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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한 달하고도 닷세뒤면

아홉수 |2021.11.25 01:50
조회 5,941 |추천 11
이제 한 달 하고도 닷세 뒤면 앞자리 숫자가 바뀌어.

교복을 벗은지 얼마 지나지않은 것 같은데
벌써 10년이 훌쩍 지나갔다는게 별로 체감이 되지 않아.
그래서 그런지 좀 싱숭생숭하다.

고3때는 진짜 멋모르고 진로를 선택했어.
솔직히 말하면 내가 간다고 말 해도 집에서 혼나지 않을 것 같은 4년제 대학에 적당히 성적이 되는 과를 선택했어.
지금 누가 그랬다고하면 미쳤다고 할법한 일은 저지른거지.

그땐 그냥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고 결국 그렇게 내 진로는 정해졌어.
당시 내가 가장 많이 들은 말이 공부에 제일 돈 많이 들였는데 시켰더니 성적은 형제들중에 제일 떨어져서 돈값 못한다는 소리였거든.
이미 속으로 많이 곪아있었던거지.
그때부터 인생 정말 많이 꼬였다.
진작 꼬였던게 그때부터 티나기 시작했다고 해야하나.

처음부터 내가 원하긴 했던거라고 자기합리화를 열심히 해봤지만 정말 안됐더라.
사람이 정말 노력해도 안되는 재능이란게 있단걸 알게되었다.

남들 다 1을 배우고 다음학기에 2를 배우면서 전공지식을 쌓는데, 나는 1을 배우고 다음학기에 2를 배우기 위해 다시 1을 공부해야했다.
남들 2를 익히고 3으로 나아갈때, 나는 이악물고 다시 1을 공부하고 2도 공부하고 그래야 3을 조금이나마 이해했다.
어떻게든 꾸준히 공부하면 남는게 있을테니 나아질거라 생각했는데,
10을 배우기 위해 다시 1을 보지 않으면 전혀 이해못하는 내 모습을 보니 그제서야 뭔가 잘못된 것 같더라.
그렇게 배웠는데 내겐 남은 지식이 없더라. 기초중에 기초라 할법한것도 그냥 생판 처음 본 사람처럼 남은게 없더라.

안되는걸 억지로 따라갔으니 성적은 이미 개판이라 전과도 생각 못하겠더라. 더 나아갈 수도 없고 되돌아가기도 무서워 방황했다.

큰 돈 들여 공부시킨 모자란 자식이 또 큰돈 들여 대학을 다녔는데 아무것도 못 해. 그것 만으로도 또 무슨말을 들을까 그게 무서워서 더이상 못하겠단 말도 못하고 휴학으로 도망쳤어.

뭔가 내가 할 수 있는걸 찾고, 휴학기간동안 무언가 성과를 내면 그래도 말은 꺼낼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했고,
또 계속 나때문에 나가는 돈이 무서워 무슨 일이라도 해야하지 않을까하는 불안감도 있었고.

그동안 쌓아놨던 속마음을 다 토해내어서 이해받고 이해받지못해 대판 싸우기도 하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고 학원사기도 당하고ㅋㅋㅋ 별 크고작은 일들이 많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내가 갈 수 있는 다른 길도 찾았고
병도 얻었다.
세상엔 정말 다양한 진상들이 있고,
정말 나보다 나이를 쳐먹어도 알량한 권력을 잡고싶어 텃세부리는 새끼들도 참 많더라. 사기친 새끼는 뭐, 이미 망했지만.
안그래도 심적으로 건강하지 못했는데, 결국 버티지 못했다.

세 달 넘게 제대로 일어나지 못했다.
앉아있기만 해도 물 위에 표류한 사람처럼 균형을 잡지 못했다. 조금만 움직여도 멀미가 올라와서 일상생활이 힘들었다. 정말 희안한데, 그런 병이 있더라.

