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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 안창호의 리더십, 오늘날의 의미

안창호의 애국애족 사상과 열정을 본받아야 한다

안창호는 구세학당에 다니면서 기독교를 처음에 완강히 거부하던 끝에 받아들였다. 그는 구세학당에서 서양문명과 세계정세의 흐름을 알게 되었고, 기독교 사상도 열심히 배우고 세례도 받았으나 평생 어느 한 곳의 교회에 적을 둔 적은 없었다.

안창호는 초기에 복음전도도 하고 교회를 세우는 등 열심을 보이기도 했으나, 교회의 기부금 모집 운동이나 내세 구원 중심의 신앙에는 매우 비판적이었으며, 선교사들이 교회직원이 되라고 강권하는 것을 거절하고 교육사업과 과학 보급이 더 긴요함을 주장하였다. 그는 민족을 위하여 지상에서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고 주장하였다. 그래서 선교사들은 그를 “예수 믿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여기기까지 했다고 한다.

안창호는 1907년 한국교회가 대부흥을 경험하게 되었을 때, 교인들이 예배당에 모여 죄를 자복한다고 울부짖고 땅에 구르는 것을 보고, “저 어리석은 백성을 어떻게 깨우칠까”하며 한탄했다고 한다. 그는 신령한 것을 추구하는 신앙을 비판하면서 신령한 기도보다 약을 사서 구원하는 것이 낫다는 말도 하였다.

초기 선교사들이 의료, 교육, 문서운동과 한글보급, 청년운동, 여성의 계몽 또는 신분 평등화운동 등으로 한국에 다대한 문화적인 기여를 했다는 학자들의 평가와는 달리, 안창호는 선교사들이 한국을 위한 기여를 인정한다고 하면서도 그들의 선교정책이 단순히 종교만 전파하고 문화운동에는 매우 등한하였다고 비평하였다. 그것은 안창호가 교회를 중심하고 교회를 위해 사는 목회자나 많은 그리스도인들과는 달리 나라를 구하는 일에 관심을 두고 몸을 바쳐 일하는 사람의 시각에서 본 것이다.

안창호가 기독교에 입문했으나 교회 설립과 확장을 위하여 일하지 않고 오직 나라와 민족의 독립을 위하여 살며 활동한 사실을 두고,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 1837~1920)가 목회자요, 신학자였으나 그가 주창한 하나님의 영역주권 사상에 근거하여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경우와 비교함으로써 하나의 유추를 이끌어 내려고 한다면 그것은 무리이다. 안창호가 비록 일반 은총의 세계를 위하여 헌신하였다고 하더라도, 도산뿐 아니라 선교 초기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떤 신학적인 사고나 천착을 통하여 자신의 실천을 그런 식으로 신학화하거나 의식하지는 않았다. 선교 초기에 기독교를 받아들여 목회자 양성의 신학 교육을 받은 사람들에게서도 그들이 기독교적인 신앙과 사고를 문화 영역에까지 넓힌다는 것은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카이퍼가 살며 활동한 네덜란드는 오랜 기독교 전통을 가진 나라인 반면에, 안창호가 살던 한국은 방금 복음선교를 받아 교회가 서기 시작한 나라요, 망국의 위기에 처한 나라여서 양자가 속한 역사적인 배경은 비교가 안될 정도로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생애와 활동에서 볼 수 있는 유사성을 비교한다면, 카이퍼는 신학자요, 목회자로 언론과 저술 정당 조직 및 정치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 데 반하여, 안창호는 나라를 잃은 비참한 상황과 망명생활을 하는 처지에서 세계 여러 곳에 흩어져 사는 동포 사회를 방문하며 수많은 단체를 조직하고 홍보활동을 하며 심지어 감옥생활도 하는 등 카이퍼보다 화려하지는 못하나 훨씬 다양하게 불굴의 의지와 열정으로 활동하였다.

도산 기념관에 전시되고 있는 안창호의 몇 점 안 되는 유품 중 하나인 ‘애기 애타’(愛己愛他)라고 쓴 유묵은 그의 근본 사상을 대변하는 것이다. ‘자기를 사랑하고 남을 사랑하라’라는 말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기독교 교훈의 요체, 즉 하나님의 계명 가운데 종교적인 계명을 제외한 윤리적인 계명과 일치한다. 안창호는 복음서를 즐겨 읽었으며, 가끔 설교할 기회를 얻었을 때는 복음서의 말씀으로 설교를 하되 이웃 사랑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그렇게 살았다.

