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크리스마스가 우리나라 추석만큼이나 큰 휴일입니다. 가족들, 친지들과 모여서 몇일 동안 파티의 연속이지요. 12월 한달 내내 크리스마스 준비를 한 것 같습니다. 크리스마스 쇼핑도 몇일씩 걸리고, 크리스마스 케잌은 몇주 전에 만들더군요. 크리스마스 트리에 ornaments 가 몇 박스나 집에 있는데 매년 새로 또 산다고 그거 사러 옆에 도시까지 쇼핑하러 가고, 몇주동안 캐롤만 들었더니 아주 머리가 아픕니다.
저희 시어머니 또한 예외가 아니지요. 몇주동안 크리스마스 귀걸이 (트리 모양, 눈사람 모양, 천사 모양 정말 별게 다있더라구요) 를 달고 다니시는데 귀걸이가 크게 움직이면 불빛이 반짝반짝 빛나는거라 틈만 나면 춤을 추시거나 뛰어다니시더군요. ㅡㅡ 50대 중이 훌쩍 넘으신 분이 참 소녀같으신 면이 있구나 싶어요 가끔은 온통 빨강, 초록색으로 장신구를 하시고 옷도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입으시고 너무 좋아하시면서 옆집에 마실을 가십니다. 좀 당황스러운데 지금은 적응이 된 것 같아요. 파티에 오셨 이모님들도 다들 비슷비슷하더라구요 ㅎ
이번 한주는 정말 바빴어요. 이모님들, 할머님, 고모님들까지 번갈아가면서 오시더군요. 오실라면 한꺼번에 오시지 ㅜㅜ 게다가 한번 오시면 와인을 대짝 수준으로 드시기 때문에 시어머니랑 저랑 오시기 전에 안주 준비에 몇시간을 보냈습니다. 이집 여자들이 술이랑 좀 많이 친한가봐요. 남자들은 맥주 몇 병이 고작인데 여자들은 모였다 하면 와인 몇병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버번에 보드카가 나오기 시작하면 춤판이 벌어집니다. 다들 밥도 안먹고 술먹고 안주 집어먹으면서 춤을 추더군요. 저희 시어머니는 보통 9시면 잠자리에 드시는데 이번 주 내내 새벽 1시 이전에 방에 들어가시는 걸 못 봤습니다. 체력도 좋으시죠. 아님 술기운인가…
어제가 대망의 크리스마스. 정말 동네 사람들까지 다 모여서 파티를 한 것 같네요. 점심부터 정말 거하게 먹었습니다. 햄에 터키에 온갖 초코렛, 푸딩, 파블로바, 느끼한 것들로 가득찬 식탁을 보니까 처음엔 행복하다가 나중에 토할 것 같더라구요. 그렇게 거하게 식사를 하고 산더미 같은 설거지거리는 저랑 우리 남편 차지. 남편은 너무 배불러서 서있지도 못하겠는데 설거지 해야한다고 투덜투덜거리면서 설거지하고 저는 옆에서 설거지 보조하고 (티타올로 물기 닦아내고 찬장에 넣기) 끝나니 거진 한시간.. 그 사이에 시어머니 시아버지는 티비 앞에서 골아떨어지셨더군요. 소화시키는게 많이 힘드셨을꺼에요 ㅎㅎ 저랑 남편은 소화도 시킬겸 산책을 나갔어요. 여기저기 어슬렁거리면서 산책 나온 사람들이 많더라구요. 아니 산책 보담은 이집에서 파티 끝나면 다음 집으로 옮기는 것 같은.. 그래요.. 여기선 크리스마스가 national feeding day 같아요. 크리스마스를 시작으로 새해까지 쭈욱 먹어주죠. 꼭 일년 내내 엄격한 다이어트를 하다가 이때만 되면 모든게 다 용서가 되는.. 뭐 그런 휴일인거죠.
그렇게 오후를 보내고 또 느즈막히 저녁 파티 준비를 하기 시작했고.. 새벽까지 이어진 파티.. 손님분들 다 돌아가시니 12시쯤 되더라구요. 부엌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그릇들을 보니 정말.. 질리대요. 저걸 누가 다 치우나 싶어서 눈물까지 나더군요. 엔간하면 설거지는 절대 안하시는 시어머님이 하실리는 없고 시아버지도 마찬가지.. 어차피 내가 해야할 거 그냥 해버리고 말자는 생각에 팔 걷어붙히고 시작하니까 남편도 슬금슬금 옆에 와서 도와주더군요. 세상에.. 얼마나 많았던지 다 끝내니깐 2시가 거의 다 되었더라구요. 그래도 내일 아침엔 우리 시어머니 짜증은 안내시겠구나 싶어서 뿌듯했습니다.
