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규 칼럼] 우연인가, 창조인가?
이한규 칼럼니스트 입력 2022.04.10 13:21
이한규 칼럼니스트.
윌리엄 페일리의 시계 논증
찰스 다윈보다 한 세기 이전에 살았던 영국의 신학자요 철학자였던 윌리엄 페일리(William Paley, 1743-1805)는 1802년 자신의 저서인 「자연신학 (Natural Theology)」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만약 당신이 길을 가다가 시계 하나를 주웠다고 가정해 보자. 여러 개의 태엽 장치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맞물리며 시침과 분침이 일정한 속도로 돌아가며, 세련된 장식까지 더해진 ‘명품’ 시계를 말이다. 이처럼 정교한 시계라면 분명 뛰어난 기술을 가진 일류 시계공의 정성과 노력을 통해 그의 손끝에서 탄생했을 것이다. 이렇게 시계처럼 정밀하고 복잡한 물체가 결코 저절로 만들어질 수 없다는 사실에 동의한다면, 시계보다 백만 배는 더 복잡하고 정밀한 인간의 눈(眼)이 저절로 만들어졌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일 것이며, 그러므로 생명은 저절로 진화한 것이 아니라 절대적 존재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것이 더 이치에 합당하다.”
시계가 우연히 생겨날 수는 없다면 그것은 어디엔가 시계를 만든 설계자와 제작자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거대하고 복잡하면서도 정교하고 놀라운 질서를 가진 태양계를 비롯한 우주, 그리고 그 가운데 있는 만물들은 어느 날 우연히 저절로 생겨난 것일까? 아니면 어떤 특별한 목적 하에서 조물주에 의해 설계되고 창조되었을까?
합리적 추론과 자연스러운 믿음
잘 작동하는 시계의 구조를 살펴보면 복잡하고, 정교하며 일정한 법칙에 따라 바늘이 움직인다. 모든 부품들은 시각을 알리는 기능을 하도록 모두가 서로 아주 적절하게 맞물리고 완벽하게 조합되어 작동하고 있다. 시계를 한번 보면 누구나 이처럼 정교한 시계는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지혜와 능력을 가진 제작자가 설계를 하고, 어떤 재료로 그 시계를 만들었다고 믿을 것이다.
이 우주는 시계와는 비교할 수 없는, 아주 복잡한 과학적 원리와 법칙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천체의 운행과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은 시계 바늘들이 움직이는 것과 비교할 수 없이, 훨씬 더 복잡하면서도 정교하고 규칙적이고 놀라운 질서를 가지고 있다. 자연계에는 어떤 일정한 규칙, 일정한 법칙, 일정한 패턴, 일정한 배열이 있고 사람들은 그것을 ‘자연법칙’이라고 부른다. 만물 속에 일정하게 나타나는 이런 놀라운 규칙과 법칙, 패턴과 배열들이 우연히 저절로 그처럼 질서있게 나타날 수는 없기 때문에 생명체와 우주는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놀라운 지혜와 능력을 가진 존재가 어떤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설계하고 창조한 것이라고 믿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페일리(W. Paley)는 또한 시계에 대한 분석을 인체와 같은 대상에 적용해서 위대한 창조주인 신의 존재를 입증하는 증거로 제시한다. 인체나 동물, 곤충의 몸 또한 복잡하면서도 정교하고 놀라운 질서와 신비로운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인체도 소우주라고 불린다. 상식과 논리를 따라 생각할진대 인간이라는 존재가 어찌 목적 없이, 설계자 없이, 창조자 없이 우연히 생겨날 수 있겠는가?
페일리는 천체나 인체 등 만물이 보여주는 놀라운 질서와 조화는 하나의 뛰어난 지적 존재에 의해 설계되고 조합되었다는 것을 강력히 표현하고 있다고 역설한다.
페일리의 소위 ‘시계 논증’은 한편으로 시계에 대한 관찰 및 인체, 예를 들면 사람의 눈(眼)과 같은 자연물에 대한 관찰에 근거하고 있다. 그 관찰의 결과를 토대로 그는 다음과 같이 논증한다.
첫째. 자연물은 시계와 유사한 속성, 즉 놀라운 규칙과 일정한 패턴 및 설계적 속성을 보여준다.
둘째. 자연물은 이러한 속성을 정교하고 복잡한 기계보다 더욱 탁월한 방식으로 보여준다.
세째. 시계는 설계자와 제작자가 있어야 만들어지듯, 만물은 더욱 탁월한 설계자와 창조자, 즉 신에 의해 창조된 것이다.
네째. 그러므로 만물의 창조자인 신은 존재한다.
페일리가 ‘자연신학’을 집필한 목적은 17세기 이후 계몽주의 이념이 가져온 합리적 의심과 회의주의의 힘이 정통 기독교 신학의 지반을 무너뜨릴 것을 누구보다 경계하고, 그리스도교 인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굳건히 지키도록 도와주기 위함이었다.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토기장이가 한 줌의 진흙으로 토기를 빚으면 토기에 토기장이의 지문이 묻어 있고, 빚어진 토기를 보면 토기장이의 솜씨와 능력을 읽을 수 있다.
