! 그럼 제가 산타를 하는 건 어떨까요? 저 정말 잘 할 수 있습니다!”
“어이 쟝, 너는 말상이니까 산타가 아니라 루돌프를 해야지.”
“뭐????? 에렌 너 한 판 붙어보자는거냐?”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울음소리에 등줄기를 타고 쎄한 기분이 들었음. 한창을 싸우던 쟝과 에렌 역시 순간 조용해짐. 리바이는 곧바로 일어나 방을 떠나며 무섭게 말했음.
“너네 둘은 내가 돌아오면 집무실로 오도록 해.”
“하....”
“에렌. 괜찮아. 에렌이 청소를 또 하게 된다면 나 역시 함께 하겠어!”
나는 리바이에게 한 소리를 듣고도 투닥거리는 104기 애들을 보며 웃다가 조용히 회의실을 빠져나왔음.
방에 들어가니 한 쪽 팔을 베게삼아 옆으로 누워 쑥쑥이를 재우고 있는 리바이가 보였음.
“회의는?”
“끝났지ㅋㅋㅋ. 쑥쑥이는?”
“아직 말똥말똥하다. 겨우 재워놨더니 에렌 자식.. 몸은 어때?”
어느새 울음을 그치고 방글방글 웃고 있는 쑥쑥이의 모습에 나 역시 웃음이 났음. 리바이의 물음에 나는 별 응답없이 쑥쑥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음.
“리바이. 나 쑥쑥이 낳길 잘한 거 같아. 후회 안 해.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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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까지 할 필요는 없었잖아.”
“이게 최선이었어요.”
“기다려. 약을 구해올테니까.”
나를 방 안 소파에 앉히고 얼마 후 리바이는 하얀 가루가 담긴 봉투와 물을 들고 방으로 들어왔음. 나한테 치욕을 준 사람 앞에서 가장 보이기 싫은 약한 모습까지 보였으니 정말 혀라도 꽉 깨물고 죽고 싶은 심정이었음. 아까 발표도, 지금도 괜히 도와주며 착한 척 동정하지 말라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내 몸 상태가 말이 아니어서 얌전히 있기로 함.
“마셔라.”
리바이가 약을 내밀자 나는 못 믿겠다는듯한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 보았음.
“이게 직빵이라고 하더라.”
나는 리바이가 가져온 약을 먹기 위해 손을 뻗었지만 아까 맞은 탓인지, 아니면 나도 모르게 반장 앞에서 한 긴장이 풀린 탓인지 손이 떨려 제대로 약을 잡을 수 없었음.
리바이는 짧은 한숨을 쉬고는 직접 약을 물에 풀어서 내 손에 쥐어줬음.
“곧 있으면 벽외조사다. 엘빈 눈에 띄지 않도록 해. 네 꼴을 보면 분명 작전에 집중하지 못 할거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약을 마시기 위해 입을 벌리려고 했음. 하지만 아까 맞은 상처가 뒤늦게 붓기 시작해 입이 떨어지지 않았고 비릿한 피 맛만이 계속 입 안을 맴돌았음.
“그리고.. 어이, 왜 아직도 기껏 가져다 준 약을 들고만 있는거냐.”
나를 향해 등지고 서 있던 리바이는 멀뚱멀뚱 약을 들고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나를 보곤 미간을 찌푸렸음.
“이바이 벼자님.. 이비.. 안 버러져서 야글 모머게써요..”
나는 피를 삼키며 겨우 한글자씩 떼어 말했음. 그런 내 모습에 리바이는 고개를 돌려 한숨을 쉬곤 내 옆에 앉았음. 그리곤 검지 손가락으로 내 이마를 꾹 눌러 내 시선이 위를 향하게 했음.
“벼자님..?”
“눈 감아.”
목도 마르고 입 안도 아프고 그냥 빨리 약을 먹고 한 숨자고 싶었던 나는 고분고분하게 리바이가 시키는대로 눈을 감았음.