오늘 아침, 시어머니가 일찍부터 일어나셨나봅니다. 저는 어제밤에 너무 피곤도 하고 생리도 시작하고 해서 느즈막히 8시반쯤 일어났네요. 비몽사몽간에 일어나서 물 두컵 마시고 시리얼 좀 먹고 morning ritual 을 끝내니 세탁기 끝난 소리가 들려 빨래를 널었습니다.
시어머님이 참 부지런하세요. 나름대로.. 아니 정리정돈을 맘 내키면 정말 완벽주의자처럼 하시지요. 문제는 일관성이 없고 자기 맘 내키면 온통 너저분하게 늘어놓다가 한번 삘 받으면 막 치우는 거죠. 오늘 마침 삘 받으신 시어머니.. 트리 장식 떼어내는 걸로 시작해서 아주 이삿짐을 싸시더라구요. ㅡㅜ 뭐 자기 혼자 그러면 말도 안하는데 자기가 죽어라 치우고 있으면 다른 식구들도 뭔가를 해야지 안하면 말그대로 bitchy 모드 가동입니다. 막 짜증내고 성질내고 말도 어쩜그리 이쁘게하시는지.. 전 제딴엔 비위 맞춰준다고 빨래도 널고 세탁기도 돌리고 했어요. 그리고나선 어제 먹은 초코렛도 태울겸 gym 에 가려고 준비를 했지요. 남편은 일찌감치 준비하고 혼자 도망갔더라구요. 배신자같으니라고.. ㅡㅡ 뭐 다 좋아요. 그때까지만 해도 시어머니 좀 툴툴거리면서 짜증부리는 것 빼곤 다 괜찮았으니깐.. 그런데.. 제가 운동갈 준비하고 시어머니한테 gym 간다고 얘기하니까 하시는 말..
“what about the dishes? Are you going to do the dishes?”
에? What dishes? 하면서 부엌에 가니 그 사이에 아침부터 거하게 식사를 하셨는지 설거지가 또 잔뜩 있는거에요 아…. 정말 너무해 OTL
저도 짜증도 나고 해서.. “I wasn’t going to…” 하며 말을 흐렸어요
시어머니 bitchy 모드 가동 되면서 “Good, we just can’t stand the mess”
이해가 가실라나? 우리 시어머니특유의 빈정거림이.. 아 정말 뒷골 당겨서..
그냥 설거지 하라고 부탁을 하시던지 왜 빈정거리냐고요 정말..
ㅜㅜ 전 그냥 설거지를 하고 말았습니다.. 화는 나는데 어떻게 해야할질 몰랐다고나 할까.. 온갖 생각이 다 들더군요. 설거지 끝나고 가서 한마디 할까 이 웬수같은 남편 붙잡아서 족을 쳐야지 뭐 그런..
결론은.. 그냥 운동하러 갔습니다. 한참 뛰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는데..
시어머니 입장이 나름대로는 이해가 가더군요. 시친결 들어와서 여러가지 입장에서 쓰여진 글들을 읽으면서 참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우리 시어머니 입장에선 크리스마스도 끝났는데 늦잠자고 일어나서 집안일도 안도와주고 내뺄려고 한 괘씸한 며느리로 보일 수도 있던거죠. 자기도 술먹고 손님 접대하느라 피곤한대도 일찍 일어나서 빨래 돌리고 청소하고 했는데 전 겨우 빨래 좀 널고 운동 간다고 했으니..
제 입장에선 어제 밤늦게까지 설거지 했는데 또 하라니.. 억울한거구요. 물론 시어머니는 저녁에 제가 한 설거지 따위는 잊어버리신거고..
그렇다고 제가 시어머니한테 가서 어제 내가 다 설거지 했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내가 어지럽힌 것도 아닌 설거지를 왜 내가 해야하냐고 따지는 건 더 웃긴거구요. 글구.. 내 엄마는 아니지만 내 남편 뒷바라지하면서 귀하게 키워주신 분인데 그 정도는 내가 해야하지 않나 싶더라구요.
운동 갔다가 오니까 시어머니도 그렇게 빈정거려놓고 미안하셨나봐요. 저한테 잘 갔다왔냐, 얼마나 뛰었냐 샤방샤방 웃으시면서 가서 좀 쉬라고 하시네요. ㅋ 제가 장식품들 치우는거 도와드린다고 하니깐 괜찮다시면서..
별 것도 아닌 일에 정말 많은 생각을 한 오늘입니다. 다음주면 다른 도시로 이사갑니다. 드디어.. 앞으로 이렇게 시어머니랑 같이 살 날이 있을진 모르겠지만 나름대론 좋은 경험 했고 많이 배웠다는 생각이 들어요.
님들도 즐거운 크리스마스가 되셨는지요.. ㅎㅎ 그리구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