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계자들 (첸카이거 감독, 메이크업 아티스트, 경극 사부)의 인터뷰를 토대로 작성했습니다.
처음 데이의 역할은 마지막 황제 존론이 맡기로 되어있었는데, 스케줄 문제로 인해 무산되고, 장국영이 캐스팅되었어요. 장국영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 원작을 영화화하려는 제작사들에게서 시나리오를 여러 차례 받은바 있었고, 본인도 관심이 있었지만 메이드되지 않았다가 첸카이거가 감독을 맡았다는 소식을 듣고 출연을 결심했다고 합니다. 이전에 장국영은 첸카이거의 데뷔작인 를 인상 깊게 봤었고, 인터뷰에서 좋아하는 영화로 몇 차례 를 언급했었어요.
‣ 첸 카이거 (각본/감독)
홍콩에서 장국영을 처음 만난 날. 내가 에 대해서 설명하는 동안, 장국영은 우아하게 다리를 꼬고 그림처럼 앉아서 조용히 담배를 피우며 경청하고 있었다.
얘기를 마친 후 나는 장국영에게 "당신이 청데이를 맡아줘서 기뻐요."라고 말했지만 사실 속으로는 확신이 없었다.
(장국영이 대륙 출신이 아닌 광동어를 쓰는 홍콩 출신이고, 경극이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캐스팅에 의문을 나타내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처음엔 첸카이거도 처음엔 반신반의 했던 모양)
그러자 장국영이 그런 나의 속내를 꿰뚫어보기라도 한듯이
"저는 청데이에 적격이에요. 저는 항상 예술 속에서 살고 있고, 제 안에는 남성성과 여성성이 공존하고 있으니까요. 제 자신이 바로 청데이예요."
라고 말해서 그때 나는 그저 웃기만 했다.
(장국영은 인터뷰에서 "진정한 예술가는 남성성과 여성성을 모두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예술은 남성도 여성도 아니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했었죠. 자신의 영어 이름도 중성적인 느낌이 마음에 들어서 레슬리라고 지었다고...)
그랬던 내가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충격을 받은 장면이 있었는데...
샬로에게 보검을 찾아주기 위해 원대인의 집을 찾았던 데이가 유린당하고 인력거를 타고 돌아오다가 일본군에게 둘러싸이는 장면이었다. 장국영을 인력거에 태워놓고 우리는 촬영준비를 한 후 촬영에 들어갔는데, 장국영이 탄 인력거의 덮개를 들추는 순간 장국영의 입가에 번진 연지는 마치 피를 흘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고, 장국영의 눈빛에 담긴 절망과 비애가 그 장소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실제로는 몇 초 되지 않는 굉장히 짧은 장면이고 영화에선 데이가 울지 않는데, 장국영은 촬영이 끝난 후에도 데이의 감정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계속 울고 있었다. 나는 그저 조명을 모두 끄라고 지시하고 장국영이 어두운 곳에서 혼자 감정을 추스르게 해줬다. 그때 나는 비로소 처음 만난 날 장국영이 말했던 "저는 청데이예요"라는 말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다.
장국영은 자신의 모든 감정을 인물에게 투입해 새로운 경지를 창조하는 배우였다. 그의 눈빛이 바로 사랑과 시대의 반역이라는 이 영화의 주제의식 그 자체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는 굉장히 몰입해서 시나리오를 직접 쓰고, 촬영에 임했던 작품이어서 영화가 완성된 후에도 후유증이 엄청나게 컸다. 영화의 세계관에서 벗어나지 못해 괴로워하던 중, 어느날 잠을 자는데, 예쁜 푸른색 옷을 입은 데이가 꿈에 나왔다. 그리고 나에게
“이만 안녕” 이라고 작별인사를 했다.
그 순간 잠에서 깨어나 벌떡 일어났는데..
