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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기는 이게 정답인듯

ㅇㅇ |2022.01.13 16:33
조회 29,169 |추천 8

"내가 주는 사랑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항상 고마워할 줄 아는 사람을 만나세요."

현재 당신에게 이보다 와닿는 위로의 말은 없을 겁니다.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우린 그냥 사랑한 죄 밖에 없으니 자책하지 말자고, 

보다 나은 사랑이 찾아올 거라고. 그치만 사실 알고보면 이처럼 무책임한 말도 없습니다.

 "왜?" 

로봇이라면 모를까, 받기만 하는 사랑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을 사람은 세상에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제 말이 '받는 사랑을 고마워하는 사람은 없다'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멋대로 행동해도 다 감당하고 다 받아주면서, 동시에 나를 무척이나 그것도 '변함없이'

사랑해 줄 사람은 흔치 않다는 겁니다. 아니, 어쩌면 없을 지도 모릅니다.


물론 변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거나, 주고받는 사랑을 가벼이 여기지 않을 정도로 성숙한 연애관을 

지닌 사람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단지 그런 내면이 성숙하면서 동시에 외모 또한 내 기준에 맞는 사람이

나를 사랑해주기까지 하는 경우를 찾기가 불가능에 가까울 뿐 입니다. 

더불어, 그런 완벽해보이는 사람일지라도 결국 사람인 이상 

지속적이면서 동류의 자극에는 무뎌지거나 피로감을 느낄 수 밖에 없습니다. 

단지 남들보다 티를 덜 낼 뿐 입니다.  


 
따라서 본 칼럼 맨 첫줄의 문장은 운전미숙으로 교통사고를 낸 사람에게 

"네 잘못 아니야, 마침 거기에 사람이 서있었던게 문제인거지."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냥 차라리 "당신은 다음 번에 또 사고를 낼 거에요."라고 말하는 것이 

당사자의 인생에 더욱 의미 있는 한 마디가 될 겁니다. 


 
어쩌면 오늘 칼럼은 당신이 고결하다 여겨온 당신의 '사랑의 방식'을 순 엉터리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도대체 사랑이란 무엇인 지 본질적인 의구심을 품게 만들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것 하나만큼은 자신합니다. 본 칼럼 내용의 받아들이고 이해하게 되신다면 

앞으로 당신의 연애관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성숙해질 겁니다. 



사랑이란 감정을 단순한 숫자놀이에 비유해 냉혹하게 논하는 것이 불편하실 수도 있습니다.

아니, 불편한 것이 오히려 정상입니다. 

그러니 거부감을 느끼신다면 다른 칼럼을 먼저 읽어보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권태기가 올 수 밖에 없는 이유 -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


심리학 개념 중엔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재화의 소비량이 증가함에 따라 한계효용은 감소한다'라는 개념입니다.

좀 더 쉽게 표현하자면, 

피자를 먹을 때 첫 한 조각이 가장 만족스럽고 두 번째, 세 번째로 갈수록 만족감이 줄어든다는 겁니다.

분명 '같은 맛'이지만 먹을 수록 효용에 대한 체감은 낮아진다는 것이지요.



예를 더 들어보겠습니다. 

가난하지만 성실하고 착하기로 소문난 한 '학생'이 있습니다. 

그리고 학교 앞에서 치킨집을 운영하는 '사장님'이 있습니다.

어느 날 치킨집 사장님이 홍보차원에서 이벤트를 엽니다. 



'성실하고 학업에 충실한 모범적인 학생 1명을 뽑아, 1년간 매일 치킨 한 마리를 무료로 제공하겠습니다.'


조건은 간단했습니다. 

매일 저녁마다 와서 치킨을 먹고, 본인의 치킨집을 학생들에게 많이 알리기만 하면 됐습니다. 

평소 치킨을 좋아하지만 돈이 없었던 '학생'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응모하여 혜택의 주인공이 됩니다.

'학생'은 너무 행복했습니다. 엄두도 못 냈던 치킨을 매일같이 먹을 수 있었으니까요.