책이 있으면 저자가 있게 마련이며, 그림이 있으면 화가가 있게 마련이고 집이 있으면 지은 이가 있게 마련이다.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히브리서3:4)
사실 페일리의 논증의 기초는 성경이다. 이 성경 구절이 페일리 논증(論證)의 논거(論據)다.
빈 집만 덩그러니 있으면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그 집에서 연기가 나고 빨래가 널려 있고 마당에 채소가 자라고 있고, 마당에 곡식이 널려 있고, 옆에 장독이 있고, 뜰에 신발이 있고, 자동차가 서 있으면 그 집에 사람이 살고 있다고 믿는 것은 당연하다.
이 우주와 세상을 자세히 살펴보면 누군가가 어떤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놀라운 지혜와 능력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물리학 분야에서 노벨상을 탄 아더 컴프톤(Arthur Compton)씨는 “나에게 있어서 믿음이란 어떤 절대적 지능(Supreme Intelligence)이 있어서 세상을 존재케 하고 인간을 창조했다고 하는 데서 시작된다. 질서 정연하게 펼쳐진 우주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가장 위엄있는 말씀을 증명해 준다”고 말했다.
성경은 말하고 있다.
“질그릇 조각 중 한 조각같은 자가 자기를 지으신 자로 더불어 다툴진대 화 있을진저”(이사야45:9)
악명높은 무신론자 안토니 플루의 전향
안토니 플루(Antony Flew)는 감리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미션 스쿨에 다녔지만 무신론자가 되어 옥스퍼드에서 ‘소크라테스 클럽(Socratic Club)’의 주요 멤버가 되었다. 소크라테스 클럽은 C.S. 루이스가 10년 이상 회장으로 있었던, 무신론자들과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논쟁을 위한 포럼이었다. 플루(Flew)는 27살이던 1950년 ‘신학과 위조(Theology and Falsification)’라는 논문을 발표했고, 1961년에는 무신론을 주장하는 두 번째 책 「신과 철학(God and Philosophy)」을 출판했으며, 1971년에는 「무신론의 전제(The Presumption of Atheism)」를 출판하여 기독교인들에게는 50년 이상 아주 악명 높은 무신론자가 되었다. 그랬던 그가 2004년 뉴욕대학교에서 있었던 논쟁에서 마침내 ”나는 이제 신의 존재를 수용한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최근의 책 「신은 존재한다」에서 신의 존재에 대한 증거로 설계론적, 우주론적 주장을 하고 있다.
”순전히 DNA에 대한 연구 덕분이다. 내가 생각하는 DNA의 역할은, 생명을 창출하는 데 필요한 장치들을 불가사의할 정도로 복잡하고 정교하게 배치하고, 엄청나게 다양한 부품들이 협력하여 일하도록 하는 데는 틀림없이 지성이 관련되어 있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것은 부품들의 수적인 복잡성과 그 부품들이 협동하여 일을 하는 방법적 정밀성을 말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우연히 딱 맞는 시점에 모두 생겨나서 우연히 작동되었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그것은 전적으로 임무를 성취하는 데 필요한 엄청난 복잡성의 문제이며, 내게는 그것이 지적 존재의 작품으로 보인다.”
플루(A. Flew)는 그의 마음을 바꾸게 된 결정적인 요인이 지적 설계(Intelligent Design)였음을 분명히 하였다.
플루(Antony Flew)는, 특히 원숭이가 타자를 치다 보면 언젠가는 셰익스피어의 14행 시를 쓰게 될 것이라는 논리에 대한 물리학자의 반박에 감명을 받았다. 우연히 셰익스피어의 14행 시(詩)를 하나 얻을 확률은 1/10의 690에 불과한 지극히 지극히 낮은 확률이다고 한다. 우주에 존재하는 입자의 수가 10의 80개뿐이라는 과학자들의 증언을 고려하면, 그 확률이 얼마나 낮은 것인지를 알 수 있다.
맛보아야 아는 세계
그러나 플루(Antony Flew)는 아직 성경이 말하는 인격적인 창조주를 믿는 사람은 아니다. 조물주는 인간이 논증하여 만나지는 것은 아니다. 생각을 비우고 마음을 낮추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마음에 있는 모든 죄를 깨끗이 사함받고 성령으로 거듭나야 인격적인 하나님을 마음에 모실 수 있고, 그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실제적으로 맛볼 수 있다. 인간이 신을 논증하는 것은, 마치 사과의 맛에 대해, ‘사과로 말할 것 같으면 수분이 몇 %, 탄수화물이 몇%, 당분이 몇 %, 섬유질이 몇 %인데 그 맛이란 새콤달콤하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사과의 구성 성분을 다 알아도 실제로 사과를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사과의 맛을 정확히 모른다. 사과의 구성 성분을 다 몰라도 실제로 정말 맛있는 사과를 먹어본 사람은 사과의 맛을 제대로 안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시편34:8)
이한규 칼럼니스트 jumag1958@naver.com저작권자 © 열린뉴스통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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