꿈에 나온 사람이 장국영인지 청데이인지 알 수가 없었고, 왜 그런 꿈을 꿨는지도 몰라 그저 혼란스럽기만 했다. 그 일이 있고 10년 후 장국영이 세상을 떠났다. 나는 그때 그가 내 꿈으로 찾아와 미리 작별인사를 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지금도 하게 된다. 장국영을 처음 만난 날 그가 했던 말처럼 그는 정말 청데이처럼 살다가 떠났다. 사실 나는 그와 마주보고 있을 때에도 왠지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을 때가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장국영의 눈빛은 우리가 현실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먼 과거의 어느 화려한 꿈속에서나 본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 송소천 宋小川 (경극 전문 메이크업 아티스트)
장국영에게 나를 소개해준 사람은 바로 패왕별희의 원작자인 이벽화다. 그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그가 너무나 유명한 세계적인 스타여서, 거만하거나 까다로울까봐 걱정했다. 그러자 이벽화는 장국영처럼 상냥하고 좋은 사람은 세상에 없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를 만나는 순간 나의 모든 염려가 기우였음을 알게 되었다. 만난 그날 우린 바로 친해져 버렸다. 그래서 그보다 네살이 어린 나는 촬영하는 내내 장국영의 숙소인 호텔 스위트룸의 리빙룸에 묵으며 그의 어시스턴트를 자처했다. (전화 받고 팩스 받고 뭐 그런 일을 도와주는)
장국영은 촬영에 들어가기 두 달 전에 이미 북경으로 와서 경극연습을 시작했는데, 그의 학습 능력은 정말 대단했다. 프로 경극배우들도 반년이나 걸려야 겨우 습득하는 동작조차 열흘 만에 모두 완벽하게 해내서 모두를 놀라게 했다. 내가 놀라워할 때마다, 장국영은 기뻐하며 "몰랐지? 나는 전생에 경극배우였단다." 라고 농담을 했다.
데이의 가발과 머리장식은 굉장히 무거워서 매일 7-8시간 동안 그걸 쓰고 있으면 프로 경극배우들조차 굉장히 고통스러워한다. 그래서 첸 카이거 감독도 장국영에게 휴식시간에는 가발 좀 벗고 있으라고 권했는데, 촬영 장면의 느낌을 유지하고 싶었던 장국영은 휴식시간에도 내내 무거운 가발을 쓰고 있길 고집했다.
패왕별희가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던 날 장국영이 전화를 해주었다.
" 소천아 다 네 덕분이다. 너의 메이크업이 없었다면 데이가 그토록 예쁘지 않았을 거야."
라고 그가 말했다. 그래서 나는
" 그렇지 않아. 꺼거(중국어로 형, 오빠/ 장국영의 애칭)의 아름다운 얼굴이 없었다면 나도 고운 화장을 할 수 없었을 거야"
라고 그에게 말해줬다.
모든 일정이 끝난 뒤 홍콩으로 돌아간 장국영은, 경극 사부님들과 나를 홍콩으로 초대해 극진히 대접해주었다. 영화판 일이라는 게 보통 영화가 끝나면 모두 끝나는 관계가 대부분이라 그의 행동은 나를 어리둥절하게 했다. 장국영같은 대스타가 나를 이렇게 대접해주는 이유가 뭘까? 장국영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더니 그가 말했다.
"나는 성실한 사람이다. 네가 나에게 해준 모든 것에 대해 제대로 보답하고 싶다."
이후로 장국영은 시간이 날 때마다 나에게 전화를 걸어서, 경극 사부님들과 나의 안부를 물었다.
언젠가 장국영이 내가 분장을 맡은 경극을 보러 북경까지 와줬었는데, 그가 객석에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서 그 공연장 안에 있던 절반 이상의 사람이 모두 그를 향해 쇄도하는 바람에 엄청난 소동이 일어나기도 했었다. 공연이 끝나고 그가 나에게 말했다. “소천아 너는 절대 이 일을 그만두지 마. 너는 이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다.” 장국영의 그 말은 나를 몹시 감동시켰다.
장국영은 타인에 대한 이해심이 매우 깊은 사람이었다. 자신은 늘 사랑에 굶주려 있었다고 그는 종종 말하곤 했다. 그래서인지 항상 타인에게 따뜻한 온기를 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매번 내게 전화를 할 때마다 “소천아 잘 지내? 아버지와 어머니는 어떠셔? 장선생님과 사선생님(장국영의 경극 사부들)은 어떻게 지내셔?”라고 주변 사람들의 안부까지 빼놓지 않고 물었다. 언젠가 그에게 사 선생님이 암 투병 중이라는 사실을 전하자, 그는 곧장 뵈러 가야겠다고 말했다. 그가 선생님 댁에 병문안을 간 날, 평생 장군 역할만 해온 강인한 선생님이 처음으로 눈물을 보였다.
장국영은 매우 강한 사람이었다. 오랜 무명 시절과 가난도 모두 극복했는데, 도대체 마지막에 왜 그런 선택을 한 걸까? 장국영은 종종 말했다.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다고..... 그는 외로움을 많이 타고, 정에 굶주려있고, 항상 사람들이 자신의 곁에 있어주길 원했었다. 그랬던 그가 우리를 남겨놓고 홀로 떠나가 버렸다. 그가 하늘에서 혼자 쓸쓸하게 지낼까봐 걱정이 된다. 모든 사람들이 그를 계속 기억해주고 사랑해줘서 외로움을 많이 타는 그를 따뜻하게 안아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