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0살 입니다. 1년 반 조금 넘게 사귄 여자친구와 헤어졌어요. 둘이서 취향도 비슷하고 맛있는 것도 좋아하고 서로를 정말 많이 좋아했어요. 그녀는 참 밝고, 잘 웃고, 누구나 좋아하는 매력적인 사람이었던 반면, 저는 신중하고 차분하고 웃음이 그리 많지는 않고 까탈스러운 성격이었죠. 성격의 차이가 분명했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끌렸고 열정적인 사랑을 했습니다. 정말로 행복했어요.
성격의 차이는 사랑으로 극복되는 것이구나 라고 믿음이 생겨갈 때쯤, 조금씩 싸우기 시작했어요. 성격이 다른 만큼 서로에게 바라는 것이 조금씩 달랐고, 그게 충분히 충족되지 못했죠. 처음엔 별 것 아닌 싸움이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더 크게 싸우고 몇 번을 헤어질 고비를 넘겼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제가 그녀를 잡았고, 그녀 또한 저의 간곡한 붙잡음을 받아들이고 관계를 이어가곤 했죠.
그렇게 지내다가 헤어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된 싸움을 했던 날이 찾아왔습니다. 그 날도 연락에 관한 성향 차이로 인해 싸우게 됐고, 저희는 한 달간 시간을 갖기로 했어요. 한 달.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지금 와서는 후회됩니다만, 저는 한 달이라는 시간이 더 긍적적인 관계로 나아가기 위한 생산적인 시간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고, 잦은 싸움으로 지쳐있던 마음을 추스리고 생각을 정리해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한 달이라는 시간은 그녀에겐 다른 시간이었어요. 필요이상으로 긴 시간이었고 이별을 결심하게 하는 계기가 되는 시간이었던 거죠. 저는 하루라도 더 빨리 연락을 했어야 했습니다.
한 달이 지나 이제 그녀와 대화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고 연락을 했습니다. 저는 그녀가 너무 보고 싶었는데, 그녀는 아니었나봐요. 연락한 날로부터 2주 뒤에 약속을 잡더군요. 저는 좀 긴 것 같다고 생각을 했지만 무심코 알겠다고 했습니다. 사실 이 날 제가 더 적극적으로 빨리 만나자고 했으면 그녀 마음을 돌릴 수 있었을 것이라는 후회도 합니다.
2주 뒤에 만났을 때 그녀와 저는 서로 잘 지냈는지 안부를 묻고, 둘이 좋아하던 식당에서 밥을 먹었고, 잘 지낼 때 평소에 하던 것처럼 대화를 했어요. 제가 정말정말 귀여워했던 그녀의 강아지 안부도 묻고 그간 궁금했던 걸 물어보기도 했어요. 대화가 무르익을 때쯤 그녀가 먼저 물어봤어요. 한 달간 어떤 생각을 했느냐고. 저는 제가 정리했던 생각을 다 말해줬고, 그리고 다시 잘 해보고 싶다고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그녀도 제 이야기에 다 공감을 했고 잘 들어주었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말하길, 미안하다고, 서로 좋아하지만 이젠 우리가 너무 멀리 와버린 것 같다고, 돌아가기엔 이미 늦은 것 같다고 말을 하더군요. 내색은 안 했지만 억장이 무너졌습니다. 그녀가 한 달이 지나기 전에 연락을 했더라면 달라졌을 것이라는 생각을 전하기도 했기에 더욱 그랬습니다.