그리고 눈을 감고 얼마 지나지 않아 리바이의 따뜻한 입술이 내 입술 위로 포개졌음.
어느새 리바이는 소파위에 무릎을 꿇고 허리를 올려 앉아 내 시야 위에서 키스를 하고 있었음. 그가 손으로 감싼 내 두 볼은 점점 뜨거워지기 시작했고 그와 동시에 그는 나를 배려해서 조금씩 자신이 머금은 약은 내 입안으로 흘려보내주었음.
한참 동안 약을 모두 먹자 쪽 소리와 함께 입술이 떨어지며 나와 리바이는 눈이 마주쳤음. 그의 표정은 키스하기 전과 똑같이 차분했고 나 혼자만 숨이 찬 채로 얼굴이 달아올라 있었음.
마취 성분이 있는 건지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또렷하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음. 나는 화가 났음. 나한테 그렇게 꼽을 줄 땐 언제고 이제 와서 베푸는 과한 호의가 더 엿 같았음. 잘난 모습만 보여서 나한테 한 행동들을 후회하게 해주고 싶었는데 정말 최악인 모습만 보여주었으니 화가 나서 미칠 것 같았음.
“…이것도 갚을거에요.”
“뭘 말하는거지?”
“오늘 도와주신 것도, 이 약도. 병장님께 빚진 기분 드는 거 더러우니까 배로 갚을거라고요.”
“마음대로.”
나한테 화가 난 건지, 리바이에게 화가 난 건지 분간이 되지 않던 그 때, 나는 내 몸이 이상해지는 것을 느꼈음. 숨이 가빠지고 정신이 아득해지기 시작함. 더이상의 추태를 보이기 싫어서 꾹꾹 눌러 참아보았지만 곧 한계가 왔음.
“...병장님. 나.. 좀 이상한 것 같아요.”
가만히 앉아 내 상태를 찬찬히 지켜보던 리바이는 내 말에 내 이마에 손을 올리고 열이 나는지 확인함.
“너.. 지금 열이 너무 많이 난다. 지금 당장 병원에라도 가는 게 좋겠군.”
옷가지를 챙겨 일어나려는 리바이를 나는 다급하게 붙잡았음. 감기, 몸살 그런 게 아니었음. 앞이 어지러웠고 점차 달아오르는 몸과 기분 좋은 흥분감은 간신히 붙잡고 있는 내 이성의 끈을 끊으려고 했음. 나는 숨을 한 번 크게 고르고 말을 이어나갔음.
“오빠.. 엘빈을 불러줘요.. 나 지금 목이 너무 말라요. 물을 마셔도 채워지지 않을 것 같아. 오빠랑 갈게요, 병원. 그러니까..”
“어이. 내가 아까 한 말을 귓등으로 들은 거냐. 당분간 엘빈 눈에 띄지 마라. 그리고 네 모습 지금 엘빈이 본다면..”
리바이는 아까 키스하며 흘린 물에 젖은 내 옷과 상기되어 있는 내 모습을 보고 마른 세수를 하며 시선을 돌렸음. 나는 당장 누구에게라도 안기고 싶은, 처음 느껴보는 이상한 충동을 느꼈지만 눈 앞에 있는 리바이에겐 죽었다 깨어나도 더 이상 실수를 하기 싫어 두 손으로 바지깃을 있는 힘껏 잡으며 참았음.
발표할 때보다 몸이 더 떨리기 시작하고 숨이 더 가빠지는 소리가 점점 커지자 나는 내 입을 틀어막으려고 바지깃을 놓고 떨리는 손을 들어 올렸음. 그리고 그 순간, 리바이의 입술이 다시 한 번 나를 덮쳤음.