안창호는 종교를 불문하고 모든 동포를 사랑하며 독립운동을 한 인물이므로 윤리적인 계명과 일치하는 가르침만을 위해 살고 그것을 내세운 것이다. 그래서 그는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한 것이다. 그런데 이웃 사랑의 교훈은 기독교 특유의 교리가 아니고 불교나 유교에서도 볼 수 있는 공통적인 가르침이며, 인류의 모든 사회 공동체가 공유하는 도덕률이다. 사회 공동체에서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사려 깊은 사람이면 누구나 깨우칠 수 있으며, 누구나 실천해야 하는 공동체의 생존을 위한 원리이다. 애국 애족의 사상과 열정은 올바른 정신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공감하고 가질 수 있는 본능적인 것으로서 일반 은총에 속하는 것이다. 안창호는 애국 애족의 열정을 가지고 실천하며 리더십을 발휘했으므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호응을 얻고 민족의 지도자로 존경과 추앙을 받는 것이다.

오늘날의 의미

우리 한민족의 역사에서 가장 불행하고 암울했던 시대에 구국과 민족의 독립을 위하여 자신을 던져 희생한 그의 고귀한 삶에 마음에서 우러나는 존경과 경의를 표한다.

일제의 강점으로 나라의 주권을 잃은 민족의 교회는 신앙의 자유를 잃고 신도에 굴종해야 했으며, 나라의 광복으로 교회가 신앙의 자유를 되찾고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 교회가 일제하에 신앙의 절개를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바친 순교자는 높이면서도, 나라와 그 안에 있는 우리 백성의 모든 활동과 삶의 자유와 주권을 위하여 투쟁한 순국열사들의 희생과 업적에 대하여서는 기념하거나 감사는 일도 없이 무관심하게 지내온 사실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비록 국토와 민족이 분단된 상황에 있으며 북의 군사적 도발의 위협을 받기는 하나 대한민국이 G20 정상회의를 개최한 의장국으로 발전하게 된 것은 도산을 비롯한 많은 독립투사들이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자신들을 희생한 삶과 죽음이 밑거름이 되어서이다.

‘애기 애타’의 교훈과 정신을 말로만 하지 않고 ‘무실역행’함으로써 솔선수범한 도산의 삶은 우리로 하여금 이웃을 위해 살도록 요청하는 독려요, 자신을 비쳐 보며 반성하게 해 주는 거울이다. 그의 가르침은 그가 몸소 실천했으므로 권위가 있고 감동적이다. 개인의 영달과 당리당략을 좇으며, 백성들을 돌보지 않고 괴롭히는 다수의 사람들이 지도자로 군림해 온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 한 가닥 신선한 빛을 발하는 도산의 생애와 사상은 우리 백성에게 위로요, 자랑이다. 민족의 합동과 통일을 강조하며 자리에 연연하지 말고 일의 성사를 위해 진력해야 하며,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그렇게 실천한 그의 삶을 정치, 경제, 사법, 교육 및 종교에 종사하는 이들은 귀감으로 삼고, 교단 분열을 예사롭게 여기고 자파를 위해 싸움질하며 자리를 탐하는 교회지도자들은 우리 자신들의 파렴치한 모습을 비추어 볼 수 있는 거울로 알고 자주 상기했으면 한다.

대한민국은 그간에 경제 성장과 기술의 발전에 눈부신 발전을 해 왔다. 그러나 선진국이 되려면 더 많은 요건들을 갖추어야 한다. 그러한 요건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도산이 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그리고 이후를 내다보고 역설한 바와 같이, 국민의 도덕성 향상이다. 국민의 도덕적인 수준을 높여 줄 수 있는 요소는 합리적인 사고와 교육이고, 가장 힘을 발휘하는 것은 종교이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기대할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므로 이웃을 사랑하라고 분명하게 가르치는 기독교이다. 빛을 비추고 사람들로 하여금 살맛이 나게 만들어야 하는 교회가 종교는 열심히 추구하나 윤리는 망각한 상태에 있어서는 선진 사회를 위해 도덕성을 불어넣는 동력으로서 아무런 역할도 할 수 없다.

시민운동은 많은 경우에 사회와 시민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정치 사회 문제에 관여하며 목소리를 내고 활동하는, 일반 은총의 세계에 속한 운동이므로, 반드시 기독교의 이름을 드러내거나 종교 연합의 이름으로 활동하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그것이 더 바람직하다. 사회와 시민에게 유익이 되는 옳은 일을 위하여서는 종교를 불문하고 뜻을 같이하는 시민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 원리임을 도산의 삶에서 그 점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출처-교회연합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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