매일 저녁으로 치킨을 먹었으면 좋겠다던 학생의 소원이 실제로 이루어진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학생의 만족은 한 달을 채 넘기지 못 했습니다.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을 것 같던 치킨은, 더이상 학생에게 '맛있는 음식'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날은 밥을 먹고 싶기도 했고, 어떤 날은 속이 더부룩해 저녁을 거르고 싶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치킨집 사장님과의 약속 때문에 쉽게 그리하지 못 했고,  
매일 치킨을 먹으러 가는 것이 점점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급기야 학생은 자신이 이벤트에 지원했던 것을 후회하기까지 합니다.




조건을 알고 지원했음에도 더이상 치킨을 먹고싶지 않았고,

자신이 왜 매일 치킨을 먹어야 하는 지 말그대로 멘붕이 와버립니다.

말없이 치킨집을 가지 않는 일이 늘어나고,  

학교 친구들에게도 치킨이 지겹다며 더이상 먹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하게 됩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치킨집 사장님도 심정이 복잡한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자신은 분명 좋은 의도로 이벤트를 시작했고 학생도 분명히 이에 동의했음에도 

이제와서 약속을 어기거나 자신을 피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조건이 어려운 것도 아닌데, 태도가 돌변한 학생이 밉기까지 했습니다.

두 사람은 결국 사이가 매우 안좋아졌고, 어느 순간부터 학생은 치킨집에 가지 않았습니다.

얼마 후, 치킨집 사장은 다시 이벤트 공고문을 냅니다.

"성실하고 학업에 충실한 모범적인 학생 1명을 뽑아, 1년간 매일 치킨 한 마리를 무료로 제공하겠습니다"....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에 따라, 소년은 치킨을 먹으면 먹을수록(재화의 소비) 

처음에 비해 만족도는 점점 낮아지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배가 부르거나 하는 등 소년의 상태에 변화가 생기게 되면,

만족도만 낮아지는 것이 아니라 불만족(마이너스 요인)까지 생겨버리게 되지요.

이 상황이 반복된다면 치킨은 더이상 학생에게 '맛있는 음식', '원하는 음식'이 아니게 됩니다.



'치킨집 사장'의 관점에선 어떨까요?

자신은 '매일 치킨 한 마리씩 제공한다'는 조건을 지켜왔으니, 

약속을 어긴 것은 학생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당연합니다.

분명 자신이 원하는 것을 미리 다 밝혔고, 학생은 이를 수긍했던 것이니까요.

처음과 달리 학생이 믿음직스럽지 않아 보일 것이고, 

자신이 사람을 잘못 봤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내 치킨이 맛이 없나?' 하고 괜히 위축될 수도 있겠지요.




단면만 보면 치킨집 사장이 피해자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치킨집 사장은 '원인제공자'이기도 합니다.

매일 치킨만 먹는다면 치킨을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일지라도

한계효용의 법칙에 따라 결국 질리게 됩니다.

따라서 무언가를 '변함없이 계속 해야 한다'라는 조건 자체가 잘못된 겁니다.




반대로 학생이 마냥 '가해자'가 아닌 이유도 위와 같습니다.

자신의 한계효용을 몰라서 미래의 일을 쉽게 생각했던 것(치킨을 매일 먹을 수 있다)은 

잘못되었지만, 애초에 이벤트의 조건 자체가 지키는 것이 불가능한 조건이였기 때문에

추후 학생의 심경에 변화가 생기는 것 또한 불가피한 일이 됩니다.




그러니 치킨집 사장도 마냥 학생 탓만 해선 안됩니다.

예시의 마지막 줄을 보면 사장은 결국 다른 학생을 찾고 있지요.
이번엔 좀 더 신중히 학생을 고르려고 할 겁니다.
하지만 분명히 실패할 것 입니다. 
사장의 이벤트가 실패하지 않으려면 '매일 치킨을 먹어야 한다'는 조건을 없애야 합니다.
인간의 한계효용은 정해져 있으니까요.


결론적으로, 사람의 마음은 변할 수 있습니다. 사랑의 의미는 바뀔 수 있습니다.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한계효용의 법칙'에 따라

예시의 학생과 치킨집 사장 사이처럼, 관계는 무조건 망가지게 됩니다.

