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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 관한 아주 긴 글

ㅇㅇ |2022.03.16 19:39
조회 107 |추천 0
나는 유년기부터 우울을 느꼈습니다. 웃지 않는 아이를 사랑해주셨던 조부모님과 어머니께는 늘 죄송스럽고 또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선천적 우울은 숙주를 충동과 신경증의 노예로 만듭니다. 초등학교 6학년, 따돌림을 당하고 처음 자살 충동을 느꼈던 이래로 여러 크고 작은 사건을 겪으며 저는 심연으로 침전해 가고 있었습니다. 나는 운명을 믿었습니다. 운명에 순응한다는 것은 압제자같은 그것에 도무지 응보 할 힘이 없는 나의 처절한 자기위로였음을 압니다.

그러던 중, 고등학교 1학년에 처음 그 애를 만났습니다. 현아라는 가명으로 칭하겠습니다. 저는 수학시간의 짝꿍으로 처음 만난 현아를 보자마자 강한 끌림을 느꼈습니다. 번호를 교환하고, 비가 오는 정류장에서 가슴 떨리는 고백을 했던 그날의 풋사랑을, 기억력이 정말 좋지 않은 저는 기억합니다. 어리게 사랑했던 당시 우리의 마무리는 좋지 않았지만 나는 언제나 그 애를 마음에 품고 있었습니다. 늘 자살을 생각했던 저는 현아에게 삶을 선물받았습니다. 꼬박 8년을 그애만을 생각하며 지냈습니다. 종종 연락이 닿을때면, 누구에게나 사랑 받을 수 있을만큼 빛나고 매력적인 현아 곁에는 다른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런 제게도 호감을 표시했던 대여섯의 멍청이들이 있었습니다. 나는 그 사람들의 마음을 거절할때도, 현아가 제게 그러했듯이 한 점의 미안함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나는 다만 그 애들에게서 저의 모습이 보일때면 저는 가만히 아팠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상대가 나를 사랑해야만 한다는 법도, 규율도 없으니까. 지금으로부터 2년 전, 우리의 마지막 재회가 있기 전까지 나는 다시 침전하며 현아와의 기억을 반추했습니다. 제가 미련하다는 사실을 압니다. 바보같다고 해도 이해합니다. 하지만 그애에게로만 귀결하는 저의 애정을 저로서도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생애라는 질병과 그 속에서 저를 지독히도 괴롭히는 우울증처럼, 내가 그애를 사랑하는 것도 운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재회한 우리는 진심을 다해 사랑했지만 모든 게 처음이었던 저는 다시 현아에게 상처를 주었습니다. 사회성과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저는 저의 명백한 잘못으로 그 애를 괴롭게 만들었습니다. 그래도 현아는 사귀는 동안, 분명히 나를 완전연소 할 듯이 사랑했습니다. 우리의 마지막 날 제가 아니면 평생을 홀로 지내겠다고 울던 그애는 그러나 한 달여 뒤, 새로운 사람과 교제하기 시작했습니다. 십 년을 그애만 사랑했던 제가 바보처럼 느껴졌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곳에 나열할 수 없는 많은 사건들에서, 가해자는 명백히 저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주변에서는 한 때라고 얘기했습니다. 젊을 때는 다들 잠깐씩은 그런단다, 벌써 6개월이 지난 지금도 저는 견딜 수 없는 통증과 자살 충동을 느낍니다.

저는 남자친구가 있는 그애에게 계속해서 연락하고, 이따금 쇼핑이나 산책을 핑계로 만나기도 했습니다. 그 애를 아프게 했던 저의 습관과 성격을 전부 개조해서라도 재회하고자 했습니다. 사귄 지 얼마 지나지 않았으니까 우리는 돌아갈 수 있어, 애원하듯이 말을 할 때면 그애는 지금 남자친구가 너무 좋다고 얘기했습니다. 나의 행복은 현아의 그것과 정확히 반비례했습니다. 제 입장에서 이야기 하는 것이기에 그녀가 나쁜 사람처럼 묘사 되었지만, 결코 그렇지는 않습니다.(물론 그렇게 금세 갈아타버린 것은 나빴습니다) 어느날, 그애를 데려다 주고 차 안에 혼자 남아 몇 시간을 울었습니다. 마음은 너덜너덜해져 더이상 상처입을 공간도 없었습니다. 더이상 추락할 수 있는 곳이 있을까요? 마침내 심연의 바닥으로 침전한 나는 더듬거리며 샛길을 찾았지만 이내 더는 살고싶지가 않다고 느꼈습니다. 병원에도 종종 들락거렸지만 상태는 나아지지가 않았습니다. 나는 사랑때문에 죽는 것은 아닙니다. 사회라는 극장에서 전 인류가 생사를 걸고 벌이는 미친 연극. 저는 사람들에게 나도 모르는 나를연기하는 데 지쳤습니다.

그애로부터 추방당한 날, 나는 비로소 무적자가 되었음을 느꼈습니다. 더 이상 앓을 자신이 없습니다. 재회? 이렇게 망가져서, 다시는 사랑할 수도 없습니다. 누군가를 믿을수도, 기댈곳도 없었던 내 가련한 생애의 유일한 안식처. 나의 낙원이었던 그 애가 마지막 순간에 떠오를 것을 나는 확신합니다.
이제는 어떤 통증에도 의연할 수 있게 됐습니다.
나는 그 애 덕분에 여지껏 숨쉬었던 것입니다.

자해 충동을 누르려고 바디프로필을 찍고, 자살충동을 이겨내려 미친 사람처럼 취미를 늘렸던 날들도 이제는 끝이 납니다. 무시하고, 상처주고, 밀쳐내도 나는 그애가 좋습니다.
처음 운명을 느꼈던 십년 전 그날로부터, 내게는 현아 뿐이었습니다.


얘기 할 곳이 없어 이곳에다가 게워냅니다
엉망으로 갈겨놓은 나의 아픔을 읽어주신 분이 계신다면
감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이제 너무 지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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