병원과 집을 오가며 주기적으로 검사받고 매끼니마다 약을 몇가지나 먹어야했는지.
차도가 보이지않아 가벼운 시술도 받아야했다.
고막에 구멍을 내서 억지로 귀 안쪽 압력을 맞춰준다더라.
그런데도 완치가 안된다. 불가능하다 하더라. 평생 끼고다녀야하는 병이래.
그냥 내가 체력을 길러서 견디는 것 밖에 방법이 없데.
간신히 좀 사람 서있는 꼴을 하게되서야 운동을 시작했다.
이렇게 또 시달리느니 운동을 해야겠더라.

근데 등신같이 발목이 나갔다.
한 번 들어찬 염증이 빠지질 않았다.
물리치료 약물치료 한방치료 다 받아도 나아지긴 커녕 심해졌다. 결국 수술 받았다.
가득찬 염증을 긁어내고, 손가락 한마디만한 뼛조각 두개를 뺐다. 염증의 원인이었다.
그렇게 일주일가량 병원 밥 먹으며 지냈다.

대학은 어찌저찌 학점은 간신히 맞췄는데 졸업요건을 충족할 수는 없어서 포기했다.
주변에서 아깝지않냐고했는데, 솔직히 아깝다.
아깝긴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전혀 할 수 없는걸 억지로 붙잡을수록 더 손해볼 것 같아서 포기했고 다른걸 준비중이다.

퇴원하고 실밥풀고 딱지떨어지고 깁스탈출하고
목발과 작별하자마자 재활운동부터 찾았고 재활pt를 시작했다. 필라테스같은걸 생각했는데 오히려 관절에 무리가 갈 수 있다해서 개인 피티를 받았다. 1년 반 다되간다.
솔직히 시작은 좀 속은것도 같긴한데 결과적으론 괜찮아서 그러려니 하고있고...

스쿼트 5개도 간신히 하던 사람이었는데 이젠 워밍업으로 100개를 하고있다. 처음으로 데드리프트 120kg을 성공했을때의 쾌감은 아직도 생생하다.

조금만 걸어도 발목통증이 심해 어디 돌아다니기라도 하면 지인들에게 미안해 눈치보였었는데, 이젠 우리집 강아지랑 산책하면서 가볍게 뛰는 정도도 무리가 없다.

코로나가 들어오면서 요즘은 운동이 좀 많이 들쑥날쑥해졌지만서도.

하고자했던건, 영 지지부진하다.
코로나로 타격을 입기도 했지만, 얼추 내 손과 머리는 따라주는데 체질이 따라주지 않는 탓도 있다. 크게 아프기 전엔 안그랬는데, 아마 얻어버린 지병이 문제인 듯. 그렇다고 포기할 생각은 없고.

어찌저찌 살다보니 벌써 내일모레 서른이다.
계란한 판.
그동안 많이 달라졌냐하면 모르겠다.
그냥 그대로인것 같은데, 많은게 달라지긴 했다.

아, 옛날엔 내가 죽으면 장례비가 많이 나오니 죽지말고 살아야한다고 생각하면서 지냈다. 지금은 뭐, 살아있으니 살고있다고 생각하면서 살고있다.
이정도면 많이 바뀌긴 한 거 맞지.

뭔가 뚜렷한 성과를 내진 못한것 같지만, 그래도 자잘하게 내가 이룬 무언가가 아예 없는것은 아니고.

갑자기 복권에 당첨되지 않는 이상,
앞자리가 바뀐다고 인생이 드라마틱하게 바뀔 것 같진 않다. 난 여전히 지병이랑 싸우고, 운동하고, 뭐라도 하면서 그렇게 살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라도 살아야지.

새벽에 주저리주저리
긴긴 넋두리를 읊었다.
요세 감기에 걸린 바람에 앓고있던 병증이 함께 올라오려해서 그냥 좀 기분이 그렇다보니.. 무슨 말이라도 읊고싶어 이렇게 글을 써보았습니다.

뭐, 살아있으니 어떻게든 살아야하니까.
추천수11
반대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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