"나는 이런 걸 모르고도 좋은 연애를 해봤어. 그러니까 인정할 수 없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좋은 연애'는 아직도 진행형인가요?

한결같이, 아니 처음보다 더 많은 사랑을 주었음에도 관계가 망가진 적은 없었나요?



마음의 변동성을 인정하게 된다면, 

설령 추후 상대의 태도가 변하더라도 실망하지 않게 됩니다.

'변화'를 '불행'이 아닌 '현상'으로써 이해하게 된다면, 

당신은 상대보다 최소 몇 단계 이상 성숙한 사람이 되어 있을 겁니다.  

그리고 이는 배우자 가치와 직결되어 당신의 가치를 한층 더 높여주게 되겠지요.



"내가 굳이 그런 것까지 이해해가면서 사랑을 해야해?"라는 생각이 드신다면

제 대답은 단연코 "네. 그렇게 해야 합니다." 입니다.

그게 싫으면 또 다시 연애에서 상처받게 될 것이고, 결국 인생의 행복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될 겁니다.

이쯤이면 권태기가 올 수 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선 설명이 되었으리라 믿습니다.


 만나고 헤어지고를 반복하면서 어릴 적의 풋풋함을 잃어버린 당신은, 타락한 것이 아닙니다.
자극에 무뎌진다는 것은, 후에 올 실망감을 줄이기 위해 기대치 자체를 줄이는 것과 같습니다. 
괜히 기대했다간 나만 우스운 꼴 날 수도 있다는 걸 알기에 애초에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지요.
결국 인지 자체는 못 하고 있더라도 이미 '경험'을 통해 내 무의식이 단단해졌다는 증거인 셈 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변화'에 날을 세울 필요는 없습니다.
인간이 경험을 통해 성장하듯이, 연애도 경험을 통해 다음 번과 그 다음 번의 인연과는
더 깊고 진중한 관계를 만들 수 있으니까요.
지금까지는 운명적인 상대를 만났더라도 아쉽게 놓쳤을 수 있지만, 앞으로까지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당신은 태어날 때부터 행복할 자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출처: 픽서스칼럼

추천수8
반대수17
베플|2022.01.13 17:19
여기다 백날 퍼날라봐야 판녀들 이해도 못하고 빼악질만 할텐데..ㅋㅋ 홍보라면 애처롭고 홍보아니라면 옮긴이는 헛수고하는듯ㅋㅋ
베플ㅇㅇ|2022.01.15 16:40
그냥.. 권태기가 와도 괜찮을 사람이 있음 그게인연이고 친구관계에 대입해봐도 싸우거나 밉거나 갈등생길때 있어도 극복하고싶을 친구가있고 그걸 이유로 멀어질 친구가있음. 그게 꼭 권태기온 개인 한사람의 성격이나 책임감의 문제는 아님, 멀어져도 끊어질 결정적인 계기는 안만들었거나 기존에 쌓은 추억이 너무좋았거나 특별히 여겨지면 힘들어도 참는거임 이러쿵 저러쿵해봐야 내친구니까, 반대로 멀어진 상황에 정내미 떨어트리고 추억도 없고 뻔한데 책임감땜에, 미안해서 유지되는사이? 그냥 시한폭탄이고 500퍼 상대쪽에서 못버티고 끝내버리게됨 의무감으로 날 참는사람 옆에있는거, 비참한거라서. 권태기는 기대감이 더이상 없을때 이성적으로 따지게 되는 기간임, 대부분은 한만큼 정직하게 돌아옴 권태를 이유로 멀어지는게 억울할만큼 한게있느냐, 친밀했느냐,좋은사람이었느냐,잘맞았느냐. 다 아니면 권태기 핑계로 안녕하는거임. 핑계니까 아닌사람 입장에선 열받겠지만 겪는사람 입장에선 그만큼 정직한 시기가 없음. 권태를 느꼈고 극복할 이유가 없다는 것만큼 멀어지기 확실한 이유가 어딨겠음 감정말곤 뭣도없던 사이에
베플ㅇㅇ|2022.01.14 00:04
탁상공론 오지시네요

헤어진 다음날베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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