약을 먹여줄 때와는 달리 그도 급하고 안달 나 보였음. 내 손위에 그의 손이 포개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소파에 누운 꼴이 되었음. 나는 참고 참았던 이성의 끈이 풀리자 그의 목을 감싸 안고 리바이에게 내 몸을 맡겼음.
그가 가져온 약은 귀족들 사이 거래되는 미약이었음. 뒤늦게 리바이 역시 약이 몸에 돌기 시작하자 우리는 정신을 놓고 말았음.
야릇한 소리가 방 안을 감쌌고 리바이는 이성을 잃은 와중에도 최대한 억제하며 나를 배려하려고 했음. 바깥에서 파티의 종료를 알리는 노크 소리가 두어 번 들려왔지만 우리는 그때마다 소리를 참으며 여전히 멈추지 않았음.
“ㅇㅇㅇ.”
“101기 헌병단, ㅇㅇㅇ.”
“내가 왜 불렀는지는 본인이 더 잘 알겠지?”
아침부터 헌병단장이 나를 부르는 까닭은 하나 밖에 없었음. 분명 그 파티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 물으려는 거겠지. 나는 반장이 잘렸기를 기대하며 헌병단장 방으로 갔음.
“그날 있었던 소란 탓에 귀족들의 투자금이 전년 대비 반으로 줄었어. 너를 질책하려는 건 아니지만.. 우리에겐 꽤나 큰 손실이야. 그래서 책임을 져 줬으면 하네.”
그 새끼는? 그 새끼는 잘린거냐고 백 번 묻고 싶었지만 그 전에 내가 잘리게 생겼으니.. 그렇게 맞아서 입 안이 아물지 않아 아직까지 밥도 제대로 못 먹는데. 억울해서 눈물이 다 날 지경이었음.
“그리고 칼날 720박스... ㅇㅇㅇ이 책임지기로 했었다며?”
720이란 숫자를 듣자마자 심장이 쿵 내려앉았음. 리바이와의 일로 완전히 까먹고 있었던 터라 지금 당장 헌병단에서 해고되면 갚을 방법도 없었음.
“저.. 그게.. 그러니까.. 제가 다 잘못했어요. 그러니까..”
“로베르가에서 모두 배상하기로 했네.”
“네?”
“유일하게 이번 소란이 있고도 예정된 투자금액을 줄이지 않은 가문이야. 사실 너 역시 책임을 지고 헌병단을 나가야하지만... 징계가 바뀌었어.”
“징계가 바뀌었다니.. 그게 무슨..”
“ㅇㅇㅇ, 헌병단을 떠나 조사병단에 합류해라. 이번 벽외 조사에 참여해.”
*
똑똑
“이번 파티 정말 즐거웠습니다. 준비를 많이 하셨던데요?”
파티가 끝난 다음 날, 로베르가의 차남이 헌병단장의 집무실을 방문했다.
“하하.. 참.. 죄송합니다. 여러 가지 소란 때문에 파티를 즐기시지도 못 했지요.. 그 주범들은 제가 잘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뇨 아뇨. 그런 부탁을 드리러 온 것이 아닙니다. 저희 가문은 예정대로 헌병단에 투자를 진행할거에요.”
“에? 아니 그럼 무슨 일로..”
“이번 소란 중심에 있던 병사 말입니다.”
“아 ㅇㅇㅇ 말씀하시는 건가요?”
“이름이 ㅇㅇㅇ이었나요? 그 아이의 징계를 없애달라고 부탁하려고 왔습니다.”
“...그.. 없애는 건 조금.. 어려울 것 같은데요... 워낙 소문도 안 좋고..”
“아니면 이번 투자금 전액을 회수할 예정입니다.”
“그..그럼 그 약하게 하는 건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희 가문에서는 내년부터 헌병단에 일절 투자를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올해가 마지막일 겁니다. 그럼.”
“아니 그게 무슨..”
“동료를 괴롭히는 건 하수나 하는 거죠. 단장님, 외면하는 건 하수도 할 짓이 못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