저는 다시 붙잡았어요. 하지만 그녀의 마음은 망설이는 듯 했지만 끝내 확고했고, 저도 결국.. 알겠다고 했습니다. 저희는 마지막으로 양재천을 걸으며 마저 나누지 못한 얘기를 나눴습니다. 마지막으로 함께 걸으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었고, 둘 다 그걸 알고 있었습니다. 벚꽃이 다 지고 난 뒤, 찬바람이 제법 세게 부는 양재천의 저녁이었어요. 참 먹먹하고 아련한 시간이었습니다. 그 후 그녀가 저를 집에 데려다 줬고, 저희는 마지막 인사를 하고 헤어졌죠. 서로 많이 사랑했다고 말하고, 행복했고 고마웠다 말하고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그랬다가 저는 다음날 바로 충동적으로 다시 필사적으로 붙잡았습니다. 제정신이 아니었던 거죠. 다시 잘 해보면 안 되겠냐고, 일을 하고 있는 그녀에게, 설사 받을 수 있더라도 받고 싶어하지 않을 전화를 계속 걸며 카톡을 보냈죠. 당시 제 입장에선 오해할 만한 일이 있었기에 환승이별을 당하는 거냐고 따지기도 했습니다. 그녀가 그러더군요. 무섭다고. 이제 그만하라고, 잘 마무리 해놓고 왜 이러는 거냐고. 순간 제가 심하게 잘못된 행동을 해버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사과를 하고 연락을 더 이상하지 않겠다고 했어요. 전날에 아름답게(물론 이별이 아름답지는 않지만 딱히 다른 표현이 생각나진 않네요) 마무리를 했고, 거기서 끝냈으면 됐던 것인데, 저의 충동적인 행동 때문에 좋았던 기억마저 일그러지며 끝나버리게 된 게 너무 마음이 아팠고 쓰라렸습니다. 참 바보 같았죠.
정말 허무해요. 세상에 다른 것은 보이지 않을 만큼 열정적이었고, 서로를 아꼈고, 편지와 글귀로 예쁜 마음들을 나눴고, 수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함께 많은 곳을 다녔고, 많은 것을 공유했지만 그 모든 것이 한 순간에 내 삶에서 사라져 버린 것이니까요. 사실 돌아보면 이 관계는 깨진 유리잔 같은 관계였을지도 몰라요. 이미 한 번 깨졌던 유리잔을 다시 억지로 이어붙이려고 했던 것일지도 모르죠. 언젠가부터 싸움이 잦아졌고 불꽃이 사그라드는 것이 확연히 눈에 보였거든요.
한 편으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좋아하는 마음으로 이어온 관계이기에 '그 때 그랬더라면', '조금 더 일찍 연락 했더라면' 하며 달라졌을지도 모르는 결과를 상상하며 뼈아픈 후회를 하기도 했구요. 그런들.. 그녀와 저는 이미 끝났는데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그저 마음이 미어지고 많이 슬프고 후회될 뿐입니다. 너무 마음이 아파서 이렇게 글을 쓰는 와중에도 눈물이 저절로 후두둑 떨어지네요.
그래도.. 많이 좋아했고, 사랑했습니다. 그녀 덕분에 사랑하는 법을 알게 됐고, 매말랐던 마음이 촉촉해지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차가웠던 마음이 불타오르는 시간을 보냈고, 인간으로서 많이 성장하는 시간이었어요. 그녀도 저와 보낸 시간이 행복했기를 바랄 뿐입니다. 못해준 게 많았고 부족한 저였음에도 함께 해준 그녀에게 정말 고마운 마음이에요. 정말 최선을 다해 사랑했습니다. 앞으로 더 나은 사랑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굉장히 자기 중심적인 사람인데, 그녀 덕분에 그 틀을 조금이나마 깰 수 있었고, 그녀 덕분에 저의 부족한 모습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어요. 앞으로 찾아올 사랑에게는 더욱 배려하는 마음과 좋은 사랑을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지난 시간을 이렇게 돌아보고 나니 생각이 조금은 정리가 되면서도, 마음이 지치고, 힘듭니다. 30대에 하는 이별은 조금은 다를 줄 알았는데, 마음이 아픈 것은 똑같네요. 오늘만큼은 혼자서 울기도 하고 제 스스로를 다독여주고 싶습니다. 생전 네이트판이라는 것을 해 본적이 없는데, 이런 얘기를 속시원하게 풀어낼 곳을 생각해보니 네이트판이 떠오르더라구요. 아이러니하게도 친구들에게도 가족에게도 풀어내지 못할 이야기들을 여기다가 적고 있네요.
슬프지만 우린 살아내야 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상처가 치유되고, 더 나은 날의 아침을 맞이할 수 있겠죠.
여기 계신 모두의 지친마음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